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건 뭐지? 누가 이렇게 부르지?’
  한 달 동안 우리 반은 〈포도알 동무〉 고음부를 연습했다. 처음으로 고음부를 끝까지 부른 날,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노래를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강당에 퍼지는 노래 속에서 소리의 주인공을 찾는 일은 쉬웠다. 바로 지율이였다.
  지율이는 내 앞줄에 서 있었다. 노래를 부를 때 고개를 끄덕였다. 몸도 좌우로 움직였다. 한 갈래로 묶은 머리가 리듬에 따라 찰랑거렸다.
안타깝게도 지율이는 음의 높낮이를 못 맞췄다. 박자도 틀려 첫 음이 약간 뒤에 나왔다. 한마디로 음치였다. 노래도 못하면서 목소리는 또 엄청 컸다.
지율이가 소리를 높일수록 내 음이 덩달아 흔들렸다. 저절로 내 눈이 지율이 뒤통수에 꽂혔다.
  “자, 집중해야지! 합창부 예성이는 좀더 크게 부르고, 다시 해보자.”
  오리 선생님이 반주를 멈추고 말씀하셨다.

*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담임 선생님이 창의적 체험 활동을 소개했다.
  “2학기 창체는 합창입니다.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을 연달아 진행해요, 아, 물론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어요, 11월 마지막 날 강당에서 합창 대회를 열 거예요. 최선을 다해서 우리 반이 꼭 일등 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시시하다는 듯 수군거렸다. 합창 대회라는 말이 떨어지자, 한숨을 쉬는 아이도 있었다.
  “옆에 계신 이분은 여러분의 합창 수업을 맡아줄 선생님이세요.”
  창체 선생님은 입이 툭 튀어나와 오리를 닮은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선생님의 별명은 곧 오리 선생님이 되었다.
  “이 곡은 다장조 4분의 3박자로 귀엽고 명랑하게 불러야 해요.”
  첫 시간에 오리 선생님은 〈포도알 동무〉를 간단히 설명하셨다. 그리고 네 마디를 먼저 불렀다. 우리는 선생님을 따라 노래했다. 선생님이 노래하는 모습은 멋졌다. 선생님처럼 부르면 대회 일등은 거뜬해 보였다.

*

문제는 앞줄에 선 지율이였다. 이래선 대회 일등은커녕 창피만 당하게 생겼다. 자꾸만 지율이 음이 용수철처럼 툭툭 튀어올랐다. 다른 소리가 흐려지면서 지율이 노래만 점점 또렷해졌다.
  지율이를 슬쩍 쳐다보았다. 지율이는 여전히 노래를 부르며 고개도 까딱이고 몸도 흔들었다. 기분이 좋은지 옆에 선 민서를 보고 웃기도 했다.
  “예성아, 주변 상황이 어떻든 너는 네 갈 길을 가면 되는 거야. 뭘 그렇게 신경 쓰니? 너만 중심을 잡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든 별일 없을 텐데.”
  분명 엄마라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다. 내 일에만 집중하면 공부든 합창이든 못 할 것이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중심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소리가 울리는 강당에서는 특히 그랬다.
  나는 높낮이도 없고 박자도 틀린 지율이 노래는 무시하고 싶었다. 오리 선생님처럼 노래하고 싶었다. 악보에 맞춰 완벽하게 합창하고 싶었다. 잘하면 대회에서 일등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율이 때문에 멋지게 노래하기는 불가능했다. 풍선이 터지듯 부풀어오른 기대가 한순간 쪼그라들었다. 합창이 엉망이 되고 있었다. 지율이 모습이 점점 꼴 보기 싫어졌다.
  “지율아, 너 계속 박자도 놓치고 음정도 틀려!”
  쉬는 시간에 나는 지율이에게 갔다. 달리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래? 우리 엄마 아빤 내 노래가 듣기 좋다고 했는데……”
  지율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엄마 아빠는 가족이니깐 그런 거고. 노래 못한다는 말 들어본 적 없어?”
  “없어.”
  지율이가 짧게 답했다.
  “네 노랫소리가 커서, 합창할 때 제대로 음을 맞출 수가 없잖아.”
  지율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옆에 선 민서와 속닥이더니 자리를 옮겼다. 나는 머쓱해져 귀 뒤로 머리카락을 여러 번 쓸어 넘겼다. 쏟아진 물을 도로 담을 수는 없었다.

