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씨가 한국에 들어와 병원을 찾았을 때 옥자씨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다 오빠 탓이야! 이게 다 오빠랑 새언니 탓이라고!
   수진씨는 수혁씨와 그의 아내를 향해 막말을 쏟아내며 울었다. 때 이른 사별을 딛고 혼자서 자신의 유학까지 도맡아준 옥자씨가 의식이 없으니 그럴 만했다. 손자 둘의 육아를 거의 독박하다가 쓰러졌다고 했다. 넘어지면서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했다. 갈비뼈에 금이 간 줄로만 알고 검사를 했다고 했다. 뼈에 금만 가도 예사로운 상황은 아닌데 옥자씨는 자궁암 진단을 받았다.
   우리 엄마 살려내!
   흥분한 딸의 목소리 때문인지 옥자씨는 정신을 차렸고 수진씨를 보자 다시 정신을 잃을 것처럼 놀랐다. 암은 다행히도 다발성이 아닌 데다 초기여서 원한다면 외래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 말에 수혁씨 내외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눈으로 대화를 이어갔고, 그 대화가 얼마나 비겁하고 무책임한 종류의 것일지 짐작한 수진씨는 결심했다. 휴학을 하고 자신이 옥자씨를 돌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각오하고 온 수진씨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수혁씨가 넌지시 던진 입원 치료나 요양보호사 등의 제안은 수진씨에게 먹히지 않았다. 수진씨가 알기로 옥자씨는 사회성도 사교성도 없는 사람이었다. 치매가 아닌 이상 타인의 병구완이 기껍지 않을 게 분명했다. 수진씨는 비로소 자신이 옥자씨에게 보답할 때라고 생각했다. 처음이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병원에 다녀가는 길이면 수진씨는 옥자씨와 점심을 사 먹었다. 콩국수, 순대국밥, 비지찌개. 수진씨가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을 옥자씨는 맛있게 잘 먹었다. 그러고 보니 식당에서 옥자씨와 마주앉아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었다. 수진씨는 자신이 어릴 때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했던 옥자씨가 너무 바쁘지 않았나 하고 이유를 대본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주말이면 외출을 하자고 떼를 쓴 건 수진씨나 수혁씨가 아니라 옥자씨였다. 수진씨는 공부를 핑계로, 수혁씨는 친구를 핑계로 옥자씨와 밥을 먹어주지 않았다. 옥자씨는 늘 혼자 밥을 먹었을 것이다. 옥자씨의 말은 ‘밥 먹자’에서 ‘밥 먹어’로 바뀌었고 점점 함께하는 것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밥을 먹던 옥자씨가 갑자기 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섰다. 치료를 받으면서 힘든 것 중 하나가 배뇨 조절이 안 되는 거였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수진씨가 손으로 화장실을 가리켰다. 옥자씨는 화장실 근처에서 서성이더니 비상구로 들어갔다. 잠시 후 비상구 문을 열고 들어온 옥자씨가 멋쩍게 웃으며 바로 옆 화장실 문을 열었다. 수진씨는 초록색의 비상구 팻말을 바라보았다. 비상구는 빨아들이는 블랙홀일까, 뱉어내는 화이트홀일까. 옥자씨의 세상은 어느 쪽일까. 정성껏 빨아들이고 죽을힘을 다해 내뱉어 자식을 얻은 자리에 암이 생겼다. 그것을 옥자씨는 빨아들일까, 뱉어낼까.
