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던 책상에 앉아 펜을 드니 어색하고 떨립니다. 한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업하며 집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던 이 작은방의 문을 연 것도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범퍼 침대에서 곤히 잠든 우주에게 애착 이불을 여며주고 안방을 나서던 제게 현호가 수영아, 어디가? 라고 물었던 것도 그래서였겠죠. 현호는 요즘 제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해요. 어떻게든 이모님의 퇴근 시간인 여섯 시와 자신의 귀가 시간 사이의 간격을 좁히려 애를 쓰고요. 회사에 있는 동안에도 종종 이모님께 따로 카톡을 보낸대요. 이모님, 수영이 지금 뭐하나요, 수영이 밥 먹었나요, 이모님 저희 수영이 좀 잘 봐주세요. 예전에는 우주를 주어로 두고 했을 말들을요.
   어떻게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어요. 그러다 문득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깜짝 놀랐습니다. 감히, 어떻게 감히. 이제 저는 더이상 그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그런 마음을 품어서도 안 되는데요. 염치없게도 잠시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마 열 컷의 인스타툰이 제겐 가장 익숙한 소통 방식이어서겠죠. 소일거리로 시작했다 나중엔 진짜 ‘일’이 돼버렸던, 어느 순간 제 삶 자체가 돼버렸던 것이라서요. 물론 많은 분들이 원하셨던 대로 이 글을 마지막으로 〈우주툰〉 계정은 닫을 생각입니다. 그것이 제가 저지른 일에 사죄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전에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어 너무 두렵고 떨리지만 이렇게 펜을 듭니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시간을 내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몰라 한참 기억을 더듬었어요. 우주를 만나기 위해 매달 울면서 병원 문턱을 밟던 시절도, 가까스로 만난 우주를 지키려고 십 년 다닌 회사를 나와 누워만 있던 제게 현호가 아이패드를 건넨 날도, 창밖에 흩날리는 눈송이를 보며 스케치한 캐릭터들로 ‘우주툰’이란 이름의 인스타 계정을 열었던 순간도 모두 제대로 된 시작점은 아닌 것 같아서요. 아마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제가 26번째 인스타툰을 올린 순간, 그때부터일 거예요.
   검사를 받으러 보건소에 갈 때까지만 해도 26번째 인스타툰이 어떤 내용이 될지, 그리고 그게 절 어디로 데려가게 될지 전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저 24주 차에 진입한 다른 임산부들처럼 ‘공포의 임당검사’를 무사히 통과하기만을 바랐죠. 채혈을 마치고 들른 모자보건실에서 철분제와 선물 꾸러미를 받았어요. 배냇저고리랑 턱받이를 들춰보며 웃고 있는데 모자보건팀 직원이 서류를 내밀며 사인해 달라고 했어요. 그 종이를 물끄러미 보다 물었어요.
   이게 뭐예요.
   직원은 굵게 인쇄된 글자가 보이지 않느냐는 듯 답했어요.
   모유 수유 서약서요.
   그러니까…… 이게 뭐예요.
   저는 세 줄의 문장─‘나는 모유 수유할 것을 약속합니다’, ‘나는 모유 수유의 중요성을 알고, 건강한 아이로 키울 것을 약속합니다’, ‘나는 출산 후 직장에 복귀하더라도 모유 수유를 지속할 것을 약속합니다’─이 적힌 그 서류를 직원에게 돌려주며 고개를 저었어요. 그러면서 좀 놀랐던 것 같아요. 평소의 전 언성을 높이는 법도 없고, 타인과의 갈등은 최대한 피하는 소심한 사람인데, 그날은 왜 그랬을까요…… 어쩌면 거기 적힌 세 번째 문장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은 먼 훗날에야 들었어요.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보건소 직원의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뭘 그렇게 유난을 떠느냐는 듯한 표정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작은방으로 직행해 책상 위 아이패드를 켰어요. 퇴근한 현호가 뒤에서 다가와 어깨를 짚을 때까지 손에 쥔 애플 펜슬을 놓지 않았죠. 줄콘티도 없이 러프 스케치도 없이 단숨에 열 컷의 만화를 완성한 건 처음이었어요.
   마무리한 툰을 보여주자 현호는 잘 그렸네, 하고는 잠시 간격을 뒀다 물었어요.
   근데, 모유 수유할 거라고 하지 않았어?
   저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떼고 말했어요.
   그거랑 이거는 다른 거야.
   뭐가 다르지, 라는 표정이 역력하면서도 현호는 말없이 아이패드를 돌려줬어요.
   #우주툰 #일상툰 #분노의임신일기 #보건소 #모유수유서약강요
   그날 밤, 해시태그를 달아 그 인스타툰을 업로드할 때 제 계정의 팔로워는 218명이었어요. 대부분 지인이거나 맞팔을 승낙해준 유명 인스타툰 작가들이었죠.
   저는 완모했지만, 그렇다고 이걸 강요하면 안 되죠.
   아침나절에 한 육아 인플루언서가 제 인스타툰을 리그램하며 코멘트를 달자 게시물이 빠르게 퍼져나갔어요. 댓글과 ‘좋아요’와 팔로우 요청이 쏟아졌죠. 전 종일 울리는 알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나중엔 손에 쥔 스마트폰이 뜨겁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날 저녁, 간만에 일찍 퇴근한 현호에게 ‘좋아요’ 개수를 보여줬을 때 현호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가만히 내려놨어요. 그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뜨는 알림을 보며 제가 말했어요.
   좀 무서워……
   다음날 오후, 한 진보 성향 인터넷 신문에 기사가 떴어요.
   보건소서 ‘모유 수유 서약’ 서명 강요…… 분노의 임신 일기 그린 인스타툰 화제
   몇 시간 뒤 주요 일간지들도 차례로 헤드라인 문구만 살짝씩 바꿔 같은 내용을 찍어내기 시작했죠. 전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채 우주의 발길질을 느끼며 줄줄이 달리는 댓글들을 읽었어요.

