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진의 이천십구년 목표는 손톱 물어뜯지 않기.
   물론 실패였다. 한 해의 목표가 손톱 물어뜯지 않기인 사람이 손톱 물어뜯는 버릇을 고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오성진은 백화점에서 구두를 팔고 나는 백화점에서 모자를 판다.
   구두 매장과 모자 매장은 서로 마주보고 있고 손님이 없을 때 백화점의 모든 직원은 매장 앞에 서 있어야 하는 규칙이 있으므로 우리는 마주보고 있다. 구두 매장 앞에는 구두를 신은 커다란 개 조각상이 있다. 하얗게 벗겨진 코끝과 꾹 다물어진 입꼬리. 그 옆에는 입을 다문 오성진과 입을 다문 독일제 가죽 구두들. 손님은 드물다. 구두는 인기가 없다. 구두보다는 다문 입을 파는 쪽이 훨씬 잘 팔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충고할 입장은 아니다. 나의 모자 매장은 오성진의 구두 매장보다 매출이 적으니까. 사람들은 모자와 구두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대부분 구두를 고른다. 언젠가 내가 이것에 대해 분개하자 오성진은 이렇게 말했었다.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있어서 또 덮을 필요가 없지만, 맨발은 곤란하잖아.”
   그러고는 조금 이겼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발에도 양말이라는 걸 신지 않느냐고 되묻자 오성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금세 평소처럼 입을 다문 얼굴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내가 조금 이겼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물론 매출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손님이 구두를 고르면 오성진은 그것을 개 그림이 있는 상자에 넣는다. 그리고 빈 공간에다 얇게 베어낸 침묵을 구겨서 채운 뒤 건네준다. 손님들은 집에 돌아가 구두를 꺼내 신발장에 넣고 상자는 분리수거함에 넣는다. 마땅히 필요도 없고 버릴 곳도 없는 구겨진 침묵이 바스락바스락 남는다.
   물론 모자 매장에도 포장용 상자는 있다. 모자 안을 채울 구긴 침묵도 있다. 하지만 손님들은 보통 포장은 필요 없다고 말하곤 그 자리에서 모자를 쓰고 간다. 그리고 손님이 떠난 자리에는 바스락바스락.

   손님이 없는 오전에 우리는 오래된 희망사항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먼저 내가 말했다.
   “나는 전서구가 되고 싶었어. 초등학생 때.”
   “왜 하필 전서구야?”
   “멋지잖아. 해야 할 일의 무게를 온몸으로 안다는 게.”
   그러자 오성진은 이해한다는 듯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인간이 전서구가 될 수 없다는 걸 안 것은 아마도 중학생 때쯤이었나. 그 뒤로 나는 뭐가 되고 싶은지 몰라 무엇도 되고 싶지 않은, 또는 아무거나 되고 싶은 사람으로 한동안 지냈다.
   “그러다보니 모자를 팔고 있었어.”
   그게 끝.
   이번에는 오성진이 말했다.
   “나는 알약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알약?”
   “알약. 단추. 유리구슬. 작지만 단단해서 부서뜨리려면 전신의 온 힘을 다 짜내야 하는 그런 걸 만드는 사람.”
   하지만 오성진은 알약 만드는 사람이 되지 못한 채로 중학교에 갔다. 중학생들은 알약쯤은 가볍게 으스러뜨릴 수 있었다. 알약보다 더욱 단단한 것들을 그냥 심심풀이로 부수기도 했다.
   “그래서 마음을 바꿨지. 심해어가 되기로.”
   “왜?”
   “깜깜한 데에 엎드려서 납작하게 지내도 되고. 멋지잖아.”
   중학생 오성진은 오랜 연구 끝에 심해어가 되는 수련 방법을 스스로 개발해냈다. 그것은 어둡고 좁은 틈새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할 수 있는 수련으로, 몸 전체의 양감을 서서히 줄여 가면서 얇아지고 납작해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마음가짐이 중요해. 물론 재능도 필요하고.”
