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 더 작은 지역의 지역문화·도시문화·생활문화1)라고 칭하는 프로젝트들의 가시성을 높이기 위한 표현들을 고안하고 모아서, 하나씩 나열해가며 책 『서울 지역문화 리뷰』 기획·운영 노트를 작성했다. 『서울 지역문화 리뷰』는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이 2023년 봄에 발행해 인쇄본 600부와 PDF 파일 형식으로 배포한 책으로, 지역문화팀이 추진한 자치구 협력형 사업의 여러 프로젝트 안팎을 들여다봤다.

책 <서울 지역문화 리뷰>의 표지 실물 사진이다.
『서울 지역문화 리뷰』 책 표지 (사진 제공: 워크스)

우선 『서울 지역문화 리뷰』는 지역문화라는 단어를 지역 기반의, 혹은 지역을 적극 고려한 문화예술 활동을 격려하는 단어로 상정한다. 이를 고유한 예술 영역이나 특정한 장르처럼 명명하거나 제시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서울을 바라볼 때, 지역문화라는 렌즈를 통하면 더 잘 보이는 부분은 무엇일까’ ‘문화예술 현장을 바라볼 때 서울의 더 작은 지역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현장에서 어떤 모습을 더 마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넓게 접근한다. 『서울 지역문화 리뷰』는 이 질문들과 함께 지역 기반의 문화예술 프로젝트부터 지역 활동의 문화예술적 전환까지, 서울 구석구석의 문화예술 작품과 활동을 들여다보기 위해 계획됐다. 다양한 지역 주체와의 공생까지 포용하며 탈중심화된 다양한 가치의 장을 만들고, 다변화된 문화예술 현장을 더 명확하게 가시화하는 데에 일조하여, 지역 기반 문화예술 생태계 혹은 씬(scene)을 더 잘 보이게 하고자 했다.

책 『서울 지역문화 리뷰』의 표지 뒷면으로, 책의 목차가 인쇄되어 있다.
『서울 지역문화 리뷰』 책 목차 (사진 제공: 워크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19명의 필진/패널들이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이 추진한 자치구 협력형 사업 ‘N개의 서울’과 ‘생활문화 25’의 전시, 공연, 축제 등을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후에 쓴 글을 모은 것이다. 이때 우리는 필자들이 어떤 날에 방문하는지에 따라 글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어떤 작품은 대체로 시일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균질한 내용과 형식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방문하는 곳들은 대체로 변화가 많은 곳들이라고 생각했다.
  실무 노트 작성을 요청받아 시작한 이 글에서는 지역문화·도시문화·생활문화 프로젝트들을 선명하게 보고 제시하려는 표현을 중심으로, 실제 방문했던 현장과 참고했던 다른 사례들을 함께 들여다봤다. 『서울 지역문화 리뷰』 외에도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에서 운영한 다른 프로그램들을 소환해 생각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참고한 프로그램들도 넓게 보면 지역문화·도시문화·생활문화 프로젝트를 더 잘 만들고 이해할 수 있게끔, 언어적 표현들과 담론 창출을 위해 살핀 것들이었다. 이렇게 작성한 이 글은 지역문화·도시문화·생활문화 씬에서 창작 주체가 어떤 활동을 지향하는지, 이 활동을 통해 어디에 다가가고자 하는지, 무엇을 획득하고자 하는지, 혹은 이 활동들이 어느 맥락에서 소개되고 아카이브되기를 원하는지에 관한 논의와 관찰, 단상을 바탕으로 한다. 전반부에서는 지역문화·도시문화·생활문화 활동들을 바라보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관점들을 ‘렌즈’라고 표현하며 몇 가지를 살펴보았다. 후반부에서는 지역문화 프로젝트에서 ‘아카이브’라는 단어가 어떤 연유로 필요하고,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중심으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1. 서울 (지역) 기반 활동을 바라보는 렌즈들

