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제곱



   8월 9일에 새가 죽는다
   다음날 나는 운동장에 도착한다

   한 아이가 야구배트를 휘두른다
   공이 담장을 넘어가고

   나뭇가지가 다른 나뭇가지를 밀친다
   큰 개의 영혼에 이끌리듯 작은 개가 공원을 떠돈다

   철새들이 날아온다
   9일에 새들이 9일의 새들로부터

   공이 날아간다
   빈 운동장에 야구배트가 나뒹굴고

   담장 너머 목줄 구멍에선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내가 다음날 운동장에 도착한다
   또 그다음 날에도

   한 남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근황을 묻듯이
   근황을 묻는 자신의 목소리를 확인하듯이

   텅 빈 버스가 지나갈 때
   상자 속에 빈 상자가 있을 때

   여름날 담장을 넘어간 공이
   공원에 도착할 때

   날개 모양을 이룬 새들이 기울어지고
   구름 그림자가 담장을 지난다

   나무 아래 한 아이가 새를 묻고 있다
   도망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나 칠 수 있는 거니까

   민들레 씨앗이 흩어진다
   모래에 섞여드는 바람 속에서

   점심시간 운동장이 비어 있고
   종이 울리지 않는다





   누수



   반갑게 달려오는 강아지에게서 물러나며 한 발짝 밀어내면 당신은 개를 보지 말고 개의 마음을 보라고

   개는 개일 뿐이라고 말하면 머리카락이 자꾸 빠집니다 발이 이불에 붙들려 있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의아해하는 얼굴 위로 당신은 쓰고 있던 모자를 덮어줍니다 아주 작은 틈으로도 강아지가 들어오는데

   잠이 오면 발이 없습니다 이불이 눅눅하면 귀가 어둡고 강아지가 달려와 가슴 위를 가로지릅니다

   당신은 모자 위로 모자를 덮어줍니다 빈 공간이 쌓이는 언덕 위로 강아지풀 하나가 흔들리고

   비가 내려도 좋은데 당신의 개를 다루듯 나를 사랑해준다면 개 같은 새끼라고 해도 좋을 텐데

   모자가 달려옵니다 그건 반갑다는 뜻이라는 다정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당신의 손길에는 사심이 없어서

   엎드려 벽지를 만집니다 곰팡이가 핀 방에 당신이 없습니다 개를 보지 말고 개의 마음을 보라던 당신의 말

   창 위로 이불이 널려 있습니다 땅을 누르듯 걷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나는 여름이 지나도록 알지 못합니다

최윤빈

말을 하면 부끄러워서 더 많은 말을 했다. 말을 하는 게 부끄러워서 조용하려는데 속이 시끄럽다. 말을 멈추지 못할 것 같다.

2018/08/28
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