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는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인이 써내려가는 기획 노트입니다. 궁리 너머 일이 실현될 수 있게 하기 위한 실무를, 현장에서의 경험을 예시 삼아 소개합니다.

방송국 편집실에서 얻은 힌트

반갑습니다, 《비유》에 새로 합류한 김신식입니다. ‘판도’는 기획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획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미 차고 넘치지 않나요?” 반문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잘나가는 유니콘 기업의 팀장이 팀원의 창의력을 북돋는 법’ 같은 종류의 책에선 흔히 접할 수 있지요. 그러나 수익이 불투명한 자영업자처럼 생활할 수밖에 없는 예술인의 삶으로 눈을 돌리면 어떨까요? 저는 고개를 가로젓게 됩니다. 불현듯 떠오른 바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으나,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무슨 항목을 챙겨야 할지, 아울러 뭔가 부산스럽게 움직이긴 했는데 진전됨이 없음을 마주하는 이의 막막함은 예나 지금이나 예술계에 그득하니까요.
  코너를 구상하는 동안 제게 좋은 영향을 준 문화예술인 일곱 명과 전화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들 중엔 작가와 기획자의 정체성이 자신에게 겸비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작업하는 사람도 있었고, 기획자의 정체성과 작가의 정체성을 달리 인식하며 활동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판도’에선 두 유형을 다 소개할 예정이랍니다. 앞으로 이어질 글을 읽으면서 자신은 어느 유형인지, 어느 유형이고 싶은지, 다른 유형은 없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네요. 다시 인터뷰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일곱 사람 모두 기획 일을 배울 땐 롤 모델은 딱히 없었다고 대답했어요. 혼자서 터득해나갔다는 말이죠. 그렇다고 본 코너가 문화예술 기획의 지침을 쏙쏙 알려주는 족집게 강의가 되리라고 자부할 마음은 없답니다. 대신 문학계든 미술계든 디자인계든 사진계든 출판계든, 문화예술에 관련된 기획 및 기획자에 관한 ‘데이터’를 어떻게든 남기는 일의 중요성을 곱씹게 됩니다. 고로 ‘판도’를 기획한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문화예술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기획 과정에서 찾아볼 데이터가 되어보기.
  그리 생각한 계기가 있습니다. 제 이름이 풍기는 뉘앙스와 달리 저는 신문물에 취약한데요. 그래서 기술과 기기를 다루는 영상을 즐겨 보며 결핍된 점을 채웁니다. 하루는 SBS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계정인 ‘스브스뉴스’의 〈오목교 전자상가〉를 시청했습니다. 놓친 에피소드를 몰아서 보던 중 ‘방송국이 30년 전 영상 3초 만에 찾을 수 있는 이유’1)라는 콘텐츠가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해당 영상의 제목처럼 그것이 가능한 요인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SBS가 구축한 OPS(Open Publishing System) 덕분이었습니다. OPS는 방송사에서 보유한 수많은 영상물 중 특정 장면을 골라 자료화면으로 신속하게 제작할 때 요긴한 플랫폼입니다. 〈오목교 전자상가〉의 진행자 비트가 OPS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시범을 보인 대목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요리사업가 백종원이 자신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식당 사장에게 화내는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써야 할 PD가 있습니다. 그가 편집실 의자에 앉더니 OPS에 접속합니다. 마련된 검색창에 ‘백종원 분노’라고 입력합니다. 〈골목식당〉 회차별로 백종원이 화를 표출하는 장면만 결괏값으로 나타납니다. 그로 인해 원하는 장면을 찾기 위한 장시간의 수고가 줄어듭니다.
