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보호 관찰
심방
뒹구는 일은 얼마나 평화로운지
엄마가 마저 설거지를 끝내는 동안
식탁 밑에 뒹굴며 나는
심심함을 하염없이 음미했네
그때였지, 녀석과 눈이 마주친 것은
역삼각형의 심각한 얼굴
정장 차림으로 가드를 올린
기분 나쁜 신사
긴 허리, 스트레이트를 날리기 직전
완벽한 긴장
나는 매료당하고 두려워
꼼짝할 수 없었지
내가 여기 있는 건 비밀이야
녀석은 텔레파시로 경고했네
그만 좀 뒹굴거리고 식탁 밑에서 나오렴
곧 신부님이 오실 거다
나는 식탁 밑에서 기어나와
사십오 년 만에 비밀을 발설한다
식탁 밑에 조용한 마귀가 있어요
저주받은 왕자 같아요
신부님보다
수녀님보다
먼저 도착했어요
내 세례명을 듣고 웃었어요1)
정한아
2006년 현대시 신인상을 통해 지면에 시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는 서양철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는 국어국문학을 공부했지만, 강의실보다 강의실 주변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졸업하기 싫어 학교를 오래 다녔고, 그런 이유로 졸업한 뒤에도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고루 많이 만나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시집으로 『어른스런 입맞춤』 『울프 노트』가 있고, 시산문집으로 『왼손의 투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작란(作亂)' 동인입니다.
보호와 관찰은 떼어놓으면 참 좋은 단어이고 좋아하는 단어인데, 붙여놓으면 행정적으로 좀 불길한 단어가 됩니다. 이미 한 번 심각하게 주의를 받은 사람에게 '지켜보고 있다'는 걸 주지시키는 단어이지요. 이 중층적인 의미 쌓기가 재미있어서 본의 아니게 연작시를 쓰고 있습니다. 「보호 관찰—심방」은 세 살쯤 있었던 일인데, 그때 본 사마귀의 불길하고 심각하고 우습고 무섭고 절도 있고 진지한 정지 자세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는 그 정지 자세 하나로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었는데, 정말 어떻게 움직일지 사마귀를 처음 본 저는 가늠할 수 없어 얼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전 어떻게 곤충 이름에 마귀가 들어 있는지도 늘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2025/11/05
76호
- 1
- 이 시의 화자는 '한나'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은총'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충충한 은총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