위치 감각

이 글의 주요한 전제는 예술가의 작품 혹은 활동이 발표되기까지 거쳐 왔을, 그리고 발표 후에 놓인 맥락과 환경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이다. 공간과 장소로서의 ‘지역’도 여기서 말하는 맥락과 환경의 대표적인 지표다. 창작 활동 안팎에서 상호적인 의미를 만들고 발신하는 인적 관계망과 네트워크도 이 ‘맥락’을 형성한다.
  한편 작품 혹은 활동이 산출된 맥락과 환경을 고려하며 그 결과물에 접근하는 관점은, 예술 활동의 수월성보다도, 예술 활동을 시작하고 창작하는 행위와 과정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관점과 연계되어 있다. 창작 활동과 그 결과물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요인들을 들여다보게 하는 관점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을 창작하고 수용하며, 그 작품과 활동이 놓인 ‘지역’을 의식하다보면, 단순히 예술작품과 활동이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현실 세계 안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는 산출물로 보인다.

N개의 서울: 지역문화와 도시문화라는 렌즈

2017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N개의 서울’은 자치구 단위를 지역(local)이라 칭하며 각 자치구문화재단 및 기관이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문화 씬과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기반을 닦을 수 있게끔 프레임을 설정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대도시 서울과 서울의 문화를 단일한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서울 안의 더 작은 지역 단위에서 발생하는 문화예술을 호명하는 시각을, 그리고 서울의 문화를 지역문화와 도시문화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 요즘 트렌드로서 편재한 로컬 논의에는 각종 브랜딩 전략, 온오프라인 상점의 로컬 기반 마케팅적 접근이 많고, 그중에는 당근마켓처럼 하이퍼로컬을 표방하는 기업에 관한 논의도 있다. 지역문화와 도시문화라는 렌즈는 이런 사례와 달리, 혹은 이 사례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며 기존 문화정책 및 제도에 균열을 내고, 지역 혹은 도시 기반으로 가능한 프로젝트의 프레임을 느슨하게 형성하기도 한다.2)
  한편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의 ‘도시문화랩 In & Out’은 자치구 단위로 지역 기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열 개의 랩과 서울 안 지역 기반으로 도시문화적 이슈들을 다루는 민간단체가 공동학습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했던 다섯 개의 랩으로 구성된 사업이었다. 후자의 경우 홍대 앞의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을지로의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 창신동의 아트브릿지 등이 참여해 도시문화라는 프레임을 보다 포괄적인 상상력으로 여는 계기를 만들었다.

『서울 지역문화 리뷰』 책 내지를 촬영한 사진 두 장이 좌우로 붙어 있다. 왼쪽 사진에는 책 표지의 타공 자국이 보이고, 오른쪽 사진에는 “성수동 거리에서 마주친 삶과 기억—성동구, 피에타의 〈향수: 흔적을 머금은 골목들〉”이라는 제목이 쓰인 페이지가 펼쳐져 있다.
『서울 지역문화 리뷰』 책 내지 (사진 제공: 워크스)

지역의 정체성 강화 vs. 고착화된 프레임: 또다른 방법이 필요할 때

자치구문화재단 및 기관에서 지역문화 사업을 추진할 때, 보통은 네트워크와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해당 자치구 내 문화예술 공간을 찾고, 창작 주체 혹은 기획 주체들을 발굴 및 양성하는 활동을 한다. 이후 네트워크 조성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여 공동의 의제를 찾는다. 지역문화 네트워크 활성화 사례들은 가령 성북의 공유성북원탁회의, 영등포의 네트워크예술제 공동 운영단 등이 있다. 때로 활동 주체들은 공동 운영단과 기획단 운영 노하우 및 사례를 서로 참조하기도 하고, 각 자치구에 걸맞은 방식으로 발전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와 실제적인 프로젝트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려 한다. 가령 성북의 ‘예술마을 만들기3)’를 참조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화예술 프로젝트가 기대는 프레임은 언제까지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까. 지역문화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프로젝트로 연계해 발전시키다보면, 해당 지역의 정체성이 강화되고 있는 것인지, 기존의 사업 프레임을 관성적으로 이어가는 것인지 점검할 필요를 느낄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는 우선 발굴하거나 개발한 지역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성립된 프레임을 다시금 다양하게 해석해볼 수 있을 테다. 정체성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더 발현되거나, 연계-확장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한편 이는 개별 프로젝트로 전개되고 추진되는 방식을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것과 연동되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가령, 이전 프로젝트와 다른 미디어를 사용해보는 것도 어렵지 않게 시도할 수 있는 다양화 방식 중 하나다. 또는 공동 운영단과 같은 커뮤니티/네트워크에 새로운 주체의 유입을 유도해 고착화된 프레임으로 굳지 않도록 당면 과제를 돌파하기도 한다. 새로운 주체의 유입은 새로운 프로젝트의 제작과도 긴밀하게 연동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고 싶은가: 사회학적 상상과 고찰을 통해 자기 이야기하기

