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4회 그곳은 75미터 고공일까, 75미터 바닥일까
1년이 다 돼가는 파인텍 노동자들의 투쟁
기획의 말
아픈 곳이 우리 몸의 중심입니다. 장기 농성장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입니다. 쌍용차, 파인텍, 콜트콜텍 농성장은 최소 300일 이상, 최대 10년 이상 장기 농성을 벌이는 곳입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세 명의 목격자가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현장을 찾았습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故김주중씨의 분향소를 찾은 시인 정우영은 자신은 목격자가 아니라 저들의 고통을 외면한 ‘방관자’였다고 반성합니다. 인권운동가 명숙은 75미터 굴뚝 위 목동 파인텍 농성장은 버려지는 물건이 아니라 ‘인간’들의 목소리가 있는 태풍의 눈이라고 말합니다. 화가 전진경은 수년째 화구(畵具)를 챙겨 콜트콜텍 농성장을 찾아 오늘도 그 곁에 머물고자 합니다.
과연 ‘승산이 있느냐?’는 질문은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서히 작은 희망이 보인다고 애써 자위합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에 대한 전원 복직을 사측이 약속했다는 소식이 얼마 전 전해졌습니다. 최근 남북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평화를 약속하며,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노동자도 함께 살아야 합니다. 평화(平和)는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일상입니다. 장기 농성장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평화라고 믿습니다.
겨울의 문턱인 11월, 태양빛이 창문으로 어둠의 외피를 밀어내는 어스름한 아침 무렵이었다. 띠리릭.
‘파인텍 박준호, 홍기탁 목동 근처 75미터 굴뚝 농성 시작’
태양빛이 아침을 깨우듯 몽롱한 정신을 일깨우는 문자다. 아니 태양빛보다 더 강렬하다. 개인적인 일로 번뇌와 고통에 휩싸여 뒤척이던 내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듯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그들, 박준호와 홍기탁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안심하던 우리에게 불어온 태풍인지도 모른다.
‘이제 겨울이 닥치는데…… 75미터 위는 더 추울 텐데…… 어쩌려고, 어쩌려고……’ 한숨과 눈물과 답답함이 자꾸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극한투쟁을 하지 않으면 세상의 권력자들은, 언론은 귀를 내주지 않는 세상이다. 그들이 저 높은 굴뚝에 오른 까닭이다. 나는 황급히 목동에 있는 서울에너지공사 굴뚝으로 갔다.
박준호. 내겐 파인텍이라는 이름보다 박준호가 더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작년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을 만들기 위해 공사를 할 때도, 꿀잠 홍보와 후원을 모으는 일을 할 때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을 할 때도 같이했던 사람이다. 기타를 잘 치고 사람들과 술 마시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던 사람. 홍기탁, 그는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집회가 끝난 후 이어지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산적 같은 얼굴에 순박한 웃음을 투덜거리듯 보여주던 사람이다. 그와 같이 일하는 파인텍의 김옥배는 꿀잠 건물 공사 때 용접을 열심히 했던, 누구보다 선한 웃음이 매력인 사람이다. 무엇보다 머리가 희어 열 살 더 나이들어 보이는 차광호가 떠올랐다. 그는 굴뚝에서 홀로 408일을 보낸 사람이다.
회사보다 그들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건, 2016년 겨울과 2017년 초,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광화문 캠핑촌에 함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술인들과 시민들이 불의한 세상이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텐트를 치고 겨울을 꼬박 보냈다. 친기업 정책을 내세우며 자기 배를 불리던 불의한 정권을 몰아내는 데 힘을 보태는 일에 여러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파인텍도 노조깃발을 들고 천막을 세웠다. 우리도 파업을 하고 광장에 천막을 세우기로 했다며, 차광호의 비장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겨울에 굴뚝에 올랐단 얘기를 들으니 속사정을 자세히 묻지 않은 게 미안해졌다.
사실 파인텍은 익숙치 않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냥 물건처럼 노동자들이 팔리듯 버려졌기 때문이다. 파인텍의 전신은 경북 구미에 있는 스타케미컬이다. 스타케미컬의 전신은 폴리에스테르 원사 생산량 국내 1위였던 한국합섬이다. 공장을 팔 때마다 회사 이름이 바뀌었어도 그들은 여전히 섬유를 만드는 일은 하는 노동자들이다. 이상한 건, 회사 이름이 바뀌면서 공장을 인수한 사장은 배를 불렸지만, 노동자들의 배는 점점 홀쭉해졌다.
