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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의 한계와 그에 대한 고찰
- 청각 장애인이 겪은 문제점을 중심으로

접근성, 공연의 창작/제작 과정 다시 쓰기

안정우

제215호

2022.03.24

웹진 연극in에서는 현재 공연예술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배리어프리의 개념을 공연의 창작/제작 과정 전반에서의 접근성 문제로 확장해보고자 합니다. 전체 기획은 장애예술인들의 에세이를 연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며, 필자들께는 공연의 창작/제작과 관련한 몇 가지 키워드를 제안드렸습니다. 이를 통해 연극in은 기존의 공연예술 창작/제작 관행이 비장애를 규범으로 삼고 있지는 않았는지, 모두에게 안전한 작업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나아가 접근성이 어떠한 창조적 상상력과 만나고 있는지를 함께 이야기해나가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필자는 선천적으로 양이 110-120db의 고도난청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비장애인은 성장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언어를 체득하지만, 필자는 청각장애인 특수 교육 기관을 통해서 언어를 배웠다. 일상에서 청각장애인과의 접점이 많지 않은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 정도의 난청은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난청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첨언하자면,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은 채로는 폭발음과 같은 큰 소리 이외에 거의 들리는 소리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청각장애인은 의사 전달의 형태와 언어 사용 여부에 따라, 입으로 말하는 소리를 읽고 반응하는 구화인과, 수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농인으로 구분된다. 구화인의 경우 일반 사회와 소통하며 사는 것이 가능하지만, 농인의 경우에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청각장애인 공동체 내에서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구화만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농인과의 대화가 불가능하며, 필자 역시 수어로 간단한 대화는 가능하지만 완전한 소통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농인과의 대화를 위해서는 수어를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며, 그들과의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수어사용의 실제를 익혀야 한다. 필요하다면 수어교육전문원에서 기본 교육을 받는 것도 수어 구사의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여전히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단 청각장애인뿐만 아닌 다른 장애인의 불편 또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장애인과 나눈 대화를 토대로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에 대해 다뤄보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구화인으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문제에 대해 언급하겠다. 구화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직접 얼굴을 맞대고 상대방의 입 모양을 읽어야 대화가 가능하다. 간혹 조명이 어둡거나 하는 이유로 입술을 보기 힘든 상황에서는 구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각적인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필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소통의 어려움에 관한 문제는 연극 작업에 참여하면서부터 부각되기 시작했다. 기존에 했던 작품들은 필자에게 익숙한 무용 작업이었지만, 연극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적잖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무용 작업을 할 때는 음악에서 세세한 파악이 불가능한 부분을 연습과 준비 과정에서 해결했다. 오랜 경험이 뒷받침되었고 무용수 몸짓의 신호, 동료 무용수와의 대화 그리고 안무 과정에서 리듬을 파악하고 동선을 이해하는 것으로 나만의 느낌을 정립하고 그것을 무대에서 표현했다. 청각에서 오는 부족한 부분은 시각과 서로의 대화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연극은 시작부터 난해한 부분이 많았다. 작품을 이해하고 각 배역이 대본을 읽으면서 배역의 느낌을 확인하는 대본 리딩과 이후에 그것을 분석하는 토론 과정이 문제로 다가왔다. 일대일로 대화하는 것은 구어를 통해 소화할 수 있지만, 중증 청각장애인이 다자간의 대화에서 빠르게 오가는 대화들을 하나하나 구어로 정확하게 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원활한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수어통역사와 같은 전문가나 주변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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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 <소극장판-타지> 연습 장면. 필자는 태블릿 PC 화면을 이중분할해 속기와 대본을 함께 보며 연습에 참여한다. 사진 속 앞쪽에 속기사가 있으며, 필자는 뒤편 오른쪽에서 태블릿 PC를 들고 연기하고 있다.

직접 경험한 문제점들

공연에는 연출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다양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 의도 중 핵심적인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함께 공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배리어프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취지의 공연에서도 창작에 참여하는 청각장애인은,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암초들에 부딪히게 된다.

첫째, 비용의 증가로 인한 부담이다. 청각 장애인 중 구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토론과 같은 다자간의 대화이다. 비장애인에게 토론은 일상적인 작업의 한 부분이지만 필자에게 그것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행위이며, 때로는 개인의 말투나 속도 차이로 인해 대화를 놓치기에 십상이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2~3개월의 기간 동안 속기사와 함께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공연에는 정해진 비용이 있으며 속기사 고용으로 인한 비용 증가는 예산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예산 부족으로 인하여 속기사 고용이 끝까지 지원되지 않는다면, 오로지 동료의 수고와 헌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둘째, 통역 시차로 인한 능동적 참여의 한계가 발생한다. 전문적 속기사를 대동해도 모든 대화 내용을 완벽하게 실시간으로 전달받을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통역의 시차가 생겨 회의가 지연되기도 한다. 또한, 속기사의 통역 화면을 바라보는 동안, 상대방의 어투나 비언어적 요소들이 제거되어 명확한 의미를 전달받는 것이 어렵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특히 연출가가 요구하는 시각적 이미지를 놓치는 것은 소통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상대방의 이해에 한계가 있다. 모든 참여자들이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려 노력하지만, 순간순간 배려의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산이나 환경의 문제로 인해, 개막일이 다가올수록 배리어프리의 의미가 희석된 채 작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더러 생기곤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공연 준비를 하는 가운데 마스크를 쓰고 토론에 참여한다. 감염방지를 위해서 마스크를 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투명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대화하는 것은 청각장애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리어프리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먼저 이루어진 서구권과는 달리, 현재 한국에서는 그 고민이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분명히 부족한 부분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필자가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나 문제를 수정하는 작업이 계속해서 이루어진다면, 모두가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배리어프리가 실현될 날이 근시일 내에 도래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모두가 예술의 창작 및 관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바탕이 형성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배리어프리 공연에 대한 환경적, 금전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의식의 성장이 이루어져도 정작 공연을 연출할 환경이 미비하다거나, 금전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제작 자체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도전하는 배우들도 없을 것이며, 공연 장소 섭외 또한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의식의 개선과 지원의 확대를 통해 진정한 배리어프리가 발전하고 정착되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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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우

안정우
현대무용을 전공하였으며 장애예술, 배리어프리 및 공연 전반적인 부분에 관심을 두고 있다. 무용 <무장애예술주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안무 및 출연, 연극 <관람모드-보는방식>, 혜화동1번지 <춤의 국가>, <2020 연극의 해: 장애인의 공연장 내 재난대피 워크숍>,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 <소극장판-타지> 등의 연극에 출연하였다.
myajw88@naver.com/ 인스타그램 @_mine_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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