   이러니까 저출생. 덕분에 오늘도 비출산 다짐합니다
   산모가 무슨 모유 뽑는 기계냐?
   복직해도 유축해서 완모하라고? 그저 웃지요 -3년차 워킹맘
   이딴 걸 캠페인이라고. 대한민국 공무원 수준 ㅎㅎ


   제 인스타그램 계정 주소를 복사한 댓글이 함께 달리며 팔로워가 폭발적으로 늘었어요. 일주일 뒤 팔로워가 1만을 돌파했을 때 함께 액정을 보던 현호가 제 부푼 배에 얼굴을 가져다 대곤 말했어요.
   우주야, 너네 엄마 대박 났다.

   팔로워 수가 2만을 넘자 처음으로 광고툰 제안이 들어왔어요. 임산부용 오메가3 광고였는데 현호와 저는 조금 웃었어요.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 광고회사 AE인 현호도, 아트 디렉터였던 저도 작가들한테 오티를 줘보기만 했지 의뢰를 받아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저는 담당자가 전해준 오티 자료론 성에 차지 않아 오메가3 성분에 관한 학술 논문까지 뒤져가며 콘티를 짰어요. 좀 살살 하라고, 50만 원 받으면서 그렇게 일하면 오히려 손해라고 현호가 옆에서 놀리는데도 개의치 않았죠. 그건 액수의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실은 〈우주툰〉이 주목받기 전까지 전 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어요. 휴직은 불가능했고, 우주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 급했으니 망설임 없이 결정한 퇴사였지만, 침상 안정이 끝나 집에 덩그러니 남게 되자 묘한 무력감이 밀려왔어요. 툭하면 밤을 새우고, 생리대 갈 짬도 없이 회의실을 오가며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매번 시간이 없다고 불평했었는데, 막상 무한한 시간이 앞에 펼쳐지자 절 엄습한 건 막막함이었죠. 돌이켜보니 미대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미술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뛴 열아홉 겨울부터 단 한 번도 공부나 일을 쉬어본 적이 없었어요. 갑자기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에, 혼자 대열에서 이탈해 진창에 고여 있는 듯한 느낌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불현듯 숨이 막혔어요.
   끝날 듯 끝나지 않던 전염병도 한몫했던 것 같아요. 확진 임산부가 병원을 못 찾아 길에서 열 시간을 헤매다 끝내 구급차에서 출산했단 뉴스를 접한 뒤론 집 앞 마트조차 갈 수 없었으니까요. 하루의 유일한 외출은 오후 세 시에 KF99 마스크를 푹 눌러 쓴 채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도는 거였어요. 어떤 날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보다 와락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죠. 〈280 days〉라는 임신 어플에 떠 있던 그날의 문구 때문에. “뱃속에서 인간을 키우고 있는걸요. 엄마는 훌륭해요!”
   현호는 그런 절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생산성 강박이다, 제대로 쉴 줄도 모르는 인간이다, 어떻게 찾아온 생명인데 감사할 줄 알아라, 그럴 거면 나랑 바꾸자…… 어떤 말도 통하지 않자 현호가 찾은 답이 아이패드였어요. 아무거나 그려 봐. 그림 그리고 싶어했잖아.
   〈우주툰〉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우주’는 오랫동안 아기를 기다려왔던 현호와 제가 지어둔 이름이었죠. 딸이면 바다, 아들이면 우주. 우주를 만나기까지 많은 고비가 있었기에 그 긴 터널 같은 시기를 통과하기 위해 저희만의 약속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성별을 확인한 뒤부턴 따로 태명도 짓지 않고 바로 우주라고 불렀죠. 아직 세상 구경도 하기 전인 뱃속 아기 ‘우주’, 소심하고 걱정 많은 예비 엄마 ‘수영’, 알고 보면 츤데레인 예비 아빠 ‘현호’. 그렇게 캐릭터를 잡고 나니 그림이 술술 풀렸어요. 그림일기처럼 별거 아닌 소소한 일상을 다루는 툰이었지만, 독자라곤 한줌의 지인이 전부였지만, 가장 많이 달린 ‘좋아요’가 50개 남짓이었지만, 선을 긋고 있는 동안만큼은 숨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어요. 그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삼 개월 넘게 주 2회 연재를 단 한번도 거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였겠죠. 한번은 감기 기운에 축축 처지는 몸으로 책상에 앉아 있는 절 보고 현호가 화를 낸 적도 있어요. 홑몸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겠냐는 현호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한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그 한 번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고.

   작가님, 광고 회사 출신이라 그러신지 퀄이 다르다고 다들 난리예요.
   광고툰 담당자가 최종 컨펌 메일에 써준 문장을 저는 캡처해두고 읽고 또 읽었어요. 제 인스타툰에 독자분들이 남겨준 댓글들 역시.

