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목구멍이 간질간질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밝음의 집’에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깜깜해지면 차도 없는 엄마가 여기를 올 리 없다. 목이 꽉 메어서 침 삼키기가 힘들었다.
오후 내내 창가에 매달려 있었다. 정문 쪽에서 무슨 소리만 나면 커튼을 젖히고 밖을 내다봤다. 누가 오는지 힐끗 확인하고는 서둘러 커튼을 닫았다. 기다리는 모습을 다른 아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부터는 마당과 뒤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혹시나, 혹시나……
민성이 아빠 트럭이 밝음의 집을 떠나고 있다. 민성이는 한껏 들뜬 얼굴로 아빠 옆자리에 앉아 있겠지. 나는 트럭 꽁무니 빨간 불빛이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뒷마당에서 지켜봤다. 빨간 공룡 눈알은 세상 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주말이 아예 없으면 좋겠어.’
기운이 쏙 빠져나가서 벽에 몸을 기댔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정말 싫다. 아니 금요일 저녁부터 싫다. 다른 아이들이 밝음의 집을 떠나 엄마나 아빠를 만나러 가는 금요일 저녁부터는 내 가슴속에 살고 있는 괴물딱지, 그 녀석이 자꾸 튀어나오고야 만다.
지금도 그 녀석이 튀어나와 뒷마당에 난 풀을 마구 밟고 짓이기기 시작한다. 화가 날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집을 나갈까? ‘밝음의 집’은 집이지만 집이 아니다. 그래서 집을 나갈 수가 없다. 게다가 내가 밝음의 집에 꼭 붙어 있지 않으면 엄마가 나를 만나러 올 수가 없다.
뭔가 누런 것이 철망 밖을 휙 지나갔다. 멍구다! 멍구가 밝음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철망 밖을 어슬렁거린다. 내 손엔 어느새 돌멩이가 쥐어져 있고 멍구한테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저리 가! 왜 또 왔어? 어디로 가버린 줄 알았는데.’
멍구는 돌멩이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더니 곧 어두운 숲으로 사라졌다. 건물로 들어오다 현관에서 오영지랑 마주쳤다. 오영지가 의심스런 눈으로 나를 쏘아봤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벌러덩 누웠다. 민성이는 뭘 할까? 지금쯤 중국집에 들러 자장면을 먹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고는 목욕탕에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고 어딘가로 가서 자겠지? 민성이는 아빠를 만나면 집으로 가지 않고 여관 같은 데서 자고 온다고 했다. 어디든 아빠랑 같이 있으면 집 같을 것 같다.
나는 밤새 어딘가로 가고 또 간다. 민성이네 트럭 같기도 하고 아빠 차 같기도 하다. 멀미가 심한 나는 눈을 꾹 감고 있다. ‘쾅’ 하는 소리가 들리고 몸이 마구 흔들린다. 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다. 이불과 베개가 땀에 젖어 있다.
“선생님이 갖다주래.”
아이들이 빠져나가서 휑하니 넓어진 방에 오영지가 들어섰다. 초코파이랑 우유를 방바닥에 던지듯 내려놓는다. 아침 내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던 나는 가만히 눈만 떴다 감았다. 오영지랑 부딪치고 싶지 않았다.
“혹시 어제저녁에 멍구 왔었어? 네가 쫓아버렸니?”
“……”
“누가 멍구 봤다고 하던데…… 너, 엄마 안 온 지 오래 됐지? 내가 보기엔 너도 여기를 떠나게 될걸. 넌 재활원 같은 데로 가게 될지도 몰라. 거긴 너 같이 말도 못하는……”
역시나다. 오영지가 그냥 곱게 나갈 리가 없다. 오영지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그 녀석이 ‘투두투툭’ 튀어나가버렸다. 그 녀석은 영지 머리끄덩이를 확 낚아챘다.
“아악!”
오영지가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았다. 그 녀석은 영지 손등을 꼬집고 할퀴어버렸다.
“이씨, 내가 틀린 말 했어? 너 엄마 안 오잖아! 5학년이면서 말도 못하잖아!”
오영지가 악을 써대더니 울면서 방밖으로 달려나갔다. 그 녀석은 오영지를 쫓아갈까 말까 망설였다. 오늘은 좋아하는 강선생님 근무 날이니 참을까? 그 녀석은 씩씩거리며 벽을 발로 쾅쾅 찼다.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줄 수는 없니?”
강선생님이 방문을 벌컥 열며 말했다. 나는 선생님한테 손을 잡힌 채 영지네 방으로 갔다. 오영지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봤다. 또 자기가 잘못한 건 쏙 빼버리고 내 잘못만 얘기했겠지. 억울한 마음이 뱃속 저 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 하지만 꽉 막힌 내 목은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다. 오늘도 잘못은 내가 다 뒤집어쓰겠지.
선생님은 양손을 허리에 대고 인상을 있는 대로 구겼다. 나는 강선생님이 그렇게 무섭지 않다는 걸 안다. 지지난주 토요일에 급식 판을 일부러 엎었을 때도, 지난주에 온 자원봉사자들을 화나게 했을 때도 선생님은 지금처럼 얼굴을 찡그렸을 뿐이다.
“사과해.”
