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9회 지붕을 잃은 본가궁중족발에 다시 지붕을
기획의 말
2018년 6월 8일, 서촌의 궁중족발 세입자가 건물주를 대상으로 둔기를 휘두르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일은 그저 한 개인의 일탈 행위일까요? 7년이 넘도록 한 자리에서 영업을 해온 ‘본가 궁중족발’은 2016년에 건물을 새로 매입한 건물주가 기존의 임대료의 4배를 인상하면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는 그 순간부터, 구조가 개인에게 가했던 폭력은 없었을까요? ‘현장잡지’는 각각의 필진들이 현장에서 모여 글을 읽는 방식으로 출간되는 잡지로, 낭독회 프로그램을 통해 임차상인을 돕는 연대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현장잡지를 만들어오는 동안 권창섭 시인이 목격한 것은 무엇일까요?
의자들을 가로세로 배치하고 마이크와 음향을 세팅한다. 이때 어디서 보내셨는지 귤이 한 박스 도착한다. 박스를 열어 탱글탱글한 귤들을 꺼내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하고, 저마다 자리들에 앉아, 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를 반기며 인사들을 건넨다. 마주 앉아, 혹은 나란히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귤을 까 먹는다. 이제 겨울이네. 1년이 끝나가고 또 1년이 시작된다.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면 ‘띠’가 바뀐다. 올해는 ‘개띠’였고, 내년은.
오늘, 12월 6일 저녁, 여긴 연남동의 진부책방스튜디오란 곳이다. 아까 그 한 박스의 귤은 본가궁중족발(이하 궁중족발)의 윤경자 사장님께서 보내셨던 것이다.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온 우리는 오늘 궁중족발 후원 낭독회, 현장잡지 ‘월간 돼지띠’를 연다. 조금 일찍 2019년 돼지해를 맞이하며 가져온 글들을 읽을 것이다.
궁중족발은 원래 경복궁 옆의 체부동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2009년에 문을 열었던 궁중족발은 10년 가까이 제자리에서 장사를 해오며 그 자리를 지켜왔으나, 2016년 1월, 건물주가 바뀌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건물주 이모씨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297만원이었던 임대료를 1억에 1200만원으로, 무려 4배 가까운 금액으로 올려달라고 한 것이다. 터무니없는 인상, 이는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상 나가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이를 어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버티기로 했다. 명도 소송에 패하고, 사설 용역들까지 동원된 강제집행이 수차례 계속되었지만 계속 버텨보았다. 가스를 끊기도 했다. 전기계량기를 떼어 가기도 했다. 수도를 잠그기도 했다. 건물의 화장실을 폐쇄하기도 했다. 강제집행에 저항하던 중 김우식 사장님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춥기도 했다. 불을 켤 수 없기도 했다. 물을 쓸 수 없기도 했다. 화장실을 멀리 돌아가야 하기도 했다. 너무나 아프기도 했다. 그러나 버텨보았다. 여기에서 나갈 수 없었다. 여기에 지붕이 있기 때문이었다.
2018년 6월 4일 새벽 3시 30분, 열두번째 강제집행이 이뤄졌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이었다. 건물 안에는 사장 부부와 연대하는 시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 측은 지게차를 비롯한 중장비로 밀고 들어왔다. 철문이 굉음과 함께 부서졌다. 속수무책이었다. 안에 사람이 있다고, 안에 사람들이 있다고, 무리하게 집행하면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호소도 소용없었다. 용역들에게 끌려나오며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사람들이 끌려나오자, 가게의 문은 용접되었다. 간판이 떨어졌고, 쫓겨났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에서 중장비를 이용한 강제집행은 허용치 않겠다고 발언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합법적’이라는 외피를 둘러쓰고 이루어졌다. 당시 상가임대차보호법상 임대료 인상률 상한은 5%였다지만 이는 계약 기간이 5년이 되지 않는 경우에만 해당될 뿐이었다. 계약 기간이 5년이 지난 궁중족발의 임대료를 400% 가까이 인상하는 데에는 아무런 법적 제재가 있을 수 없었다. 집행 직무를 행하는 집행관은, 집행 과정에서 이뤄지는 사설 용역들의 폭행과 조롱들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1) 서울시(행정)는 자신들이 나설 수 없는 문제라며 외면했고, 법원(사법)은 건물주의 정당한 재산권 행사라며 건물주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람들은 수퍼을질이라며 두 사장님과 연대인들을 비난했다. 그리고 건물주 이모씨는 48억원에 매입한 이 건물을 70억원에 내놓았다. 매매가 성사되면 이모씨는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손에 쥐게 된다. 모든 것은 ‘합법적’이었다.
건물주가 가게의 간판을 떼고 가게 안의 집기들을 모두 꺼내 버린 날, 건물주의 조롱은 극에 달했고, 김우식 사장님은 결국 망치를 들었다. 자세한 당시의 마음은 그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라, 나도 더 말을 삼가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때려선 안 된다는 것을 모를 리는 없었을 터, 하지만 법과 제도가, 철저히 자신을 외면할 때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또 무엇이 있었을까. 결국 망치를 들었던 그는 살인미수, 특수폭행,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되었고, 국민 참여 재판으로 이뤄진 1심 재판에서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평결을 받아 현재 징역 2년 6개월의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2심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삶은 끝나지 않는다. 투쟁은 계속되었다. 윤경자 사장님은 망치가 아닌 피켓을 들었다. 아침 9시에는 청와대 앞에서, 낮 12시에는 국회 앞에서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김우식 사장님의 선처를 구하는 1인 시위를 매일매일 진행했다. 연대인들이 그 곁을 함께했다. 몰려드는 취재진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법의 허점과 그 허점으로 인해 스러지는 자영업자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궁중족발 가게 내에서 진행되었던 여러 문화 행사들은 그 지붕을 잃었지만 계속되었다. 뮤지션들은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고, 종교인들은 계속해서 기도를 하였다. 투쟁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장터가 경의선 공유지에서 매주 계속되었다. 법과 제도는 그들을 철저히 외면했지만 상식과 사람들은 그들의 곁과 옆에 있었다.