   오성진이 우쭐거리며 말했다.
   중학생 오성진은 그 수련을 아주 열심히 했다. 그러자 침대 밑은 물론 소파 밑, 냉장고 밑에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좀더 열심히 하자 책의 갈피나 피아노 건반 사이 같은 곳에까지 끼워져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한번 들어가면 한 달 정도는 있었어.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행복하게.”
   “지금도 할 수 있어?”
    내가 물으니 오성진은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될지 모르겠네.”
   그러더니 몇 번 후우 후우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뒤 오성진은 아주 천천히 납작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배가, 다음에는 머리와 다리가,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마침내 그림자만큼 납작해진 오성진은 구두 판매대 밑의 어두운 틈으로 헤엄치듯 스르르 들어갔다.
   “굉장하다! 굉장해!”
   나는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오성진은 그 뒤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모자를 두 개 팔고 손톱을 열 개 다 물어뜯을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야, 좀 있으면 백화점 문 닫을 시간이야.”
   큰 소리로 부르고 나서야 생각났다. 맞다, 아무것도 듣지 않는댔지.

   한번은 구두 매장에서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아줌마 한 명이 앉아 있고 오성진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모자를 파는 것도 잊고 그 모습을 열심히 구경했다. 무슨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나 봐, 생각하는데 오성진이 일어섰다. 그러자 아줌마도 일어섰다. 그리고 그 아줌마는 양쪽 발끝을 땅에 탕탕 내리찍더니 이번에는 몸을 한껏 뒤로 틀어서 발뒤꿈치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었다. 대체 뭘 하는 거지. 무슨 종교의식인가. 혼자서 한참을 생각했지만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걸 물어본 건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에 갔을 때였다.
   “아까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뭘 말이야?”
   오성진이 김치 양념이 묻은 젓가락을 쪽 빨며 되물었다.
   “아까 매장에서 말야. 무릎을 꿇고.”
   오성진은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이 되어 무릎, 무릎, 하고 중얼거렸다. 젓가락을 다시 빨고 코다리 강정을 하나 집어서 씹으면서도 무릎, 무릎, 무릎, 그러다가
   “아.”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 신발을 팔았어.”
   그러고는 코다리 강정을 마저 씹었다.
   “네 켤레나 신어보더니 처음 신었던 걸 사 갔어.”
   오성진이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부터 우리 앞에서 밥을 먹고 있는 두 여자에게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들은 코다리 강정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맨밥을 귀퉁이부터 아주 조금씩 헐어서 먹고 있었다. 한 번에 밥알을 열 알 이상 먹으면 죽어버리는 멸종 직전의 새들처럼.
   “저 여자들 좀 봐.”
   내가 말하자 오성진도 그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아무튼 난 무릎을 꿇은 게 아니라 신발 끈을 매주고 있었던 거야. 그게 내 일이니까.”
   “그렇구나.”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다음 날 일어났다. 오성진과 내가 구내식당의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파래무침이랑 김부각이 같은 날 나오다니 너무하잖아.”
   내가 투덜거리자 오성진은 대답 대신 나를 시무룩하게 바라보더니 물었다.
   “아까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응?”
   눅눅한 김부각을 젓가락으로 콕콕 부수는데 오성진이 말을 이었다.
   “아까 너, 손님 앞에서 무거운 거울을 받쳐 들고 꼭 벌서는 것처럼 서 있었잖아.”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눈썹에 힘을 주고 그날 오전의 기억을 삐걱삐걱 되감았다. 그동안 오성진은 건너편에서 식판을 잔반통에 탕, 탕 소리 내며 털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하.”
   내가 말했다.
   “나 모자를 팔았어. 반짝이는 검은 털모자를. 손님한테 모자 쓴 모습을 보여주려고 거울을 들고 있었지.”
