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
28회 창백한 푸른 점
때때로 영화를 볼 때나 책을 읽을 때 봉인돼 있던 기억이 영사기에 감긴 것처럼 눈앞에 차르륵 펼쳐지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창작자로서 영화나 책에 ‘나’를 대입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하며 거리감을 유지하려 하지만, 유유히 거리감을 훅 무너뜨리는 순간을 마주하면 어떤 수식어로도 방어할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이러한 경험을 공상과학 장르의 문학이나 영화들에서 체험한 적이 드문 것도, 이는 아무래도 공상과학은 과거가 아닌 미래의 상상력에서 기인한 세계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인물들이 손에 잡힐 것처럼 그려지는 세계의 작품들이 있다. 그럴 때의 공상과학 속 배경은 더이상 공상이 아닌 지근거리의 세계로 변모한다.
당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혹시 귀중한 뭔가를 잃어버렸다 해도, 애써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해도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어른이 되어 자유롭게 전국을 여행할 수 있을 때 노퍼크에 가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기고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작가다. 그는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이고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잃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를 보내지 마』는 선뜻 손에 잡혔던 책은 아니었다. 인간의 장기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되어온 클론들의 사랑과 성, 슬픈 운명이라는 소개 문구가 영화나 여타의 작품들에서 보아왔던 배경과 흡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클론의 장기이식이라는 윤리적 딜레마를 풀어놓는 대신, 작중 등장하는 노퍼크라는 공간과 인물들이 근원자에 대해 갖는 궁금증 등을 토대로 복제와 기원,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어쩌면 혹자는 실망할 수 있는 순문학으로 분류되어야 할 이 이야기는 담담한 어조로 인물들의 감정을 기어코 내게 설득시키고 말았다. 구조적인 설명은 뒤로 하고, 노퍼크와 근원자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이야기의 단락을 묘사하고 싶다.
‘캐시’는 이따금씩 사로잡히는 성욕을 ‘루스’에게만 털어놓지만, ‘루스’는 ‘캐시’의 욕구에 공감하면서도, 그녀에게 이상한 구석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 말에 ‘캐시’는 성욕이라는 욕구가 자신에게만 있는 이상한 것이라 생각하며, 포르노 잡지에서 얼굴만 확인하는 버릇을 갖게 된다. 포르노 잡지 안에서 자신과 닮은 얼굴을 발견한다면, 이 이상 행동이 이해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루스’는 어떠한가. 잃어버린 모든 물건이 흘러들어와 모인다는 노퍼크에서, 그는 잃어버렸던 주디 워터브리지가 부른 ‘Never let me go’의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한다. ‘토미’는 같은 테이프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녀는 기쁜 마음을 억누르며 호들갑도 떨지 않는다. 그리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토미, 이런 것들은 분명히 수천 개가 돌아다닐 거야.” 하고 말한다.
내가 그 테이프 그리고 그 노래를 되찾은 것에 진정으로 기뻐한 것은 코티지로 돌아와 내 방에 혼자 있게 되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때도 주된 감정은 일종의 향수였다. 요즘 그 테이프를 꺼내 볼 때면 우리가 헤일셤에서 보낸 나날과 함께 그날 오후 노퍼크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배에 있으면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바람도 소리도 없어. 별빛은 기울어져 눈앞에 전부 쏠려 있어. 온 우주의 별이 다 한데 모여 섬광처럼 빛나. 여기 있다보면 빛의 속도로 나를 스쳐가는 것은 온 우주고, 지구며, 내 집과 친구들이고, 나는 여기에 서 있다는 기분이 들어. 그래서 내 시간도 서는 거라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김보영 작가의 팬이었던 남자가 자기 애인에게 청혼하기 위해 김보영 작가에게 부탁하여 쓰인 작품이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출판사의 책 소개에서 발췌함).
안녕하세요, 사실 제가 곧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프러포즈를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청혼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낭독하려고 하는데 기발표된 작품들 중에서는 도저히 못 찾겠어요, 마침 여자친구가 작가님을 무지막지하게 좋아한다고 해서 부탁을 드리는 건데요, 소설 하나만 써주세요.
서간문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두 책은 결혼식을 앞둔 남자가 여자를 기다리며 쓰는 편지(『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와 여자가 남자에게 보내는 답장(『당신에게 가고 있어』)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자는 가족과 함께 알파 센타우리로 떠난다. 남자가 있는 지구까지 돌아오려면 9년이나 걸린다. 상대성 원리에 따라 여자의 시간은 4개월이 흐르게 되고, 남자는 지구 주위를 광속에 가깝게 도는 기다림의 배에 타서 시간을 반으로 줄여 4년 6개월 동안 여자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작은 사고들이 이어지고 기다림의 시간은 4년에서 11년으로 늘어난다. 그 사이에 지구에는 큰 변화가 닥쳐온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남자는 오직 여자만을 생각한다. 여자를 생각하기에 긴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여자 역시 오직 남자만을 생각한다.
