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하는 소리를 들었다.
    파묻고 싶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생각해보았다. 왜 파묻고 싶은가는 따져보지 않기로 했다. 복잡한 건 싫어. 오로지 파묻는 것만이 중요해지도록 하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파묻고 싶은 사람과 파묻고 싶지 않은 사람을 분류해나가다보니 누굴 파묻을지, 그것들을 파묻으면 뭐하나, 다 부질없다는 심사가 되어 자괴감에 빠졌다. 인간을 그만두고 싶었다. 인간을 그만두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뭔가, 할 수 있는 짓을 고심해보았다. 손발톱을 잘라야겠다. 손톱 밑 가장 연약한 살갗을 뜯어냈다. 그 선배를 진즉에 파묻었어야 했다. 선배, 선배가 나를 따돌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선배는 어쩜 그렇게 저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겼을까요. 남들이 뭐라 하든, 제게 선배는 거짓된 사람이에요. 선배가 꿈에 나올까 무섭습니다. 한날, 갑자기 눈물이 났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을 그이에게 말했다.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 같아.”
    어릴 때 앞집에 살던 아이가 어린 나를 불러내서 철물점집 나무 자재가 쌓인 공터의 사각지대로 데려가더니 내 바지를 벗긴 후에…… 그 일은 그 아이가 먼저 이사를 가면서 중단됐다. 중단됐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신을 괴롭혔다. 망가졌다. 잊어버리려고, 살았다. 누구도 알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아이가 한 아이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한번은 그 아이가 나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갔는데, 그때 그의 가족이라는 사람이 방에서 우리를 불렀고 나는 들어가지 않고 그 애는 들어갔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그러니까 한 아이가 한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건 한 가족이 한 가족에게 그런 짓을 먼저 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해. 생각하고 싶은 건지도 몰라. 중요한 건 그 일을 나만 빼고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좁은 동네였으므로 십대가 되어 십대가 된 그 아이를 우연이라도 한두 번 마주칠 때면 숨이 턱턱 막혔다. 쳐다볼 수 없었고 볼 수 없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이가,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놀라 말을 잇지 못하였다. 몰라, 나도 몰라. 그냥 말이 나왔어. 그 짓을 당하고 그 짓을 정리하는데 딱 이만큼의 시간이 걸렸나봐. 왜 하필 그때였는지, 그 순간 나의 내부에서 뭐가 터졌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어떤 폭탄의 도화선은 그렇게도 길다. 그러니까 이제 와서 그런 말을 왜 하니, 라는 말 좀 하지 마. 페미니스트로서 학교폭력, 젠더폭력의 피해자였음을 인지하고 말할 수 있던 내가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말할 수 없었던 사실을 그렇게 먹고 싸고 시답잖은 말을 내뱉듯 말하게 된 데에는 최근 내가 겪었던, 겪고 있는, 겪어야만 하는 일들이 관련되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일은 무엇일까. 모르겠다. 지금은. 지금이므로.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쓰고 있음이 나의 또다른 토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제는 은사님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잘 지내고 있는지, 좋은 시 자꾸 익어가는 가을이라 믿네, 라는 글귀에 한결 가벼운 마음이 되어 답장을 드렸다.
    요즘에는 바다보다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가을이라 그런가봐요. 지금까지는 매년 가을은 바다의 계절이었습니다. 가거나 가지 않거나 갈 수 있거나 갈 수 없을 때도요. 무슨 영문인지 모를 때 늙어간다는 말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존 키츠를 읽었습니다. 오늘 11시 30분경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깃털을 보았습니다. 습성을 바꾸기란 쉽지 않습니다.