   “그렇구나.”
   오성진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오성진은 어딘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식판을 정리대에 집어넣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잠시 후 남자는 녹말 이쑤시개를 질겅질겅 씹으며 구내식당을 나갔다.

   구두 매장 앞에 작은 남자아이가 나타난 적이 있다. 언뜻 보면 네 살처럼도 보이고 다시 보면 열일곱 살 같기도 한 그 아이는 아침부터 거기 있기 시작해서 저녁까지도 거기 있었다. 입을 다문 개 조각상 앞에 서서 개를 올려다보면서. 울지도 웃지도 않고.
   보다 못한 오성진이 말을 걸었다.
   “얘, 어디서 왔니? 엄마는 어디 있니?”
   그러자 아이가 처음으로 개에게서 눈을 떼고 오성진을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이 무슨 물고기를 닮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입술이 동그랗게 포동하고 머리통은 납작한. 근데 그게 무슨 물고기지. 아무튼 물고기를 닮은 그 아이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엄마는 어딘가에 있어.”
   그런데 오성진이
   “그 어딘가가 어딘데?”
   하고 되묻자 아이는 금세 눈이 우물만큼 쑤우우욱 깊어지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아이는 다음날 아침에 다시 발견되었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증기처럼 눅눅하고 흐릿했지만 분명 어제 그 아이였다. 오성진이 아이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입을 벙긋벙긋했다. 어제 그 애야. 이번에는 내가 다가갔다.
   “뭘 보고 있어?”
   아이는 또 그 물고기 같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아이의 볼록한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그런데 그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내 얼굴보다 훨씬 늙어보여 나는 좀 당황했다.
   “개를 키우고 싶은데 엄마가 개를 싫어해.”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자기 신발 코를 내려다보다가 또 눈이 쑤욱, 깊어졌다. 그리고는 망가진 비디오 영상처럼 치직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사라지려고 하는 찰나 나는 아이의 옷자락을 꼭 잡았다. 잡은 손아귀가 서늘하고 축축했다.
   “엄마한테 가자.”
   별로 그러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매장은 오성진에게 맡기고 아이를 데리고 나섰다. 손을 잡고 싶었는데 아이가 너무 작아서 나와는 높이가 맞지 않아, 대신 아이가 입은 윗옷에 붙어 있던 방울 달린 끈 같은 것을 잡았다. 백화점 꼭대기 층에는 사무실이 있고 그 사무실에는 커다란 마이크가 있고 그 마이크로는 백화점 전체에 방송을 할 수 있다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뭐라고 방송을 해야 아이 엄마가 알아듣고 아이를 찾으러 올까. 물고기를 닮은, 네 살 같기도 하고 열다섯 살 같기도 한, 개를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사실 보호하고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될까. 고민하며 상행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아이는 고분고분 잘 따라오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옆에서 없어졌고 내 손에는 방울 달린 끈만이 남아 있었다. 끈은 길게 길게 늘어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가끔 구불구불 바다뱀처럼 움직이는 걸 보니, 아이가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자꾸자꾸 올라갔다. 주방용품과 스포츠용품과 남성복을 파는 층을 지나고 무슨 음식점이 가득 있는 층도 지났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녹초가 되고 지저분해졌는데 화분만 가득 있는 어떤 층에서는 머리카락에 온통 시든 게발선인장꽃이 달라붙었고 진흙이 담긴 비닐봉지 같은 걸 파는 층에서는 흙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올라갔다. 어떤 층에는 공기가 들어 있는 반투명한 고양이들이 우리에 갇혀 있었고 어떤 층에서는 바짝 마른 뼈다귀들이 줄에 매달려 빙빙 돌고 있었다. 이런 걸 파는 곳이 있었다니, 모자나 구두를 파는 건 상당히 상식적인 일이었구나, 나는 상당히 상식적인 인간이었구나, 하면서 나는 올라갔다. 손에 쥔 끈은 가끔 팽팽해지다가 느슨해지다가 했는데 너무 가늘어져 끊어질 것 같으면서도 끊어지지 않았고 끝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 끝에 아이가 있다는 확신이 손아귀에 전해지고 있어서 안심했다.
