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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배우가 아닌 배우로서 우리에게도 기회를

접근성, 공연의 창작/제작 과정 다시 쓰기

신강수

제215호

2022.03.24

웹진 연극in에서는 현재 공연예술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배리어프리의 개념을 공연의 창작/제작 과정 전반에서의 접근성 문제로 확장해보고자 합니다. 전체 기획은 장애예술인들의 에세이를 연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며, 필자들께는 공연의 창작/제작과 관련한 몇 가지 키워드를 제안드렸습니다. 이를 통해 연극in은 기존의 공연예술 창작/제작 관행이 비장애를 규범으로 삼고 있지는 않았는지, 모두에게 안전한 작업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나아가 접근성이 어떠한 창조적 상상력과 만나고 있는지를 함께 이야기해나가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장애예술인들의 공연예술 창작/제작과 관련하여 캐스팅과 오디션이라는 주제로 웹진 연극in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그동안 무대 위에 오르기 위해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의 첫 오디션은 예술대학교 입학 실기 시험이었다. 그 이후로 개그맨이 되기 위해서 방송 삼사 오디션을 5년간 봤지만 계속 낙방했다. 그 당시에 <폭소클럽>이라는 스탠드 업 코미디 프로에서 코미디언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시험을 봤는데 운이 좋게 3차까지 갔지만 결국 떨어졌다.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에 혼자 올라와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되어 공연을 했는데 보름 만에 대표는 도망가고 출연료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인사동 쌈지길이 처음 생겼을 때, 주인공 시켜준다는 말에 혹해서 그곳에서도 공연을 했지만 또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배우 말고 스태프를 경험하고자 겨울 방학 땐 연극 극단에 들어가 함께 공연을 만들었지만 일하고 받은 금액은 오천 원짜리 도서상품권 다섯 장이 전부였다.
그때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버틴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공연이 하고 싶어 여기저기 배우 오디션 지원서를 넣었지만 서류에서 탈락하기 일쑤였다. 배우가 안 된다면 스태프로 뽑아줄까 싶어서 이력서를 넣어 면접을 보러 간 적도 있다. 지원 동기를 물어봐서 스태프를 하면서 경험을 쌓고 싶고 특히 조명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고 하자 ‘조명을 배우고 싶으면 을지로 조명거리 가면 배울 수 있다’라고 했던 한 연출가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지금도 잘 나가던데… 라며 뒤끝을 남겨본다. 그러다가 이벤트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고 운 좋게 합격했다. 그곳에서 마임이랑 마술, 저글링, 디아블로 등을 배우면서 단장이 마술 공연을 하기 위해 무대 세팅을 하는 동안 바람잡이를 하게 됐다.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돈을 주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려던 차에 장애인 극단을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 시절에 내가 할 수 있었던 연기는 대부분 드워프, 먼치킨 등 난쟁이나 요정 역할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당시에도 그렇지만, 오디션 공고문을 보면 장애인·비장애인을 뽑기보다는 역할을 뽑는다. 처음에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그래서 드워프나 먼치킨 역을 뽑는 오디션을 찾아서 지원을 했다. 그런데 웃긴 건 장애인 역할을 뽑는 오디션에 지원을 해도 탈락하는 것이었다. 장애가 달라서 탈락이 됐나? 싶기도 했지만, 막상 공연을 보면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역할을 했다. 지금도 공연이나 여타 대중매체의 작품들을 보면 장애인 역을 비장애인 배우가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를 볼 때마다 참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비장애인 배우가 맡은 역할이 장애인이었다가 다시 비장애인이 되는 작품들이 가끔 있다. 예를 들면 뮤지컬 <난쟁이들>에서는 비장애인 배우가 무릎을 꿇고 난쟁이 역할을 하다가 마법이 풀려 키가 큰 왕자로 변신한다. 영화 <오아시스>도 그렇고, 연극 <생활풍경>도 그렇다. 작품의 극적인 요소를 위해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본다. 물론 연출이나 감독, 제작자 마인드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장애인 배우 입장에서는 어떤가. 비장애인이 장애인 연기를 하는 경우에는 나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그전에는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연기를 하는 공연을 보면 ‘그래, 내가 저들보다 실력이 없어서 경쟁에서 졌다’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래서 더 노력을 해서 연기로 보여주자는 생각이 컸다. 그러나 장애인이었다가 비장애인이 되는 역할은 우리 장애인 배우들이 결코 연기할 수 없다.

사실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장애만 있을 뿐이지 똑같은 사람으로서 연기하고 싶다’라는 생각에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나의 장애를 비장애로 보여주는 건 할 수가 없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장애인 배우로서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최근에 디즈니에서 <백설공주>를 실사 영화화한다는 소식이 이슈가 되었다. 이에 <왕좌의 게임>의 티리온으로 유명한 저신장 배우 피터 딘클리지는,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는 저신장 장애인의 묘사를 문제 삼으며 ‘여전히 일곱 난쟁이가 동굴에 함께 사는 구시대적 이야기를 만든다’라고 비판했다. 그러한 비판에 디즈니는 새로운 구상을 하고 있다며 일곱 난쟁이가 등장하지 않고 신비한 크리처들이 묘사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다른 저신장 배우들은 ‘저신장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극소수인데 딘클리지의 발언은 우리들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말’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그 기사를 보면서 그들에게 “우리나라에서는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역할을 하고 있어요. 심지어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비장애인이 되기도 합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는 문화가 너무 부러웠다.

장애인 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정적이다. 하지만 배우로서 장애인 비장애인을 떠나서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면 좋겠다. 작년에 나는 많은 공연을 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나의 장애를 부각시키거나 내 서사 중심의 역할을 주로 했었던 이전과 달리, 장애가 전혀 없는 평범한 일상을 연기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변엔 많은 장애인들이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은 직업이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로 살고 있다. 이처럼 장애인 배우들도 장애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로, 직장이나 가족 등의 한 구성원으로,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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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옥상 위 카우보이>(2021) 홍보 사진. 아버지 역할을 연기하는 신강수 배우

최근에 내가 봤던 오디션은 국립극단 시즌 단원 오디션이었다. 결국 3차에서 떨어졌지만. 올해 국립극단에서는 장애인 제한경쟁 연수단원을 뽑는다고 한다. 장애인고용법에 따르면 사업장 50인 이상인 곳에서는 의무적으로 장애 인력을 뽑아야 하기에 채용공고를 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시즌 단원도 그채용 범위 안에 포함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국립극단도 그렇고 서울시립극단도 그렇고 장애인 배우를 의무적으로 뽑는 시스템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최근에 공연예술분야 인력지원사업이 장애 인력을 채용하면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작년에 몇몇 장애인 배우들이 월급을 받으며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제도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장애인 관객을 위한 배리어프리만 있는 공연이 아닌, 장애인 배우가 무대 위에 있고 그들의 장애인 친구가 공연을 보러오는 배리어프리 공연이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는 배리어프리라는 말이 사라지고 장애인, 비장애인이 아닌 배우로서 그리고 관객으로서 함께 만나길 바란다.

[사진제공: 보편적 극단, 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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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강수

신강수
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연기학과를 졸업하고 희곡집 『급이 다르다』와 에세이집 『132cm 사용설명서』 출간하고 혼극 <작은 어른의 고백>을 공연했다. 1인 창작자로서 자신의 장애를 가지고 다양한 장르에서 어떻게 하면 장애를 직업으로 잘 팔아서 즐겁고 재미있게 작품을 만들지 고민하며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132c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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