   작가님 우리집에 CCTV 달아놓으신 줄
   덕분에 오늘도 웃고 가요
   우주툰은 사랑입니다
   아 폭풍공감 ㅋㅋㅋㅋ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덕인지 그 뒤로도 광고툰 의뢰가 몇 건 더 들어왔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다니, 크지 않은 액수였지만 월급을 받을 때보다 더 기뻤던 것 같아요. 그렇게 초여름에 찾아올 우주를 기다리며 그리고 또 그렸어요. 부푼 배가 자꾸만 책상에 닿아 사이에 쿠션을 끼워두고, 조금만 앉아 있어도 종아리가 퉁퉁 부어 발 받침대를 받쳐가면서도 하나도 힘든 줄 모르고. 그때가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봄이었을 거예요.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었던 날, 오랫동안 기다려온 우주를 만났어요. 생애 첫 개복 수술이었지만 육아 카페와 SNS의 후기들을 탐독하며 마음의 준비를 한 덕인지 생각보단 견딜 만했어요. 오히려 힘들었던 건 병원을 나서 산후조리원에 간 뒤부터였죠. 하루 두 번, 십 분의 면회 시간에 감질나게 보던 우주를 모자동실 시간에 직접 제 품에 안게 된 순간부터. 우주가 너무 작고 가벼워서 저는 겁에 질렸어요. 목조차 가누지 못하는 우주를 잘못 들어 떨어뜨리거나 젖병을 잘못 물려 우주의 기도가 막히는 상상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저는 속싸개에 싸인 우주를 내려다보며 울고 또 울었어요. 그렇게 순식간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엄마라는 역할을 ‘입는다’는 것에 충격받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정신과 별개로 몸은 착실히 변해가고 있었죠. 가슴이 부풀며 젖이 차기 시작했어요. 아직 빠는 힘이 부족했던 우주가 수유 쿠션 위에서 버둥거리며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저는 쉽사리 수유실을 떠나지 못했어요. 3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우주가 눈도 못 뜬 채 제 품에 안겨 참새 새끼처럼 입을 뻐끔거리는 걸 보고 있으면 절로 그렇게 됐어요.
   우리 애기는 어쩜 저렇게 크게 울까.
   한번은 신생아실 입구에서 수유 차례를 기다리던 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을 때, 뒤에 서 있던 산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어요. 아기 울음소리를 어떻게 알아요? 다음 순간, 얼굴이 새빨개진 채 버둥거리고 있는 우주를 간호사에게 건네받으며 저도 깜짝 놀랐던 것 같아요. 신생아실의 스무 명도 넘는 아기들 사이에서 어떻게 우주의 울음소리를 구별해냈지? 그때 깨달았어요. 부모와 자식 사이엔 보이지 않는 어떤 끈 같은 게 있어 이제 저는 우주와 한시도 끊어질 수 없다는 걸. 눈앞에 없고 만질 수 없는 순간에도 그 투명한 끈이 내내 저와 우주를 잇고 있을 거란 걸.
   전염병 때문에 남편의 면회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2주간의 조리원 생활 동안, 저는 그렇게 우주와 단둘이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그것은 어떤 순간엔 더없는 기쁨이었고, 다음 순간엔 한없는 두려움이었죠. 수유 때마다 땀으로 머리를 감으며 ‘진액이 빠진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실감하고, 복부에 힘이 안 들어가 몸을 옆으로 굴려 간신히 허리를 세우고, 손목 보호대도 소용없는 너덜너덜해진 손목을 감싸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때론 몸이 쑥 꺼지는 것만 같았어요. 눈물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호르몬 때문이라고 조리원 직원들은 말했지만, 베갯잇이 축축이 젖어들어가는 동안 제가 느낀 건 순수한 ‘공포’였어요. 제 신체가 아기라는 작은 존재에게 점령당한 듯한. 그런 밤이면 끙끙대며 일어나 조리원 화장대에 앉았어요. 아이패드 액정 위에 떨군 눈물방울들을 훔쳐 가며 욱신거리는 손목으로 스케치를 했어요.
   언제부터 책상에 앉을 수 있어?
   아마 그게 출산 선배인 친구들에게 제가 가장 많이 한 질문일 거예요. 광고툰 게재 일정이 잡혀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집에 가면 작업 시간을 갖기 더 어려울 거란 걸 알아서 손을 놀릴 수 없었어요. 처음으로 수술실에서 우주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순간, 기저귀도 제대로 갈지 못해 허둥댔던 첫 모자동실 시간, 젖몸살에 하염없이 울며 엄마에게 전화했던 밤, 출생신고 기념으로 현호가 보내준 주민등록등본 사진에서 ‘한우주’라는 이름 석 자를 확인했던 오후…… 그렇게 제가 통과한 시간들을 짤막한 에피소드로 풀어 그렸어요. 선 한 줄 대충 긋는 법 없이. 대사 한마디도 고르고 골라 가며. 누군가는 가볍게 슥슥 넘겨볼 툰일지라도 제겐 그런 디테일들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어요. 출산이라는 사건을, 아기라는 존재를 방패막이 삼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게 제가 사랑하는 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새벽빛에 물들어가는 방에 앉아 다짐했어요. 절대 펑크를 내지 않겠다고, 〈우주툰〉을 지키겠다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 하필 일요일이라 현호와 저는 바로 ‘현실 육아’에 던져졌어요.
   수영아, 나 손이 떨려.
   현호는 우주를 어떻게 안아야 할지조차 몰랐고 모자동실 시간과 수유 시간에만 잠깐씩 우주를 돌봤던 저도 어설프긴 마찬가지였죠. 우주가 배고파 우는데도 수유 자세를 못 잡아 쩔쩔 매고, 트림을 제대로 못 시켜 먹은 걸 게울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배앓이 때문에 자지러지는 우주를 안고 어떡해를 연발해가며 하루를 보냈어요. 다음날 아침 첫 출근한 산후도우미를 현호와 제가 어떤 몰골로 마주했는지 생각하면 그저 웃음만 나네요.
   산후도우미가 오던 2주 동안은 그래도 괜찮았어요. 알람이라도 맞춘 듯 두 시간마다 깨서 우는 우주를 돌보느라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기도 하고, 짬짬이 작은방에 들어가 인스타툰을 그릴 수도 있었죠. 하지만 정부 지원 기간이 끝나 산후도우미 없이 혼자 남게 되자 이야기가 달라졌어요. 직수와 유축, 그리고 분유 수유까지 세 가지를 모두 병행하느라 우주를 먹이고 트림시키고 나면 젖병 씻을 시간조차 부족했죠. 현호가 일찍 퇴근해 우주를 돌봐주는 날에도 밀린 빨래와 청소, 설거지를 해치우느라 허리 한번 펼 새가 없었어요. 먹고 자고 화장실 가는 기본적인 욕구조차 충족되지 않는 생활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보채는 우주를 안고 거실을 돌며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조용히 뺨이 젖어들어가곤 했어요. 매일 아침 공들여 눈썹을 그리고서 옷을 차려입고 출근하던 삶이, 휴가철이면 항공권 예매 사이트를 들락거리던 삶이 한때는 제게도 있었다는 게 너무나 까마득해서. 제 세계가 축소되고 축소되다 캔버스 위에 잘못 찍힌 점처럼 남아버린 것만 같아서. 닷새째 현관문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갔단 걸 깨닫고 흠칫 놀란 날, 세이브 원고가 떨어졌어요. 그날부턴 쪽잠도 안 자겠다 마음먹고 새벽마다 작은방으로 갔어요. 혼몽해서 제대로 된 구상이나 스케치를 할 수 있는 날이 드물었지만, 그래도 작업을 놓지 않았어요. 어느 밤, 책상 위 애플 펜슬을 들다 악, 소리를 내며 떨어뜨리기 전까진.
   비명에 달려온 현호가 손목을 감싸쥐고 신음하는 제게 괜찮냐고 물었어요. 날카로운 꼬챙이로 쑤셔대는 듯한 통증에 전 말없이 눈물만 떨궜어요. 어느새 7킬로그램이 넘어버린 우주는 ‘손타는’ 아기여서 내려놓고 있는 시간보다 들고 있는 시간이 더 길었죠. 앞으로 점점 더 무거워질 예정이었고요. 제 어깨를 도닥이다 애플 펜슬을 주워 건네는 현호에게 말했어요.
   이렇게는 못 하겠어……
   현호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어요. 백일도 안 된 우주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도 없고, 식당을 혼자 운영하는 친정 엄마나 지방에 계신 시부모님께 손을 빌릴 수도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내가 회사를 안 나갈 수도 없고 어쩌면 좋으냐는 현호를 향해 저는 씁쓸히 웃었어요.
   현호야, 요즘 내가 제일 부러운 게 회사원이야.
   물끄러미 보는 현호에게 또박또박 말했죠.
   이 일은 육아 휴직도 없어. 내가 쉬면, 그냥 끝이야.
   긴 대화 끝에 낮 동안 우주를 돌봐줄 시터를 고용하기로 했어요. 비용을 부담스러워하는 현호에게 광고툰 수입으로 해결해보겠다고 했지만 실은 불가능할 일이란 걸 알았어요. 광고 의뢰는 고정적인 게 아니라 수입이 아예 없는 달도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일단 시터를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지역 육아 카페와 시터 연결 앱을 몇 바퀴 돈 뒤에야 ‘이모님’을 만날 수 있었죠.