   수진씨는 이참에 옥자씨가 육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치료하느라 고생한 옥자씨도 이제는 오빠의 아이들을 돌봐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옥자씨에게 필요한 건 경제적, 정신적 자립이었다. 수진씨는 옥자씨가 완전히 회복하면 옥자씨 스스로 먹고살 만한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뼈와 근육이 시원찮으니 일단 힘쓰는 일은 무리다. 이렇다 할 경력이 없으니 남의 돈 받는 일도 무리다. 그렇다면 옥자씨 혼자 할 수 있는 창업이 가장 좋겠다. 엄마가 무엇을 좋아했었지? 엄마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었지? 수진씨는 질문지를 만들어 밤낮없이 고민했다. 자신의 미래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놓고 깊게 생각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수진씨는 옥자씨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혹시 취미나 직업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옥자씨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노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래? 그러고 보니 옥자씨는 노래를 참 잘했다. 전국 노래자랑에 나가서 최우수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때 송해 아저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 아직도 냉장고에 붙어있다. 오래전 옥자씨의 남편이 살아있을 때 일이다. 노래라…… 크게 힘이 들지도 않고, 본인이 좋아하면서 잘하는 조건에는 들어맞았지만, 노래로 먹고살 만한 일이 과연 있을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옥자씨는 일단 노래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했다. 생각보다 적극적이었다. 옥자씨는 늙은 성인가요 작곡가의 개인 사무실에서 보컬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문화 센터 창업 교실에도 등록했다. 옥자씨는 노래를 시작하면서 건강과 활력을 되찾아 가는 것 같았다. 살이 차오르고 피부에도 윤이 났다. 무엇보다 표정이 환해지면서 훨씬 젊어진 느낌이었다. 그동안 노래 안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흠뻑 빠져들었다. 병원에서도 경과가 좋다고 했다. 노래가 옥자씨 인생에 봄을 가져다줄 것 같았다.
   옥자씨가 노래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수혁씨 부부는 만류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자신의 인생을 찾겠다는 옥자씨 앞에서 다시 육아를 맡아달라고 부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혁씨는 그동안 애쓰셨다며 옥자씨가 노래를 배울 수 있게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었다.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옥자씨에게 수업 의뢰가 들어왔다. 작은 여성 센터에서 진행하는 무료 수업이었다. 평일 하루였지만 옥자씨는 아이처럼 신이 났다. 수진씨가 알기로 옥자씨는 그런 일을 잘 해낼 사람이 아니었다. 의외로 옥자씨의 노래 교실은 승승장구하여 대형 마트 문화 센터에서도 수업 의뢰가 들어왔다. 옥자씨는 바빠졌지만 바빠서 행복해 보였다. 수진씨는 이제 자신이 없어도 되겠다 싶어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모두가 그렇게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며 안부를 묻는 것으로 가족의 역할을 다했다.

   수진씨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건 일 년 육 개월이 지난 무렵이었다. 아직 해야 할 공부가 남아 있었고 학기 중이었지만 수진씨는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들어온 옥자씨는 기별 없이 날아온 수진씨를 보고 기절할 듯 놀랐다. 정확히 말하면 수진씨가 아니라 수진씨가 움켜쥔 배를 보고 놀랐다. 그 잘난 딸이, 미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에 간 자랑스러운 딸이 당장 해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부른 배를 안고 왔다. 수진씨는 한 달 뒤 딸을 낳았다.
   수진 씨는 계획한 대로 조리원에 들어갔다. 집에서 산후조리를 해주겠다는 옥자씨를 한사코 거부했다. 산후조리는 원래 친정엄마가 해주는 거라며 만만찮게 고집부리는 옥자씨를 기어이 돌려보냈다. ‘친정엄마는 무슨…… 결혼도 안 했는데 친정이 다 뭐야…….’ 수진씨는 ‘엄마’와 ‘친정엄마’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했다. 조리원에는 엄마가 된 여자들의 엄마들로 북적였다. 엄마가 된 여자들의 엄마들은 엄마 같은 말만 했다. ‘나’는 없고 ‘너’만 있는 문장들. 엄마가 된 존재들만 구사하는 화법. 엄마라는 단어는 엄마도 아닌데 왜 엄마 같은 느낌을 주는 걸까? 수진씨는 자꾸만 엄마라는 단어가 신경 쓰였다. 자신이 그런 화법을 배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수진씨는 조리원에서 보름 동안 지내다가 옥자씨 집으로 돌아왔다.