2007년 한국합섬이 파산된 후 5년 만에 나타난 스타플렉스는 800억에 달하는 회사를 399억에 샀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은 2010년 공장을 가동하겠다는 약속과 노동조합과 고용을 승계하겠다는 합의를 했기에 싸게 공장을 인수할 수 있었다. 2011년 3월 공장이 다시 돌아갔다. 노동자들은 다시 일할 수 있다며 즐거워했다. 지긋지긋한 상경 투쟁도 거리집회도 이제 끝나고 모든 게 일상으로 되돌아가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일상의 단꿈은 낮잠처럼 짧았다. 공장 재가동 1년 반 만인 2013년 1월, 한국합섬을 싸게 인수한 스타케미칼 김세권 사장은 폐업을 선언하고 공장을 쪼개서 팔겠다고 했다. 기계 설비를 팔아 300여 억 원 이상을 챙겼고, 고철과 전선 매각대금 200여 억 원을 챙기려고 했다. 결국 차광호는 45미터 굴뚝에 올랐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꼬박 보내고도 43일을 굴뚝에서 보낸 후에야 내려올 수 있었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이 충남에 파인텍이라는 공장을 세워 고용 승계와 단체협약, 노동조합을 승계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합의서 내용은 ‘별도 신설법인을 만들어 고용을 보장하고 단체협약은 2016년 1월 안에 체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향을 멀리 두고 온 파인텍 노동자 8명은 최저임금도 못 받고, 밥도 하루 한 끼만 먹으며 24시간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노동자들을 쫓아내려고 만든 유령 회사인 셈이다. 파인텍은 2017년 8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며 기계를 빼고 공장을 비웠다. 박준호, 홍기탁이 75미터 하늘에 오른 이유다.
그들이 있는 곳은 75미터 고공이 아닐 지도 모른다. 호수에 산이 비치듯, 바닥으로 처박힌 노동자들과 75미터 바닥까지 내려간 삶을 거울로 하늘에 비춘 것인지도 모른다. 태풍이 뒤집듯 드러낸 삶의 밑바닥! 노동자들은 성실히 묵묵히 일을 하고도 언제든 쫓겨난다. 기업주 마음대로 도박장에서 투기하듯 공장을 사고팔아 돈을 버는 것을 허용한 세상은 이미 땅 밑이다.
모두 머리를 땅에 처박은 듯한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숨을 짓던 사람들은 그들이 딛고 있는 굴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허공이 되지 않도록 무언가를 해야 했다. 집회를 하고 노래를 하고 기도를 하고 밥을 했다. 목사와 신도들이 와서 기도를 하고 수녀님들이 와서 밥을 해 굴뚝으로 올렸다. 매일 고공 농성자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땅에서 싸우고 있는 동료들의 밥까지 챙겨오는 시민들도 있다. 그렇게 겨울에서 봄이 가고 여름이 됐다.
한여름, 파인텍의 진짜 사장인 스타플렉스 김세권이 있는 목동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를 하기도 했다. 아스팔트가 펄펄 녹아내릴 것 같은 도로 바닥에 이마를 대고 온몸을 뻗어 빌었다. 제발 저들이 무사히 땅을 밟을 수 있기를, 제발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이 사죄하며 합의를 이행하기를…… 빌고 또 빌었다. 오체투지에는 파인텍 노동자인 차광호, 김옥배, 조정기 만이 아니라 많은 시민들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당신의 투쟁에서 이기는 것이 내 싸움이 이기는 것 마냥 온몸으로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아직 스타플렉스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합의서가 있음에도, 회사 이름도 다르고 사장도 다르다며 세상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파인텍의 사장 강민표가 스타플렉스 전무이사라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속임수를 마술인양 쓴다. 차광호와 동료들이 목동 CBS건물 15층에 있는 스타플렉스에 갔으나 김세권은 만나주지도 않았다. 아직 태풍이 덜 불었나보다.