『서울 지역문화 리뷰』의 기획을 위해 자치구문화기관의 자체 기획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던 중, 시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꽤 많이 발견했다. 가령 송파문화재단 ‘예술, 송송, 이야기집’은 청년예술가들이 시니어층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추진하는 프로젝트였다. 더 나아가, 시민이 직접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도 여럿이었다. 강동문화재단 ‘강동 쉼표’는 5주간 매주 다른 주제의 그림책을 읽고 이를 경유해 각자 자신의 이야기 혹은 일기를 쓰는 글쓰기 활동이었다. 관악문화재단의 프로그램으로는 모집형 클럽 활동 ‘하루-틴 챌린지’ 중 ‘마음 정리의 방(감정 일기 쓰기)’ 모임이 있었다. 매주 모여 일상 속 자신만의 루틴을 만드는 활동 중 미라클 모닝, 산책 풍경 기록, 감정 일기 쓰기까지 총 3개로 구성된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의 기획에서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각자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다보니 이것을 듣고 반응하는 과정들도 수반되는데, 이와 같은 상호 소통 과정의 전제로 개별 참여자의 구체적 참여 동기, 삶의 배경, 연령대, 직업, 사회/경제적 위치 등등에 대해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 개인의 감정의 주인을 개인에 한정 짓지 않고 사회학적으로 상상하거나 고찰하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이를 생활문화·지역문화 맥락에서 개인의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서울문화재단의 ‘자치구 생활문화 활성화 지원사업’은 “시민이 자기 삶과 일상생활에 보다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지역 내 문화적 접점을 확대하며 생활문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각 자치구문화재단에 사업을 제안한 것이기도 했다.