   애초부터 수진씨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도와주면서 혹은 도와주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안쓰러워할 마음들을 거부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들은 타인이든 가까운 사람이든 마찬가지였다. 도움을 받는 대신 모든 수모를 견디어라! 도움을 주는 대가로 네 인생을 욕할 자격도 주어라! 어린 나이에 혼자 날아간 미국에서 미국인처럼 살게 되기까지 수진씨가 감당했던 타인들의 비정함은 오기로 얼룩진 자존심만 키웠다.
   수진씨는 매번 옥자씨의 도움을 거절했다. 모든 걸 혼자 다 했다. 원인 모를 고열에 숨넘어가는 아기를 안고 십년감수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주일 치 샤워를 한꺼번에 해야 할 때면 욕실 앞에 아기를 재워두고 벌서듯 몸을 씻었다. 젖몸살이 심해 브래지어조차 두르지 못한 채 젖이 티셔츠 너머 줄줄 흐르는 걸 방치해야 했다. 밥을 한 숟가락 떠 넣으면 아기가 울었다. 오줌을 싸고 있으면 아기가 울었다. 까무러쳐 잠든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아기가 울었다. 아기는 울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계속 울었다.
   수진씨도 울었다. 새벽만 되면 젖몸살이 너무 심했다. 직수해도 안 빠지고 오물쪼물 주물러도 안 빠지고 속절없이 아프기만 했다. 저 알아서 키워보겠다는 딸의 고집을 지켜보던 옥자씨도 자신의 딸이 괴로워하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늦은 밤 수진씨의 방문을 열어본 옥자씨의 눈에 양쪽 가슴을 쥐고 잠든 딸이 들어왔다. 식은땀을 닦아내는 젖은 수건의 감촉에 수진씨가 눈을 떴다. 수진씨의 눈에 옥자씨가 보였다. 옥자씨의 눈에 수진씨가 맺혔다.
   엄마, 가슴이 너무 아파.
   수진씨가 잠이 덜 깬 아이처럼 울먹였다.
   그래. 알아, 알지.
   엄마들은 다 안대.
   엄마들은 다 알지.
   식은땀을 닦던 수건은 수진씨의 머리카락도 닦고, 수진씨의 손과 발도 닦고, 수진씨의 눈물도 닦아내었다. 그사이 수진씨는 잠이 들었다. 그날 밤 수진씨는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오후가 될 무렵 일어난 수진씨는 아기가 보이지 않자 기겁하여 거실로 뛰어나왔다. 거실 한 가운데 누워있는 아기는 물고기 모양의 모빌들을 바라보며 손발을 버둥거리고 있었다. 안심하는 순간 수진씨는 자신의 상체에서 하나둘 떨어지는 이파리들을 보았다. 엄마야! 놀란 수진 씨가 몸을 탈탈 털어냈다. 부엌에 있던 옥자씨가 달려나왔다.
   으악! 이게 뭐야?
   옥자씨는 딸의 꼴을 보고 키득키득 웃기만 했다. 옥자씨는 꽁꽁 얼린 수건으로 밤새 수진 씨의 젖몸살을 풀어주었다. 냉동한 양배추를 엽전 모양으로 잘라 수진씨의 양쪽 젖무덤 위에 올려주었다. 잘려나간 양배추 잎들은 그러모아 겨드랑이 사이에 넣어주었다. 식어서 흐물흐물해지면 다시 언 양배추로 갈아주는 일을 여러 번 했다. 사실을 알고 난 수진씨는 멋쩍게 웃으며 꾸덕꾸덕해진 양배추들을 떼어냈다. 온몸에 기운이 도는 듯했다.
   오늘은 수업 없어?
   홍합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 미역국을 떠먹으며 수진씨가 물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갈치를 발라 수진씨 밥그릇에 올려놓던 옥자씨는 일주일에 삼 일로 스케줄을 줄였다고 말했다. 시립 문화 센터는 스케일은 크지만 강사에게 요구하는 게 너무 많아 피곤하다고 했다. 어차피 그쪽과는 재계약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며 갈치 살을 계속 발랐다. 수진씨는 두툼한 갈치 살이 밥그릇에 오르기 무섭게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아기가 울자 옥자씨가 가서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수진씨는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샤워를 한 수진씨가 소파에 드러누웠다. 조리원에서 보던 소설책을 펼쳤다. 한껏 여유로웠다. 수진씨에게 독서는 공부일 뿐 문학은 시간 낭비였다. 한때는 사치라고 생각되는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여유로운 게 좋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수혁씨는 양손에 사내아이들을 달고 왔다. 아이들만 집안으로 들여보낸 수혁씨는 현관에 서서 장모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했다.
