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흐리고 곳곳에 비



   하행선 야간열차는 볼링공처럼 미끄러져갔다

   쓸어넘긴 머리와 잘 먹지 않는 눈 화장을 깨진 휴대폰 액정에다 점검하는 아이들의 휴양처였다

   종일 오가며 마주친 누구라도
   울음이나 목숨을 제법 견디고 있어서
   우리가 어려서 우울한 건지 우울해서 어린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얼음송곳이 내 안으로 악착같이 자라서
   숨을 뱉으면 전부 깨져버릴 것 같았고

   사람을 불태우고 남은 재나 영혼처럼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가 뒤척였다

   우리는 해식 절벽에 걸터앉은 채 웃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허공에 두 다리를 흔들다가
   서로의 거친 어깨선 같은 것만 골라 사랑하며
   엉망이 되도록 한없이 노력했다

   그사이 무언가 우리를 꿰뚫고 지났는데
   그것이 여태 너와 나를 그곳에 붙잡아 둘 줄은 몰랐다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은 몸뿐이다

   너의 8월에 말간 얼굴을 하고 선 내가 아직도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손끝으로 전등갓을 툭 치고 뭐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자판기에 동전을 밀어 넣고
   거슬러 받듯이

   약봉지를 찢어 개수대에 털고 돌아서는 것 같이 어느 날 피가 멎을 것이다

   거울 앞에서 앞머리를 자르느라 여름방학을 죄다 허탕 치더라도
   침대에서 어떤 표정으로 울고 웃었는지 창을 열고 뭐라 소리쳤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모르는 행거의 셔츠를 훔치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입을 맞추며

   그들이 말하던 거짓이 물속에서 소리치듯 우리를 덮칠 때까지 우리의 후회가 새벽의 석간신문마냥 눅눅해져 가판대로부터 먼 아스팔트로 쓰러질 때까지

   사고를 기다리는 덤프트럭처럼 휘청이다가 엉망으로 파손되어 집으로 구겨질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아무 곳에도 갈 수가 없다

   지그시 혀를 물고서 아주 커다란 아침을 맞고 있다 불을 끄고 눈을 가리면

   아쿠아리움이다





   수목한계



   우리에게 사랑은 새를 기르는 일보다 어려웠다

   꿈 바깥에서도 너는 늘 나무라 적고 발음한 후 정말 그것으로 자라는 듯했다 그런 너를 보고 있으니 어쩐지 나도 온전히 숲을 이루거나 그 아래 수목장 된 것 같았다 매일 꿈마다 너와 누워 있는 장례였다 시들지 않은 손들이 묵묵히 얼굴을 쓸어가고 있었다

   부수다 만 유리온실처럼 아직 살갗이 눈부시고 따사로웠다

   돌아누운 등을 끌어안고서
   아무 일도 아직은 피어나지 않을 거라 말해주었다

최백규

나는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정말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어 가슴팍에 손을 가져가보기도 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 컸다. 무언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2019/06/25
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