예술이거나 아니거나 상관없다는 측면에서는

도시와 지역의 이슈에 직접적으로 또는 느슨하게 관련되어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지역민과 전문 예술인, 연구자, 활동가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하는 활동들도 자주 발생한다. 그중 어떤 사회정치적 활동들은 문화예술적인 것으로 전환되어 소개되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은 예술 영역에 초대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또 이를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 베를린의 플로팅 베를린(Floating Berlin)은 자발적으로 조직된 공간이자 그룹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다양한 배경의 활동가, 실천가들이 모여 협업하고, 같이 창작하고, 미래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며 일하는 조직’으로 소개한다. 또한 서울·광주 기반의 프로젝트 ‘제로의 예술’은 공공예술 프로그램으로 기획·발표되었지만 “제도나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자·시민·활동가 등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방법론을 전제로, 다양한 주체 간의 협업으로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그렇다면 다양한 주체들이 협업하는 프로젝트가 예술이거나 아니거나 상관없는 지점을 종종 발생시킨다고 하면, 그 측면에서는 무엇이 중요한 걸까. 여러 가지가 그 자리에 들어설 수 있을 테지만, 『서울 지역문화 리뷰』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는 개별 프로젝트가 기반으로 삼는 커뮤니티와 맥락에 방점을 찍고 활동하는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서울문화재단 ‘생활을 바꾸는 예술’이나 동작문화재단 ‘생활기술자를 찾아서’는 느슨한 공동체 구성을 꿈꾸며, 서울 혹은 서울 안 더 작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표현하고 주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예술가든 아니든 구분 없이 말이다. 동작문화재단 프로그램의 경우, 지역 내 생활기술자 열 명이 자신만의 노하우와 경험이 담긴 생활기술을 지역주민과 함께 나누는 공유 워크숍 형식으로 운영했다.
  이에 덧붙여 창의적 작업 활동과 생활의 구분이 또렷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서로를 참조하는 예술과 생활’이라는 콘셉트를 떠올려보기도 했었다. 이 콘셉트를 생각하며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 사업과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지만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주체를 『서울 지역문화 리뷰』의 필진으로 초대했다. 지역문화 네트워크의 외연을 조금 더 넓혀보고 싶어서였다. 서촌에 있는 서울리딩룸에서는 ‘사진첩 언박싱’ ‘책과 커피’ 모임을 운영하고 있고, ‘동북아국제구술문화연구회’부터 시작된 스탠드업코미디 모임은 ‘서촌코미디클럽’으로 개편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예술과 예술가를 유별난 산출물과 개인으로 바라보는 관점보다는 지역과 사회 속 예술 활동, 혹은 예술 활동이 놓이는 사회적·시대적 맥락을 주의깊게 바라보는 관점을 확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 『서울 지역문화 리뷰』를 기획하며, 공공예술과 커뮤니티 아트 영역의 방법론을 통해 지역에 새로운 아젠다를 던지는 프로그램들도 같이 살펴보았다. 부산 영도문화도시센터의 ‘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가 그중 하나다. 공공예술의 공론장에서, 즉 지역 커뮤니티 내에서 첨예한 대화를 유도하는 이 질문 형식의 프로젝트는 예술의 이슈를 다루면서도 이를 예술을 넘어서는 문제로 바라보게 하는 프로젝트로 참고가 됐다. 뉴욕에서 2005년 설립된 런드로맷 프로젝트(Laundromat Project)는 “예술을 만들라. 커뮤니티를 구성하라. 변화를 창조하라”(Make Art. Build Community. Create Change)라는 슬로건으로 예술가와 이웃들이 지역 내에서 변화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예술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뉴욕에서 개최하는 다양한 활동 또한 참고할만한 좋은 예였다. 이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예술과의 접합 또는 예술-생활의 전환을 활용한 활동들이 생겨나고 있고, 이러한 활동들이 스스로를 공공예술 등으로 명명하더라도, 실제로는 예술이거나 아니거나 상관없는 지점이 종종 발생하는 걸로 보인다.


2. 지역문화 프로젝트에서 아카이브

『서울 지역문화 리뷰』 중 「지역문화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둘러싼 대화」에 참여한 패널들은 함께 구로와 중랑의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살펴봤다. 구로문화재단의 ‘구로문화사전’ 프로젝트에서는 지난 2년간 지역을 리서치하고, 관련 자료를 아카이빙한 결과물을 에세이북 형식으로 만들어 『남겨진 꿈의 나라』를 발행했다. 중랑문화재단의 프로젝트 ‘청년기록단 스포트라이터’는 미시사적으로 접근한 중랑의 모습을 공연과 전시 형식으로 풀어낸 ‘검은 민들레’ 등을 발표했다. 좌담의 패널들은 이 두 기관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각 기관에서 ‘아카이브’라는 단어를 실제로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탐색했다. 어떻게 하면 실제 현장에서 중첩되어 있는 아카이브 형식 혹은 개념 자체의 사용법에서 길을 잃지 않고, 아카이브라는 단어, 개념, 형식에 대한 사유를 이어가며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나눴다.