   아이고 좀더 사시지. 아이고 아이고.
   소식을 들은 옥자씨는 ‘아이고’를 연발했다. 의사 표현을 명확하게 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툭 튀어나오는 감탄사들. 돌심보를 들키지 않으려는 속임수의 단어들. 상황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요망한 말.
   수혁씨의 장모는 수혁씨가 자신의 딸과 연애할 때부터 반대했었다. 심지어 상견례 자리에서도 여전히 결혼을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히며 모두를 불편하게 했다. 남편의 빈자리가 무색하리만치 잘 키운 아들딸이 옥자씨에겐 자랑이었지만, 사돈은 ‘그 점이 딱’ 거슬린다고 했다. 얼마나 악착같이 살았을까, 쯧쯧. 수진씨는 이해되지 않았다. 악착같이 사는 게 잘못된 것일까? 악착같이 키운 자식이 왜 불편한 걸까? 수혁씨는 반대를 무릅쓰고 악착같이 결혼했다. 수진씨는 망자의 탐스러웠던 머릿결을 떠올리며 악착같이 살지 않아서 빨리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혁씨는 어린 아들 둘을 남기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고요했던 집안이 난장판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옥자씨는 사내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치우고 닦거나 닦이느라 하루를 보냈다. 그 와중에 수진씨의 아기가 보채면 슈퍼맨처럼 날아갔다. 수진씨는 능숙하게 세 아이를 관리하는 옥자씨를 바라보며 저런 일이 천직인 사람도 있을까 생각했다.

   아기를 데리고 예방 접종을 다녀온 수진씨에게 전화가 왔다. 학교였다. 저쪽에서 expel 따위의 단어를 뱉었다. 직전 학기 평점이 엉망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수진씨에겐 그럴 만한 성적이었다. 휴학을 반복하고 유급까지 받은 수진씨에게 학교 측은 관대하지 않았다. 미국의 학사 경고는 한국의 그것과 비교하면 매우 불길한 징조다. 수진씨는 불안했다. 수진씨 인생의 성취랄 것들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옥자씨는 주 삼일만 하겠다던 문화 센터 강의를 다시 이틀로 줄였다. 학교에서 연락을 받은 뒤로 수진씨가 산후우울증과 같은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옥자씨가 없을 때 수진씨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지 않는 것 같았다. 옥자씨가 집으로 돌아와 보면 아기는 제 있는 힘을 다해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옥자씨가 다그치면 수진씨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는 말만 반복했다. 유축기로 모유를 저장하려는 옥자씨를 밀치며 짜증을 냈다. 하는 수 없이 옥자씨는 분유를 탔다.
   수혁씨는 옥자씨 집에 올 때마다 수진씨가 못마땅했다. 수혁씨는 자신의 아이들을 봐주지도 않는 옥자씨에게 육아비만큼의 돈을 꼬박꼬박 입금하고 있었다.
   저 알아서 키운다더니 이게 무슨 꼴이야!
   수진씨는 대꾸하지 않았다. 옥자씨도 그런 아들을 나무랄 명분이 없었다. 돈은 꼬박꼬박 수혁씨한테 받고 수진씨의 아이만 봐주고 있는 상황이 늘 미안했다. 수혁씨는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육아비라도 줬지. 저 계집애는 뭐야! 공짜로 먹고 자고 일도 안 하면서 애는 엄마한테 맡기고! 산후 우울? 어디서 배부른 짓이야!
   수혁씨는 간밤 쌓아놓은 쓰레기를 버리듯 맺힌 말들을 버리고 돌아갔다.
   수진씨의 우울증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걸핏하면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다. 자고 일어나도 아기한테 관심이 없었다. 아기가 울면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옥자씨는 딸도 안쓰럽고 딸의 딸도 안쓰러웠다.