   어쨌든 나는 계속 올라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시간도 알 수 없고 공간도 알 수 없게 되었을 만큼 올라갔다. 아까 지났던 층을 방금 또 지난 것 같기도 했고 이건 분명 아까 봤던 벽난로인데, 머리빗인데, 냄비 뚜껑인데 하는 생각을 서너 번쯤 했을 무렵 갑자기 내 발은 쑤욱 들어가는 푹신한 바닥을 밟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는 커다랗고 텅 빈 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한쪽 벽이 유리로 되어 있고 회색 등받이가 달린 의자가 유리 벽을 바라보며 세 줄로 죽 늘어서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곳 같은데, 하며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찾았지만 한눈에도 그런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가 꼭대기로군. 나는 일단 의자에 앉아서 좀 쉬기로 했다. 다리가 아팠고 배도 고팠다. 의자가 유리 벽을 바라보고 있어서 의자에 앉은 사람은 자연스레 유리 벽 너머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런 모양이었는데 그래서 나도 유리 벽 너머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제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이곳은 공항, 혹은 공항처럼 생긴 공간이었다. 그런데 공항치고는 비행기가 하나도 없네, 생각하자마자 조그맣고 하얀 비행기 한 대가 멀리서 활주로를 미끄러져 달려와 섰다. 그와 동시에 어딘가에 있는 스피커에서 친절하고 명료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한행 비행기, 지금 탑승하겠습니다. 나는 누가 무한에 가나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여기에는 손에 방울 달린 끈을 둘둘 감고 있는 나 혼자뿐 아무도 없었다. 그 끈을 보니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가 퍼뜩 생각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곳이 공항이라면 인포메이션 센터 같은 곳이 있을 것이고 거기에 방송을 부탁하면 되겠지, 하고 걷기 시작했는데 이 공항은 벽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기묘한 공간, 그래 마치 우주, 처럼 걸으면 걷는 방향대로 쭉쭉 길어지고 넓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좀 불안해져서 저기요, 아무도 없어요, 같은 무의미한 말을 중얼거렸다. 그래도 아무도 무엇도 나타나지 않아서 결국엔 끈을 잡아당겼다. 줄다리기를 하듯 한참 잡아당기자 그 끝이 무언가에 툭, 걸리는 느낌도 들고 때로는 뭔가에 제대로 엉킨 듯 아무리 당겨도 당겨지지 않고 하더니 결국 멀리서부터 구불구불 헤엄치며 아이가 왔다. 물풀이라도 뜯어먹은 듯 입가에 푸른 물이 들어 있는 아이는 잘 놀고 있었는데 내가 산통을 깼다는 듯 부루퉁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내가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봐, 하고 말하자 어딘가로 꿈틀꿈틀 헤엄치기 시작했는데 아이를 따라가자 거기에는 데스크가 있었고 남색 정장에 남색 모자를 쓴 예쁜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자가 물었고 나는 손에 쥔 끈과 끈 끝에서 미끈거리고 있는 아이를 들어보이며 미아 방송을 좀 했으면 하는데요, 라고 말했다. 여자는 아이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고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리고는 데스크 밑에서 주먹만한 마이크를 꺼냈는데 나는 그것이 백화점 전체에 들리도록 방송을 할 수 있는 그런 마이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고 왜냐하면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마이크의 전원을 켜더니 입을 딱딱 벌리며 우리 백화점의 로고 송을 단 한 번의 음 이탈도 없이 완벽하게 부른 뒤
   “물고기를 닮은 남자아이를 데리고 있습니다. 이 아이의 보호자께서는 지금 즉시 인포메이션 센터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하고는 마이크를 껐다.
