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가 없는 동네에 산다는 것은,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니었을까.라고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시 경계에 들어서면 ‘전원공업 도시 A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초록색 안내판이 우리를 맞이하던 A시의 B공단 인근, 뒤로는 야트막한 산자락이 버티고 앞으로는 잡초로 가득한 벌판이 펼쳐진 곳에 아버지의 직장에서 지은 32가구짜리 다세대주택 한 동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자가용이 없는 집이 대부분이라 시내로 나가려면 노선이 하나뿐인 버스를 타야 했는데 그나마도 자주 오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 “계란~이 왔어요.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라는 방송과 함께 계란 장수 트럭이 왔고, 과일과 야채, 생선 트럭도 들렀지만, 우리가 가장 기다린 사람은 역시 야쿠르트 아줌마였다.

   물론 슈퍼가 있었다면 그것대로 슬픈 일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설탕과 기름과 밀가루를 극도로 경계하는 분이었고, 그 모든 것을 합쳐놓은 과자는 죄악의 덩어리 같은 것이었으므로. (나는 엄마가 언제 마지막으로 튀김을 만드셨는지도 똑똑히 기억하는데, 우리가 서울로 이사 온 1990년 집들이 때였다.) 게다가 개간의 민족답게 우리 가족은 뒷산자락에 텃밭을 일구어 고추, 참깨, 상추, 오이, 가지, 토마토, 토란, 땅콩,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심었다. 그러니까 내가 집에서 먹을 수 있는 간식은 잘해야 딸기잼을 바른 식빵이었고, 보통은 과일이나 찐 고구마, 호박죽 등이었다. 그중에서 특히 나를 괴롭힌 건 흑임자죽이었다. 차갑고 걸쭉한 차콜색 액체는 설탕을 퍼 넣어 휘저은 뒤 삼켜도 목구멍에 들러붙어 넘어가질 않았고, 아무리 숟가락질을 해도 대접은 좀처럼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엄마가 외출한 사이 몇 번인가 몰래 죽 그릇을 들고 나가 앞뜰에 붓고 흙을 덮어버렸는데, 그 무거운 죄책감과 묘한 후련함이 아직도 가끔 떠오르곤 한다.

   결핍은 강력한 갈망을 부르는 법이다. 나는 단 것을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다 뒤졌다. 하루에 한 개씩만 먹게 되어 있는 어린이용 비타민 ‘미니막스’를 몰래 반 줌이나 꺼내 쥐고 있다가 손바닥에 빨간색과 보라색 물이 드는 바람에 들켜서 혼이 나기도 했고, 당뇨 환자인 할아버지가 설탕 대용으로 드시는 감미료 ‘그린 스위트’를 한 봉씩 슬쩍 꺼내 먹기도 했다. 미미하게 단맛이 나는 영양식품 ‘화분’과 놀러 온 사촌 동생의 분유도 조금씩 먹었다. 가끔 할머니는 남은 밥을 물에 씻어 채반에 펼쳐 말린 뒤 방앗간에 가져가 ‘오꼬시(튀긴 쌀을 물엿 등으로 굳혀 만든 강정)’를 만들어오셨고, 밀가루 반죽을 손가락만 하게 빚어 튀긴 뒤 설탕을 뿌려 주기도 하셨다. 하지만 나는 더 달고 부드럽고 고소하고 폭신하고 예쁜 것이 먹고 싶었다. 크림이나 무스, 버터밀크, 히커리 나무로 훈제한 사슴고기와 찌르레기 파이 같은, 먹어본 적은 없지만 이름을 알고 있는 음식들. 내 어린 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ABE 전집이었는데, 『초원의 집』 시리즈의 책장 사이에는 내가 몰래 먹다 흘린 ‘마일로’ 가루들이 쌓이고 쌓여 진갈색 얼룩이 생겼다. 집에서 직접 버터와 치즈를 만드는, 돼지를 잡자마자 꼬리에 꼬챙이를 끼워 지글지글 구워 먹는, 깨끗한 눈 위에 뜨거운 단풍 시럽을 부어 그 자리에서 먹는 대목마다.