   조금만 불편한 자세로 안아도 ‘강성울음’을 우는 우주가 면접을 보러 온 이모님의 품에 쏙 안기는 걸 본 순간, 전 속으로 중얼거렸어요. 됐다.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가 손을 씻으신 것도, 화장기 옅은 수수한 차림새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전 집에서 이 년간 한 아이를 쭉 돌보셨다는 데에 마음이 기울었어요. 평일에만 근무하시는 이모님과 마주칠 일이 잘 없던 현호도 회사 창립 기념일에 함께 지내보더니 이모님이 퇴근하시자마자 엄지를 치켜세웠죠.
   고백하자면, 이모님이 오시고서야 저는 우주를 숙제처럼 보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 본 순간부터 우주를 맹목적으로 사랑했지만, 그건 때론 숨막히게 버거운 사랑이었죠. 도무지 왜 우는지 모르겠는 우주 앞에서 빌듯이 미안해, 미안해를 연발하고 제가 또 뭘 놓치거나 실수한 건 아닌지 곱씹다보면 엄마가 된 게 아니라 죄인이 되고 천치가 된 기분이었으니까요. 우는 우주를 안고 울고 있으면 저야말로 누군가의 케어가 필요한 존재가 된 것 같았으니까요.
   저는 탄성을 지르며 우주와의 순간들을 만끽하기 시작했어요. 배냇미소만 지을 줄 알던 우주가 처음으로 눈맞춤 하며 제게 활짝 웃어준 순간, 목튜브를 하고 아기 수영장에 둥둥 떠 힘차게 발장구친 순간, 제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오동통한 손으로 처음 딸랑이를 쥐고 흔든 순간. 그런 순간들을 한 장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기며 생각했어요. 인생이 한 권의 앨범이라면 그 속에 이런 환한 스냅 사진들을 최대한 많이 꽂으며 살고 싶다고. 그리고 그 장면들을 기록하기 시작했죠. 저희 가족의 삶에 이토록 찬란한 순간들이 쿠키에 박힌 초코칩처럼 새겨지기 시작했다는 내용의 인스타툰으로.
   하지만 독자분들의 반응은 기대했던 것과 달랐어요. ‘좋아요’도 댓글도 점점 줄어만 갔죠. 5만에서 정체되어 있던 팔로워가 조금씩 줄더니 어느 순간 광고툰 의뢰도 뚝 끊겼어요. 다시 얻게 된 것만으로도 기뻤던 작업 시간이 서서히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소재 구상 단계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어떤 눈을 의식하며 줄콘티를 썼다 지웠다만 한없이 반복했어요. 간신히 러프 스케치에 들어가도 구도와 포즈가 어색한 것 같아 계속 새 레퍼런스 컷만 찾아 헤맸죠. 작업이 막히자 닫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우주의 울음소리도 거슬리기 시작했어요. 또다시 찾아온 원더윅스 앞에선 제아무리 이모님이라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단 걸 잘 알면서도 순간순간 짜증이 솟구쳤죠. 결국 아이패드를 들고 밖으로 나왔어요. 곳곳에 몬스테라 화분이 놓인 카페의 너른 테이블에 앉자 살짝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작업이 잘 풀리진 않았지만 어느새 카페로 출퇴근하는 게 일상이 됐어요.
   햇살이 어른거리는 카페 테이블에 아이패드를 펼쳐놓고 작업이 막힐 때마다 다른 유명 육아툰 작가들의 계정을 들락거렸어요. 잘나가는 인스타툰은 뭐가 다른지 게시물들을 외울 때까지 반복해서 보고, 거기 달린 댓글들을 한 줄 한 줄 유심히 살폈죠. 마치 제 작업이 그리는 게 아니라 분석하는 거라도 되는 듯이. 어느 순간 확연히 경향이 보였어요. ‘매운맛’ 육아 에피소드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죠. 눈물이 쏙 날만큼 고된 육아의 순간을 풍자와 해학을 담아 풀어낸 것들이. 때로 어떤 인스타툰은 누군가를 공격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날이 서 있기까지 했고요. 역시 사람들은 누군가의 행보다 불행에 더 눈길을 주는 법일까요.
   이따금 카페에서 유아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과 마주치면 불현듯 우주 생각이 났어요. 그럼 얼른 스마트폰을 열어 우주의 사진과 영상들을 돌려봤어요. 작은 액정 안에서 웃고 있는 우주를 가만 보고 있으면 명치께가 조이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어요. 육아툰을 그리느라 정작 육아는 못하고, 애착을 쌓는 대신 만화만 만들고 있단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어요. 예방 접종 때문에 간 소아과에서 주사에 놀라 울음을 터뜨린 우주가 저보다 이모님 쪽으로 먼저 고개를 돌린 일을 겪고 난 뒤부턴 작업도 육아도 다 망치고 있다는 생각에 카페 한구석에서 조용히 우는 날이 잦았죠. 얼굴을 닦고 차가운 커피잔을 매만지다 보면 어느새 해가 기울어 있었어요. 한 컷도 제대로 못 그린 채 에코백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그냥 이대로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자꾸만 발걸음이 처졌어요.
   광고툰을 한 편도 올리지 못했던 어느 달, 이모님의 월급날이 돌아와 제 퇴직금을 헐겠다고 하자 현호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어요.
   그렇게까지 해야 될까……
   전 눈을 가늘게 뜨고 답했죠.
   퇴직금은 마음대로 쓰라며.
   그게 아니라…… 잘 안 그려져서 힘들다며. 잠깐 쉬어보는 건 어떨까 해서.
   언제나 제 첫 번째 독자였던 현호가 그렇게 말해서 저는 한 대 맞은 것 같은 타격감을 느꼈어요. 그즈음 현호는 제가 우주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은 것 같다는 말을 여러 번 흘리듯 했죠. 우주의 첫 뒤집기를 목격한 사람이 이모님이란 사실에 낮게 탄식하기도 하고 베이비시터의 아동 학대 뉴스로 떠들썩했던 날엔 우린 당연히 아니겠지만, 이라며 카톡으로 홈 카메라 구매 링크를 보내오기도 하면서.
   옅은 한숨을 내쉬고 현호가 덧붙였어요.
   아니면, 최소한 네가 좀 편한 마음으로 그렸으면 좋겠어. 넌 이제 우주 엄마이기도 하잖아. 더 중요한 게 뭔지 봐야지.
   나도 노력하고 있어.
   잠시 말이 없던 현호가 제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어요.
   수영아…… 너 오늘 우주 몇 번 안아줬니?
   ……
   또 손목 나간다면서 잘 안아주지도 않잖아. 난 가끔 우주한테 미안해.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거 같아서.
   깨물고 있던 입술을 떼는데 제 목소리 끝이 떨렸어요.
   나도…… 나도 우주랑 놀아주고 싶어. 종일 옆에 붙어서 물고 빨고 핥고 싶다고. 내 새낀데, 안 그러겠어? 근데 어떡해. 지금 놔버리면 다 끝인데. 나도 미치겠어……
   현호는 한참 제 등을 부드럽게 쓸어줬어요. 하지만 제 어깨의 떨림이 멎었을 때 입을 뗀 현호의 음성은 단호했죠.
   수영아, 모든 걸 가질 순 없어.