이야기의 줄기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여 여자와 남자가 다시 만나기까지의 과정인데, 이는 서로를 놓치지 않으려는 두 사람의 몸부림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아마도 읽고 나면, 이 모든 우연한 마주침과 여정이 우주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나는 루퍼스에게 최악의 수호자였다. 흑인을 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사회에서 흑인으로서 그를 지켜야 했고, 여자를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여기는 사회에서 여자로서 그를 지켜야 했다. 내 몸 하나 지키기도 벅찬 곳에서 말이다.
『킨』은 타임슬립을 하며 100여 년의 시공간을 오가는 흑인 여성 ‘다나’를 통해, 인종, 노예, 젠더,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권력과 인간의 근원적 감정의 문제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타임슬립을 통해 과거로 가서 자신의 조상을 만난다는 설정과 그가 타임슬립을 하게 되는 이유가 ‘죽음의 위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따라가다보면 과거와 현재의 흑인 여성, 그리고 첨예한 계층 간의 권력 구조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 소설 역시 타임슬립이라는 형식으로 결국엔 인간의 역사와 우리가 어떤 역사를 딛고 살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고민들을 하며 나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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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 ‘창백한 푸른 점’은 칼 세이건의 책 『창백한 푸른 점』에서 가져온 것이다. 1990년 2월 14일, 태양계의 끝을 향해 가고 있던 보이저 1호는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지구의 사진을 촬영한다. 희미한 점처럼 찍힌, 아주 작은 빛. 칼 세이건은 그 사진을 창백한 푸른 점으로 이름 붙였다. 그리고,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라는 말을 남긴다. 이 일화와 함께 보이저 1호 골든레코드에 실려 우주에 흘러 나왔을 척베리의 음악 ‘Johnny B. Goode’을 떠올리면 나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고향인처럼 느껴진다. 모두 이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이상 어떤 것도 낯설지 않다. 외롭지 않다.
이러한 경험을 공상과학 장르의 문학이나 영화들에서 체험한 적이 드문 것도, 이는 아무래도 공상과학은 과거가 아닌 미래의 상상력에서 기인한 세계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인물들이 손에 잡힐 것처럼 그려지는 세계의 작품들이 있다. 그럴 때의 공상과학 속 배경은 더이상 공상이 아닌 지근거리의 세계로 변모한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김남주 옮김, 민음사, 2021)
당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혹시 귀중한 뭔가를 잃어버렸다 해도, 애써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해도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어른이 되어 자유롭게 전국을 여행할 수 있을 때 노퍼크에 가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기고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작가다. 그는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이고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잃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를 보내지 마』는 선뜻 손에 잡혔던 책은 아니었다. 인간의 장기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되어온 클론들의 사랑과 성, 슬픈 운명이라는 소개 문구가 영화나 여타의 작품들에서 보아왔던 배경과 흡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클론의 장기이식이라는 윤리적 딜레마를 풀어놓는 대신, 작중 등장하는 노퍼크라는 공간과 인물들이 근원자에 대해 갖는 궁금증 등을 토대로 복제와 기원,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어쩌면 혹자는 실망할 수 있는 순문학으로 분류되어야 할 이 이야기는 담담한 어조로 인물들의 감정을 기어코 내게 설득시키고 말았다. 구조적인 설명은 뒤로 하고, 노퍼크와 근원자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이야기의 단락을 묘사하고 싶다.
‘캐시’는 이따금씩 사로잡히는 성욕을 ‘루스’에게만 털어놓지만, ‘루스’는 ‘캐시’의 욕구에 공감하면서도, 그녀에게 이상한 구석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 말에 ‘캐시’는 성욕이라는 욕구가 자신에게만 있는 이상한 것이라 생각하며, 포르노 잡지에서 얼굴만 확인하는 버릇을 갖게 된다. 포르노 잡지 안에서 자신과 닮은 얼굴을 발견한다면, 이 이상 행동이 이해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루스’는 어떠한가. 잃어버린 모든 물건이 흘러들어와 모인다는 노퍼크에서, 그는 잃어버렸던 주디 워터브리지가 부른 ‘Never let me go’의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한다. ‘토미’는 같은 테이프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녀는 기쁜 마음을 억누르며 호들갑도 떨지 않는다. 그리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토미, 이런 것들은 분명히 수천 개가 돌아다닐 거야.” 하고 말한다.