지역문화 프로젝트에서 ‘아카이브’라는 단어의 필요성

생활하거나 활동하는 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지속하는 것. 때로는 지역민들과의 소통 과정을 통해 동네에 씬을 조성하는 것. 이러한 작업 과정을 기록할 필요를 느끼는 것. 주로 이러한 세 가지 배경과 맥락 하에 지역문화 프로젝트에서는 아카이브라는 단어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서울 내 자치구문화기관들 몇몇은 때로 “저희 지역은 문화자원이 부족해서요”라는 말로 지역문화 사업 기획의 곤란함을 토로하고는 했다. 이는 역사문화자원, 기록, 전통, 혹은 문화주체, 근현대 문화 활동, 인프라 등 문화생태계의 구성요소들과도 연계될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지역의 문화‘자원’을 아카이빙하려는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을지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또한 아카이브 기획을 추진하고 나서, 그를 바탕으로 혹은 그와 연계하여 구체적인 예술 프로젝트를 시작하고자 하는 경우도 꽤 있다.
  한편 탈중심적인 다양한 가치들의 장 조성을 위한 지역문화 씬, 혹은 지역문화라는 렌즈 자체는 아카이브와 잘 어울린다. “아카이브는 담론에 가려져 있던 것들을 엿볼 수 있는 곳, 규범적인 행동이나 정형화된 행동이 파기되면서 다양한 행동들, 의외의 행동들, 그야말로 틀을 벗어나는 행동들이 출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4) 다양한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포함한 지역문화 프로젝트 추진 과정들을 마주하며, 지역문화라는 단어를 성찰적으로 받아들이는 다양하고도 흥미로운 사례들을 만나게 된다. 정책적으로나 현장의 움직임으로나, 지역문화와 도시문화를 고심한 과정들을 아카이빙해둔 것들은 훗날 ‘자원’이 될 것 같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지역민과 예술가와 기관들 등 여러 주체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난한 소통과정들도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칠 수 없다. 지역문화와 도시문화라는 단어, 렌즈, 프레임은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사용 주체들에게도 이 단어들을 고정된 방식으로만 논의하지 않는 역량이 어느새 쌓여 있다.

서울 지역문화 아카이브 플랫폼 ‘로컬투서울’의 소개 페이지 캡처 이미지
서울 지역문화 아카이브 플랫폼 ‘로컬투서울’

리서치 프로젝트와 아카이브 프로젝트

아카이브는 기록물로서의 가치, 정제된 형태의 컬렉션, 목록의 형태로 제시된 자료, 다른 자료들과 연결되어 있는 자료 더미 등을 떠올리게 한다. 스스로를 지역문화 아카이브라고 칭하고 소개하는 것들 중 어떤 프로젝트/프로그램에는 ‘아카이브’보다 더 적합한 표현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가령 ‘리서치’라고 부르는 것이 그 프로젝트를 더 잘 소개한다고 여겨질 때도 있었다. 아카이브라고 부르며 획득하고 싶은 가치가 있었을 테지만, 어쩌면 리서치라고 불렀을 때 더 적합한 논의의 영역에서 소개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역문화 ‘프로젝트’의 사전 단계로서 지역문화 ‘아카이브’

일반적으로 아카이브란 잘 찾을 수 있는 자료로 기록물을 산출하는 것을 그 목적과 형식으로 삼는다. 아카이브 자체는 당장 활용되는 것보다는 쌓이고 머무르고 있는 것에 가깝다. 또한 아키비스트가 역사가는 아니다. 하지만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예술 프로젝트를 할 때는 마치 역사가처럼 관점을 가지고 기록물 중에 소거할 것과 추가할 것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글과 책, 영상, 사진뿐 아니라 가령 공연이나 워크숍 등의 형식으로 발표된 ‘예술적 아카이브’(artistic archive) 프로젝트의 가치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아카이브를 활용한 예술작품은 또다른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수용될 수 있을까. 장강명 소설가의 『아무튼, 현수동』은 상상의 지역인 현수동에 사는 사람들과 그곳의 풍경,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광흥창역 일대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어 완벽히 상상으로 서술된 허구의 지역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는 결국 창작물이다. 이런 저작물은 지역문화 아카이브 맥락에서는 어떻게 읽힐 수 있을까.
  한편 때로 지역문화 영역에서 발표된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단순히 지역에 환원되거나 지역의 것으로 빠르게 포섭되는 차원도 있는 것 같았다. 또한 지역을 위해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해야한다는 목적 상정으로 인해, 단순한 기록물이나 예술적 아카이브와는 무관한 일반적인 ‘아카이브’ 선에서 멈추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다는 관찰도 덧붙여 본다.