   

    불바다를 만들어버리겠어.
    술만 먹으면 불바다 타령을 해대던 이가 곁에 있었다. 지금은 없다. 화가 많아서 화가 쏟아져나오는 이를 가까이하는 데도 기한이 있다. 요즘에 와 종종 나의 화는 어디에 있는가가 궁금하다. 늙어간다.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인데, 그게 정말 화가 나지 않아서인지, 화를 꾹 참고 있어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 자만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에 화를 다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스리지 못한 화를 다독이기 위해 의학과 상담의 힘을 빌리는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이의 사태가 추측되고 나 자신 환기되는 바가 있어 얕은 시름에 빠진다.
    언젠가 한 번 한 책방에서 열린 문학 행사의 진행자가 되어 작가와의 만남을 이끈 적이 있다. 참여 인원이 적어서 행사라기보다는 정모 같은 분위기가 되었는데,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던 중에 한 여성이 말했다.
    ―저는 마음에 병이 있습니다.
    듣자 하니 그이 마음의 병은 말을 잘하지 못해서 생긴 것이었다. 그날 그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헤아려 적은 글에서 나는 마음에 말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라고 물었었다. 그지. 나도, 너도 마음에 말이 있지. 다 말해버릴까, 하는 고민을 최근에 꽤 여러 번 했다. 그 가운데 한번은 말했다.
    ―내가 받은 고통을 생각해봤어?
    그러나 그러니까 누군들 할 말이 없겠는가. 나는 부모가 나로 인해 받은 고통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친구와 만나 저녁을 먹다가 당분간 글만 쓰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글만 쓰고 싶다는 말에 눌러 담아놓은 말이 많음을 모르는 바 아니어서 대꾸했다. 나도. 나와 친구는 작가는 글로 말하는 자니까, 글로 쓰는 사람이지, 라는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오랜만에 마주 보고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사이 친구는 많은 것을 잃은 얼굴. 그러나 친구야, 네가 좋아하는 겨울이 오고 있다. 친구가 최근에 쓴 글은 시인의 삶에 관한 것이었다. 원고료를 밝히지 않은 청탁서를 받고 원고료를 되물을 때의 난감함이나 원고료 대신 거무튀튀한 쌀을 받았을 때의 곤혹 그리고 고료만으로는 먹고살지 못하는 삶. 그러니까 여러분 제 친구의 기쁨을 위해서 원고를 청탁할 땐 원고료가 얼마인지 정확히 밝혀주시고요, 쌀을 주실 거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쌀을 주세요. 편당 고료도 높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도 우수 문예지 지원 사업이 아니라면 먹고살기 힘들겠죠. 문학으로 먹고살기가 이렇게 어렵다. 그러니 젠더폭력 피해경험 때문에 분노가 많아 ‘문학적인’ 글을 못 쓰고 있다고 하신 분 그냥, 쓰세요. 그 분노는 좋은 밑거름입니다. 문창과에서는 안 되는 것만 배우는 것 같다고 하신 분. 시에 죽음이니 인생이니 하는 큰 말, 쓰셔도 되고요, 여성적인(?) 건 사소한 거라고 하니 쓰세요. 동성애는 보편적인 게 아니라니까 쓰시고요. 여러분 안 되는 것에 되는 예술이 있다.
    얼마 전, 문단 내 성폭력 공론화 이후를 의제로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서 몹시 화가 나지 않는 얘길 들었다.
    ―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느냐고 하는데, 조개 줍는 게 재밌더라고요.
    화가 나는 얘기도 들었다.
    여전히,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친다는 이들이 학생들에게 “야, 이년들아…… 문제 제기할 거면 해봐,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으냐.” “네 소설은 섹슈얼하지가 않아. 남자를 알아야 해.” “네 시는 너무 중성적이다(?)”라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고 있다는 ‘증언’이었다. 함께 있던 이 중의 한 명이 정말, 자연사가 답이냐고 혀를 차며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우리나라 예술 분야의 성폭력 관련 의식과 실태를 파악하여 성폭력 방지를 위한 정책 활용’을 위한 실태조사 설문지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작성해 보냈다. 정책과 기구가 풀지 못하는 화도 있지만, 정책과 기구가 있어야 풀리는 화도 있다. 실태조사 설문지는 보다 나은 예술 환경 조성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한다.
    촛불 집회 1주년을 맞았다.
    문화예술계 내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에 관한 진상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문단 내 성폭력 공론화 이후 피해자들은 여전히 생존에 힘쓰고 있고 가해자에게 협박당하고 있으며 너나할것없이 아픔 속에 있다. 피해생존자들과 연대했던 이들도 하나둘 병들었다.
    불바다를 만들겠어. 술만 먹으면 불바다 타령을 해대던 이가 나였다면 나는 나를 버렸을까.
    나의 화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사무원 김현은 매력 없구나, 라는 말을 듣고 2012년 11월에는 화가 났었다.