9월 21일,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권이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된다. 이제 건물주는 10년간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의 재계약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권리금 회수를 보장하는 기간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났다. 보호 대상에 전통시장의 상점들도 이제 포함되며, 임대차 분쟁 시에 이 해결을 돕는 조정위원회도 신설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새로 체결되거나 갱신되는 계약부터 유효하고 소급 적용되지는 않는다. 이미 명도 소송과 집행이 끝나버린 궁중족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이곳에서는 궁중족발의 투쟁에 연대하기 위한 낭독회가 열리고, 윤경자 사장님께서는 귤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사장님은 이 자리에 함께하여 마이크를 쥐신다. 그럼에도 자신의 투쟁은 계속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개정이 자기 자신에게는 현재 그 어떤 실익을 가져다주진 못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제2의 궁중족발이, 제3의 궁중족발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여전히 피케팅을 하였다는 말을 하기 위해. 그리고 여전히 궁중족발에 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우린 오늘 낭독회의 포스터를 함께 본다. 그리고 제목 ‘돼지띠’에 대해 생각한다. ‘돼지’ 그리고 ‘띠’. 돼지(豕)에 지붕(?)을 얹으면 집(家)이 된다. 지붕 아래 돼지들이 산다. 그런데 여기 지붕을 잃은 돼지가 있다. 지붕을 잃자 집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돼지는 혼자가 아니었다. 돼지는 우글우글 꿀꿀대며 함께 산다. 그리고 그 돼지들의 이름들이 하나둘씩 모이면 그것이 띠를 이룬다. 그리고 그 띠가 지붕을 잇겠지. 우리는 함께 지붕을 잇기 위해 여기에 모여 있다.
글을 쓰는 이들은 궁중족발의 지붕을 지키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현장잡지’라는 이름으로 궁중족발에서의 낭독회를 계속 진행해왔다. 집행이 완료되어, 지붕을 잃은 뒤에는 다른 지붕 아래에서 모였다. 약 열 차례의 낭독회 동안, 무려 76명의 글 쓰는 이들이 띠를 이어주었다. 궁중족발의 지붕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가져온 글을 읽는다. 어떤 이가 말한다. 나의 어리석음이 다른 이의 어리석음과 만나면 안도가 된다며, 그리고 오늘 여기 안도가 된다며.
우리들은 어리석다. 그래서 법과 제도를 잘 모르며, 자본의 정당한 논리를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은 또 잘 알고 있다. 그 법과 제도 또한 어리석다는 것을.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다는 것을. 법과 제도는 구멍이 너무 많아서 그것만으로는 지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로 이야기할 때 법과 제도에 너무 많은 구멍이 생긴다는 것을.
폭력적인 자본에 맞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나와, 내 곁과, 내 곁의 곁의 ‘잃어서 없음’(非有)을 끊임없이 보고하고 노정함으로써, ‘있어서 가짐’이 어떻게 폭력적이고 야만적일 수 있는지, 어떻게 인간성을 탈피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일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문학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며, ‘모든’ 문학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어떤’ 문학은 바로 여기에서 비유(比喩)가 시작되어야 한다. 모든 잃어서 없음에게 그럴 수는 없겠지만 어떤 잃어서 없음에는 그 비유가 구멍 난 지붕을 메꾸는, 잃어버린 지붕을 새로 잇는 도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궁중족발 외에도 많은 곳들이 지붕을 잃어가고 있다. 법과 제도가 이 땅의 약한 이들의 지붕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지붕을 앗아가는 존재라면, 우린 그 법과 제도를 손질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또다른 지붕을 상상해야 한다. 손질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르는 노래가, 양손 모은 기도가, 추는 이 춤이, 읽는 이 글이, 그리고 맞잡은 손들이, 곁과 옆이 지붕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지붕을 되찾을 때까지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우리는 그것을 바라며 12월 6일, 조금 일찍 내년의 돼지띠를 먼저 가져와본다.
권창섭
본가궁중족발에 연대하는 낭독회를 기획 및 진행해왔다. 물론 다른 일들도 한다. 명색은 일단 시인인데,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보다,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한다.
2018/12/25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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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강제집행 현장에서의 사설 용역 투입은 이미 관행이 되어서 합법적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건물주가 고용한 사설 용역들은 집행 과정에서 인신에 대한 물리력은 행사할 수 없다. 집행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바로 이 사설 용역들과의 충돌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본디 집행관이 고용한 인력들만 집행에 투입되어야 하기에 집행관은 사설 용역들이 집행 과정에 투입되어 물리력과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을 의무가 있지만 도리어 이를 수수방관하는 경우가 많다. 강제집행을 빠르고 확실하게 완료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본가궁중족발 강제집행 과정에서 해당 집행관은 과태료가 200만원 부과된 바 있는데, 일부 용역들을 인적 사항을 기재하지 않은 채, 승인되지 않은 상태로 투입하고, 일부 용역들에게 규정된 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부과 사유였다. 집행 노무자들에 대한 관리 감독 부주의로 집행관에게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 최초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