내가 그 테이프 그리고 그 노래를 되찾은 것에 진정으로 기뻐한 것은 코티지로 돌아와 내 방에 혼자 있게 되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때도 주된 감정은 일종의 향수였다. 요즘 그 테이프를 꺼내 볼 때면 우리가 헤일셤에서 보낸 나날과 함께 그날 오후 노퍼크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김보영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당신에게 가고 있어』(새파란상상, 2020)
배에 있으면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바람도 소리도 없어. 별빛은 기울어져 눈앞에 전부 쏠려 있어. 온 우주의 별이 다 한데 모여 섬광처럼 빛나. 여기 있다보면 빛의 속도로 나를 스쳐가는 것은 온 우주고, 지구며, 내 집과 친구들이고, 나는 여기에 서 있다는 기분이 들어. 그래서 내 시간도 서는 거라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김보영 작가의 팬이었던 남자가 자기 애인에게 청혼하기 위해 김보영 작가에게 부탁하여 쓰인 작품이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출판사의 책 소개에서 발췌함).
안녕하세요, 사실 제가 곧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프러포즈를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청혼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낭독하려고 하는데 기발표된 작품들 중에서는 도저히 못 찾겠어요, 마침 여자친구가 작가님을 무지막지하게 좋아한다고 해서 부탁을 드리는 건데요, 소설 하나만 써주세요.
서간문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두 책은 결혼식을 앞둔 남자가 여자를 기다리며 쓰는 편지(『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와 여자가 남자에게 보내는 답장(『당신에게 가고 있어』)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자는 가족과 함께 알파 센타우리로 떠난다. 남자가 있는 지구까지 돌아오려면 9년이나 걸린다. 상대성 원리에 따라 여자의 시간은 4개월이 흐르게 되고, 남자는 지구 주위를 광속에 가깝게 도는 기다림의 배에 타서 시간을 반으로 줄여 4년 6개월 동안 여자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작은 사고들이 이어지고 기다림의 시간은 4년에서 11년으로 늘어난다. 그 사이에 지구에는 큰 변화가 닥쳐온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남자는 오직 여자만을 생각한다. 여자를 생각하기에 긴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여자 역시 오직 남자만을 생각한다.
이야기의 줄기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여 여자와 남자가 다시 만나기까지의 과정인데, 이는 서로를 놓치지 않으려는 두 사람의 몸부림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아마도 읽고 나면, 이 모든 우연한 마주침과 여정이 우주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이수현 옮김, 비채, 특별판 2020)
나는 루퍼스에게 최악의 수호자였다. 흑인을 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사회에서 흑인으로서 그를 지켜야 했고, 여자를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여기는 사회에서 여자로서 그를 지켜야 했다. 내 몸 하나 지키기도 벅찬 곳에서 말이다.
『킨』은 타임슬립을 하며 100여 년의 시공간을 오가는 흑인 여성 ‘다나’를 통해, 인종, 노예, 젠더,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권력과 인간의 근원적 감정의 문제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타임슬립을 통해 과거로 가서 자신의 조상을 만난다는 설정과 그가 타임슬립을 하게 되는 이유가 ‘죽음의 위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따라가다보면 과거와 현재의 흑인 여성, 그리고 첨예한 계층 간의 권력 구조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 소설 역시 타임슬립이라는 형식으로 결국엔 인간의 역사와 우리가 어떤 역사를 딛고 살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고민들을 하며 나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 하는 작품이다.
이 글의 제목 ‘창백한 푸른 점’은 칼 세이건의 책 『창백한 푸른 점』에서 가져온 것이다. 1990년 2월 14일, 태양계의 끝을 향해 가고 있던 보이저 1호는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지구의 사진을 촬영한다. 희미한 점처럼 찍힌, 아주 작은 빛. 칼 세이건은 그 사진을 창백한 푸른 점으로 이름 붙였다. 그리고,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라는 말을 남긴다. 이 일화와 함께 보이저 1호 골든레코드에 실려 우주에 흘러 나왔을 척베리의 음악 ‘Johnny B. Goode’을 떠올리면 나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고향인처럼 느껴진다. 모두 이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이상 어떤 것도 낯설지 않다. 외롭지 않다.
윤단비
1990년 태어났다.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19살에 서울로 오기 전까지는 줄곧 광주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그곳에서 오즈 야스지로를 비롯한 여러 영화의 친구들을 만났다. 영화가 끝나도 인물들이 스크린 밖 어딘가에 살아갈 것만 같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2022/03/29
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