   바람

    바람도 참.
    바람을 피해 들어간 카페에서 하릴없이 앉아 있다가 오래전에 적어둔 글을 찾아 읽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듣게 된 한 울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전에. 본의 아니게 듣게 된 옆 테이블의 대화는 영옥 언니에 관한 것이었다. 영옥 언니는 두부를 팔았다. 두부를 파는 영옥 언니에게 딸아들이 있었다. 두부라면 쳐다보기도 싫다던 작은 놈이 이제는 정신 차려 두부를 팔고 큰 애는 엄마 팔자를 닮아서 식당일을 한다.
    ―영옥 언니, 아들딸 잘 키워놓고 불쌍해서 어떡해.
    한 사람이 말하자 한 사람이 그래도 산 사람은 산다고 대꾸했다. 그러자 다시 맞은편에 있는 이가 조용히 고개를 돌려 카페 창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시간 참, 잘도 간다.
    곧 두 사람은 시장에 가자며 일어섰다. 두 사람이 카페 밖으로 사라지자 카페 안으로 저녁의 어스름한 빛이 비쳐들었고 그 빛을 보고 있자니 느닷없이 찾아드는 애상이 있어 글을 적게 되었다. 그전에. 한 울음에 대한 글은 이런 것이다.
    아침에 이상한 울음이 벽을 타고 방으로 넘어왔다. 처음에는 배가 고프거나 발정 난 동물의 울음인가 했다. 낮고 잔잔하던 울음이 어어, 으으, 어으어으로 차츰 변하더니 말이 되었다. 엄마. 울음에서 엄마, 라는 뜻 있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울음의 진원지가 옆집에 사는 노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울음은 이십 분 넘게 지속됐다. 나는 바로 누워서 이십 분 넘게 울음을 들었다. 옆집 노파는 혼자 산다. 가끔 노파를 찾아오는 늙은 딸이 있다. 다세대주택에 오래 살다 보니 심심찮게 옆집, 앞집, 뒷집의 소리를 듣게 되는데도 이번에 듣는 울음은 어쩐지 더 늙어가는 기분. 고독의 오프닝으로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었다. ‘시의 경우 원고료는 가급적 정기구독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청탁서를 받았다.
    그때는 무례한 청탁을 받고도 원고를 보냈다.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므로 지면이 소중했다. 지금도 지면이 소중하다. 그래서 가급적 원고료를 달라고 하고 고료가 없는 잡지에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다. 단 돈 3만원이라도, 며칠을 산다. 이런 구구절절한 작가의 삶이 애상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애상이란, 제주에 다녀왔다.
    ‘제주퀴어문화축제’에 맞춰 가고 싶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조금 먼저 움직였다. 제주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제주시가 혐오 민원을 이유로 행사 개최 장소 사용에 대한 승낙을 철회했다는 소식에 골이 띵했다. 이유가 가관이었다.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될 경우 제주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등 공공복리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퀴어여성체육대회’도 미풍양속 테러를 당했다. 동대문구청이 성소수자 혐오 민원이 있다는 이유로, 미풍양속과 뜬금없는 공사를 운운하며 일방적으로 대관을 취소해버린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성소수자 단체의 시설 대관 신청을 거부하거나 취소한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다. 서울시인권센터 시민인권보호관은 일부 공공기관의 설득력 없는 대관 거부 사례를 ‘평등권 침해’로 인정하기도 했다. 이쯤 되니 미풍양속 뭘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제주에 갈 때마다 한 번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 곳이 성 박물관인지 공원인지 하는 곳이다. 자지 빵을 팔고 공원 내 버젓이 성교 조각상을 세워두고 심지어 입장료도 받는 그곳의 미풍양속은 얼마나 제주에 맞는 것인지. 제주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꽤 상쾌한 기분이 들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퍼레이드와 해변에서의 열린 파티는 외국의 청량한 여름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아름답고 좋은 풍속은 자지빵에 가까운 것일까 공원 축제, 체육관 운동회에 가까운 것일까.(다행히 제1회 제주퀴어문화축제는 법적 절차를 밟은 이후에 무사히 개최되었고, 퀴어여성체육대회는 체육관이 아니라 동대문구청 앞에서 정말, 운동(여성성소수자궐기대회)을 벌였다.)
    그럼에도 제주에서는 자주 우수에 젖었다.
    자연에 가까워지며 인간은 너나할것없이 초라해지니까.
    해가 뉘엿뉘엿 지고 바람을 따라 갈대가 몸을 뉘고 바람이 물결을 밀어서 왔다 갔다 하는 풍경을 감상하며 작은 해변 언덕에 서 있노라면 삶의 터전에 대한 미련이 금세 사라지고 새로운 인생을 되돌아보게도 되었다. 바람같이 와서 바람같이 떠나는 삶이었어야 하리. 집을 떠나오면 누구나 대체로 한 번씩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빠져 홀로 된다. 그때나 되어서야 인생을 되돌아보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제의 나는 어째서 오늘의 나에게까지 오게 된 걸까, 옛사람이 떠올라 타전하고 싶어진다. 잘 지내나요, 저도 잘 지냅니다.
    카페에 앉아 저녁을 맞이하고 눈이 침침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는 데 낯익은 이가 카페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영옥 언니였다.
    ‘영옥 언니’라는 지칭을 시에 써야지 마음먹었다. 거기에 미풍양속을 담으면 좋을 것이다. 두부 파는 영옥 언니가 생애 처음으로 제주에 간다. 가기 전에. 영옥 언니는 만두소를 만들기 위해 흰 보에 두부를 넣어 물기를 꾸욱 짠다. 그때 영옥 언니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단 할아버지 말씀이 옳습니다, 라고 흥얼거리고. 한편,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카페 안을 어슬렁거렸다.