그렇게 찬바람이 부는 가을을 앞에 둔 9월 7일, 굴뚝 고공 농성 300일이다. 300일 문화제는 전날 스타플렉스가 있는 목동에서 열렸다. 여러 예술인들이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 소원 선물을 주는 산타처럼 사람들은 농성자들을 응원했다. 그중에서도 기억 남는 선물은 ‘기찻길옆작은학교’ 아이들이 불러준 노래와 편지다. ‘기찻길옆작은학교’는 인천에 있는 공부방이다.
학생들은 연대 오기 전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여, 왜 그들이 싸우는지를 공부하고 온다고 했다. 이번에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만든 공예작품을 판 돈을 후원금으로 전달했다. 무엇보다 한 자 한 자 쓴 편지가 뜨거웠다. 태풍과 폭염을 걱정하는 말들, 복직을 염원하는 말들, 왜 스타케미컬 때 굴뚝에서 싸웠는데, 다시 이름 바뀌어 또 싸우느냐며 안타까워하는 마음들이 또박또박 박혀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을 꿈틀거리게 한 것은 임세은 학생이 쓴 편지였다. “굴뚝에서 힘들게 농성하는 것을 알기에 ‘힘내세요.’라는 말을 하는 것도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아저씨가 부당한 것들에 대해 싸우는 것이 후에 노동자가 될 저희에게도 큰 희망이 되는 것 같아요.”라며 응원했다. 당신들의 싸움이 내 싸움이기도 하다는 걸,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같은 세상을 바라기 때문에 이렇게 연대하는구나.
속절없는 감동과 걱정으로 문화제를 마치고 박준호, 홍기탁이 있는 75미터 굴뚝으로 행진했다. 밤을 밝힌 촛불을 들고 선 사람들이 아름다웠다. 굴뚝에서는 우리의 걸음들이, 우리의 마음들이 저 촛불로 보이겠지. 굴뚝에 도착해 오랜만에 길게 발언하는 홍기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단단했다. 야윈 얼굴 때문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이제는 철없는 나의 ‘다행’ 생각이야말로 좀더 단단한 연대로 변해야 하겠지.
아픈 곳이 우리 몸의 중심입니다. 장기 농성장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입니다. 쌍용차, 파인텍, 콜트콜텍 농성장은 최소 300일 이상, 최대 10년 이상 장기 농성을 벌이는 곳입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세 명의 목격자가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현장을 찾았습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故김주중씨의 분향소를 찾은 시인 정우영은 자신은 목격자가 아니라 저들의 고통을 외면한 ‘방관자’였다고 반성합니다. 인권운동가 명숙은 75미터 굴뚝 위 목동 파인텍 농성장은 버려지는 물건이 아니라 ‘인간’들의 목소리가 있는 태풍의 눈이라고 말합니다. 화가 전진경은 수년째 화구(畵具)를 챙겨 콜트콜텍 농성장을 찾아 오늘도 그 곁에 머물고자 합니다.
과연 ‘승산이 있느냐?’는 질문은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서히 작은 희망이 보인다고 애써 자위합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에 대한 전원 복직을 사측이 약속했다는 소식이 얼마 전 전해졌습니다. 최근 남북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평화를 약속하며,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노동자도 함께 살아야 합니다. 평화(平和)는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일상입니다. 장기 농성장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평화라고 믿습니다.
겨울의 문턱인 11월, 태양빛이 창문으로 어둠의 외피를 밀어내는 어스름한 아침 무렵이었다. 띠리릭.
‘파인텍 박준호, 홍기탁 목동 근처 75미터 굴뚝 농성 시작’
태양빛이 아침을 깨우듯 몽롱한 정신을 일깨우는 문자다. 아니 태양빛보다 더 강렬하다. 개인적인 일로 번뇌와 고통에 휩싸여 뒤척이던 내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듯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그들, 박준호와 홍기탁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안심하던 우리에게 불어온 태풍인지도 모른다.
‘이제 겨울이 닥치는데…… 75미터 위는 더 추울 텐데…… 어쩌려고, 어쩌려고……’ 한숨과 눈물과 답답함이 자꾸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극한투쟁을 하지 않으면 세상의 권력자들은, 언론은 귀를 내주지 않는 세상이다. 그들이 저 높은 굴뚝에 오른 까닭이다. 나는 황급히 목동에 있는 서울에너지공사 굴뚝으로 갔다.
