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폐막 / 화순전남대병원
폐막
관객들이 빠져나가고 조명이 꺼지자
리플렛에도 소개돼 있지 않던 공연이
올려진다 가려진 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알고 있는 이들은 없으므로
끝났다고 믿었던
장면들이 되살아난다
밀린 급여를 지급받은
노동자들이 일용할 양식을
수탈당하고 그릇이 엎어져
무덤이 되었다 그 안에
가지런히 놓인 뼈들
막이 내리기 전에
조명이 꺼지기 전에
믿기지 않았지만
믿어야 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들, 그러나 안도했던
모두가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던 장면들
머물렀던 자리나
괜찮아, 무언가를 교묘히
내려놓는 척하며 사실은
숨기고 있는 말을
당신은 믿는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침묵하는 무대를
화순전남대병원
벤치에 앉아있으면 졸음이 쏟아진다 그것은 햇볕에 손이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며 너는 종종 쑥스럽게 웃어보였다
이상하지 웃을 때마다
몸 안의 누군가가 자꾸만 커지는 것 같아
죽은 별들이 쌓이는 기분이 든다
어디로 가는 걸까 기분은
영영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벤치에 앉아 조는 일이 부쩍 늘어난 너는 이제 죽음 예행연습 중이라고 말한다
햇볕뿐만 아니라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내리는 비에도 손이 있다는 사실을 새로 알았다고 막다른 길이라고 여길 때마다 악력이 세진다고
죽은 별의 숫자를 세듯 우리는 숲을 걸었다
오성인
강변에 나가면 언제나 영혼을 지불하고 강물을 길어온다. 강물은 그 자체가 언어이자 일용할 양식이다. 해가 바뀌어도 강물은 별일 없이 잘 있었다. 문명 밖의 존재들을 믿는 힘으로 쓴다.
2020/01/28
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