요리책들. 내가 상상하고 사랑한 음식들이 가득 담긴 요리책. 너무 열심히 읽어 표지가 떨어져 나간 것은 『엄마가 만드는 케이크와 쿠키』.

   『초원의 집』과 함께 가장 사치스런 도피처는 신혼 초에 엄마가 사들였던 서른세 권짜리 요리책 세트였다. 크리임 치이즈, 위핑 크리임, 캐러멜 소오스, 피이넛 버터 등 느릿느릿 뽐내는 것처럼 예스러운 표기법을 따른 이 책들을 나는 읽고 또 읽었다.


   푸딩(pudding)이란 서양식의 연한 생과자로서 녹말가루나 밀가루에 우유·설탕·버터·향료 등을 혼합하여 부드럽게 익힌 것이다. 주로 후식으로 쓰이며 재료로는 달걀과 생크리임 등이 쓰이기도 한다.1)
   핑크 레이디는 진 1온스, 달걀 흰자 1개분, 그레나딘 시럽 1/3온스, 스위이트 크리임 1/2온스, 얼음 적당량을 넣어 만든다. 핑크 레이디는 특히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술인데, 달걀 흰자의 비린내를 싫어하는 여성들을 위해서 달걀 흰자 대신 우유 1온스를 넣어 만드는 방법도 있다.2)


   『디저어트 30선』, 『샐러드와 오르되브르』, 『칵테일과 과실주』까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음미하는 책은 바뀌었지만 겉장이 떨어져나갈 만큼 자주 읽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엄마가 만드는 케이크와 쿠키』였다. 커피나 주스와 함께 예쁘게 세팅된 케이크 사진을 보며, 먹고 싶은 순서대로 별점을 매겼다. 나비 컵케이크는 별 한 개, 딸기 쇼오트 케이크는 별 두 개, 초컬릿 레이어 케이크는 별 세 개 하는 식으로. 그중 가장 높은 별 네 개를 받은 것은 초컬릿 스펀지케이크로,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초컬릿 스펀지케이크. 코코아 가루를 넣은 반죽을 구워 초콜릿으로 코팅하고 색색의 초콜릿으로 장식한 케이크. 하단에 엄정하게 매긴 별 넷이 보인다.

   1) 밀가루를 체로 친 다음 코코아 가루·소금을 넣고 다시 2, 3번 친다.
   2) 달걀 5개는 흰자와 노른자를 나누어 흰자는 잘 부풀어 오를 만큼 거품을 내고, 노른자는 설탕 1컵을 넣고 잘 저어 크리임 상태로 만든다.
   3) 크리임 상태의 노른자에다 레몬 주우스를 넣고 저은 다음 1)의 밀가루 혼합물을 넣고, 다시 거품낸 흰자를 넣어 잘 섞어 놓는다. 이 때 반죽은 살며시 해야 케이크가 잘 부푼다.
   4) 사각형 케이크 팬에 버터를 약간 바르고 3)의 반죽을 부어 섭씨 180도의 오븐에서 45분~60분간 굽는다.
   5) 4)의 케이크 팬을 뒤집어 케이크를 꺼낸 다음 식힌다.
   6) 이중 남비에(혹은 중탕하는 식으로) 버터와 초컬릿을 넣어 함께 녹인 다음 소금·가루 설탕·연유를 넣고 잘 젓는다.
   7) 6)에다 달걀 흰자를 거품내어 넣고 바른 향료도 넣는다.
   8) 5)의 케이크 표면에 7)을 골고루 펴 바른 다음 굳어지기 전에 호도와 여러 가지 색깔의 새알 초컬릿으로 장식하여 굳힌다.3)

   하지만 우리 엄마는 케이크도 쿠키도 만들지 않았다. 오븐도 케이크 팬도 없는 집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시내에는 ‘태극당’이라는 제과점이 있었지만 케이크를 통째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 감히 조를 수도 없었다. 나는 지금도 진열장에서 초콜릿으로 코팅된 케이크를 보면 잠시 이성을 잃곤 한다.
   
