시간의 결, 결의 시간
6화 다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부모가 되니 모르는 사람에게도 말을 잘 걸고, 아는 척을 하게 되더라고.”
여러 사람에게서 들은 말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결을 낳고 나서는 모르는 이에게 쉽게 말을 붙이는 또다른 자아가 자주 출몰한다. 대부분 비슷한 또래 아이의 부모들이라 방긋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물론 반응 없는 이들도 있는데, 그럴 때면 같은 부모 입장임에도 서로를 경계하게 하는 사회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결을 키우며 생긴 가장 큰 소득(?)은 ‘예랑이네’를 알게 된 일이다. 2017년 5월 어느 일요일, 우리는 교회 2층 뒷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 결은 설교만 시작하면 칭얼대서 복도로 데리고 나가곤 했는데, 그곳에 우리와 비슷한 가족이 있었다. 한두 번 목례로 인사하다가 아이들 간식을 나누며 친해졌다.
예랑에게는 다섯 살 터울의 오빠가 있었고, 부모님들은 우리 부부보다 몇 살 위였다. 육아 선배이자 동지인 그들에게는 배울 점이 많았다. 격려도 자주 받았다. 어느새 우리는 크고 작은 축하도 함께하고 어려운 이야기에도 귀 기울일 만한 관계가 되었다.
시간의 결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나성훈(아빠) : ‘우리 동네’라고 부를 만한 장소나 사람들을 경험한 적이 있어?
장은혜(엄마) : 초등학생 때 군인 아파트에 살았어. 같은 학원을 다니는 애들이 많았는데, 다들 아파트 정문에서 학원 차를 기다리며 놀았어. 수업 끝나고 오면 사방치기 하고 간 게 그대로 남아 있었어. 멤버가 같으니까 놀이를 이어서 하기도 하고, 다 놀고 나면 친구 자전거를 빌려 타기도 했어. 즐겁고 행복했어. 하루가 긴데 우리의 밤은 유독 짧은 것 같아 신비로웠어.
나성훈 : 내가 어릴 때 살던 목포 집 근처에는 골목이 많았어. 뛰면 탕탕탕탕 발소리가 울리는 골목. ‘동네’라고 하면 나는 그 소리가 기억나.
장은혜 : 승효상 건축가도 골목을 살려야 한다고 했잖아. 예전처럼 한두 명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이 중요하다고. 그때는 사람들 마음도 가까웠던 것 같아.
나성훈 :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서 ‘동네 사람’ 하면 떠오르는 얼굴이 몇 없는 것 같네. 그런데 한편으론 꼭 가깝게 살지 않아도 한 동네라고 부를 만한 공동체도 있지 않나?
장은혜 : 그러고 보면 오늘날의 ‘우리 동네’는 살아가는 방식, 어려움을 해결하는 법, 교육관 등등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사는 지역은 크게 상관없이 만나고 어울리면서 유대감과 결속력을 갖게 되는 것 같아. 온라인에서도 가치관이나 관심사에 따라 커뮤니티가 만들어지잖아. 나는 온라인에서 주로 육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떤 사람들과는 만날 일이 없어도 정신적으로 이어진 느낌이야. 아이 세 명 키우는 친구가 육아에 관해 쓴 글을 보면 잘 만나지 못해도 가까이 있는 것 같고.
- 다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나성훈 : 우리와 친한 사람들의 아이들도 같이 어울리면서 잘 크면 좋겠는데, 방법이 없을까?
장은혜 : 아는 언니는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간다고 하더라고. 남편의 대학 동창들이 ‘1년에 한두 번은 만나야 하지 않겠냐’ 해서 캠핑 모임을 만들었대. 몇 년 지나니 규모가 커져서 강사도 초빙한다네.
나성훈 : 글램핑(시설이나 장비, 식재료가 준비된 곳에서 하는 캠핑) 같은 건가?
장은혜 : 캠핑장이나 수련관으로 간대. 아이들도 아이의 엄마들도 친해져서 그 모임을 기다린다고 하더라고. 나도 결이가 캠핑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커가니까, 모임 이야기를 듣는데 흥미롭더라.
나성훈 : 재밌을 것 같아. 경제 규모나 생활 패턴이 비슷해야겠지만.
장은혜 : 부모들 야근도 많이 없어야겠지……
신기한 인연, 예랑이네 가족.
- 새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나성훈 : 어릴 때부터 살아온 동네 혹은 종교 공동체에서 사람을 사귀는 것 말고,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맺을 방법이 있을까?
장은혜 : 거의 없겠지.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정도? 내 친구는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지만 어설프게 만날 바에는 사람을 사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차라리 고립을 택하겠대. 또 요즘 주변에서 흉흉한 일이 많이 일어나니까, 낯선 사람이나 위험한 상황을 미리 피하는 것 같아.
나성훈 : 나도 어설픈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아. 나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거나 좋은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일지라도 가려서 사귀고 싶어. 한 사람의 철학이나 사상 같은 건 변하기도 하니까 잠깐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것 같아. 또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는 관계조차 맺지 못하는 이들도 있잖아. 나도 그들과는 어울리기 싫어. ‘사람은 밥 세끼 먹고, 화장실 가고, 실수도 하는 존재’라는 걸 아는 사람들, 인간적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물론 나도,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겠지.
결의 시간
천천히 돌아보는 동네 한 바퀴.
엄마 일기
결이 덕분에 생긴 인연,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접점조차 없었을 사람들, 한 아이가 준 크고 좋은 선물 같은 존재들. 이 인연의 끈을 붙잡고 싶다. 육아뿐만 아니라 고단하고 피곤한 삶에 있어서도 오래도록 힘이 되는 존재로,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사이가 되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런 동네 친구들.
사진글방
장은혜는 사진 찍고, 나성훈은 글 씁니다. 사진과 글을 도구로 세상의 작은 것들을 정성스럽게 담아냅니다.
2018/06/26
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