   그리고는 이제 됐냐는 듯이 나와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는 고맙다는 뜻으로 눈인사를 했고 그런데 저는 일 층에 있는 모자 매장에서 왔는데요, 지금 매장을 다른 사람한테 맡겨 둔 채라서, 혹시 이 아이 좀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 쭈뼛거리며 말하니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아마도 그래도 된다는 뜻이겠지, 데스크 주변을 살펴보니 마침 철사로 사람 모양을 대충 얽어놓은 기묘한 조형물이 하나 눈에 띄었다. 거기다 방울 달린 끈을 묶어놓자 아이는 붙잡힌 풍선처럼 제자리에 얌전히 둥둥 떠 있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가려고 했는데 내려가는 길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여자에게 길을 묻기도 민망했고 무작정 가면 뭔가 나타나겠지 싶은 느낌이라 그냥 쭉 앞을 향해 걷기로 했다.
   걷기로 하고 나서 얼마나 걸었을까 이 공항은 점점 길어지는 것 같은데 어디까지 길어질지 과연 끝, 혹은 더이상 길어지지 않는 지점이 나타날지 아니면 계속 영원히 길어지기만 할지 나는 오기가 생겨 될 대로 되어라 생각하고 계속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걷고 왼발 앞에 오른발 오른발 앞에 왼발 그렇게 지구 반 바퀴는 돌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걷고 나자 나는 어느샌가 낯익은 장소에 와 있었는데 조금 어색한 기분으로 두리번두리번 돌아보니 이곳은 아무래도 내 방인 것 같았다. 킁킁 냄새를 맡자 어젯밤 먹고 그대로 내버려 둔 오징어 짬뽕 냄새며 아침에 발랐던 선크림 냄새가 나는 걸 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렇다면 오늘 근무는 여기서 끝인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오래 걸어 다리가 퉁퉁 부었으니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자, 하고 생각하고 침대에 누웠다.
   아이는 그 뒤로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 아이는 지금도 인포메이션 센터 옆의 기묘한 조형물에 묶여서 무한행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걸 구경하고 있을까 아니면 진짜 엄마가 데려갔을까 그렇다면 개를 키우게 되었을까 아닐까 가끔 생각하다가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다. 가끔은 모자를 사 갔던 손님들이 다시 돌아와 말한다. 이거 환불해주세요. 그러고는 죽은 동물의 사체를 건네주듯 모자를 내미는 것이다. 나는 원체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게 질색이라 되도록 군말 없이 환불을 해 주는 쪽을 택하는데 정말 심각한 상태의 모자를 가져오는 손님도 종종 있었다. 진흙투성이가 되었다든가 시든 게발선인장 꽃잎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든가 해서 진이 쪽 빠지고 녹초가 된 모자를 가져오는 손님들 말이다.
   이런 손님은 오성진의 구두 매장에도 물론 있는데 어제는 한 남자가 앞코에 커다란 갈색 얼룩이 생긴 가죽구두 한 켤레를 가져와 환불을 해 내라며 으름장을 놓는 것을 보았다. 오성진이 이 얼룩은 무슨 얼룩이냐고 묻자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자기도 모른다고 대꾸했다. 그렇다면 얼룩이 저절로 생겼다는 말씀이신가요, 오성진이 정중하게 되물었는데 남자는 오성진이 정중한 만큼 화를 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아 글쎄 나도 모른다니까 저절로 생겼어 그런 얼룩이. 나는 마침 매장에 손님도 없고 해서 오성진과 남자가 실랑이하는 광경을 구경했다. 그 구두는 오성진과 남자의 손을 왔다 갔다 하며 표면에 생긴 얼룩을 검사당하고 있었다. 만일 구두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분명 수치스러워, 날 그렇게 바라보지 마, 하고 중얼거렸겠다 싶었는데 과연 구두는 점점 쪼그라들더니 끝내는 유치원생이나 겨우 신을 수 있을 만한 크기로 작아지고 말았다. 그러자 남자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거봐, 이런 걸 어떻게 신어. 결국 오성진은 가격표도 영수증도 없는 그 구두를 꼼짝없이 환불해 주고야 말았다. 오성진은 그 구두를 얇게 베어낸 침묵에 둘둘 말아서 아무도 보지 않는 그늘에 갖다 놓았다. 구두들은 혼자 있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제 크기로 돌아온다는 게 오성진의 설명이었는데 과연 몇 달이 지나고 침묵을 들추어보니 구두는 고등학생용 정도 크기로 늘어나 있었다.
