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우리가 갈림길을 지나 다시 만나는 법
서윤후
평소에는 길 잃는 법 없습니다. 오가던 길을 계속 다니기 때문이지요. 모르는 곳에 도달하면 지도를 켜서 안내하는 곳을 따라가면 됩니다. 확률적으로 아주 높게, 최단 경로를 걷게 됩니다. 잘 아는 길은 일부러 해찰하기 위해 다른 길로 에돌아 가보기도 합니다. 대체로 생활로 읽어낸 길들을 다니기 때문에, 머지않아 잘 도착할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길을 쉬지 않고 오래 걷고 있습니다. 걷다 보니 웹진 《비유》를 꾸리는 일원이 되었어요. 잘 부탁합니다. 이번 76호에 모여든 글들을 읽으면서 내내 지도를 그려보았습니다. 서로 다르게 걸어온 갈림길이 이렇게 한곳으로 모일 수 있어 기쁘다고도 생각했지요. 마치 꽃다발을 엮는 마음이 됩니다. 서로 일궈온 땅이 다르고, 기후가 시시각각 바뀌었으며, 이에 향기도 쓰임도 달랐을 테지만 《비유》를 통해 어우러지는 한 포기의 꽃다발이 되어, 딛고 있던 서로의 언덕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작품을 통해 서로의 경치가 되는 일은 읽는 일이 주는 기쁨이지요. 이번에 선보이는 글들이 우리에게 다시 좋은 갈림길을 안내해주리라 확신합니다.
경계를 느끼는 일이란, 나를 벗어나 있는 그 밖의 세계에 대한 탐구와 호기심으로부터 내가 속해 있던 둘레를 보다 깊이 이해해보는 일로 돌아오는 듯합니다. ‘비평 교환’은 그런 의미에서의 경계 지우기 혹은 경계 위에 올라서는 경험을 줍니다. 전솔비의 「경계를 넘는 소리」에는 소리 감각을 통해 난민 캠프에 비친 생존이라는 풍경을 복원하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쌓인 잡음으로부터 경계와 한계를 넘나들며 ‘하나 이상의 소리’라는 층위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풍경이 귀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승린의 「밤에 흐르는 물」은 채집한 소리가 출력할 수 있는 상상력을 장면과 소리와 이야기로 레이어드 하여 현실을 초월하는 소리의 세계를 구현합니다. 시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소리로 경계를 확장하는 곳에 우리가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해상도 높은 장면’에서는 김그레이스(김성은), 오로민경, 배선희가 영상과 소리와 글을 각각 출력하면서, 제주도 강정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과의 순간을 촘촘하게 잇습니다. 마치 방금 나눈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전해져오는 파동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가 이어지고 뒤엉키는 연결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판도: 기획을 기획하다’ 코너에 실린 서효인의 글에서는 작가 414명의 한 줄 성명이 모여들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집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내란 사태를 통과하며 우리가 겪었던 무력감과 수치심을 다시 한 줄의 민주주의로 모여들게 하기 위해 분투했던 과정이 현장감이 느껴지게끔 세세히 다뤄졌습니다. 삶은 파편적으로 각자의 길을 가는 일이겠지만, 서로 연대하며 모여들었을 때 마침내 “다시 만날 세계의 초입”에 서볼 수 있다는 실천적인 감각을 다시 한번 나누기에 좋은 돌아봄이 됩니다. 또한 ‘문학하는 사람들’에서 자신이 활동해온 연대기 안에서 ‘연대’라는 둘레를 조감하는 윤은성의 글은 우리가 만나야 할 장소처럼 느껴집니다. 다시는 없어야 할 참사와 다양한 얼굴로 다가오는 기후위기 속에서 수렴하고 정립했던 연대의 의미를 쓰고 읽는 삶을, 책방 이야기와 더불어 말합니다.
이밖에 문학 작품에서도 갈림길이 주는 우연을 만끽해볼 수 있었습니다. 박술, 정한아의 시를 통해 한 세계에 드리워 있는 삶과 존재의 양면적인 얼굴을 기꺼이 마주해보게 되었습니다. 김홍과 이주현의 소설에서 타자와 내가 마주한 갈림길을 읽어내는 방식이 각자의 이야기 안에 켜켜이 내려앉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이승민의 동화처럼 ‘멸망 클럽’에서 만나 한 번 멸망해버린 이들이 서로의 곁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음을 알아차리기도 하며, 박보영의 동화처럼 누군가의 모험을 기대하며 배웅할 수 있다는 귀중한 순간을 나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임희진의 동시가 가진 맑고 따뜻한 눈으로 우리가 지나온 길을 꾸밈없이 돌아본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또 기쁘게 헤어질 수도 있을 거예요. ‘리뷰와 비평’에서는 김혜순의 시 세계를 총망라하는 최선교의 글을 통해, 시인의 세계가 열렸던 각각의 흔적을 톺아 비명을 대신할 언술로 세워진 시인의 여성적 발화-여성적 말하기의 시적 전경을 한눈에 살펴보는 진귀한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속에 우리는 갈림길에서 각자의 선택을 쥐고 나아갑니다. 다시 만나기도 하며, 또 헤어지기도 하겠지요. 문학은 시간으로 점철된 세계로부터 자신만의 모험을 열어주는 갈림길이자,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공터가 되기도 합니다. 공터 위에서 각자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벤치가 되어주고, 흙바닥에 그린 암호를 힌트 삼아 떠나보는 것입니다. 《비유》라는 지도를 들고, 우리 헤매다가 다시 만날까요?