   화장실에서 샴푸 통에 적힌 글자라도 읽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을 활자중독자라고 한다. 나는 요리책뿐 아니라 눈에 띄는 모든 책(아빠가 VCR 뒤에 숨겨둔 시드니 셀던 소설부터 『아! 따뜻한 남쪽 나라』라는 제목의 탈북자 수기까지)을 읽어 치우는 아이였는데, 좋은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의 기준은 분명했다. 음식 이야기를 맛있게 쓰는가. 『빨강머리 앤』을 읽을 때도 앤이 길버트 브라이스의 머리통을 석판으로 후려치는 장면보다 몰입한 것은 다이애나가 라즈베리 시럽인 줄 알고 먹은 포도주와 앤이 바닐라 대신 진통제를 넣은 케이크가 등장하는 대목이었다. 『비밀의 화원』에서는 신선한 우유와 갓 구운 감자가 있는 정원의 만찬이, 『작은 백마』에서는 요리사 마마듀크가 준비한 성대한 아침 식사가 제일 중요했다. 『말괄량이 쌍둥이』, 『플롯시는 오늘도 따분해』 같은 지경사의 소녀소설 시리즈는 크림소다와 레몬 파이, 페퍼민트 초콜릿에 대한 동경을 깊어지게 만들었다. 심지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자살클럽』을 읽었을 때도 내가 가장 궁금해한 것은 도입부에 등장하는 크림파이가 어떤 파이인가였다.

   며칠 동안 밤을 새 가며 정신없이 매달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스칼렛이 가든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를 고르는 장면을 수없이 읽었지만, 못지않게 여러 번 읽은 페이지는 스칼렛이 숨이 끊어지도록 코르셋을 조인 뒤 마주한 아침 식사 메뉴다. 버터를 바른 큼직한 고구마 두 개, 과즙을 섞은 메밀가루로 구운 핫케이크, 커다란 햄이 담겨 있는 수프가 내 눈앞에 있다면 트림이고 뭐고 개의치 않고 먹어치웠을 텐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부 농장주들의 화려한 만찬 이상으로 내 입맛을 다시게 한 건 남북전쟁 이후 빈궁해져 고구마와 말린 사과로 연명하던 타라 농장의 식단이었다. 이처럼 굶주림과 포만감이 교차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주인공의 허기를 함께 느낄 수밖에 없다. 수잔 플레밍의 『눈보라를 뚫고』는 눈사태로 조난당한 열차에 탄 소년이 주인공인 이야기인데, 사흘간 추위와 배고픔을 견딘 승객들이 구조되어 기름에 튀긴 닭고기와 쇠고기, 강낭콩과 꼭대기에 버터를 녹인 걸쭉한 매쉬드 포테이토, 호두를 뿌린 두꺼운 초콜렛 케이크 한 조각을 제공받는 대목에선 내가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나에겐 케이크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상상 속의 음식과 현실의 음식을 겹쳐 보기 시작했다. 내가 읽었던 문고판 『소공녀』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빠의 사망 이후 굶주리던 세라가 길에서 4펜스짜리 동전을 주워 ‘단빵’ 여섯 개를 산 것이었다. 세상에, 단빵이란 어떤 빵일까. 갓 구워 따끈하다는 표현 외엔 삽화도, 더 이상의 설명도 없었다. 국민학교에 들어간 뒤 나는 간식 값으로 하루에 백 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마침 시내 상가 1층에 있는 조그만 빵집에서는 단팥빵, 소보로빵, 팥도너츠를 한 개당 백 원에 팔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팥도너츠를 먹을 때마다 이게 그 ‘단빵’일 거라 상상하며 아껴서 조금씩 떼어 입에 넣곤 했다. 이렇게 근본 없는 상상은 꽤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열아홉 살 때 읽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집 『키친』에서 내가 제일 좋아한 대목은 주인공 미카게가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흠잡을 데 없이 맛있는 돈가스 덮밥을 만나고는 1인분을 포장해 사랑하는 남자에게 갖다 주러 먼 도시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 장면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돈까스 덮밥의 맛을 상상했는데, 대학생이 된 언니와 함께 신촌에 갔을 때 ‘치킨 라이스’라는 작은 식당에서 바로 그 환상 속의 돈까스 덮밥을 만났다. 뜨거운 철판 위에 담긴 바삭한 튀김과 달콤한 소스, 고슬고슬한 밥까지 감동적일 만큼 완벽한 맛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음식은 돈까스도, 덮밥도 아니었지만.