   모자에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모자는 구두보다 훨씬 섬세한 물건이기 때문에 한 번 줄어들면 어지간해서는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 물건은 애초에 환불해 주지 않는 게 상책이지만 예전에 한번은 이런 일이 있긴 했다. 아줌마 한 사람이 와서는 모자를 내밀며 환불, 하고 짧게 말했는데 그 모자는 지난주에 우리 매장 단골인 멋쟁이 할머니가 사 갔던 반짝이는 검은 털모자였다. 모자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묻자 아줌마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우리 시어머니가 사 간 건데 몇 번 써보지도 못하고 죽었어 어제. 물론 그게 환불을 해 줄 타당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사람이, 그것도 단골 손님이 죽었다는데 거기다 대고 환불 규정이니 뭐니 따지기도 참 민망한 노릇이라 나는 일단 모자를 받아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모자는 이미 자신이 쓸모를 잃었다는 것을 직감한 상태였고 모자라기보단 검은 털실 주머니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나는 모자를 아줌마에게 보여주며 이런 상태로는 환불이 어렵습니다, 라고 말했는데 아줌마는 의외로 그럴 줄 알았는데 그냥 입이나 한 번 떼어본 거였다는 듯이 그럼 반만이라도, 하고 응수해왔고 나는 모자 값의 반액을 내 지갑에서 꺼내 건네주고 아줌마를 보냈다.
   그래서 내게는 용도 불명의 반짝이는 검은 털실 주머니가 하나 생긴 셈이었는데 이 주둥이에 끈을 꿰어서 소지품을 담으면 참 좋을 것 같다, 현관문에 걸어두고 차키나 집 열쇠를 넣어 둘까 고민하면서 그놈을 만지작대고 있자니 문득 그보다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그걸 집에 가지고 가서 소파에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슬슬 쓰다듬어주거나 데운 우유를 조금씩 먹여 주었다. 그러면 그것은 나른하게 하품을 하거나 바닥으로 툭 떨어지거나 했는데 결코 다시 모자의 모양으로 돌아오지는 않았고 주머니로써의 쓸모도 없었지만 집에 그런 것쯤 하나씩 두면 그런대로 귀여워서 만족했다.
   하루는 오성진에게 이 털주머니 이야기를 하자, 오성진이 자기도 그런 것이 하나 집에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성진의 어린 아들을 위해서였다. 아이는 개를 기르고 싶어 하는 반면 오성진의 아내는 개를 싫어한다고, 털이 날리고 똥을 아무 데나 싸는 것도 싫지만 그 꾹 다문 입으로 자기를 바라볼 때면 너무 싫어서 소름이 끼친다는 거였다. 아이가 매일같이 개 타령을 하며 제 엄마와 싸우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나. 나는 오성진에게 조만간 괜찮은 털주머니 하나를 꼭 구해다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침 그로부터 며칠 뒤, 거의 골무만큼 줄어든 모자 하나를 손에 넣게 되었다. 나는 그걸 오성진에게 주었다. 가끔 물을 먹이고 어두운 곳을 만들어 줘, 말하자 오성진은 수첩을 꺼내 꼼꼼히 받아 적었다.
