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강을 건너고 싶어졌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아시나요. 하루키가 유럽에서 지낸 3년 동안 쓴 일상 메모를 엮은 수필집입니다. 그 3년 동안 하루키는 장편 소설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 단편집 『TV 피플』을 쓰기도 했지만, 수필집 『먼 북소리』에 집필 과정의 고난과 역경 같은 것은 없어요. 상주적 여행자가 겪는 일상의 장면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여행을 떠날 이유로는 이상적인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간단하면서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어떤 일도 일반화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1)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얼핏 보기에 개연성이 없는 시작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뭇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지점들이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로 만들어지는 것. 어쩌면 모든 일은 이렇게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먼 북소리를 듣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것에 충분한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요.
  기획노동을 함에 있어 어떤 시작들이 있었는지 저의 경우를 돌아봅니다. 하루키의 표현을 빗대어 보자면 전 늘 일종의 강을 건너고 싶었습니다. 서울 태생으로 한강을 곁에 두고 강남과 강북을 오가며 살아왔기 때문일까요. 강을 건너고 싶어서 건널 방법을 궁리하다 보니 어찌저찌 작은 강 하나를 건너고, 그렇게 걷다보면 다시금 새로운 강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 강을 건널 다리가 없잖아

원류는 미술사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는데요, 남겨진 미술품에서 과거의 자취를 들추어 개연성 있는 ‘역사’를 읽어내는 일이 퍽 재미있었습니다. 이 공부를 마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필수전공 중 하나로 ‘유적답사’라는 과목이 있습니다. 한 학기 동안 특정 지역의 유물 하나를 정해 그 유물에 얽힌 사건과 사고로 유물이 만들어진 당시의 시대상을 지금의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내는 훈련이 ‘유적답사’입니다.
  문화예술 현장에서 어떤 실무를 하느냐를 다루는 이야기에서 왜 고릿적 학부 이야기를 꺼내나 의아해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저에게 있어 기획 실무를 체득하게 한 시작이 이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 다뤄야할 소재가 분명한데 2) 거기에서 어떤 인사이트를 뽑아야 할지는 정해진 바가 없지만 3) 마감은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기획업의 준비를 할 수 있었던 수업이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매우 고지식하게 그 수업을 잘 해내고 싶다(성적을 잘 받고 싶다는 것과는 다릅니다)는 열망에 휩싸였는데요, 과제 제출일에는 꼬박 하루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보고서의 디테일을 더해갈 정도로 패기가 넘쳐나기도 했었습니다. 도서관 서가를 뒤지며 근력의 한계를 시험하기도 하고 (참고문헌을 모으는 일은 말 그대로 참 무거웠습니다) 고학번 선배, 타 과목 교수님 등등 당시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네트워크를 총망라해 보고서를 완성했습니다.
  ‘유적답사’ 수강생은 열과 성을 다해 만든 보고서를 학기말에 자신의 차례에 맞춰 발표하고, 발표에 대해 교수님의 매서운 평가를 듣는 것으로 수업을 마무리합니다. 그 수업을 잘 해내고 싶었던 데에는, 교수님의 매서운 평가가 조금이나마 순해지기를 바랐기 때문도 있었어요. 괘불(야외용 대형 불화)을 중심으로 18세기 조선의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추론한 자료들을 발표하고 받은 평가는 “그런데 그 강을 건널 다리가 없잖아”였습니다. 건너고 싶은 강이 있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 강을 어떻게 건널 것이니? 돌다리라도 놓아야 할 텐데, 다리를 놓을 만한 게 안 보인다. 교수님 평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매섭지는 않았고, 아리송했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저에게 무언가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스스로 반문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건너갈 건데?” 건너가고 싶은 의욕을 실행할 수 있는 방편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 가급적 구체적으로 궁리하는 것이지요. 단지 ‘건너고 싶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너가려면 이런 게 필요할까? 저런 게 필요할까? 우선 다 놓아볼까?’ 하면서요.