   그 밤 이후론 더는 현호에게 따끈따끈한 원고를 보여주며 피드백을 받을 수도, 답답한 마음을 토로할 수도 없었어요. 저는 쳇바퀴 도는 햄스터처럼 전전긍긍하며 집과 동네 카페만을 오갔어요. 터닝 포인트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어요. 평소처럼 단골 카페에서 주문을 하는데 갑자기 매일 시키던 메뉴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의아한 눈길의 점원 앞에서 한참 머뭇거리다 메뉴판을 건네받고서야 겨우 주문을 마쳤죠. 그러고 자리에 앉는 순간, 무언가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쳤어요. 얼른 메모장을 열어 타이핑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마미 브레인 신드롬’에 관한 인스타툰을 구상했죠. 제 일화만으론 부족해 육아 카페와 블로그들을 훑자 재미있는 사연들이 쏟아졌어요. 장난감을 주문하며 ‘실로폰’을 ‘싱가폴’이라고 말했다는 사연, 소아과에 가서 아기 수첩 대신 여권을 내밀었다는 사연, 아기를 바운서에 앉혀놓고 침대에 아기가 없어 깜짝 놀랐다는 사연…… 전 그런 사연들을 따와 적당히 각색했어요. 시댁 강아지 이름을 까먹었다는 일화는 친구의 고양이 이름을 까먹었다는 설정으로 바꾸고, 아기가 너무 자지러지게 우는 바람에 쪽쪽이를 친정 엄마 입에 물렸다는 사연은 현호에게 물렸다는 에피소드로 바꾸는 식으로. 애를 낳은 건지 뇌를 낳은 건지 모르겠어요, 라는 멘트로 마무리한 그 인스타툰을 올리자 간만에 ‘좋아요’와 댓글이 쏟아졌어요.

   완전 난줄ㅋㅋㅋㅋ 바로 팔로우하고 갑니다
   세 번째 컷에서 빵 터짐. 애기 깨울뻔했네요
   작가님 드립력 ㅋㅋㅋ
   짠내 나요ㅠㅠ 독박 육아러들, 오늘도 파이팅!