박준호. 내겐 파인텍이라는 이름보다 박준호가 더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작년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을 만들기 위해 공사를 할 때도, 꿀잠 홍보와 후원을 모으는 일을 할 때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을 할 때도 같이했던 사람이다. 기타를 잘 치고 사람들과 술 마시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던 사람. 홍기탁, 그는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집회가 끝난 후 이어지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산적 같은 얼굴에 순박한 웃음을 투덜거리듯 보여주던 사람이다. 그와 같이 일하는 파인텍의 김옥배는 꿀잠 건물 공사 때 용접을 열심히 했던, 누구보다 선한 웃음이 매력인 사람이다. 무엇보다 머리가 희어 열 살 더 나이들어 보이는 차광호가 떠올랐다. 그는 굴뚝에서 홀로 408일을 보낸 사람이다.
회사보다 그들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건, 2016년 겨울과 2017년 초,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광화문 캠핑촌에 함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술인들과 시민들이 불의한 세상이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텐트를 치고 겨울을 꼬박 보냈다. 친기업 정책을 내세우며 자기 배를 불리던 불의한 정권을 몰아내는 데 힘을 보태는 일에 여러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파인텍도 노조깃발을 들고 천막을 세웠다. 우리도 파업을 하고 광장에 천막을 세우기로 했다며, 차광호의 비장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겨울에 굴뚝에 올랐단 얘기를 들으니 속사정을 자세히 묻지 않은 게 미안해졌다.
사실 파인텍은 익숙치 않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냥 물건처럼 노동자들이 팔리듯 버려졌기 때문이다. 파인텍의 전신은 경북 구미에 있는 스타케미컬이다. 스타케미컬의 전신은 폴리에스테르 원사 생산량 국내 1위였던 한국합섬이다. 공장을 팔 때마다 회사 이름이 바뀌었어도 그들은 여전히 섬유를 만드는 일은 하는 노동자들이다. 이상한 건, 회사 이름이 바뀌면서 공장을 인수한 사장은 배를 불렸지만, 노동자들의 배는 점점 홀쭉해졌다.
2007년 한국합섬이 파산된 후 5년 만에 나타난 스타플렉스는 800억에 달하는 회사를 399억에 샀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은 2010년 공장을 가동하겠다는 약속과 노동조합과 고용을 승계하겠다는 합의를 했기에 싸게 공장을 인수할 수 있었다. 2011년 3월 공장이 다시 돌아갔다. 노동자들은 다시 일할 수 있다며 즐거워했다. 지긋지긋한 상경 투쟁도 거리집회도 이제 끝나고 모든 게 일상으로 되돌아가는구나 생각했다.
스타플렉스, 유령회사로 노동자들을 밀어내다
그러나 일상의 단꿈은 낮잠처럼 짧았다. 공장 재가동 1년 반 만인 2013년 1월, 한국합섬을 싸게 인수한 스타케미칼 김세권 사장은 폐업을 선언하고 공장을 쪼개서 팔겠다고 했다. 기계 설비를 팔아 300여 억 원 이상을 챙겼고, 고철과 전선 매각대금 200여 억 원을 챙기려고 했다. 결국 차광호는 45미터 굴뚝에 올랐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꼬박 보내고도 43일을 굴뚝에서 보낸 후에야 내려올 수 있었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이 충남에 파인텍이라는 공장을 세워 고용 승계와 단체협약, 노동조합을 승계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합의서 내용은 ‘별도 신설법인을 만들어 고용을 보장하고 단체협약은 2016년 1월 안에 체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향을 멀리 두고 온 파인텍 노동자 8명은 최저임금도 못 받고, 밥도 하루 한 끼만 먹으며 24시간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노동자들을 쫓아내려고 만든 유령 회사인 셈이다. 파인텍은 2017년 8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며 기계를 빼고 공장을 비웠다. 박준호, 홍기탁이 75미터 하늘에 오른 이유다.
그곳은 75미터 고공일까, 75미터 바닥일까
그들이 있는 곳은 75미터 고공이 아닐 지도 모른다. 호수에 산이 비치듯, 바닥으로 처박힌 노동자들과 75미터 바닥까지 내려간 삶을 거울로 하늘에 비춘 것인지도 모른다. 태풍이 뒤집듯 드러낸 삶의 밑바닥! 노동자들은 성실히 묵묵히 일을 하고도 언제든 쫓겨난다. 기업주 마음대로 도박장에서 투기하듯 공장을 사고팔아 돈을 버는 것을 허용한 세상은 이미 땅 밑이다.
