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르츠 바스켓



   침 삼키면
   산뜻하게 올라가는 안압

   귤의 피막이 점점 얇아진다

   연둣빛 부글부글
   멜론의 속에서부터

   흘러넘치고 있다
   오래오래

   엎질러버렸지
   물렁한 씨앗이 굳는 소리

   원목계단을 오르내리는 사이
   둘레가 훌쩍
   자라버렸지요?

   한순간
   멀리서 날아온 호밀 향기
   미끄러진다

   토마토는 축젯날에 가장 많이 죽는다
   즐겁다

   뭉근한 불

   익숙하고 낯선 가장자리로
   우리가 여행을 갈 때

   빛났다가 맑게
   사라지는

   아오리는 아오리
   사과는 사과

   아삭아삭





   시오



   화난 사람처럼 자는 네가 움찔거리면

   이유 없는 동정심으로
   눈썹과 안뜰이 울렁거려

   풀풀풀
   정원이 피어나고
   날벌레들이 다리를 엮어

   그런 식으로 창문은 생겨난다

   창문의 무덤에 가본 적 있어?
   아니 안 갈래

   왜 산책로는 휘어져 다음이 보이지 않는 걸까, 한눈에 욱여넣을 방법이 없는 나무들, 에메랄드빛, 흔들리는 잎, 여름꽃, 방금 전의 선, 방금 전의 점, 편지를 쓰지 말자, 밤, 밤, 밤, 스텝 스텝, 계단과 계단 사이, 잃어버린 목걸이, 바람 빠진 자전거 바퀴, 강물 위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의자의 생김새가

   웃음이 난다
   웃음이 전부
   바닥에 박혀버리고

   손잡고 걷자
   기쁜 일을 앞두고는 무릎이 깨지니까

   약속은 돌아와
   민들레처럼

   모조리 주워 담아
   봉투를 봉하자

   유리 조각으로 눈부신 하늘

   하지만 시오, 그렇다면 시오?
   시오를 부르지

   대문니 사이로 바람이 빠지는 소리
   시오시오 쇼, 쇼,

나혜

마모루와 스지와 쓰는 사람.

2018/11/27
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