쓰는 사람이라는 강을 건너 보자

저는 문구 브랜드 ‘소소문구’에서 브랜드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제외한 기획, 홍보, 유통, 물류를 망라하며 일하고 있는데요, 제가 소소문구와 함께한 건 2020년 1월부터입니다. 2020년 이전까지 소소문구의 구성원은 디자이너가 전부였지요. 그때의 소소문구는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문구 제품’이라는 슬로건으로 브랜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품질의 아름답고 실용적인 디자인 문구로 업계에서 주목받는 브랜드였지요. 그래서 한국 디자인씬을 애호하던 저 또한 좋아하는 브랜드였습니다.
  소소문구에 들어가기 전에는 상업전시기획사에서 PD로 일했습니다. 전시 기획에 참여하기도 하고, 현장 운영도 했지만 가장 즐거웠던 건 전시 MD를 파는 일이었습니다. 전시 MD를 한번 구상할 때 보통 50여 개의 업체를 섭외하는데, 그중 한 업체로 소소문구와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전시 MD를 기획부터 운영까지 할 기회가 생겼을 때, 소소문구를 떠올린 건 자연스러웠습니다. 전시 아트샵에서 취급하는 품목에 격을 높일 수 있는 브랜드라고 여겼거든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세 번의 전시를 거치며 매번 기회가 생길 때마다 소소문구는 제 아트샵 섭외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매출이 잘 나왔기 때문은 아닙니다. 보통 소소문구는 전체 매출에서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브랜드였어요. 그렇지만 담당자의 애호라는 것이 실무에 반영되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2년 8개월 동안 상업전시기획사 PD로 커리어를 이어가다 보니, 저의 업을 조금 더 세부적으로 다듬고 싶었습니다. 취업에는 관심이 없어 토익 성적도 없었던 제가 의외로 물건 파는 것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전시 MD일을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발전시키려고 MD의 세계로 가고 싶었어요. 일단은 퇴사를 하고 MD 학원(배우는 걸 좋아하다 보니 우선 학원을 다녀봤습니다)을 다니던 중에 소소문구의 브랜드 MD 채용 공고를 발견했습니다. 소소문구 창업 이래 최초로 비(非)디자이너를 뽑는 공고였습니다. 유적답사 논문을 준비했던 과정과 유사하게 밤낮으로 지원 서류를 준비했어요. 제목은 ‘이 사람이 소소문구에 들어가면 벌어질 일’. 소소문구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며 매출 증진을 위해 보완해야 할 점과 강화해야 할 점을 28쪽에 걸쳐 정리했습니다. 그 지원 서류의 결론은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 브랜드”가 되어야 소소문구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입사를 하며 제안했던 슬로건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 브랜드”가 제게는 일종의 강이었습니다. 그 강을 건너고 싶은 의욕이 생긴 후 첫번째 퀘스트는 그 강을 함께 건널 동료들을 설득하는 것이었죠. 다행히 입사를 하였으니 첫 관문은 무사히 통과. 그런데 ‘동료는 구했는데, 앞으로 우리 저 큰 강을 어떻게 건너가지?’가 두번째 퀘스트였습니다.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 브랜드.” 이 말은 참 쉽지요. 문구 브랜드라면 누구나 내걸 수 있는 단순한 말입니다. ‘이 슬로건에 힘이 생기려면, 그리고 누구도 따라서 말할 수 없으려면, 그 명료한 슬로건을 실천으로 옮긴 시간이 축적되어야 한다.’ 슬로건을 처음 내걸었던 당시의 마음가짐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한 브랜드를 키우는 일은 3개월짜리 한 학기로 끝나는 일이 아니고, 함께하는 동료들과 긴 호흡으로 일구어나가는 일이니까, 힘을 합치면 안 될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을 건너는 추진력을 얻기까지

소소문구 동료들과 쓰는 사람이라는 강을 건너기로 결심하고 벌인 첫 프로젝트는 #나해보려고 입니다. 제가 소소문구에 합류했던 2020년 1월, 이미 제품 개발을 마치고 출시를 앞둔 손바닥만 한 1개월짜리 플래너 ‘데일리로그노트’에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라는 슬로건을 처음으로 접목해보기로 했습니다. 한달짜리 플래너여서 1년 열두 달 동안 쓸 수 있도록 12가지 표지 색상을 준비한 데일리로그노트에 열두 명의 쓰는 사람이 붙으면 어떨까? 라는 가설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19살 수험생부터 2-30대 마케터, 음악가, 제빵사, 에디터, 지상직 승무원, 비건 요리사, 디자이너, 그리고 40대 음악평론가까지 연령대와 성별, 직업이 서로 다른 열두 명을 찾아 각자의 한 달을 데일리로그노트에 써달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열두 권의 데일리로그노트를 2020년 봄, 한남동 스틸북스 4층 한켠에서 전시 ‘나, 해 보려고’로 선보였어요.