모두 머리를 땅에 처박은 듯한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숨을 짓던 사람들은 그들이 딛고 있는 굴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허공이 되지 않도록 무언가를 해야 했다. 집회를 하고 노래를 하고 기도를 하고 밥을 했다. 목사와 신도들이 와서 기도를 하고 수녀님들이 와서 밥을 해 굴뚝으로 올렸다. 매일 고공 농성자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땅에서 싸우고 있는 동료들의 밥까지 챙겨오는 시민들도 있다. 그렇게 겨울에서 봄이 가고 여름이 됐다.
한여름, 파인텍의 진짜 사장인 스타플렉스 김세권이 있는 목동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를 하기도 했다. 아스팔트가 펄펄 녹아내릴 것 같은 도로 바닥에 이마를 대고 온몸을 뻗어 빌었다. 제발 저들이 무사히 땅을 밟을 수 있기를, 제발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이 사죄하며 합의를 이행하기를…… 빌고 또 빌었다. 오체투지에는 파인텍 노동자인 차광호, 김옥배, 조정기 만이 아니라 많은 시민들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당신의 투쟁에서 이기는 것이 내 싸움이 이기는 것 마냥 온몸으로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아직 스타플렉스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합의서가 있음에도, 회사 이름도 다르고 사장도 다르다며 세상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파인텍의 사장 강민표가 스타플렉스 전무이사라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속임수를 마술인양 쓴다. 차광호와 동료들이 목동 CBS건물 15층에 있는 스타플렉스에 갔으나 김세권은 만나주지도 않았다. 아직 태풍이 덜 불었나보다.
산타처럼 선물을 건네는 이들
그렇게 찬바람이 부는 가을을 앞에 둔 9월 7일, 굴뚝 고공 농성 300일이다. 300일 문화제는 전날 스타플렉스가 있는 목동에서 열렸다. 여러 예술인들이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 소원 선물을 주는 산타처럼 사람들은 농성자들을 응원했다. 그중에서도 기억 남는 선물은 ‘기찻길옆작은학교’ 아이들이 불러준 노래와 편지다. ‘기찻길옆작은학교’는 인천에 있는 공부방이다.
학생들은 연대 오기 전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여, 왜 그들이 싸우는지를 공부하고 온다고 했다. 이번에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만든 공예작품을 판 돈을 후원금으로 전달했다. 무엇보다 한 자 한 자 쓴 편지가 뜨거웠다. 태풍과 폭염을 걱정하는 말들, 복직을 염원하는 말들, 왜 스타케미컬 때 굴뚝에서 싸웠는데, 다시 이름 바뀌어 또 싸우느냐며 안타까워하는 마음들이 또박또박 박혀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을 꿈틀거리게 한 것은 임세은 학생이 쓴 편지였다. “굴뚝에서 힘들게 농성하는 것을 알기에 ‘힘내세요.’라는 말을 하는 것도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아저씨가 부당한 것들에 대해 싸우는 것이 후에 노동자가 될 저희에게도 큰 희망이 되는 것 같아요.”라며 응원했다. 당신들의 싸움이 내 싸움이기도 하다는 걸,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같은 세상을 바라기 때문에 이렇게 연대하는구나.
속절없는 감동과 걱정으로 문화제를 마치고 박준호, 홍기탁이 있는 75미터 굴뚝으로 행진했다. 밤을 밝힌 촛불을 들고 선 사람들이 아름다웠다. 굴뚝에서는 우리의 걸음들이, 우리의 마음들이 저 촛불로 보이겠지. 굴뚝에 도착해 오랜만에 길게 발언하는 홍기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단단했다. 야윈 얼굴 때문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이제는 철없는 나의 ‘다행’ 생각이야말로 좀더 단단한 연대로 변해야 하겠지.
명숙
싸우는 사람은 어쩌면 우리에게 태풍 같은 존재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과 맞잡은 손은 가볍되, 동정 같은 싸구려 상품이 되기 어렵다. 인권활동가로 인권운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다. 함께 쓴 책으로 『그래, 엄마야』, 『재난을 묻다』 등이 있다.
2018/10/30
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