   평일 오후 자다 깬 수진씨가 옥자씨의 메모를 발견했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아기를 데리고 출근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시끄럽게 노래하는 곳에 갓난아기를 데리고 갔다는 게 화가 난 수진씨는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문화 센터로 향했다.
   이미 수업이 한창인 강의실에는 중년에서 노년 언저리에 사는 여자들로 가득하였다. 손에 마이크를 든 옥자씨가 한 소절씩 노래하면 사람들이 그 소절을 따라 불렀다. 중간중간 반주를 커트시키며 아줌마들이 좋아할 만한 농담을 섞어 분위기를 고조시키곤 했다. 옥자씨는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그런 상황이 즐거운 듯했다. 수진씨가 기억하는 옥자씨는 얌전하고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생소한 옥자씨의 모습에 넋을 잃었던 수진씨. 그녀의 눈에 아기가 들어왔다. 아기는 강의실 앞쪽 귀퉁이에 있었다. 요람기에 누워서 뭐가 좋은지 손발을 허공에 버둥대며 입을 오물거렸다. 다시 반주가 시작되었고 옥자씨의 노랫소리가 마이크 앞에서 크게 울렸다. 수진씨가 무대 위에 난입해 옥자씨의 마이크를 빼앗았다.
   내 아기 병신 만들려고 그래?
   옥자씨는 당황했고 수강생들은 숙덕거렸다. 분위기를 환기할 요량으로 옥자씨는 껄껄 웃으며 농담을 날렸다.
   제가 말한 그 딸내미가 얘예요. 교과서만 봤는데 명문대학 수석으로 갔다는 그 전형적인 아이 말이에요. 하하하.
   강의실이 순식간에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제 새끼 찾으러 온 모양……
   그만해!
   옥자씨가 다시 멘트를 날리려는 순간 마이크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수진씨가 옥자씨의 마이크를 집어던진 것이다.
   수진씨가 더 화가 난 까닭은 옥자씨의 눈에서 분노가 아닌 슬픔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지 않는 옥자씨. 음주운전으로 남편을 죽인 그 살인마한테도, 대놓고 자신을 무시했던 사돈 앞에서도, 여행이다 뭐다 심심하면 손자를 맡기고 사라지던 아들한테도, 미국에서 배불러 들어온 딸한테도 옥자씨는 화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단 한 번도 누구 자식이냐 묻지도 않았다. 그것이 배려인지 모르겠지만, 옥자씨가 묻지 않아서 수진씨는 실수가 아니었다는 변명도 하지 못했다. 옥자씨의 방식 따위 알고 싶지 않다. 수진씨는 옥자씨의 눈에서 자기연민으로 반짝거리는 자신을 보았다. 수진씨는 바둥바둥 혼자 잘 노는 아기를 들쳐 안고 강의실을 나왔다.
   퇴근한 옥자씨가 집에 돌아왔을 때 수진씨는 식탁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기는 거실에서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옥자씨가 또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아기 울음이 뚝 끊겼다. 수진씨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술만 들이켰다. 어느새 잠든 아기를 방에 두고 나온 옥자씨가 수진씨 앞에 앉았다. 옥자씨는 아무 말 없이 수진씨만 쳐다보았다. 그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담백한 표정으로, 어떤 얘기가 총알처럼 튀어나와도 다 받아낼 총알받이처럼, 묵묵히 수진씨를 눈에 담고 있었다. 곧 엄마 같은 말들이 쏟아질 순서였다.
   수진씨는 수업하던 옥자씨를 떠올리는 중이었다. 옥자씨가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서른하나에 사별, 남은 아들과 딸, 생긴 손자와 손녀. 그러나 옥자씨는 짜지도 맵지도 싱겁지도 않게 살았다. 그래서 썩 불행해 보일 때도 대단히 행복해 보일 때도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던 옥자씨는 삶에 진심인 여자처럼 보였다. 그 순간 수진씨는 자신이 옥자씨를 위해 만들었던 질문지를 떠올렸다. 엄마가 무엇을 좋아했었지? 엄마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었지? 그 질문들이 별안간 자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수진씨는 답을 알고 있었다. 답을 알고 있는 게 더 잔인한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옥자씨는 수진씨의 고운 손 위에 자신의 거친 손을 얹었다. 결국, 옥자씨는 엄마 같은 말을 하고야 말았다.
