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
13회 올해의 만화
당신의 마감을 방해할 X
‘올해의 만화’라는 제목을 쓰고 나니 연말 느낌이 물씬 나네요. 올해 저는 멋진 만화를 많이 만났습니다.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 만화도 있었고 같은 직업인으로 질투가 생기는 만화도 있었습니다. 올해 나에게 다가온 아름다운 만화를 떠올리며 그 행복했던 시간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 책은 쪽프레스 출판사에서 나온 ‘한쪽책’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한쪽책은 11페이지 짧은 단편이 아코디언 북 형식으로 제본되어 자그마한 봉투에 담겨져 있는 특이한 형식의 책입니다. 가까운 길을 나설 때 가볍게 코트 주머니에 넣고서 버스를 기다리며 음식을 기다리며 후루룩 읽기 좋습니다. 이렇게 짧은 분량이지만 마음속에 생기는 파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만화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의 친구를 회상하는 내레이션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자기와 다른 점이 많은 친구를 선망하며 가깝게 지내다가 다름을 인정하고 멀어지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아비정전을 좋아하고 파르페를 시킬 줄 아는 어른스럽고 신비로운 친구, 여러 가지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공부도 잘하는 친구, 그리고 이런 친구를 동경하며 그 친구처럼 잘나지 않은 나를 미워했던 나. 이런 경험을 옅게나마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이 만화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잃었지만 잃어지지 않는 친구에게’라는 부제가 가슴 시리게 다가오는 만화입니다.
이 만화를 생각하면 어떤 말부터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번 읽고 나니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더 어려워졌습니다. 나의 언어로 이 만화의 아름다움을 다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한번 시도해본다면, 사랑스러움이 몽글몽글 피어올라 몸이 둥실 떠오를 것 같은 만화입니다. 이 만화를 읽은 사람과 만나 양손을 부여잡고 ‘이 만화 너무 좋지~’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싶네요. 이것이 제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꼭 이 만화를 읽고 저랑 같이 두 손 붙잡고 ‘너무 좋지~’ 합시다. 이 책 역시 ‘한쪽책’ 시리즈 중 한 권이니 빠르게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2019년이 가기 전에 ‘잠깐 친구’를 만나보세요.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성차별 역사를 보기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기원전 프랑스에서는 딸은 결혼 전에 집에만 있어야 했고 결혼은 최소 열다섯 살 이상 차이나는 남자와 했으며 남편은 원하는 여자와 자유롭게 성관계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아내는 당연히 안 되죠.) 19세기에는 남편이 아내의 모든 재산을 관리했고 급료도 남편에게 지급되었으며 아내는 남편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21세기 한국은 어떤가요? 22세기의 사람들이 봤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나요? 남편에게 맞아 죽는 여성에 대한 기사를 보면 미래의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올해 입이 닳도록 칭찬하고 추천했던 책입니다. 아름다운 그림, 자유로운 앵글, 따뜻한 색감, 소녀들의 우정과 사랑. 무엇 하나 좋지 않은 것이 없는 만화입니다. 만화는 6학년 여름부터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주인공 해원이가 겪는 여러 가지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카세트테이프, 비디오 대여점, 교환 일기 등 90년대 배경이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어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도 푹 빠져 읽게 만듭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올해 주목받은 영화 〈벌새〉가 생각났습니다. 〈벌새〉의 은희와 『열세 살의 여름』의 해원이를 함께 떠올려봅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왜 이렇게 우리 마음에 선명하게 남아 있을까요?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십대 시절의 기억으로 창작물을 만드는 것을 보며 그 시절을 잘 보내고 잘 기억하는 것은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열세 살의 사람도 열세 살을 지나온 사람도 모두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책입니다.
며칠 전에 출간된 따뜻한 책입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이 책을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이 만화는 그림이 압도적으로 멋집니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볼 의미가 충분합니다. 붓으로 휙휙 거침없이 그린 시원한 드로잉과 세련된 색감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한 장 한 장 떼서 벽에 붙여놓고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화는 드레스 입는 것을 좋아하는 왕자 세바스찬과 옷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재봉사 프랜시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꿈을 담고 있습니다. 왕자는 왜 드레스 입는 것을 좋아할까? 왕자의 성정체성은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보면 내 질문이 얼마나 우스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세바스찬과 프랜시스는 서로를 사랑하고 응원하면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바꾸려 하지도 않고 단정 지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패션쇼 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벅차오르는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이 책을 번역한 김지은 평론가의 추천사로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좀더 나를 아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나를 아는 것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줍니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오늘의 꿈은 내일의 여러분 자신입니다.”