   

    물을 좋아하는 친구가 결혼하겠다더니 축시를 부탁해왔다.
    친구는 물만 좋아하는 게 아니고 흙도 좋아하고 나무도 좋아하고 바위도 좋아한다. 그는 약력에 친구들과 함께 숲과 바다에 있길 좋아한다는 말을 적고, 겨울 산이나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며, 자주 오래 걷고 오래 달린다. 그는 바르게 서야 할 때는 바르게 서고 거칠게 넘어져야 할 때는 거칠게 넘어져야 함을 아는 사람이다. 때때로 그가 시를 읽다가 혹은 시를 듣다가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취업하고 바빠 시를 쓰지 못하고 있고 그 못함을 최선을 다해 못하는 것이 시에 대한 예의라고 말하는 친구. 친구와 나는 오랫동안 시를 잡는 법을 배웠지만, 나는 시를 (잠시) 놓은 후의 태도를 그 친구에게서 배웠다. 그런 친구와 친구의 짝꿍을 떠올리자 해변이 보였다. 해변은 잡을까, 놓을까 궁리하기 알맞은 곳이다. 친구는 회사 일이 바빠 결혼 후 신혼여행을 바로 떠나지 못했고, 하루 뒤에 이런 후기를 인스타그램에 남겼다.

    ‘저희 결혼 잘 했습니다. 미처 시간이 안 됐거나 깜빡 잊고 못 오신 분들도 미안해하지 마세요. 저도 정말 자주 그러니까요……’

    그가 결혼식을 앞두고 남긴 전언은 이런 것이었다.

    ‘저와 여자 친구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며 서로를 알았고, 유쾌한 동료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가까워졌고, 곁에 있는 형, 누나, 동생, 친구들을 통해 서로의 삶을 신뢰했습니다……’

    내게도 오래 사귄 이가 있다. 우리는 결혼을 원치 않으며, 우리의 결혼은 언젠가 합법이 될 수 있다.
    여자인 엄마와 남자인 아빠는 수십 년 전에 이화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축시는 없었을 테고 주례는 있었을 테지만 둘은 주례대로 살진 못했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살라는 가르침은 묵묵히 수행 중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어주는 상상을 하면, 그건 과거의 일일까, 미래의 일일까.

