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빵과 장미 / 서핑
빵과 장미
부드러운 빵을 먹을 땐
나도 한 겹 녹아내리는 것 같지
빵의 내부에 있는 작은 문과 그 안의 작은 문을
차례로 열고 들어가 조각나는 기분
빵이 녹아갈 때마다
나에겐 커피가 필요하고
오늘밤 잠들지 않는 묘약이 필요하네
밤이란 음담패설을 늘어놓기에 좋은 시간이지,
어깨를 주무른 뒤에 웃어넘기기에도,
배가 불러온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진 자리에
아직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서 작은 창문을 지키네
건너편 창문에 선 당신은 붉은 입술의 중요성과
복장 단정의 이중주를 듣고 있지
나는 상급자를 바꾸라는 전화와
꺾어지는 나이라는 농담 사이를 위태롭게 걸어가지
합창은 절규와 비슷한 면이 있고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르지
한 손에 빵을, 다른 한 손에 장미를 쥐고 걸어갈 때1)
부드러운 빵에선 단맛이 난다네, 가시에 피가 도는 것처럼
어지럽네
창문 아래서 누군가는 한 손에 서류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며
높고 가볍게 허밍을 하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
하나의 덩어리를 이룰 때
노래는 입속에서 녹아가는 식빵의 느낌과
장미 잎의 어두운 감촉을 닮았지
어디선가 흘러드는 크고 작은 노랫소리는
도시의 불빛을 하나둘 연결하며
투명한 천장 위에 놓인 달콤한 잼들의 높이를 향하여
올라간다네
서핑
날씨가 좋아서 우리는 멀리까지 가기로 했다
발밑에 부드럽게 밀려오는 페이지를 보고 있다
바다 저편에서 파도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누가 웃거나 죽거나, 결국 잘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이야기를 먹어치우는 사람이 있다
이곳이 인공풀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부드럽게 젖어 떠내려간다
다음 페이지, 밀려오는 또 그다음 페이지까지
주민현
나에게 쓰는 것은 곧 말하는 것이다. 말한다는 것은 왜 중요한가. 가끔은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살아가면서 동시에 쓰고 싶다. 조금 실패하거나 모조리 실패해도 사랑하고 싶다.
2018/04/24
5호
- 1
- 1912년 로렌스 섬유공장, “우리는 빵을 원한다. 또한 장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