***

이제까지 지역에 대한 인식 혹은 조사를 탑재한 문화예술 창작 활동을 바라볼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표현들을 중심으로 몇몇 사례들을 모아 보았다. 사실 ‘유용한 표현들’은, 일차적으로는 이 글에 소제목으로 제시된 구절들이고, 또 각 소제목을 떠올리게 한 몇몇 문화예술 프로젝트들 자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상술하는 과정에서 쓰인 또다른 유용한 표현들도 곳곳에서 추가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시대적·사회적 트렌드나 이슈에 대해 들뜬 어조로 명명하려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이 글에서 제시한 각종 표현이 서울이라는 도시 혹은 서울 내 지역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 기획 추진의 확장에 도구로 사용되면 좋겠다.
  서울을 더 작게, 동네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발을 디디는 곳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생활의 조건으로서 사회문화적 환경 인식뿐만 아니라, 동네 생활에 대한 경험을 쌓아갈 수 있게 한다. 그렇다고 추상적인 개념과 형태를 탐색하고 조합하며 창작 활동을 하는 것과, 구체적인 현실 기반과 환경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 상충하는 것도 아니다. 덧붙여,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수행하는 현재 위치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관점과 접근 방식 차원에서도, 지역문화·도시문화·생활문화라는 렌즈는 도움이 된다. 때로 상충하기도 하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예술을 다루는 정책 사업들 및 개별적인 예술 프로젝트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에도 그러하다.

관련 자료 바로가기
『서울 지역문화 리뷰』 click


이세옥

퍼레이드 & 패치워크. 서울과 미국 보스턴에서 문학과 미디어를 공부했고, 현대미술 영역에서 영상과 사운드 작품을 발표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을 거쳐, 연희문학창작촌에서 근무 중이다.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 근무에서는 ‘지역문화 씬’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이 단지 문화예술 영역에서의 논의 혹은 노력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새삼 인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식을 잊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발행해온 사업 자료집 제작을 이어가는 연장선상에서 출발했던 『서울 지역문화 리뷰』 기획·운영 노트를 담담하게 적어보았다. 팀 차원의 사업 계획에 전제되었던 생각들과 개인의 관심사가 두루 반영된 글이 되었다.

2024/03/20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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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역문화 리뷰』와 이 글이 지역문화, 도시문화, 생활문화를 각각 어떻게 개념화하는지, 기대고 있는 개념에 관한 이해를 간단히 덧붙인다. 지역문화는 서울 안 더 작은 지역(local), 특히 자치구라는 행정단위 기준으로 발생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 중심의 것들을 지칭한다. 도시문화는 대도시 서울 혹은 지역(region)으로서 서울에 대한 관점과 이 관점하에 도출되는 안건들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들을 아우르는 단어로 사용한다. 생활문화는 시민들의 예술 프로젝트 참여로 혹은 시민의 삶과 예술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문화예술에 주목하게 하는 통로 같은 개념이다. 이 글에서는 지역문화, 도시문화, 생활문화가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때로 두세 가지가 겹치는 영역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2
이와 관련하여 런던시의 각 행정구역별 사업 계획 중 일부를 선정하여 지원하는 사업 ‘런던 보로우 오브 컬처’(London Borough of Culture)와 이와 연계된 시상 제도인 ‘컬처 임팩트 어워드’(Cultural Impact Awards)를 비교해볼 수 있다. 이 사업 또한 세부 지역 단위로 대도시 내 지역을 특성화하는 데에 문화예술적 접근을 적극 도입한 정책사업이다.
3
성북문화재단의 예술마을 만들기 소개 링크. 바로가기
4
아를레트 파르주, 『아카이브 취향』, 김정아 역, 문학과지성사, 2020, 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