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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이 바라보는 공연계와 배리어프리

접근성, 공연의 창작/제작 과정 다시 쓰기

박지영

제214호

2022.02.24

웹진 연극in에서는 현재 공연예술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배리어프리의 개념을 공연의 창작/제작 과정 전반에서의 접근성 문제로 확장해보고자 합니다. 전체 기획은 장애예술인들의 에세이를 연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며, 필자들께는 공연의 창작/제작과 관련한 몇 가지 키워드를 제안드렸습니다. 이를 통해 연극in은 기존의 공연예술 창작/제작 관행이 비장애를 규범으로 삼고 있지는 않았는지, 모두에게 안전한 작업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나아가 접근성이 어떠한 창조적 상상력과 만나고 있는지를 함께 이야기해나가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1. 공연 창작/제작 과정에서의 배리어프리

요즘 들어 한국에서 배리어프리 공연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수어와 농인을 소재로 하는 작품도 종종 보인다. 하지만 이 중 제작 과정에 수어를 제1의 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참여한 작품은 얼마나 될까. 수어통역사와 함께 작업하거나, 농인 역할을 청인이 맡아서 하는 작품이 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농인이 배제된 채 청인들끼리 모여 ‘내가 농인이라면 어떨까’를 상상하고, 수어와 농인에 관련된 연구 및 창작을 하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청인 배우의 수어 실력이나 오류는 누가 봐줄 수 있을까.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을 진정성 있는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들은 수어를 제1의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며 농사회, 농문화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또한 수어통역사는 연습실에서 통역사로서의 의견만 내야 하고 농인과 수어에 관련한 의견을 낼 권리가 없다. 아무리 수어통역 경력이 많고 농인들과 많은 만남을 경험한 통역사라 할지라도 그는 이미 한국어와 음성언어가 제1의 언어이고 그 언어에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농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수어와 농인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나 배리어프리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3명 이상의 농인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어와 한국수어의 언어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어를 우선시하는 창작 과정은 농인 창작자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으며, 농인 관객들 역시도 그 공연을 즐길 수 없다. 농인들의 세계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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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한국수어문법』(2021)은 음성언어와 다른 수어의 시각 언어적 특성을 동시성, 공간성, 비수지기호의 사용, 도상성 등으로 설명한다. (논문 바로 보기)

그렇다면 한글자막과 한국수어통역사만 배치하면 끝인 걸까. 전혀 아니다. 홍보까지 힘써야 한다. 이전까지는 관람을 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공연 자체가 많이 없어 예술향유권을 늘 박탈당하면서 살아왔다. 관람 가능한 공연이 있다고 해도 정보 공유가 부족해서 뒤늦게 아는 경우가 많았다. 배리어프리가 제공된다는 공연정보를 널리 알리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농인 커뮤니티가 모여 있는 한국농아인협회, 한국농아인청년회, 한국농아인대학생연합회, 농학교 등을 통한 적극적 홍보가 필요하다. 배리어프리를 준비해도 대상자가 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많은 농인 관객들이 함께 경험을 나누고 피드백을 공유하며 점차 세련되고 완성된 형태의 배리어프리 공연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2.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의 사례

국립정동극장 무대에 오른, 농인을 소재로 한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이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제기1)한 이후로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 동참해서 의견을 내주셨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공식 사과문은 없었고 변화도 없었다. 원작 니나 레인 작가님께 메일을 보내면 어떻냐는 제안을 받고 메일을 드렸다. 한국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과 작품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알렸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작가님께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그다음의 해결 방안이 없는 것 같아 실망하고 있던 차에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공연에 한글자막을 도입하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국립정동극장이나 노네임씨어터컴퍼니에서 따로 연락을 받은 적이 없어, SNS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배리어프리 좌석은 객석 가장 뒷자리에만 지정되어 있었고 제공되는 태블릿의 개수도 한정되어 있었다. 와이파이 통신 때문에 사용 가능한 기기의 개수가 제한되어 있고 테스트 중에 있다며 양해를 구했지만, 이는 아직까지 한글 자막이 청인 관객들의 공연 관람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 아닐까. 농인 관객들의 좌석 선택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공연장을 배리어프리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똑같은 티켓값을 지불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농인들에게 테스트가 웬 말인가. 논란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배리어프리를 신중하게 시행한 것인가. 뒤늦게 도입된 배리어프리 자막, 한정된 좌석과 태블릿 개수, 테스트 시행 중. 진정 농인들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고민하고 노력한 것일까. 공지사항에는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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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농인의 공연 관람 과정