   물론 현실이 늘 내가 꿈꾸던 맛은 아니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와의 저녁 식사를 위해 핑크색 원피스와 ‘발폴리첼라’라는 이름의 적포도주를 샀다는 사실이었다. 발.폴.리.첼.라. 이국적인 이름을 입안에서 몇 번이나 굴리며 나는 막연히 붉은 보랏빛이 감도는 달콤한 포도 주스 같은 것을 상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맛본 레드와인은 시큼하고 떫었다. 새로운 세계는 언제나 책과 함께, 새로운 음식과 함께 다가왔다. 열 살 때 읽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에서 내가 상상한 미국의 맛은 「튀김 스테이크집 순례」라는 글이다.


   먼저, 쇠고기 등심살 한 점을, 밀방망이로 마구 두들긴 다음에 계란을 풀어넣은 밀가루 반죽에 살짝 담궜다가 베이컨 기름과 함께 프라이팬 속에 떨어뜨려 튀긴다. 고기가 잘 튀겨지면 꺼내고 남은 기름에 밀가루를 볶다가 우유와 소금과 후추가루를 넣고 잘 저어주면 진짜 그레이비 소스가 된다. 스테이크와 함께 삶은 완두콩과 으깬 감자를 접시에 담고서 그 위에 그레이비 소스를 넉넉하게 끼얹는다. 여기에 옥수수빵 한 덩이와 버터, 그리고 찬 우유 한 잔을 곁들인다. 4)

   꿀꺽. 언젠가 미국에 간다면 로버트 풀검이 별 다섯 개를 준 아이다호 주의 페이예트에 있는 모드 오웬스 카페에 가보는 것이 그 시절 내 꿈이었다. 지금은? 나는 사실 튀긴 쇠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단빵’ 얘기로 돌아가 보자. 세라는 빵집 앞에서 만난 거지 소녀에게 빵 다섯 개를 나누어주고 자신은 배고픔을 참은 채 마지막 하나를 아껴 먹는다. 내가 소공녀라면 빵을 몇 개 나누어줄 것인가와 함께 내 소녀 시절을 지배한 양대 고민은 도대체 소금절이 라임이 무엇인가였다. 『작은 아씨들』의 막내 에이미가 책상에 숨겨두고 먹다가 선생님께 불려 나가 손바닥을 맞았다는 그 과일, 이름에서부터 새콤한 향이 나는 것 같은 라임은 대체 무슨 맛이고 어떻게 생겼을까. 왜 과일을 소금에 절였을까. 그런 걸 어떻게 학교에 가져갔을까.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나도 그 소금절이 라임이란 걸 꼭 한 번 먹어봐야지. 라임은커녕 오렌지나 바나나 같은 서양 과일은 1년에 한두 번 맛볼까 말까 했던 80년대 후반이었다.