  한데 제가 인상 깊게 본 대목은 일 처리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시스템의 첨단적인 면만은 아니었습니다. OPS에서는 또다른 노고가 빛을 발합니다. 앞서 언급한 PD의 사례로 돌아가보죠. 백종원이 분노하는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쓰고 싶은 사람이 그 PD만 있진 않았을 겁니다. 유사한 장면을 찾아 자료화면으로 제작해야 할 직원이 예전에도 여럿 있었겠지요. 이에 착안해 OPS엔 필요한 장면을 찾은 방송인이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할 동료를 도울 기능이 탑재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 PD가 백종원이 컨설팅 도중에 분노하는 장면을 원하는 자료화면 거리로 찾았다고 칩시다. 그다음 똑같은 상황에 임할 동료를 위해, 찾은 장면이 방송분 흐름상 무슨 내용인지 작성할 수 있는 칸에 들어갑니다. 거기에 텍스트와 태그 형태로 설명하고 싶은 점을 기록합니다. 이처럼 방송국 내 개개인이 찾은 장면들을 두고 한 사람 두 사람씩 작성을 이어가다보면 한 회 전체를 장면으로 분절화한 클립마다 관련 설명이 쌓이겠죠. 그만큼 작업을 위한 검색 시 중첩되는 단어량이 증가합니다. 아울러 이전엔 검색에 잡히지 않았던 단어의 수 또한 늘어나고요. 결국 검색을 통해 찾은 장면이 쓸 만한 자료화면으로 전환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판도’가 주목하는 측면은 여기서 비롯됩니다. 기획엔 대개 ‘전례 없음’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깔려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이런 거 해보면 어떨까?” “뭐야 누가 이미 했잖아? 망했네” 식의 ‘웃픈’ 대화를 구경하거나 직접 겪기도 하지요. 하지만 내가 실현하고픈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참고삼을 전례가 너무 없다면 새 기획물이 탄생하기도 어렵습니다. 역설적으로 ‘판도’에선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기획물의 등장이다!’에 천착하기보단 고유한 기획물이 나타나도록 돕는 차원에서, ‘겹침’을 맹점이 아닌 장점으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쯤 되면 오해 섞인 반응이 생길 법합니다. 타인의 아이디어 도용을 장려하는 것이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이 연재물은 문화예술 현장에 뛰어들어 기획 일을 해야 할 때 어떠한 ‘실무’를 거쳐야 하는가에 신경을 썼습니다. 각자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마주한 실무 경험이 기록 형태로 나타나고, 각기 활동 영역은 다를지라도 겹치는 실무를 확인한다면, 그것 또한 기획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가 될 수 있으니까요.
  문득 문화예술계에서 밥벌이를 해보고자 작업을 행해보려는데, 누구 하나 필요한 실무를 가르쳐주지 않아 무작정 인터넷을 떠도는 당신을 상상해봅니다. 이때 ‘판도’는 문화예술 기획 실무에 대한 OPS가 필요하단 목소리를 내는 맥락에서, 마치 골치 아프게 여긴 실무라는 자료화면이 당신의 검색에 걸려 기획의 실현으로 이어지는 광경을 꿈꿉니다. 더 나아가 ‘이런 일도 문화예술에선 실무가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의 범위를 함께 넓힐 수 있는 자리를 꿈꿉니다.


