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보호 관찰
전작
그나저나 나는 이제 선배 새끼들이 따라줘서 순순히 마시느라 급성 약독물성 간염에 걸려 죽어가던 그 정한아는 아니다, 히힛, 나쁜 놈들, 회복 후에 다시 만났을 때 늬들은 내가 바이러스성인 줄 알고 술잔을 될 수 있으면 부딪히지 않으려고 슬슬 피했지, 비겁한 새끼들, 하지만 난 이제 마시지 않는다, 내가 원래 못 마시는 사람인 걸 너무 늦게 알았기 때문
어떤 사람들은 이미 베린 몸인데 몸 아껴 뭐 하냐고 하지만, 치기는 생존 가능성이 높을 때나 부리는 것, 왜 자다 말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가, 꿈속에서, 전작이 있으니 한잔해, 라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왜 전작이 있으면 더 써야 하는 거지요? 라고 반문하고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 아, 피곤해, 왜 꿈속에서 이딴 말놀이를 하는 거지? 메모장에 써놓기만 해봐라, 유치한 새끼, 트래비스 같은 새끼, 맨날 지하고 섀도복싱하는 새끼, 불쌍한 새끼, 할 줄 아는 게 지 갉아먹는 짓밖에 없는 새끼, 이웃사랑에 도움이 안 되는 새끼
그래도 뭐랄까, 사람 만날 일이 있어 그나마 다행인데 안 그랬으면 맨날 지랑 싸우다 지 끈 모양의 게으름을 두 갈래로 갈라 새끼줄을 정성스레 꼬아 목을 매달았을지도 모르기 때문
정한아
2006년 현대시 신인상을 통해 지면에 시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는 서양철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는 국어국문학을 공부했지만, 강의실보다 강의실 주변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졸업하기 싫어 학교를 오래 다녔고, 그런 이유로 졸업한 뒤에도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고루 많이 만나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시집으로 『어른스런 입맞춤』 『울프 노트』가 있고, 시산문집으로 『왼손의 투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작란(作亂)' 동인입니다.
「보호 관찰—전작」은 꿈에서 깨자마자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놓은 것을 다듬어 시로 만든 것입니다. 시집 원고를 묶는 중이라 그랬는지 '시를 쓸 때 나는 무엇을 정말로 쓰고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어요. 어째서인지 김영승 시인의 '반성' 연작시 풍을 띠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시들을 십대 시절에 좋아하긴 했지만, 그리고 어쩌면 그 때문에 좀 껄렁한 자아를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스스럼없이 '선배 새끼들'이라는 말이 나온 걸 보니 도를 더 닦아야겠다는 마음이 들고요, 선배들아, 미안해. 이젠 술들 좀 덜 마시고 살겠지? 근데 이제 생각하니 술 많이 마시는 것과 시 계속 쓰는 것 중 어떤 것이 건강에 더 안 좋은지 잘 모르겠고. 제일 안 좋기로는 술도 많이 마시고 시도 계속 쓰는 걸 텐데…… 생각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네요.
2025/11/05
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