저는 언젠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길을 쉬지 않고 오래 걷고 있습니다. 걷다 보니 웹진 《비유》를 꾸리는 일원이 되었어요. 잘 부탁합니다. 이번 76호에 모여든 글들을 읽으면서 내내 지도를 그려보았습니다. 서로 다르게 걸어온 갈림길이 이렇게 한곳으로 모일 수 있어 기쁘다고도 생각했지요. 마치 꽃다발을 엮는 마음이 됩니다. 서로 일궈온 땅이 다르고, 기후가 시시각각 바뀌었으며, 이에 향기도 쓰임도 달랐을 테지만 《비유》를 통해 어우러지는 한 포기의 꽃다발이 되어, 딛고 있던 서로의 언덕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작품을 통해 서로의 경치가 되는 일은 읽는 일이 주는 기쁨이지요. 이번에 선보이는 글들이 우리에게 다시 좋은 갈림길을 안내해주리라 확신합니다.
경계를 느끼는 일이란, 나를 벗어나 있는 그 밖의 세계에 대한 탐구와 호기심으로부터 내가 속해 있던 둘레를 보다 깊이 이해해보는 일로 돌아오는 듯합니다. ‘비평 교환’은 그런 의미에서의 경계 지우기 혹은 경계 위에 올라서는 경험을 줍니다. 전솔비의 「경계를 넘는 소리」에는 소리 감각을 통해 난민 캠프에 비친 생존이라는 풍경을 복원하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쌓인 잡음으로부터 경계와 한계를 넘나들며 ‘하나 이상의 소리’라는 층위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풍경이 귀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승린의 「밤에 흐르는 물」은 채집한 소리가 출력할 수 있는 상상력을 장면과 소리와 이야기로 레이어드 하여 현실을 초월하는 소리의 세계를 구현합니다. 시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소리로 경계를 확장하는 곳에 우리가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해상도 높은 장면’에서는 김그레이스(김성은), 오로민경, 배선희가 영상과 소리와 글을 각각 출력하면서, 제주도 강정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과의 순간을 촘촘하게 잇습니다. 마치 방금 나눈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전해져오는 파동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가 이어지고 뒤엉키는 연결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판도: 기획을 기획하다’ 코너에 실린 서효인의 글에서는 작가 414명의 한 줄 성명이 모여들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집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내란 사태를 통과하며 우리가 겪었던 무력감과 수치심을 다시 한 줄의 민주주의로 모여들게 하기 위해 분투했던 과정이 현장감이 느껴지게끔 세세히 다뤄졌습니다. 삶은 파편적으로 각자의 길을 가는 일이겠지만, 서로 연대하며 모여들었을 때 마침내 “다시 만날 세계의 초입”에 서볼 수 있다는 실천적인 감각을 다시 한번 나누기에 좋은 돌아봄이 됩니다. 또한 ‘문학하는 사람들’에서 자신이 활동해온 연대기 안에서 ‘연대’라는 둘레를 조감하는 윤은성의 글은 우리가 만나야 할 장소처럼 느껴집니다. 다시는 없어야 할 참사와 다양한 얼굴로 다가오는 기후위기 속에서 수렴하고 정립했던 연대의 의미를 쓰고 읽는 삶을, 책방 이야기와 더불어 말합니다.
이밖에 문학 작품에서도 갈림길이 주는 우연을 만끽해볼 수 있었습니다. 박술, 정한아의 시를 통해 한 세계에 드리워 있는 삶과 존재의 양면적인 얼굴을 기꺼이 마주해보게 되었습니다. 김홍과 이주현의 소설에서 타자와 내가 마주한 갈림길을 읽어내는 방식이 각자의 이야기 안에 켜켜이 내려앉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이승민의 동화처럼 ‘멸망 클럽’에서 만나 한 번 멸망해버린 이들이 서로의 곁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음을 알아차리기도 하며, 박보영의 동화처럼 누군가의 모험을 기대하며 배웅할 수 있다는 귀중한 순간을 나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임희진의 동시가 가진 맑고 따뜻한 눈으로 우리가 지나온 길을 꾸밈없이 돌아본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또 기쁘게 헤어질 수도 있을 거예요. ‘리뷰와 비평’에서는 김혜순의 시 세계를 총망라하는 최선교의 글을 통해, 시인의 세계가 열렸던 각각의 흔적을 톺아 비명을 대신할 언술로 세워진 시인의 여성적 발화-여성적 말하기의 시적 전경을 한눈에 살펴보는 진귀한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속에 우리는 갈림길에서 각자의 선택을 쥐고 나아갑니다. 다시 만나기도 하며, 또 헤어지기도 하겠지요. 문학은 시간으로 점철된 세계로부터 자신만의 모험을 열어주는 갈림길이자,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공터가 되기도 합니다. 공터 위에서 각자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벤치가 되어주고, 흙바닥에 그린 암호를 힌트 삼아 떠나보는 것입니다. 《비유》라는 지도를 들고, 우리 헤매다가 다시 만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