태도로서의 데이터

그렇다면 일단 저부터 실무자의 위치에 자리해야겠습니다. 《비유》의 리뉴얼을 위한 첫 기획 회의가 떠오릅니다. 당시 제 옆에 앉은 서효인 편집위원이 잡지를 함께 만드는 운영진에게 《비유》의 새 단장을 위해 책정된 예산이 얼마인지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안심했습니다. 이제야 밝히지만, 그때 속으로 외쳤습니다. ‘됐다.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과 같이하는구나.’ 효인씨의 언급 덕분에 우리는 문예지가 던져야 할 화두가 무엇인지 궁리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만큼, 몇 개의 코너를 선보이는 게 가능한지, 청탁할 원고의 매수는 몇 매로 한정해야 할지, 원고료는 얼마로 산정해야 할지 뚜렷하게 짚고 넘어갔습니다. 여기서 문화예술계 이야기를 즐겨 읽는 분이라면 ‘판도’에선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로 소개하려는 걸까 물을 수 있겠습니다. “혹시 지자체 내 문화예술기관에서 제공하는 기금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묘안을 알려주려고 밑밥을 까는 건가요? 그런 이야기도 미덥지 못하던데……”
  아닙니다. 그보단 이런 질문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나’는 일을 진척시키는 사람인가. 내 주변엔 일을 진척시키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방금 나눈 질문은 제가 고민해온 기획의 정의와 결부됩니다. 제게 기획이란 “우리 이런 일 시도 어때요? 재미있겠죠?”하며 생각거리를 제시하는 단계 너머, ‘어떻게든 일을 진척시키는 단계’까지를 포함합니다. 2007년부터 문화평론가와 기획자의 정체성을 겸해 살아가기 시작한 저는 시간이 흐를수록 일의 진척과 성사에 다다르고자 실행력을 발휘하는 것을 기획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 생각대로 생활하는 기획자를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이라 부르면서.
  그런데 분야를 막론하고 문화예술계의 각종 콘퍼런스나 라운드테이블 행사에 가보면, 방금 논한 기획의 정의 중 전자에 해당된 사람들의 프레젠테이션에 현혹된 채, 이들을 멘토인 양 신봉하는 문화가 여전히 잔존합니다. 반면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일을 성공리에 마치는 데 크게 기여한 ‘업계에 없어선 안 될 인물’이란 감사 표현으로 회자되는 데 그칩니다.
  앞서 말한 현실을 곱씹어볼 때, ‘판도’는 문화예술계 안에서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기획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하려 하는 작은 움직임입니다. 《비유》는 코너 기획 단계에서 존중의 정립이 어떤 결과를 낸 문화예술인을 추어올려 놓고 ‘요즘 떠오르는~’ 식의 표현을 앞세운 상찬을 남발하는 시도가 되어선 안 됨을 의식했습니다. 존중의 정립은, 일이 되게 만드는 데 검토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챙기며 결과를 선보인 사람들 스스로 발화하고 성찰해보는 실천에 기인한다고 봤습니다. 이는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직접 쓴 체험기로 ‘판도’가 꾸려지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다음호부터 기고할 분에게 자유로이 자신을 소개하되 두 가지만 챙겨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첫째, 소개할 결과물을 기획하기 위해 평소 눈여겨본 사회 현상이나 일상생활 속 사례는 무엇이었나? 둘째,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내놓고 나름의 반응을 얻기까지 특별히 챙긴 실무, 그리고 실무를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 노력한 바는 무엇이었나?
  질문을 짜면서 저는 데이터에 대해 좀 과감한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제게 데이터란, 일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재료 수준을 넘어서 ‘일이 되게 만들고자 자료화하려는 태도’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문득 직장인 시절, 퇴사를 앞두고 인수인계 과정을 밟았던 지난날이 생각납니다. 내가 맡아온 일을 대신 해줄 사람에게 커피를 사주며, 업무에 대한 요령과 주의사항을 알려주기도 했지만요. 돌이켜보면 인수인계의 맛(?)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으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문서 파일을 살피며 파일명을 다시 쓰고 파일을 잘 찾아볼 수 있게 정리하는 일, 그 파일을 폴더별로 목록화하는 일, 그러한 정리 중에 문득 떠오른 업무상의 유의점을 기록하기까지. 이처럼 인수인계 과정을 복기해보니 데이터란 그저 나 한 사람이 조직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재료 너머, 다음 업무자가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일 수 있도록, 그리고 조직이 추구해온 일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자료화하려는 태도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환보단 데이터가 필요하다

