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오래된 기원 하나가 보인다

  집 앞 상가 3층에 있는
  간판도 없는 조용한 곳을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것일까

  작게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두 사람이 앉아 바둑을 놓는 장면을 본다

  아무리 봐도 바둑 두는 법은 잘 모르겠고
  최대한 집을 많이 지어야 이기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더이상 돌을 둘 곳이 없을 때 게임이 종료된다고 한다

  어떤 선택 앞에서
  주저하게 되는

  그런 신중함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집을 지어야 하는

  두 사람 옆으로 큰 화분 하나가 보인다
  “또다른 시작을 축하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도
  기원이라는 말을 쓴다

  이곳으로 이사 올 때 화분을 건네던 사람이 떠오르고

  내가 하는 일이 뭐든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사람
  그 사람은 이사 갈 새집에도 잘 살기 위해 집 안 곳곳에 화분을 둔다고 했다

  물을 많이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화분을 가만히 바라본다

  생각해보니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기원은 늘 열려 있었던 것 같다

  경기가 끝나면 누군가의 땅을 한 번도 빼앗아본 적이 없다는 듯이
  서로 악수를 나눈다

  저 창문이 닫혀 있었다면 볼 수 없는 장면이었겠지

  이곳에 화분을 들여놓지 않았더라면
  어떤 감정은 영영 알 수 없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상가 앞 나무들을 바라본다

  무언가를 기원하는 나무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주아주 오래된 것들이

정재율

2019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온다는 믿음』이 있다. 김만중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요즘엔 시를 써도 기쁜 마음이 오래 가지 않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좋아하던 한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나 너 때매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하는 대사처럼 내 인생에서 시가 없었더라면 꽤나 공허했을 것을 안다. 창문을 열어 밖을 바라본다.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그 사이로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것을 바라본다. 그런 장면을 보다보면 영원을 정말 영원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다시 자리에 앉아 시에 대해 생각한다. 이미 시가 된 것들과 아직 시가 되지 못한 것들을 떠올린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2023/12/06
6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