   가도 괜찮아.
   수진씨가 참아왔던 눈물을 퍼부었다. 옥자씨의 말이 자신의 눈물 속에서 꼼짝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울었다. 옥자씨는 수진씨 옆으로 가 울고 있는 딸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울지 말고 가. 엄마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수진씨는 생각했다. 울면서 생각했다. 옥자씨는 왜 이렇게 씩씩할까. 뭘 믿고 다 괜찮다고 말하는 걸까. 엄마도 없는 주제에. 엄마 같은 말을 해 줄 엄마도 없는 주제에.

   옥자씨는 수진씨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천만 원이었다. 수진씨는 받을 수 없었다. 옥자씨는 오빠가 주는 거라는 말을 보탰다. 수진씨 눈이 동그래졌다. 오빠라는 건 그런 거라고 옥자씨가 말했다. 엄마라는 건 이런 거라는 말로 들렸다. 수진씨는 물끄러미 봉투를 바라보았다. 기숙사 문제가 해결될지 미지수였다. 장학금도 물건너갔다.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당장 생활비가 없었다. 무작정 편도 비행기 표만 끊었다. 가고 싶었다. 옥자씨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가야 했다. 수진씨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가야 했다. 수진씨는 봉투를 집어넣었다.
   택시 타고 가겠다는데 수혁씨가 기어코 데리러 왔다. 수혁씨가 운전하는 차가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수속을 마칠 때까지도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항공기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자 수진씨는 수혁씨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고맙다고. 수혁씨는 수진씨 말에 별다른 응대를 하지 않았다. 게이트에서 수진씨의 작은 몸이 사라지자 비로소 수혁씨가 혼잣말을 했다. 엄마 같은 말은 아니었다.
   비행기가 활주로 위를 천천히 움직인다. 활주로는 비행기가 상공에 이르기 위해 발돋움을 하는 곳이다. 반대로 상공에서 지상으로 닿기 위해 충격을 보듬는 역할을 한다. 어떤 마찰도 없이는 날 수도 내려올 수도 없다. 갑자기 비상하고 별안간 착지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활주로에 서서 비행기를 떠민다. 엄마 같은 말들이 연료가 된다. 비행기가 이륙한다. 수진씨가 날아간다.

   집에 돌아온 옥자씨는 며느리 품에 안겨있는 수진씨 아기를 향해 손뼉을 치며 다가간다.
   아이고 아이고 내 새끼.
   할머니 목소리에 잠에서 깬 손자들이 거실로 나온다.
   아이고 아이고 내 새끼들.
   말에 장단을 실으며 요란하게 손뼉을 친다. 그때 옥자씨의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뜬다. 메시지를 확인한 옥자씨가 다시 손뼉을 치며 말장구를 잇는다.
   아이고 아이고 잘됐네, 아이고 아이고 잘됐어.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며느리가 묻는다.
   암요 암요, 있지요.
   아기를 건네받은 옥자씨는 리듬을 타며 몸을 들썩인다. 그사이 문자 메시지가 또 울린다. ‘현옥자 선생님. 다음 학기부터 선생님의 강좌가 폐강될 것 같습니다.’ 예상했던 일이 예상대로 벌어지고 있다. 옥자씨는 정작 자기 일에는 엄마 같은 말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 같은 말은 자식 앞에서만 나오는 까다로운 언어 체계. 아기를 안고 흔들던 옥자씨의 박자가 한풀 잦아든다. 아기가 운다.

이은정

작가 같은 글을 쓰는 사람보다 엄마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장편 소설을 쓰고 있다. 그 소설은 망할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괜찮다고 말해줄 엄마가 있으니까. 소설집을 낸 후 장편에 몰두하고 있는 누군가의 딸.

2022/07/26
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