‘관점 있는 중형서점'으로 한남동에 자리했던 책방 스틸북스에서 2020년 봄, 소소문구가 전시를 열었다. 4층 공간 한켠을 이용했으며, 서점의 책들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사물들을 배치했다. 계단 난간에는 벽면 크기에 맞게 전시 참여자 12명의 인포그래픽과 일러스트를 붙여두었다. 선반에는 전시 참여자의 데일리로그노트 원본이 나무 집기에 하나씩 담겨 있다.
2020년 한남동 스틸북스, 소소문구의 전시 ‘나, 해 보려고’ 전경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31일의 로그 데이터.’ 전시 #나해보려고에 붙인 부제입니다.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 동안 할 일, 한 일 등을 간단히 적을 수 있게 디자인한 제품 데일리로그노트를 살피며 떠올린 표현이었어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첫걸음은 우리 머릿속에 있는 구상을 활자로 세상에 써내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을까요. 컴퓨터나 태블릿으로 쓸 수도 있지만, 물리적 제약이 있는 종이 위에 끄적일 때에 도리어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육필이라고도 부르는 손으로 종이 위에 직접 끄적이는 행위가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추진력을 북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나이대, 직업, 생각 모두가 다른 이들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떤 고민을 하며 지내는지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직접 써내려간 손글씨 구경도 한몫했고요.”
“같은 노트를 이렇게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점이 재밌었고 나라면 어떻게 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시 참여 코너에서 ‘나 해보려고’ 밑줄 위에 적는 것뿐인데요, 그동안 미뤄왔던 일이나 다짐만 했던 일들을 실천하게 만들어줘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시를 일단락하고 소소문구 인스타그램으로 돌린 설문으로 얻은 관람자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해볼 수 있는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해보려고 로 선보인 소소문구의 전시는 이전 회사의 전시처럼 미디어아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입장료도 없고, 오백 평 규모의 대형 전시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나해보려고 를 보아준 사람들에게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계기를 작게나마 전할 수 있었던 점이 참 기뻤습니다. 감상들의 면면이 단순히 전시가 아름다웠다, 즐거웠다에서 그치는 감상이 아니어서 좋았습니다. 소소문구가 만든 문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를 통해 관람자 분들의 삶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도 있겠다는 효용감이 다음 프로젝트인 #아임디깅으로 가는 다리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을 건너는 마음

잠시 과거로 돌아가볼까요. 때는 2014년입니다. 한가람 미술관에서 쿠사마 야요이 전시를 하고 있었어요. 커다란 점박이 호박과 화려한 미디어아트가 다채롭게 펼쳐진 공간이었지만,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 편의 시였습니다.

호박에 대하여
호박은 애교가 있고
굉장히 야성적이며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끝없이 사로잡는다.
나, 호박 너무 좋아
호박은 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고향으로서
무한대의 정신성을 지니고
세계 속 인류들의
평화와 인간찬미에 기여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호박은 나에게는 마음속의
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준다.
호박은 말을 걸어준다.
호박, 호박, 호박
내 마음의 신성한 모습으로
세계의 전 인류가 살고있는 생에
대한 환희의 근원인 것이다.
호박 때문에 나는 살아내는 것이다.
- 쿠사마 야요이