저는 왜 이리 데이터에 집중할까? 새삼스레 자문해봅니다. 이유를 톺아보니, 감정사회학을 기반으로 활동중인 제가 명칭 앞에 ‘독립’을 붙인 문화예술인의 정서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때는 2016년 10월 8일, 한국여성문학학회 초대로 연구물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쇄물에 실린 제목은 「독립 씬scene에서 자기조직화는 어떻게 표출되는가: 독립 씬 내 문화생산자들의 감정작업에 대한 고찰」. 그때 저는 세 군데의 직장을 다닌 후, 2014년에 돌연 독립연구자로 살겠다며 네번째 직장을 퇴사하고선 프리랜서 2년 차를 보내던 중이었습니다. 기록 중심의 타임라인으로 지난날을 재구성하면, 독립출판을 위시해 문화예술계 내 ‘독립생활자’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컸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00(공공) 그라운드’에서 기획한 독립 문화예술인의 간담회 ‘‘큐브’의 ‘씬’은 가능한가’(2014)가 수록된 『시작하는 공공: 자립·학습·비평·삶의 기획』(2015)2), ‘포트폴리오 인생’이란 용어 아래 거대 조직에서 벗어나 독립생활자로 살아갈 요법을 권장하는 『코끼리와 벼룩』3)(2015), 미술계 내 기존 제도와의 복잡다단한 관계성을 의식하며 자신만의 예술적 산물을 기획하고 창출할 실천인 ‘자기조직화self-organised’를 논한 『스스로 조직하기』4)(2016)의 출간 등이 방증의 예입니다.
  그런데 관련된 기록물을 연일 탐독하고 독립 문화예술 씬에 속한 사람들을 접해온 제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제가 만나온 독립 문화예술 씬에 있는 사람들처럼 “젠장 이 씬에 과연 실체가 있는 거야?” “아휴 차라리 망해보기라도 했으면, 이건 뭐 흥한 것도 아니고 망한 것도 아니고 말이지. 흥한 게 뭔지 망한 게 뭔지 와닿지도 않아. 이 바닥이 원래 그런 듯”으로 수렴되는 이른바 ‘흥NO 망NO의 서사’에 중독되어갔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열린 학회에서 발표해본 시간은 앞서 밝힌 서사와 정서를 고백하는 자리만 되고 말았답니다. 기차를 타고 귀가하는 내내 ‘이건 좀 아닌데’란 생각이 마음속을 채웠습니다. 독립연구자이자 독립 문화예술인의 정체성을 구축하던 저는 독립 씬에 대한 연구를 핑계로, 사람들이 ‘“그거 돈은 좀 되나요” 하는 식으로 왜 이리 무례한 질문을 던지지?’ ‘이 씬에서 버티기 위해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지 않을 소통의 기술은 뭘까’에만 혈안이 되어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다 2년 후, 제 안에 고여 있던 생각을 깨는 만남이 있었습니다. 2018년 6월 21일 서울국제도서전 기간, 독립잡지를 만드는 이들의 대담 자리가 열렸습니다. 행사명은 ‘분전’이었고, 저는 당시 사회를 맡았습니다. 행사 진행을 위해 질문지를 만들기 시작할 때 패널로 초대된 《브로드컬리》의 발행인 조퇴계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구글 검색창에 ‘조퇴계 인터뷰’라고 입력하면 ‘무례한 인터뷰 예시’라는 연관 검색어가 뜹니다. 《브로드컬리》에서 인터뷰어를 맡기도 한 조퇴계씨는 제주도에 카페를 연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만의 빵집을 차린 사람들에게 오픈 비용, 유지비, 인건비 지출 등을 둘러싼 질문을 가감 없이 던지며 인터뷰를 열어갑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질문에 정감이 없다고 질문하는 자세가 왜 이리 공격적이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분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잡지를 재차 읽다보면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인터뷰이가 되는 사람들의 답변엔 질문이 공격적이다 싶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감정 고백에 치중한 분량이 적습니다. 인터뷰이는 가게를 차리기 위해 자신이 분석한 데이터, 독립생활자로 살아가면서 만만찮은 현실에 부딪히는 가운데 쌓이게 된 데이터, 그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나름의 데이터를 술술술 풀어놓습니다. 조퇴계씨의 질문 형태와 방식은 독립생활자를 둘러싼 냉정한 현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일부러 매몰차게 구는 태도로 다가오기보단, 독립생활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데이터를 끌어내는 방법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를 통해 한 가지 배운 것이 있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고자 일하는 이들의 정서에 주목하는 기획도 중요하지만, 그보단 사람들에게 내재해있을지 모를 일과 기획에 대한 데이터를 얼마나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까, 그 시도가 중요함을요.
  앞서 밝힌 생각은 《비유》 동료들과 ‘판도’의 성격을 고민하는 시기에 참고가 된 데이터로 제게 자리잡았습니다. 문화예술 씬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조명하고자 애환을 들여다보는 시도만큼, 이들에게 이미 깃들어 있을지 모를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데이터’를 발견할 자리의 중요성, 그와 연관하여 문화예술계에서 자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데이터 모으기의 실천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키웠습니다.
  지금까지 ‘-계’ ‘-씬’ ‘업계’ ‘이 바닥’ 등 여러 가지 표현을 썼네요. ‘판도’에서의 판은 우리가 영화판, 연극판이라 칭할 때의 그 ‘판’이 맞습니다. 판도란 어휘는 “판도를 뒤집는다” “이후 판도가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등의 관용적 표현으로 접한 적이 있을 겁니다. ‘판도를 뒤집다’란 문장을 쓰고 나니 애초에 마음먹은 바와 달리 힘이 들어가네요. 다시 힘을 빼고자 판도를 한자어로 살펴보니 판목 판(版)에, 그림 도(圖)를 쓴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내가 속한 판과 관계하며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소설가든, 시인이든, 디자이너든, 편집자든, 큐레이터든, 화가든, 조각가든, 안무가든, 무용수든, 연기자든, 극작가든, 영화감독이든, 사진작가든, 문화기획자든, 제가 미처 언급하지 못한 분야의 사람들과 지망생까지 포함해 ‘판도’가 주목하는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활동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경우, 각자 영역에서 무언가를 해보고자 할 때 기획이라는 단계를 그리게 됩니다. 그에 따라 내가 관계하고 있는 판의 속성을 넘나들려는 의지를 품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분 또한 그런 의지를 놓지 않고 있다면, 그 의지가 실현될 데이터가 모이는 판으로 ‘판도’가 인식되길 소망합니다.