*

다음주, 저음부 연습에 들어갔다. 오리 선생님은 전체 곡을 다 배운 후 각자 고음부를 할지, 저음부를 할지 정하자고 하셨다.
  “고음부, 소프라노는 곡을 끌고 갑니다. 그렇다고 저음부 알토가 고음부만 따라가는 건 아니에요. 알토가 없으면 곡이 가벼워져요. 날아가는 소리를 붙잡고 있는 게 알토입니다. 소프라노와 알토가 조화롭게 화음을 맞출 때 더 멋진 합창곡이 된답니다.”
  선생님은 노래를 멈추고 소프라노와 알토에 대해 알려주셨다, 특히 알토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강조하셨다.
  “쿵, 짝, 짝. 쿵, 짝, 짝. 쿵, 짝, 짝……”
  선생님이 박자를 맞추며 네 마디를 선창했다. 고음부 연습 때처럼 우리가 뒤를 이었다.
  “잘하고 있어요. 스타카토가 있는 ‘동글동글’이나 ‘송알송알’은 더 짧고 귀엽게. 악센트 있는 부분, 더 강조해서 부릅니다.”
  큰 강당에서 노래하니 울림이 커 소리가 퍼져나갔다. 아이들도 신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소프라노와 알토를 배워 얼른 화음을 맞춰보고 싶었다.
  “합창은 혼자 부르는 독창이 아니에요. 서로의 소리를 듣고 맞춰 불러야 듣기 좋아요. 자, 다시 한번!”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는 지율이를 찾아보았다. 지율이는 지난번보다 멀리 있었다. 고개를 흔들며 노래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합창할 때 박자에 안 맞거나, 틀린 음은 없었다. 열심히 연습해 지율이 노래가 좋아졌는지, 멀리 서 있어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내 음을 흔들던 소리가 사라져 나는 합창에 집중할 수 있었다. 중심을 잡고 악보대로 연습했다. 기분이 좋았다.
  “저기, 머리 한 갈래로 묶은 학생, 이름이 뭐죠?”
  곡이 끝나자, 오리 선생님이 지율이를 가리켰다.
  선생님도 지율이 노래를 들었나? 박자와 음이 어긋나 주의를 주시려나? 역시 멀리 있어 내가 틀린 음을 못 들은 거겠지. 순간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정, 지율입니다.”
  지율이는 뜸을 들인 후 들릴 듯 말 듯 아주 조그맣게 대답했다.
  “지율이가 노래 속 포도송이처럼 귀엽고 명랑하게 노래하고 있어요. 노래 부를 때 입 모양도 예쁘고.”
  예상과 달리 선생님은 지율이를 칭찬하셨다. 지율이 귀가 새빨개졌다.
  지율이가 연습을 많이 해 좋아졌을까? 이렇게 좋아질 수 있는데 내가 괜히 잘난 척하며 지율이에게 뭐라고 했나? 어울리지 않던 지율이 음이 없어져 내 음은 중심을 잡았지만, 이제 내 마음이 흔들렸다.
  “우리, 지율이처럼 입을 크게 벌려 노래해봐요. 소리가 나가는 통로를 넓혀야 단단하고 예쁜 음이 만들어져요.”
  노래를 마치자,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강당에 있는 아이들은 교실에서 쉬던 아이들과 달랐다. 끼리끼리 모여 술래잡기를 하거나 떠들었다. 농구 골대 앞에서 공을 튀기며 몸싸움도 했다. 뛰고 구르는 소리가 벽을 타고 올라 강당 전체가 웅웅거렸다. 지율이는 친한 친구들과 모여 있었다.
나는 창에 기대어 멍하니 운동장을 보았다. 강당 앞 화단에는 국화 봉오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교문 근처에는 노랗게 물든 계수나무가 하트 모양 잎을 흔들었다. 바람에 팔랑거리는 잎이 강당의 아이들처럼 저희끼리 떠드는 것 같았다.
  “지율이 너, 노래 부르기는 했어?”
  그때 지율이 자리가 웅성거렸다. 상훈이가 지율이에게 뜬금없이 큰 소리로 물었다. 뭔가 꼬투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승찬아, 너 지율이 근처에 있었잖아. 지율이가 노래하는 거 들었어?”
  상훈이와 승찬이는 작년에도 한 반이었다. 학원도 함께 등록해 언제나 붙어다녔다. 선생님 앞에선 모범생처럼 행동했지만, 종종 아이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당연히 못 들었지. 금붕어처럼 입만 뻥긋대는데 어떻게 듣냐?”
  승찬이가 비아냥대며 상훈이에게 말했다. 그러자 상훈이는 보라는 듯 지율이에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율이가 얼마나 신나게 노래했는데, 입만 뻥긋대다니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이상했다. 나는 지율이와 상훈이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야! 너희, 무슨 말 하는 거야? 선생님이 지율이 노래 잘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옆에 있던 민서가 따져 물었다. 강당에 흩어져 있던 아이들 서너 명이 더 모였다.
  “선생님이 언제 지율이 노래 잘한다고 했냐? 그냥 입 모양이 예쁘다고 했지.”
  상훈이가 빈정거렸다. 아이들 몇 명이 맞장구쳤다. 지율이 얼굴은 이미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선생님이 너희도 칭찬해주길 바라니? 별걸 다 트집 잡네.”
  민서가 상훈이를 노려보며 지율이 편을 들었다. 그러자 지율이가 민서 팔을 붙잡아 당겼다.
  “지, 지율아 정말이니?”