공연 예매 및 문의를 위한 의사소통

개개인마다 공연 예매 방법 불편함의 정도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떤 농인들은 수어영상을 보는 것을 편하게 느끼고, 또 다른 농인들은 텍스트를 읽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예매 페이지는 이미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에 더하여 한국수어 안내영상이 따로 마련되어야 한다. 예매와 관련한 문의사항이 있을 땐 통화를 해야 한다는 불편한 점이 있다. ‘손말이음센터’로 연결해서 통화할 수 있지만, 농인들의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뿐만 아니라 상담사가 농인에게 먼저 전화를 거는 경우, 농인이 다시 ‘손말이음센터’로 전화를 연결하는 것 또한 불편한 과정이다. 농인과 바로 소통할 수 있게 한국수어와 문자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따로 마련되어야 한다.

공연장 입구

예매까지의 과정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졌다면, 이제 공연 관람의 과정은 대면으로 진행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소통이 더욱 중요해졌다. 공연장 입구에서 백신 접종 여부 확인 및 QR코드 체크를 해야 한다. 안내원분께서 음성으로 말을 걸어주신다. 농인들은 제스처로 귀. 안 들려요/ 귀. X 와 같은 답변을 할 것이다. 자신이 농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안내원은 당황하지만, 그럼에도 음성언어로 계속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다. 농인들은 핸드폰으로 텍스트를 적어서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또 음성언어로 얘기한다. 티켓 수령도 마찬가지이다. 극장의 하우스 어셔들을 비롯한 직원들을 위한 사전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 무대 위에 한국수어통역사를 배치하는 것만이 배리어프리가 아니다. 극장을 운영하는 이들이 농인과 소통하는 방법 정도는 알 수 있게끔 교육이 필요하다. 한국수어, 필담, 제스처 등 다양한 소통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노력해야 한다. 이런 교육을 통해 청인들은 농인들을 대하는 방법을 인지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극장에서의 소통 이상의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공연 감각

많은 창작자들이 농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려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전에는 농인들이 소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진동일 거라는 청인들의 착오가 있었다. 실제로 농인들은 일상에서 촉감보다 시각적으로 많이 보고 느낀다. 수어라는 언어도 역시 시각언어이다. 농인들이 함께 공연을 보고 즐기기 위해서는 소리를 시각화하려는 많은 시도와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이런 형태의 공연이 많이 없었기에 농인으로서 즐길 수 있는 정확한 감각을 발견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계속 많은 얘기를 나누고 창작을 시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루하고 딱딱한 한글자막이 아니라, 청인배우의 대사 억양과 유사하게 재미있는 효과를 넣은 자막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구자혜 연출 <로드킬 인 더 씨어터>(2021)가 좋은 예시라 할 수 있다.) 정보를 주되 재미있는 감각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청각에 주어지는 정보에 집중하기보다, 공연의 내용에서 주어지는 느낌과 분위기를 조명이나 영상을 활용해서 전달하면 농인들도 즐겁게 공연에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박지영,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농인을 모독하였습니다.” 2022.1.22. https://blog.naver.com/jiyoung1638/222628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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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박지영
핸드스피크 소속 아티스트
<메모리즈>, <친절한 이웃들>, <난파클럽>, <미세먼지>, <사라지는 사람들> 배우 출연 외 수어 발라드, 댄서 등 다양한 예술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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