    파도를 생각하는 사랑도 움직이는 것이나
    파도만을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사랑은 자유롭다

    파도에 순종하는 사랑도 고분고분할 것이나
    파도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사랑은 고개를 든다

    파도에 올라타는 사랑도 용감한 것이나
    파도에 올라타지 못할 때 사랑은 비로소 약자의 편에 선다

    파도에서 일어나는 사랑도 멀리 내다보는 것이나
    파도에 누운 사랑이 가까이 와 있는 것을 응시한다

    파도를 이기는 사랑도 똑똑한 것이나
    파도에 지고 해변에 눕는 사랑의 얼굴은 지혜롭다

    파도는 파도를 아는 자의 것이 아니라 파도를 모르는 자의 것

    당신이 파도라면
    당신의 사랑은 아직 당신을 모르는 자의 것이다

    두 사람이 파도라면
    두 사람의 사랑은 아직 두 사람을 모르는 두 사람의 것

    하나가 되지 않고
    둘인 채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에 사랑의 맨손이 있다

    때때로 두 사람은 한 사람을 놓쳤음을 후회하지만
    놓침으로 해서 사랑은 다시 새로운 결말이 된다

    잔잔한 파도가 가장 무섭고 거친 파도가 가장 안전한 것

    붙잡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놓는 것을 또한 용감히 여겨라

    파도 앞에서 누구보다 미래를 보고
    파도 뒤에서 누구보다 현재를 보는

    당신,
    사랑은 좁고 사랑은 낮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발을 맞대고 궁리해보는 것이다

    자연과 사람 앞에서 성실히
    부디

    파도는 왜 넓은가
    파도는 왜 높은가

   마음

    부고를 받았다.
    입동을 앞두고 또 한 이가 열심히 살다가 갔다.

    어제는 몸 쓰는 꿈을 꿨다.
    첫 수업이 있었다. 강사는 나의 몸을 관찰하는 내가 되어보는 것이 이번 수업의 목표, 지향, 목적 같은 것이 될 것이라 말했다. 편안한 자세로 누워 눈을 감습니다. 정수리로 숨을 쉽니다. 가슴으로 숨을 쉽니다. 배꼽으로 숨을 쉽니다. 장기로 숨을 쉽니다. 그러면서 나의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해봅니다. 나의 몸을 보려고 노력해봅니다. 강사의 목소리에 맞춰 머리부터 발끝까지 숨을 순환케 했다. 슬펐다. 몸을 벗어나 몸을 바라보는 일은 슬픈 거구나 싶었다. 자, 이제 눈을 뜹니다. 강사가 내게 물었다. 어때요, 나의 몸을 볼 수 있던가요? 저는 제 몸이 슬펐습니다, 라고 말했다. 몸을 바라보려고 하다보면 어떤 감정과 만날 때도 있습니다. 감정을 지나 더 깊숙이 들어가면 내 몸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슬픈 몸에서 벗어나봅니다. 그때부터 강사는 나와 계속 눈을 맞췄다. 요즘 지속되고 있는 감정은 대부분 몸에 의한 것인데 그 감정을 모두 지나치면 어떤 몸을 대면할 수 있다는 걸까.

    어제만 해도 고등어구이에 밥 한 그릇을 비운 이가 오늘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하루아침에 홀연히 세상과 등질 수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죽음은 어째서 늘 이렇게 허망한가. 그러니 친구야, 살자. 살면서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영화도 만들자. 그리고 선배는 꿈에서도 만나지 맙시다. 두번째로 씁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똑똑히 들었고 그 이름을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걸 기대하십시오. 차별과 혐오를 넘어 무지개. 영옥 언니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살아요.

    옛날 이 무렵이면 시장에는 무, 배추가 가득 쌓이고, 갈까마귀의 배에 흰색의 부분이 보이면 이듬해에 목화가 잘된다고 하였다. 또한, 입동에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바람이 독하다고 하고 그해 새 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먹고, 농사에 애쓴 소에게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꿈에서 마음을 쓰면 몸에서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을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나는 그렇다.

김현

듣고 나면 들어야 할 게 있고, 말하고 나면 말해야 할 게 있고, 쓰고 나면 써야 할 게 있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과 맛있게 만두를 먹는다.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아 지구를 구하는 걸 보았다.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