   다음날 오성진은 내게 자기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둔 아이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털주머니를 껴안고 있는, 귀엽지만 어딘지 물고기를 닮은 납작한 남자아이의 사진이었다.
   “아이도 좋아하고 아내도 좋아해. 그런데 이거 가끔씩 깨물더라.” 과연 오성진의 손등에는 조그맣게 깨물린 자국이 있었다.
   “저런, 우리 집 건 안 무는데.” 나는 왠지 미안해졌다.
   “괜찮아, 버릇을 잘 가르치면 되겠지.” 오성진이 손등을 문질렀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잊고 있었다, 오성진에게 털주머니를 주었던 일을. 사실 우리 집에 털주머니가 있다는 것도 거의 잊어버렸는데 그도 그럴 것이 털주머니는 털이 날리지도 않고 똥도 싸지 않고 꾹 다문 입으로 날 바라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털주머니를 소파 밑이나 변기 뒤쪽 같은 곳에서 우연히 마주치곤 아 저거 저기 있었군 생각했고 생각하는 것에 그쳤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였다. 오성진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가 생각했는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타나지 않았다. 구두 매장에는 뚱한 얼굴을 한 아르바이트생이 대신 일을 했는데 말을 붙여도 도통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데다 구두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라서 손님들이 짜증을 내며 그냥 가버리곤 했다. 그 아이는 내가 오성진에 대해 물어보자 전혀 아는 것이 없다는 얼굴로 하지만 그분이 돌아오면 제가 일자리를 잃게 되니 돌아오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대답했다.
   아르바이트생 아이의 바람대로 오성진은 그 뒤로 한 달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는데 내가 그 아르바이트생과 눈인사 정도는 주고받게 되었을 즈음의 어느 날 개점 시간에 수척하고 파리한 얼굴로 구두 매장 앞을 쓸고 있는 오성진을 보았다. 나는 꼭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오성진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지만. 뭐야, 그동안 어떻게 된 거야, 하고 반갑게 물었는데 오성진이 힘없이 말했다.
   “아이가 없어졌어. 아내도 같이.”
   알고 보니 내가 오성진에게 선물했던 털주머니가 문제였다. 오성진의 아이와 아내는 합심해서 털주머니를 애지중지 돌보았고 애초 골무만했던 털주머니는 쑥쑥 자라 복주머니만해지고 장바구니만해지고 쌀자루만해졌다가 끝내는 텐트만해져서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일 수도 없었고 산책에 데리고 나갈 수도 없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털주머니가 커질수록 아이와 아내는 기뻐하고 대견해했고 그럴수록 털주머니는 기고만장해져서 더욱 자주 그들을 깨물곤 했는데 한번은 살점이 뜯겨 피가 날 정도로 깨문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와 아내는 계속 털주머니를 보살폈고 그러다가 털주머니는 아내와 아이 둘만의 암호 같은 것이 되어 오성진이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둘이 털주머니 속에 들어앉아 뭐라고 저들끼리만 아는 말로 소곤소곤하다가 뚝 그친다거나 하는 일도 있게 되었다. 오성진은 그깟 털실로 짠 주머니에게 신경을 쓰는 것도 꼴이 우스워지는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와 아내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오성진이 찾아낸 것은 거실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다시 골무만큼 작아진 털주머니뿐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고 메모도 한 장 남기지 않았는데 오성진은 그들이 갈 만한 곳은 전부 찾아다녔고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아무 소득도 없었다고 했다.
   “나는 털주머니가 아이와 아내를 데려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해.”
   그러면서 오성진은 주머니에서 털주머니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아보였다. 나는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 털주머니는 엄지손톱만하게 줄어들어 이제는 주머니가 아니라 무언가의 뚜껑 같아 보였다. 억지로 좁은 틈을 벌리려고 하자 털주머니는 내 손을 깨물려고 들었다.
   “잘 돌보려고 해, 아내와 아이가 다시 돌아나올 수 있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커져야 할 테니까.”