#나해보려고에 이어 준비한 #아임디깅은 이 시에서 구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시 속의 “나, 호박 너무 좋아”라는 문장을 본따 프로젝트명을 “나, 너무 좋아”로 하려고 했을 만큼요. 장인, 전문가, 애호가, 덕후, 매니아는 ‘무언가를 너무 좋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무언가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은, 그에게 동심이 남아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죠. 소소문구의 다음 전시 참여자는 그 좋아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종이에 남기는 사람이기를 바랐습니다. 전문성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 오랫동안 꾸준히 해오며 마주했을 지루함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쓸 수밖에 없는, 좋아하는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관심을 관점으로 키우는 기록’이라는 #아임디깅의 부제도 이와 길을 같이 합니다.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임’이라는 관심의 사전적 뜻풀이가 좋아하는 마음과 꼭 닮지 않았나요. 마음이 끌려 그것 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그것이 내 안에 스며들어 내가 보는 세상을 다르게 만드니까요. 더불어 그 과정을 손으로 종이 위에 남기면 그것이 눈앞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돌이켜보면 #아임디깅은 디깅노트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한 것 같기도 합니다. 2015년에 출시했던 ‘작고 깊은 노트’에 대한 관심에서 이 모든 게 시작되었거든요. 거래처로 인연을 시작하며 소소문구로부터 선물 받았던 ‘작고 깊은 노트’가 저는 무척 좋았습니다. 보드라운 표지를 열어 그 내지에 쓰면 무엇을 쓰더라도 귀중한 것을 담아내고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2020년에 입사하고 ‘작고 깊은 노트’의 판매 실적을 살펴보니 영 좋지 않았습니다. 그 노트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온전히 발휘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나해보려고를 마친 후, 다음 프로젝트로 ‘작고 깊은 노트’의 리뉴얼을 잡게 되었습니다.

다이어리에는 나의 사적이고 사소한 부분까지 기록한다. 동시에 나를 마주 보게 되고,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며 또 더 깊이 알게 된다. 그렇게 ‘작고 깊이 나를 들여다본다’라는 다이어리 존재의 이유에서부터 시작해 각각의 이름을 만들고 어울리는 색을 찾았다. - 2015년 11월 23일 소소문구 제작일지 중

표지의 물성도, 작고 깊은 노트의 기획 의도도 모두 살려서 리뉴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고 깊은 노트’를 리뉴얼해 새롭게 선보인 신제품 디깅노트는 한 우물을 파기 위한 노트로 만들었습니다. 한 가지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 매니아, 덕후를 위한 노트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노트에 모으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아는 것들이 나만의 관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디깅노트가 도와줄 수 있도록요. 작고 깊게 판 관심사에서 새로운 영감이 샘솟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깅노트. 이렇게 ‘작고 깊은 노트’를 디깅노트로 리뉴얼한 과정이 저만의 #아임디깅인지도 모르겠어요. 다 갈아엎는 것이 아니라, 있던 것을 자세하게 살펴서 털어낼 것을 털어내고 좋은 옷을 지어 입히는 일요.

2020년과 2023년에 진행한 ‘아임디깅’ 전시에 모두 참여했던 쓰는 사람 ‘올리부’님의 노트가 놓여져 있다. 약 4년에 걸쳐 꾸준하게 써온 디깅노트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수집한 영감들로 두툼하게 부풀어 있다. 2023년 전시를 준비하며, 미리 현장의 가구들과 전시 참여자의 노트를 어떻게 조화롭게 배치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찍어온 한 장면.
2020년에 이어 2023년에도 아임디깅 전시 참여자로 함께한 ‘올리부’님이 2023년까지 작성한 디깅노트의 일부


함께 강을 건너기 위하여

아임디깅은 2020년 겨울, 2023년 봄과 가을, 세 번을 치렀습니다. 각각 ‘관심을 관점으로 키우는 기록’ ‘나름의 성실로 열매 맺는 쓰는 생활’ ‘가능성을 건지는 생각 수집’이라는 부제를 붙였습니다. 부제는 다르지만 #아임디깅이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쓰는 사람이라는 강을 건너기 위해 착수한 프로젝트이다 보니 모든 #아임디깅은 오로지 쓰는 사람에 집중하며 밀도 있게 구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 전시 참여자인 ‘쓰는 사람’과 함께