『잃어버린 친구에게』(안유진 지음, 쪽프레스, 2019)
이 책은 쪽프레스 출판사에서 나온 ‘한쪽책’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한쪽책은 11페이지 짧은 단편이 아코디언 북 형식으로 제본되어 자그마한 봉투에 담겨져 있는 특이한 형식의 책입니다. 가까운 길을 나설 때 가볍게 코트 주머니에 넣고서 버스를 기다리며 음식을 기다리며 후루룩 읽기 좋습니다. 이렇게 짧은 분량이지만 마음속에 생기는 파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만화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의 친구를 회상하는 내레이션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자기와 다른 점이 많은 친구를 선망하며 가깝게 지내다가 다름을 인정하고 멀어지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아비정전을 좋아하고 파르페를 시킬 줄 아는 어른스럽고 신비로운 친구, 여러 가지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공부도 잘하는 친구, 그리고 이런 친구를 동경하며 그 친구처럼 잘나지 않은 나를 미워했던 나. 이런 경험을 옅게나마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이 만화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잃었지만 잃어지지 않는 친구에게’라는 부제가 가슴 시리게 다가오는 만화입니다.
『잠깐 친구』(임진아 지음, 쪽프레스, 2019)
이 만화를 생각하면 어떤 말부터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번 읽고 나니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더 어려워졌습니다. 나의 언어로 이 만화의 아름다움을 다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한번 시도해본다면, 사랑스러움이 몽글몽글 피어올라 몸이 둥실 떠오를 것 같은 만화입니다. 이 만화를 읽은 사람과 만나 양손을 부여잡고 ‘이 만화 너무 좋지~’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싶네요. 이것이 제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꼭 이 만화를 읽고 저랑 같이 두 손 붙잡고 ‘너무 좋지~’ 합시다. 이 책 역시 ‘한쪽책’ 시리즈 중 한 권이니 빠르게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2019년이 가기 전에 ‘잠깐 친구’를 만나보세요.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도로테 베르네르 글, 솔다드 브라비 그림, 맹슬기 옮김, 한빛비즈, 2019)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성차별 역사를 보기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기원전 프랑스에서는 딸은 결혼 전에 집에만 있어야 했고 결혼은 최소 열다섯 살 이상 차이나는 남자와 했으며 남편은 원하는 여자와 자유롭게 성관계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아내는 당연히 안 되죠.) 19세기에는 남편이 아내의 모든 재산을 관리했고 급료도 남편에게 지급되었으며 아내는 남편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21세기 한국은 어떤가요? 22세기의 사람들이 봤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나요? 남편에게 맞아 죽는 여성에 대한 기사를 보면 미래의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열세 살의 여름』(이윤희 지음, 창비, 2019)
올해 입이 닳도록 칭찬하고 추천했던 책입니다. 아름다운 그림, 자유로운 앵글, 따뜻한 색감, 소녀들의 우정과 사랑. 무엇 하나 좋지 않은 것이 없는 만화입니다. 만화는 6학년 여름부터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주인공 해원이가 겪는 여러 가지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카세트테이프, 비디오 대여점, 교환 일기 등 90년대 배경이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어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도 푹 빠져 읽게 만듭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올해 주목받은 영화 〈벌새〉가 생각났습니다. 〈벌새〉의 은희와 『열세 살의 여름』의 해원이를 함께 떠올려봅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왜 이렇게 우리 마음에 선명하게 남아 있을까요?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십대 시절의 기억으로 창작물을 만드는 것을 보며 그 시절을 잘 보내고 잘 기억하는 것은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열세 살의 사람도 열세 살을 지나온 사람도 모두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책입니다.
『왕자와 드레스 메이커』(젠 왕 지음, 김지은 옮김, 비룡소, 2019)
며칠 전에 출간된 따뜻한 책입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이 책을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이 만화는 그림이 압도적으로 멋집니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볼 의미가 충분합니다. 붓으로 휙휙 거침없이 그린 시원한 드로잉과 세련된 색감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한 장 한 장 떼서 벽에 붙여놓고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화는 드레스 입는 것을 좋아하는 왕자 세바스찬과 옷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재봉사 프랜시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꿈을 담고 있습니다. 왕자는 왜 드레스 입는 것을 좋아할까? 왕자의 성정체성은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보면 내 질문이 얼마나 우스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세바스찬과 프랜시스는 서로를 사랑하고 응원하면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바꾸려 하지도 않고 단정 지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패션쇼 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벅차오르는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이 책을 번역한 김지은 평론가의 추천사로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좀더 나를 아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나를 아는 것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줍니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오늘의 꿈은 내일의 여러분 자신입니다.”
수신지
각각 이야기에 맞는 효과적인 표현 방법과 발행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보완해주는 글, 글을 보완해주는 그림을 자유롭게 다루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2019/12/31
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