   오성진이 털주머니를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런데 넌 모자를 파는 사람이니까, 혹시 아니,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나는 이전에 오성진이 서 있던 자리에 서서 내 질문에 대답했던 아르바이트생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몰라.
   오성진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평소처럼 나는 모자를 팔고 오성진은 구두를 팔다가 각자의 집으로 퇴근을 했고 집에 도착해서는 오랜만에 내 털주머니는 어디 있나 찾아보았더니 글쎄, 옷장에 들어가서는 옷을 죄다 쏠아놓은 것이었다.
   오성진의 아이와 아내는 결국 해가 바뀌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오성진은 점점 마르고 수척해지더니 끝내는 철사로 사람 모양을 엮어놓은 기묘한 조형물처럼 변해 버렸다. 그래도 오성진은 계속 구두를 팔고 나는 모자를 팔았는데 이천십구년의 마지막 날에도 오성진은 구두를 팔고 나는 모자를 팔고 있었다. 일월 일일은 백화점이 쉬는 날이었으므로 점심에는 구내식당에서 굴떡국이 나왔고 오성진은 김치를 찢다 말고 한참 내 머리통 뒤를 바라보았는데 대체 뭘 보는 건가 싶어서 돌아보니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밥을 먹고 나서 오성진이 내게 줄 것이 있다고 하며 나를 구두 매장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보통은 손님들이 앉는 둥근 가죽 의자에 앉아 기다리니 오성진이 판매대 안쪽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뭔가를 꺼내왔다. 이게 뭐야, 물으니 새해니까, 하고 대답했다. 오성진이 건네준 그것은 얇게 베어낸 침묵으로 곱게 포장까지 되어 있는 본격적인 선물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테이프를 떼어냈고 침묵 속에서 납작한 상자를 끄집어냈다. 열어 보니 손바닥만한 공책이 들어 있었다. 어머, 예쁘다, 하며 팔락팔락 넘기자 새 종이와 침묵의 냄새가 났다. 오성진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새해니까, 너도 이런 것 하나쯤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모자 매장으로 돌아와 핸드백 안에 그 공책을 잘 넣어두었고 일하는 내내 잊어버리고 있다가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핸드백이 평소보다 무겁다는 생각을 했고 공책을 다시 꺼냈다. 펜을 찾느라 한참이 걸렸고 펜을 찾아내서 밥상 위에다 공책을 놓기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공책은 내지가 도탑고 반짝이는 재질의 예쁜 물건이었다. 책등 부분에는 무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문구가 영문 필기체로 적혀 있었다. 오성진, 무한에 다녀왔구나. 그렇다면 혹시 거기서 아내와 아이를 만났을까. 나는 무한을 모르고 가 본 적도 없지만, 무한이라는 곳에서 오성진과 오성진의 아내와 아이가 극적으로 상봉하는 장면을 상상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들은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지, 무한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곳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나는 공책의 맨 앞장을 펴고 자아, 이제 무엇을 적을까, 하고 괜히 소리내어 말을 했다. 아무래도 새해니까 새해의 다짐 같은 걸 적으면 어울리지 않을까. 나는 작살로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처럼 펜을 꼬나들고 흰 종이를 노려보다가 최대한 예쁘고 또박또박한 글씨로 이렇게 썼다. 이천이십년의 목표, 손톱 물어뜯지 않기. 그러고는 더이상 생각이 나지 않아 ‘손톱 물어뜯지 않기’ 밑에 밑줄도 쭉쭉 그어보고 별 표시도 반짝반짝 그리고 하다가 펜을 던져 버리고 말았다.

이유리

올해 등단한 햇병아리 소설가. 현실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사건을 좋아함. 목표는 유튜브보다 재미있는 소설 쓰기, 소설에는 ‘5초 앞으로 넘기기’가 없으므로.

2020/03/31
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