   댓글 중엔 종종 ‘독박 육아’를 격려하는 말들이 있었어요. 제가 먼저 그 단어를 쓴 적은 없었지만 이모님의 존재를 먼저 언급한 적도 없어서였겠죠. 딱히 어떤 의도로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저희 가족으로만 구성된 캐릭터들 속에 갑자기 이모님 캐릭터를 추가하는 게 어색할 것 같았고 그간의 에피소드 중에 이모님이 등장하는 일화도 없었으니까요. 대댓글을 잘 다는 편이었지만 이상하게 그런 댓글들은 건너뛰고 달게 됐어요. 왜 그랬을까요…… 지난겨울, 뜬 눈으로 뒤척이던 무수한 밤들에, 저는 스스로 묻고 또 물었어요.

   마미 브레인 신드롬 인스타툰에 쏟아진 반응에 제 작업은 탄력을 받았어요. 그 뒤론 맘스홀릭, 레몬테라스, 82쿡을 떠돌며 에피소드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죠. 독자분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잠 퇴행기 이야기를 그린 ‘100일의 기적’ 대신 ‘100일의 기절’이 찾아왔어요, 자기 주도 이유식의 고충을 다룬 스무 살엔 먹겠지, 서른 살엔 먹겠지……, 분리불안을 소재로 한 오늘도 문센에 갔다 말벌 아저씨처럼 뛰쳐나왔다, 같은 에피소드들은 모두 그렇게 얻은 소스들을 짜깁고 각색한 거예요.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 고민했던 순간들도 분명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너무 공감돼요, 저도 비슷한 일 겪었어요, 라고 달리는 댓글들을 읽다 보면 불안은 금세 희미해졌죠. 오히려 전 다른 것들을 신경 쓰기 시작했어요.
   호응이 있을 만한 소재를 고르고 나면 어느 선까지 유머로 허용되고, 어느 선부턴 사람들의 임계점을 넘어설지 세심하게 계산했어요. 유모차 대신 유아차, 맘카페 대신 육아 카페, 자궁 대신 포궁으로 단어 하나도 조심스럽게 골랐고요. 무개념, 관종, 갑질……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도 여왕벌 같던 인플루언서가 모든 걸 잃고 한순간에 추락하는 걸 빈번히 봤으니까요. 매 순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우주툰〉의 톤이 바뀌며 팔로워가 급속도로 늘고, 광고툰 의뢰도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기저귀, 이유식 마스터기, 해열제, 육아 일기 어플, 탈모 샴푸, 공기 청정기…… 쏟아지는 광고 의뢰에 출간 제안까지 받아 팔로워가 10만이 되던 즈음엔 『인스타툰 작가 되기』란 제목의 원고도 쓰기 시작했고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며 자연스레 단유를 하게 됐어요. 조금만 더 먹여보면 어떨까, 라며 탐탁지 않아 하던 현호도 제대로 된 산후조리 없이 무리하다 찾아온 소양증에 온몸을 긁어대는 절 보더니 결국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죠. 하지만 현호의 눈빛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어요.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돼?
   그리고 그건, 때로 제가 스스로 던지던 질문이기도 했죠. 마지막 직수를 하며 제 가슴에 폭 파묻혀 미소 띤 얼굴로 잠든 우주를 내려다보던 순간에. 제 품에선 자지러지다 이모님에게 안기자마자 뚝 울음을 그치던 우주를 보던 순간에. 그런 순간들이면 우주가 갓난아기던 시절 조리원에서 감각했던, 우리를 잇고 있던 투명한 끈이 어느새 툭, 끊어져버린 것만 같아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어요. 육아 카페나 블로그를 순회하다 마주치던 글들도 마음을 짓눌렀죠. 돌 될 때까지는 엄마가 세상의 전부다, 생후 1년은 무조건 퍼줘라, 팔에 깁스를 했어도 안아 달라면 안아 줘라,1) 관점만 바꾸면 ‘독박 육아’가 아니라 ‘독점 육아’다…… 그런 글들을 읽고 나면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그러면 일부러 시선을 돌렸죠. 배역에 집중하기 위해 촬영 삼 일 전부터 아이를 두고 나와 호텔 방에서 지냈다는 배우의 인터뷰나 백일이 갓 넘은 아기를 떼어놓고 이 년간 해외 유학을 갔다 왔다는 대기업 여성 임원의 성공기 같은 걸 찾아 읽으며 스스로에게 속삭였어요. 괜찮아, 난 이 정도는 아니잖아.
   그래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땐 〈우주툰〉 계정에 접속했어요. 제 멘트 한 줄 한 줄에, 제 그림 한 컷 한 컷에 열광하고 응원해주는 독자분들이 있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달리는 댓글들을 읽고 또 읽었어요.

   저 임신 중인데 이거 제 미래인가요ㅠㅠ
   비출산 권장툰인가요 ㅋㅋㅋ
   〈우주툰〉 보며 오늘도 딩크 다짐


   간혹 그런 댓글들이 달리면 기분이 좀 묘했어요. 제가 일방적으로 육아의 어두운 면만 부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됐죠. 하지만 그보다 압도적으로 쏟아지는 붉은 하트와 ‘ㅋㅋㅋㅋ’ 속에서 유영하다 보면 어느새 그런 생각은 눈 녹듯 사라졌어요. 돌이켜보면 그때의 전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다시 태어난 기분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센 톤의 만화를 그리고 있으면 항상 어깨를 움츠린 채 모르는 사람 앞에만 서면 얼굴을 붉히던 제가 아니라 어디서든 자기 목소리를 또렷이 낼 줄 아는 당차고 다부진 누군가가 된 것만 같았으니까요.
   다른 육아툰 계정들을 카운팅하기 시작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어요. 저와 비슷한 수의 팬을 지닌 작가들의 인스타그램에 매일 출석 체크하듯 들어가 팔로워와 ‘좋아요’의 수를 셌어요. 여러 명이 좋아합니다, 라고 표시된 게시물의 ‘여러 명’을 일일이 세 보기도 하고, 인기 변화의 추이를 한눈에 보려고 엑셀 파일에 표를 만들어 저장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이 모든 코스의 마지막은 언제나 〈우주툰〉이었죠. 매일 밤, 그새 추가된 ‘좋아요’와 댓글들을 보며 슬며시 올라간 입꼬리로 눈을 감으며 생각했어요. 내일은 또 뭘 그리지.