  나는 지율이가 노래하는 시늉만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지율이는 내 물음에 입을 꼭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뒤 숨을 길게 내쉰 후 민서 팔을 놓았다.
  “합창 대회에 도움이 되려면, 소리를 안 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서 노래하는 시늉만 한 거야. 내가, 음, 치잖아.”
  음치라고 말할 때 지율이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지율이 말이 끝나자 몇 명은 킥킥거렸고, 또 몇 명은 한발 물러섰다.
  마침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합창 연습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네 노랫소리가 커서……’라고 말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뱉은 말이 흥겹게 합창하던 지율이 모습을 없애버렸다.
  오리 선생님은 서로 소리를 듣고 맞춰 부르는 게 합창이라고 했다. 내 음만 고집하다 신나게 노래하는 지율이는 사라지고 흉내내는 지율이만 남았다.
  “다음주까지 저음부를 연습한 후, 각자 맡을 성부를 정할 거예요. 자신의 소리에 맞게 고음부 소프라노가 좋을지 저음부 알토가 좋을지 생각해 오세요. 성부가 정해지면 자리 이동 없이 연습이 진행됩니다.”
  수업을 마치며 오리 선생님이 앞으로 무엇을 할지 알려주셨다.
나도 곰곰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완벽하게 합창하기 위해, 대회에서 일등 하기 위해, 지율이에게 노래하는 시늉만 내라고 할 수 없었다.
  ‘합창은 혼자서 노래하는 독창이 아니라는데……’
  마침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지율이가 보였다. 나는 서둘러 지율이를 쫓아갔다.
  “포동포동포동 살찐 포도송이처럼, 동글동글동글 알찬 우리 동무 랄랄라……”
  지율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지율아.”
  저절로 목소리가 움츠러들었다. 한번 더 지율이를 불렀다. 그제야 지율이가 노래를 멈추고 뒤돌아섰다.
  “너, 노래 부르는 것 좋아하는구나!”
  바람이 지율이와 나 사이로 쌩하고 불었다.
  “……그러면 뭐 해? 음치라면서……”
  지율이가 신발 끝으로 운동장을 콕콕 찍으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 미안. 정말 미안해. 사과 안 받아줘도 할말은 없는데, 네 목소리가 커서 방해된다고 한 말 취소할게. 노래하는 시늉 대신 노래를 부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나는 목소리에 힘을 줘 사과했다. 지율이가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계수나무 노란 잎이 바람에 팔랑거리며 달콤한 솜사탕 향을 풍겼다.
  “우리 집에 가서 함께 노래 부를래?”
나는 가방끈을 만지작거리며 지율이에게 물었다. 하교하던 아이들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운동장에는 나와 지율이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졌다.
  “노래 못해도 괜찮겠어?”
  한참을 서 있다 지율이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나는 지율이를 따라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강영란

202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린이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몸을 바꾸는 일이라고 합니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잘 읽게 됩니다. 당연히 글도 쓰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는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요즘 학교에서는 합창 대회 대신 합창 공연을 합니다. 하지만 학교 현실은 여전히 경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합창 대회를 공연으로 바꾸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경쟁을 부추기는 상황 속에서도 어린이들은 이야기를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예성이와 지율이가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글을 썼습니다. 물론 함께 노래하다 더 갈등이 깊어질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지우지 않고 들으려고 시도한 예성이와 용기를 내 함께 노래하려고 시도한 지율이를 응원합니다. 노래를 못해도, 체육을 못해도, 공부를 못해도 교실 안에 있는 어린이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어우러지길 바랍니다.

2023/11/15
6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