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나는 가물(家物)’은 소리 내지 않았다

  방울 소리는 들어볼 수 없었다

  —저거 밀면서 방울 소리를 들어볼 순 없나요?
  —네, 취지는 그런데 관람객들로 인한 파손의 우려가 있어서……

  —그럼 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영상 같은 게 있나요?
  —아뇨, 없는 것 같습니다……

  도록 속 남녀는 손잡이를 잡고 가물을 움직이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고
  도록 속 남녀만 방울 소리를 들어봤을 것 같았고

  이왕 만드는 거
  몇 개 더 만들어서 전시장에 던져놓고
  아무 손에나 잡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미친 듯이 마구 방울 소릴 내며!
  아무렇게나 파손되게 했으면 좋았을걸

  그러나 나는 손잡이를 잡고 끌며
  방울 소리를 내보지 않았다

  잠깐, 아까 통로에서 본
  입구 Entrance 하나에
  출구 Exit Only 셋

  빛이 들어오는 쪽이 입구
  나가는 쪽이 출구

  블라인드가 돌아가며
  출구와 입구가 어느샌가
  바뀌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작가는 멋대로
  출구를 입구로 사용하고 입구를 출구로 사용할
  그리하여 진정한 창작자가 되어줄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들의 전시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를 우롱한 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나는 쥐방울만 한 깨달음과 함께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전시실을 빠져나왔다

황유원

시를 쓴다. 시를 쓸 때 나의 존재함을 거의 유일하게 실감하는데, 그때는 자아가 거의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라짐이 나의 존재함에 가장 가깝다. 나는 사라질 때 가장 많이 존재한다. 그런 것 같다. 나는 쓴다.
시집 『초자연적 3D 프린팅』 『세상의 모든 최대화』 등이 있다.

「관람객」은 2020년에 어느 전시를 보러 갔다가 역시 실시간으로 메모한 것을 시 비슷하게 수정한 것이다. 발표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우연히 이것을 본 누군가가 발표를 권하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어쨌건 소리를 내기로 되어 있는 것은 소리를 좀 냈으면 좋겠다. 물건이든 동물이든. 비명이 아니더라도 딸랑딸랑 방울 소리라도 좀 냈으면.

2023/11/15
6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