   얼마 뒤 들어온 유명 일간지의 인터뷰 제안에 저는 한껏 들떴어요. 인스타툰 열풍을 취재하는 기획 기사였는데 제가 첫 번째 인터뷰이라는 것까지 마음에 들었죠. 인터뷰 당일엔 약하게 싸락눈이 내렸어요. 미용실에 들러 드라이한 머리가 망가질까 봐 조심하며 카페 유리문을 열었어요. 사진 기자님이 시키는 대로 몇 번 포즈를 취한 뒤에 테이블에 앉았죠. 녹음기를 켠 기자님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눴어요.
   혼자 육아하시면서 그림 그리는 거 안 힘드세요? 너무 대단해요.
   누구에게나 여러 번 반복해서 돌아가보곤 하는 순간이 있겠죠. 저는 기자님의 질문을 듣던 그때로 수백 수천 번 돌아가요. 예의상 하는 것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칭찬에 들떠 그저 수줍은 듯 웃었던 그 순간으로.
   며칠 뒤 인터넷에 뜬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곤 제 눈을 의심했어요.
   “독박 육아, 현실을 알고 싶어?” 폭풍 공감 인스타툰, ‘우주툰’
   독박 육아에 초점이 맞춰진 기사를 스크롤하는데 자꾸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기자님의 질문에 맞춰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하긴 했지만 분명 제가 먼저 그 단어를 쓴 적은 없었거든요. 시터를 쓰는 걸 아는 양가 부모님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기사를 볼까 봐 걱정되기도 했어요. 한참 손톱을 물어뜯다 현호에게 기사 링크를 보내봤지만 가타부타 말이 없었어요. 오히려 퇴근한 현호가 말을 꺼낸 건 전혀 다른 부분에서였죠.
   우주가 요새 쪽쪽이 물어?
   식탁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현호가 제게 물었을 때 무슨 이야기인지 바로 알아챘어요. 얼마 전 올린 인스타툰이 ‘쪽쪽이 셔틀’에 관한 거였거든요. 우주는 유독 쪽쪽이를 거부하는 아기였지만, 입에서 쪽쪽이가 떨어지기만 하면 자지러지는 아기에게 셔틀하듯 대령해야 한다는 한 블로거의 글이 재밌어 따와 그린 만화였죠.
   아니, 안 물어.
   너도 참……
   고개를 젓는 현호를 보는데 종일 신경이 곤두서 있던 탓인지 순간 울컥했어요.
   무슨 문제 있어?
   저를 빤히 보던 현호가 숨을 깊이 내쉬더니 말했어요.
   너 지난번엔 남편이 잘 도와주지도 않고 애가 하나 더 있는 기분이라고 그렸더라. 내가 그래? 정말 그렇게 느껴?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그래도 만화는 만화로 봐야지. 그리다보면 당연히 설정이나 과장도 좀……
   현호가 제 말을 끊으며 물었어요.
   그래서, 독박 육아한다고 거짓말한 것도 설정이야?
   그건…… 거짓말한 거 아니야.
   뭐?
   그냥…… 말하지 않은 거지. 그러니까, 절반만 한 거라고.
   기가 차다는 듯 웃은 현호가 식탁에서 일어나 말했어요.
   수영아. 우주랑 나는 네 캐릭터가 아니야.

   다음날 정기 연재로 올린 인스타툰엔 어느 때보다 뜨거운 호응이 쏟아졌어요. 인터뷰 기사 잘 봤어요, 육아하면서 만화도 그리시다니 너무 대단해요, 작가님처럼 되고 싶은데 비결 좀 알려주세요…… 찬사와 갈채 일색의 댓글들을 스크롤해 내려가다 순간 멈칫했어요.

   진짜 독박은 아니시죠? 저는 씻을 시간도 없던데ㅠㅠ

   턴테이블 위의 LP판이 돌연 튀듯이 규칙적이던 심장 박동이 흐트러지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곧 그 댓글에 대댓글들이 붙기 시작했어요. 정말 만화 그릴 정도면 완전 독박은 아닌 것 같죠, 불가능한 거 육아해본 사람들은 다 알죠, 누가 도와주고 있지 않겠어요. 스마트폰을 쥔 손이 점점 세게 떨렸어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제가 입술을 깨물고 거실을 뱅뱅 도는 사이에도 댓글은 빠르게 증식했어요. 고장난 로봇처럼 우뚝 동작을 멈춘 전 잠시 뒤 갑자기 다시 전원이 들어온 것처럼 작은방으로 향했어요. 그리고 그 인스타툰을 그렸죠. ‘오늘도 독박 육아 레벨 업!’이라는 제목의.
   우는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로 분유 타는 법, 배 위에서 아기 낮잠 재우며 인터넷 쇼핑하는 법, 오르막길에서 유아차 끌며 빌딩 유리문 여는 법. 육아 카페의 육아담들을 수집해 ‘독박 육아하다보니 히어로처럼 생각지 못했던 스킬들이 생긴다’는 내용의 그 인스타툰을 그리는 동안, 분명 저는 무언가에 홀려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빨리 불씨를 잠재워야 한다는 초조감에. 이 에피소드 한 편만 잘 통하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떨리는 마음으로 인스타툰을 올리면서도 계속 되뇌었어요. 제발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하지만 그날 저녁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죠.