2020년에 처음 구상을 구체화할 때 도움이 되었던 건, #나해보려고의 참여 코너였습니다. 약 500여 장 정도 취합한 ‘나 해 보려고’ 메모지 속 단어들로 사람들의 관심사를 분류해볼 수 있었어요. 그렇게 정리한 분류는 음악, 그림, 책, 운동, 수집, 수공예, 일이었습니다. 이 일곱 가지 분류를 또 두세 가지로 나누었어요. 예를 들어 책의 경우, 책을 좋아한다는 건 1) 직접 만들거나(출판사) 2) 원고를 쓰거나(작가) 3) 책을 읽거나(독서가) 하는 방식으로 나누어 좋아할 수 있지요. 어떤 방식이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가 더 크다고 할 수 없고, 단지 이 사람은 이 방식으로 책을 좋아하는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나아가 이 사람은 책을 이 방식으로 좋아하는데, 나는 책을 어떻게 좋아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이 스스로의 마음에서 떠오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을 섭외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모은 17명의 쓰는 사람과 함께 첫번째 아임디깅을 만들었습니다. 일정이 예정보다 늦어지고, 전시 장소가 바뀌고,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운영방식이 달라지는 등 예기치 못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섭외부터 구체화, 진행, 마무리를 하는 6개월 동안 16번의 공지 메일을 보냈는데, 함께하는 분들께 진행 과정의 투명함을 전달하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단지 전시에 참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전시 과정을 상세하게 공유받으며 만드는 과정에 의견을 전달하여, 함께 만들어간다는 감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전시에 참여한 모든 쓰는 사람이 처음부터 쓰는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시 참여를 제안했을 때,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평소에 컴퓨터나 모바일로만 글을 써왔고, 종이에 쓴 지 오래되어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을 꺼내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참여를 결정하고부터는 나름의 방식으로 #아임디깅에 집중해주시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17명의 쓰는 사람 중 가장 먼저 제출해주셨던 음악가 이자람님은 이런 소회를 남겨주시기도 했습니다. “디깅노트에 딱히 뭘 적어야 하나 하고 시작했는데 핸드폰 메모장에 쓰던 것들을 노트에 적으며 석 달간 지내보니 삶이 한 스푼 노트에 담겼더라고요.” 첫번째로 제출하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한 권에 160쪽인 디깅노트를 끝까지 다 채워주시기까지 해서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2) 전시 관람자인 ‘쓰는 사람’과 함께

“A5 정도 크기의 텃밭을 마련했다. 생각을 깊이 심는 생활.”(인스타그램 @from_ynsk 님) 디깅노트를 2020년 8월에 출시한 직후에 받은 귀한 제품 리뷰입니다. 아임디깅을 세상에 알리기 전, 제품으로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오롯이 알아주셔서 리뷰를 발견하고 무척 기뻤습니다. 디깅노트를 생각을 깊이 심는 텃밭으로 여겨주신 이 리뷰로부터 아임디깅의 경험을 설계할 때 디테일을 챙길 수 있는 힘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소문구의 전시는 ‘관람하는 쓰는 사람’을 빼고 구체화할 수 없었습니다.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를 만든다고 말하는 소소문구가 제품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시 참여자뿐 아니라 전시를 보는 관람자까지 쓰는 사람으로 자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시 요소에 관람자가 참여할 수 있는 요소를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일이 꼭 필요했습니다.
  일반적인 전시처럼 단지 감상에 그치는 일방향적인 전시로는 소소문구의 쓰는 사람을 위한 경험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참여자분들의 디깅노트를 관람한 후, 반드시 현장에서 관람자 본인의 손으로 직접 써보고 가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구상했습니다. 전시 참여자와 관람자가 쌍방향 소통(인터랙티브 요소라고 할까요)할 수 있는 장치를 소소문구답게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2020년과 2023년에 같은 공간을 이용해 같은 타이틀의 전시를 진행했지만, 가장 달랐던 요소는 ‘디깅 더 디깅’이다. 두번째로 진행하는 만큼, 2023년에는 관람자들이 전시 관람을 통해 본인만의 디깅을 찾을 수 있는 요소를 고민했다. 전시 공간을 찾는 관람객들이 디깅 레이블을 상징하는 삽이 그려져 있는 정사각형 메모지에 무엇이든 디깅할 거리를 적어보고, 유리창에 붙일 수 있도록 유도했다.
2023년 서교동 스탠다드에이, 소소문구의 전시 ‘아임디깅’ 에서 관람자들이 남긴 ‘디깅’ 기록