*

소망을 장황한 선언처럼 공표하는 데 그치면 초반에 느껴지는 의욕이 급격히 식어버리는 결과물을 노출하기 마련이고, 그만큼 실망 어린 반응도 따라옴을 독자들도 문화예술계 내의 여러 사례를 통해 지켜봐왔을 것입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판도’는 마냥 오래가보겠다며 기약 없는 연재 기간을 설정하기보단 ‘끝’을 염두에 두고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끝’을 설정함으로써 문화예술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애잔함을 나누는 데 치우치려는 것은 아니고요. 본격적인 시작을 앞둔 단계에서 ‘끝’을 의식하며 일을 진행함으로써, 이러한 모델이 또 어떤 나름의 데이터가 될 수 있을지 《비유》의 독자들과 함께 판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연재가 진행되는 동안 독자들의 소중한 생각을 기다린다는 말이 길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출발해보겠습니다.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깁니다.

김신식

감정사회학자&작가. 한국 사회 내 감정 문화와 시각 문화에 대한 비평 및 강의를 수행해왔다. 인스타그램(@shakshak01)에 종종 ‘풀죽은 작업자’를 위한 짤을 올린다.

글을 쓰는 동안 권하정·김아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듣보인간의 생존신고〉(2023)를 봤다. 〈싱어게인 시즌 1〉 우승자 이승윤의 ‘찐팬’인 두 청년 감독이 이승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고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영화 중반부, "이거는 좀 안 될 것 같은데요”라는 말만 늘어놓는 주변 관계자의 태도를 두고, 감독 중 한 사람이 항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감독의 항변엔 ‘반발심’이란 단어가 들어 있었다. 누군가의 구상과 의지에 쉽게 초 치는 데 능한 사회적 분위기를 돌아보며, 나는 어떻게든 일이 되게 만들려는 감독의 반발심을 지지하고 싶었다. 이는 내가 ‘판도’를 통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2023/11/15
64호

1
오목교 전자상가, “방송국이 30년 전 영상 3초 만에 찾을 수 있는 이유 / 오목교 전자상가 EP.114” 바로가기, 2022년 11월 16일 공개.
2
00그라운드 기획단 외, 『시작하는 공공: 자립·학습·비평·삶의 기획』, manilpress, 2015.
3
찰스 핸디, 『코끼리와 벼룩: 거대 조직에 기대지 않고 독립생활자로 단단히 살아가는 법』, 이종인 옮김, 푸른숲, 2016.
4
스티네 헤베르트·안느 제페르 칼센 외, 『스스로 조직하기』, 박가희·전효경·조은비 옮김, 미디어버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