   번역가 정은지 님이 쓴 『내 식탁 위의 책들』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25년이나 지난 뒤다. 아마도 그 책을 읽었던 소녀들은 다들 비슷한 궁금증을 품었던 모양이다. 다만 그가 나와 다른 점은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집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의 「라임 피클을 쫓는 모험」에는 그가 영문판 『작은 아씨들』에서 ‘라임 피클’이라는 단어를 확인하고, ‘라임 처트니’라는 인도식 절임과 그것을 구분해내고, 외국의 저장식품 커뮤니티를 뒤진 끝에 『작은 아씨들』의 배경이 된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먹던 라임 피클의 정체를 알아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담겨 있다. 소금절이 라임의 정체를 알게 된 것 이상으로 이 책을 만난 게 기뻤던 이유는 서문에 있다.


   식탁 위의 책들. 이 은밀한 쾌락을 완성하는 책은 정해져 있다. 낯선 손님은 나의 식탁에 초대받지 못한다. 수십 번도 아닌 수백 번 읽어서 이미 외운지 오래인 책들만 올라오고, 책장이 저절로 펼쳐질 정도로 같은 곳만 계속 본다.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먹는다. 세상에 이보다 안전한 쾌락이 있을까5)


   책 속의 먹을 것 이야기에 탐닉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있다니, 아니 세상엔 이런 사람이 꽤나 많다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요리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훌륭한 요리 실력과 한 끼도 소홀히 하지 않을 정도의 부지런함까지 갖춘 그와 달리, 나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다. 미식가도 아니고, 혼자 있을 땐 정크푸드로 때우기가 일쑤에, 베이킹을 배울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보람과, 맛있는 식당을 찾아가는 행복, 오로지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글에서 느끼는 재미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토록 맛있는 것들에 대해 읽을 때 내가 가장 즐겨 먹는 간식은 잘게 부수어 스프를 뿌린 생라면이다. 아마도 평생 내가 먹은 생라면을 쌓아올리면 작은 방 하나쯤은 가득 찰 것이다. 생라면을 먹는 데는 나만의 의식이 있다. 봉지를 뜯기 전 라면을 4등분으로 쪼갠 뒤, 다시 한입 크기로 쪼갠다. 팔꿈치의 뾰족한 부분으로 누르면 잘게 부술 수 있다. 봉지 위쪽을 잘라낸 다음 건더기 스프는 버리고 국물 스프를 솔솔 뿌린다. 이때, 스프의 양은 2/3를 넘지 않게 한다. 다년간의 경험에 따르면 스프를 전부 넣으면 너무 짜서 오히려 맛이 반감된다. 그다음, 봉지의 위쪽을 움켜쥐고 마구 흔들어 섞는다. 라면 조각마다 충분히 스프가 묻으면 소파로 간다. 좋아하는 책의 좋아하는 대목을 펼쳐놓고, 기름에 튀겨 딱딱해진 밀가루를, 맵고 짜디짠 스프에 버무려 먹는 것에는 약간의 죄책감과 그걸 능가하는 말초적 기쁨이 함께한다. 물론 이제 나는 다 큰 어른이므로, 책장 틈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최지은

전에 했던 얘기를 또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초조함, 아무도 안 물어본 이야기를 혼자 떠드는 게 아닐까 하는 머쓱함과 계속 싸우고 있다.

2018/10/30
11호

1
전희정, 「초컬릿 푸딩」, 삼성 가정요리 990 『디저어트 30선』, 삼성출판사, 1982.
2
권귀남,「알렉산더·핑크 레이디·진 토닉 」, 삼성 가정요리 990 『칵테일과 과실주』‘, 삼성출판사, 1982.
3
전희정, 「초컬릿 스펀지 케이크 」, 삼성 가정요리 990 『엄마가 만드는 케이크와 쿠키』, 삼성출판사, 1982.
4
로버트 풀검 지음,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박종서 옮김, 김영사, 1989, 56쪽.
5
정은지, 『내 식탁 위의 책들』, 앨리스, 2012, 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