우선 전시 정보와 동선, 그리고 전시 참여 요소를 반영하여 ‘전시 리플릿’을 만들었습니다. 전시에 대한 세부 정보를 습득하는 리플릿의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되, 관람하면서 관람자가 나만의 커스텀 포스터를 만들 수 있는 요소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소소문구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어 표현한 것이, 리플릿 뒷면에 인쇄한 ‘밭지도’였습니다. “쓰는 사람 17명의 디깅노트를 관람하시며, 가장 영감을 주는 씨앗도장을 땅에 심어보세요”라고 쓰인 지도입니다. 디깅노트 내용을 기반으로 참여자를 상징하는 ‘씨앗 도장’을 찍는 재미를 주어, 관람자가 능동적으로 3층 건물 곳곳에 배치한 17명의 디깅노트를 샅샅이 찾을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이외에도 전시 관람을 마친 후 전시 참여자의 관점에 관람자의 생각을 더할 수 있는 방명록 ‘관점 카드’를 참여자 노트에서 추출한 요소로 만들기도 했고, 전시에 소속감을 부여할 수 있는 황금빛 ‘디깅 카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이 요소들이 지향하는 바는 하나였습니다. 메타버스 시대가 도래한 21세기의 우리에게 남아 있는, 아날로그적으로 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것요. 매우 새삼스럽지만 우리는 우리가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종종 잊고 있으니까요.
  관람객이 현장에 당도했을 때 움직일 동선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우선 노트 위에 되는대로 나열합니다. 현장의 공간이 이렇게 되어 있으니까 이렇겠지, 저렇겠지 하며 머리를 굴리는 거예요. 그중 살려야 할 것들을 건져내서 스프레드시트로 도식화합니다. 일을 할 때 문장으로 풀어쓰기보다는, 아주 쉬운 단어들로 해결해야하는 문제 요소들을 정돈합니다. 그리고 그 단어들로 스프레드시트의 셀을 채우며 해결 방안의 뼈대를 세웁니다. 저에게는 이 과정이 스프레드시트로 이루어지는 논리의 건축이기도 합니다. 문제를 건너가는 다리를 세우는 건축이요.


여전히 건너고 싶은 강이 많습니다

나는 늘 심장이 뛰고 있지만 (사망 이전까지는), 심장이 뛴다고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살게 하는 건, 이를테면 자유로워진다는 말이다. 목표가 없고, 틀이 없을 때는 오히려 아주 갇혀버리는 느낌이다. 어찌할 바를 몰라버리니까. 이렇게 누군가가 나에게 부드러운 틀을 던져줄 때, 오히려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그 부드러운 틀을 내 마음대로, 내 방식대로 다듬고, 종래에는 나와 그 틀이 완연해질 때, 나는 아주 기쁘다.

2015년, 유적답사 자료를 만들던 당시에 남긴 저의 일기입니다. 그후로 벌써 10년에 가까운 (맙소사)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데요. 그 시간동안 저는 이리로 저리로 움직여왔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에게는 ‘자유’라는 감각이 매우 중요한데, 무엇으로 자유를 느낄지가 시시때때로 바뀌어서 저조차 제가 감당이 안 될 때가 많았습니다. 이 강도 건너고 싶고, 저 강도 건너고 싶거든요. 애석하게도 몸뚱이는 하나뿐이어서, 어릴 적 많이 들은 이야기가 너는 참 욕심이 많다는 말입니다.
  존 버거는 ‘벤투의 스케치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언가를 그리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시작되는 걸까.” 2017년에 서촌 온그라운드에서 있었던 열화당의 존 버거 추모 전시에서 만난 문장입니다. 이 말이 저에게는 위로가 되었어요.
  우리가 강을 건너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시작되는 걸까요. 다만 확실한 것은 강을 건너고 싶은 마음이 시작되어버린 것뿐입니다. 이 마음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죽겠지요. 아임디깅을 치르며 받았던 리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으로 글을 마쳐봅니다.

“관심을 갖는 대상이 있거나, 풀고 싶은 가설이 있거나,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은 쉬이 늙지 않는다. 내 안의 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 뭔가에 집중하는 이를 보면 나이와 상관없이 섹시하다.” (인스타그램 @joanne21_brique 님)


김청

2017년부터 문화예술계의 기획, 개발, 물류, 운영 등의 다종다양한 노동을 일삼고 있다. 도래한 2024년부터는 문화예술계의 용병 ‘오디너리 지니어스’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일터인 을지로에서 성수동 집까지 때때로 걷습니다. 길이 이어져 있으니까요. 두 시간 정도 걸립니다. 한번 걸어보니 의외로 걸을 만하더군요. 걸으면서 배웁니다. 행정구역 중구와 성동구 경계선이 붙어 있다는 것. 길에는 벽이 없는데, 이어진 길 따라 어느 만큼 왔느냐로 공기와 소리와 인간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어디를 걸어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것도.

2024/01/03
65호

1
무라카미 하루키, 윤성원 옮김, 『먼 북소리』, 문학사상사, 1993, 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