   이분 거짓말하는 거임. 얼마 전에 유모차 끌면서 이모님 부르는 거 봤음

   떨리는 손으로 얼른 작성자의 계정을 클릭해봤지만, 프로필 사진조차 없는 비공개 계정이었어요. 누구지? 정말 본 걸까? 그럼 어디서? 소아과? 아니면 지난번 패밀리 레스토랑? 대댓글을 달아야 하나? 그냥 무시해? 혹시 한번 찔러본 건 아닐까? 꼬리를 잇는 의문 부호와 함께 어떤 예감이 밀려오며 정수리가 뜨거워지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어요.

   대박. 독박 육아 코스프레한 거?
   작가님, 잘못 본 거라고 빨리 이야기해주세요
   그래 놓고 독박 육아로 인터뷰함? 개어이없음


   의혹을 표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댓글들 앞에서 제 침묵이 길어지는 동안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 다른 목소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죠. 마치 어둠 속에서 숨죽여 도사리던 고양이가 오래 기다려왔던 목표물을 낚아채듯이.

   이 작가 내가 맘스홀릭에 올린 사연 갖다 쓸 때부터 쎄했음
   이 여자 맘카페 죽순이 같지 않아요? 남의 에피로 돈 처벌 땐 좋았겠쥬~
   솔직히 요새 광고툰도 너무 많이 올라왔음
   같이 거짓말한 남편 새낀 뭐임? 세트로 양심을 국밥에 말아드셨나 ㅎㅎ
   애새끼 하나 낳아서 인생 피더니 한순간에 훅 가네ㅋㅋㅋㅋ

   이제 와선 모두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얼마 전까지도 가끔 스스로에게 묻곤 했어요. 제가 진실을 밝히라는 독자분들의 요청에 그렇게 오래 침묵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인터뷰 기사에 달린 악플에 확인 전화를 걸어온 기자님께 ‘그저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바보 같은 해명을 하고 그게 다시 기사로 나가지 않았더라면, 아니 애초에 독박 육아 타이틀로 기사가 나왔을 때 조용히 넘어가려 하지 않았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요?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으리라는 걸 이젠 알아요. 제가 이모님의 존재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거짓을 말했단 사실은, 제가 저보다 더 능력 있는 누군가를 연기해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지난겨울, 잔향처럼 귓가를 맴도는 성난 목소리들에 퍼뜩 깨어나 뜨거운 숨을 몰아쉬던 수많은 밤들에, 창 너머 지상으로 내려앉는 눈송이들을 보며 끝없이 돌아봤어요. 저의 모든 잘못과 실수들을. 너무 오랫동안 침묵해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기에 감히 용서를 구할 염치도 없지만 딱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부디 현호와 우주만은 나쁘게 이야기하지 말아 주세요. 현호는 단 한번도 제게 거짓말을 부추긴 적이 없고, 우주는…… 우주는 저의 아들이라는 죄밖에…… 아니, 저 같은 사람이 우주의 엄마라는 것이, 제가 우주에게 지은 죄예요.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쓰는 건 단지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만은 아니에요. 얼마 전 알게 되었거든요. 그동안 제가 독자분들께 전하지 못한 말은 따로 있었단 사실을.

   그럼 수영씨는 왜 그렇게까지 그리고 싶었던 걸까요?
   상담 센터 선생님이 그렇게 물었을 때 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어요. 집에 돌아와 우주에게 깜짝볼을 굴려주고, 현호와 아욱국에 밥을 한술 뜨고, 잠자리에 눕는 사이에도 그 질문은 명치께에 얹힌 것처럼 내내 제게 박혀 있었어요. 새벽녘, 조용히 일어나 오랜만에 〈우주툰〉 계정에 접속했어요. 아주 천천히 그동안 올렸던 인스타툰들을 훑었어요. 첫 게시물부터 마지막 게시물까지. 창가의 커튼이 아슴푸레 흰 빛으로 물들어가는 동안 서서히 코끝이 붉어져가며 깨달았어요. 분명 같은 그림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걸. 우주를 기르며 통과한 시간의 오직 절반만을 이야기해왔다는 걸. 그제야 제 그림 속에서 지워졌던 순간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쉬지 않고 옹알이하던 우주가 처음으로 ‘음마’라고 발음했던 순간, 낮잠에서 깨어난 우주가 옆에 누운 절 보곤 배시시 미소 지었던 순간, 보드랍고 촉촉한 손을 뻗은 우주가 힘껏 제 집게손가락을 잡았던 순간…… 그런 순간들에선 부러 고개를 돌린 채, 두렵기만 하던 엄마라는 역할에서 한없이 도망치고 있었다는 걸.
   우주야……
   그 밤, 저는 잠든 우주의 얼굴을 하염없이 내려다봤어요.
   지난주부터 유아차를 끌고 아파트 단지 산책을 시작했어요. 선생님의 권유로 집과 상담 센터를 벗어나지 못했던 외출 반경을 조금씩 넓혀보고 있거든요. 상의 끝에 예전 회사 선배에게 소개받은, 인쇄 광고를 디자인하는 작은 일감 하나를 수락하기도 했고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찾아보려 해요.
   자작나무를 타고 흘러내린 봄 햇살이 공기 중에 은빛 입자로 퍼지는 산책로를 걷다 보면 종종 하교하는 중학생 무리와 마주쳐요. 책가방을 멘 그 애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가만히 좇다 상상해보곤 해요. 어느새 제 키를 부지런히 추월해 올려다봐야 할 만큼 자란 우주를. 그 우주가 책상에 앉아 가끔은 멍하니 창밖을 보며 수업을 듣고, 체육복을 입은 채 숨이 턱에 닿도록 운동장을 달리고,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웃는 장면을. 그러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먼 과거의 신문 기사를 접하게 된다면, 거기에 묘사된 저와 〈우주툰〉에 대해 궁금해하게 된다면, 꼭 들려주고 싶어요. 그동안 제가 하지 못했던 절반의 말을.

*이 소설은 연희문학창작촌과 호텔 프린스 〈소설가의 방〉에서 집필하였습니다.


김혜지

늘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음으로
때로는 그 이야기가 내 귓가에 닿도록

소설집 『대가 없는 일』을 썼다.

2022/10/25
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