선생님이 엄하게 말했다. 나는 사과 대신 오영지를 노려보았다. 오영지가 움찔하더니 내 눈길을 피해 선생님 등 뒤로 숨었다. 큭. 그 녀석이 웃었다.
“그렇게 웃지 말고!”
소리치는 선생님을 올려다봤다. 진짜 화가 난 얼굴이다. 난 좀 당황했다.
“어서 사과해.”
선생님이 재촉했다. 오영지가 그 녀석을 튀어나오게 했다고, 쟤가 먼저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목이 콱 막히고 답답하다. 나는 손을 살짝 내밀어 오영지와 악수를 했다. 아니 손끝만 살짝 잡았다. 선생님은 내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절대 나가지 않을 테니까.
“정후야, 영지가 얼마나 아프겠니? 손등이 다 벗겨졌잖아.”
선생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나는, 내 마음은 더 찢어지고 벗겨졌다고요!’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영지야, 오영지.”
그때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지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어머, 이번주에 못 오신다더니……”
강선생님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어쩌니? 아빠가 보면 속상해하실 텐데……”
선생님이 영지 손을 잡고 나가면서 나를 돌아봤다.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불쌍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첫번째는 괜찮았지만 두번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지가 나를 보고 혀를 쏙 내밀었다. ‘메롱.’
나는 벽에 머리를 쾅쾅 찧었다. 그 바람에 영지 책상 위에 있는 액자가 퍽 엎어졌다. 머뭇거리다 액자를 세워보았다. 액자 속에서 누런 털이 부스스한 멍구가 나를 봤다. 멍구는 어느 날부턴가 밝음의 집을 들락거렸던 유기견이다. 목줄을 묶지 않은 멍구가 철망 밑구멍으로 드나든다고 멍구라고 불렀다. 멍구는 한쪽 눈이 흐릿했다. 시력을 잃은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그래서 멍구가 됐는지도 모른다.
밝음의 집 아이들은 멍구를 좋아했다. 오영지가 누구보다도 멍구를 잘 데리고 놀았다. 집에서 살 때 키우던 강아지랑 닮았다고 했다. 멍구도 오영지를 잘 따랐다. 나는 멍구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그 눈을 보면 내 가슴에서 그 녀석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 녀석은 멍구한테 돌을 던지고 발로 차고 밥그릇을 던져버렸다. 오영지가 나만 보면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나는 액자 속 멍구를 가만히 보았다. 여전히 슬퍼 보인다. 나는 액자를 엎어버렸다. 뒤에 다른 액자가 보인다. 오영지가 멍구를 닮은 강아지를 안고 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환한 연두빛 잔디 마당이 눈이 부셨다. 지금보다 어려 보이는 오영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밝음의 집에서는 한 번도 못 본 모습이다.
“너 때문이야. 네가 괴롭히니까 멍구가 이제 안 오는 거라고. 한쪽 눈도 안 보이는데 우리 멍구 이제 어떡해.”
어느 날 아침, 영지가 나에게 소리치며 울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가슴만 팡팡 쳤다. 그후로 오영지는 나한테 더 까칠하게 굴었다. 그때쯤부터였다. 엄마가 안 오기 시작한 것은.
얼마 뒤에 멍구가 다시 나타났다. 멍구는 철망 가까이에서 짖어대기만 할뿐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그 녀석이 아니다. 그 녀석은 멍구를 제대로 맞히기 위해 돌을 들고 철망 가까이 갔다. 돌을 막 던지려는데 멍구가 돌아봤다. 멍구의 왼쪽 눈이 생기 있어졌고 날카롭게 빛났다. 안 보이는 오른쪽 눈도 그렇게 보였다. 뭐지? 그 녀석은 멈칫 서서 멍구를 다시 봤다. 멍구 다리와 풀 사이에 무언가가 꼬물거렸다.
“우리 멍구한테 돌 던지기만 해! 멍구가 아가를 둘이나 낳았단 말이야!”
오영지가 소리쳤다. 그날 그 녀석은 멍구한테 돌을 던지지 못했다. 오영지 때문이 아니라 멍구 눈빛 때문이었다.
멍구는 영지를 보러 오는 것 같았다. 혼자 오기도 하고 새끼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철망 밖에서 짖어대다가 영지를 보면 철망을 넘을 듯이 뛰어올랐다. 영지도 멍구가 짖는 소리를 귀신같이 듣고는 밖으로 뛰어나가곤 했다. 물론 그 녀석이 먼저 멍구를 발견하기 전까지다. 그 녀석이 발견하면 멍구는 돌멩이를 피해 달아나기 바빴으니까. 그리고 멍구는 한참 동안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멍구가 죽었거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제저녁 다시 온 것이고 그 녀석이 기어이 쫓아버린 것이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벌렁 드러누웠다. 영지 말이 맞다. 엄마가 정확히 세 달하고 이주일 동안 안 온다. 밝음의 집 선생님들은 지금쯤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랑 같은 방을 썼던 병준이 형도 할머니가 몇 달 동안 안 오더니 어느 날 무슨 재활원으로 갔다. 병준이 형도 나처럼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엄마가 나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왔을 때를 떠올려본다. 헤어질 때 다른 날보다 더 꼭 껴안아서 내가 숨 막혀 했던 것만 기억난다. 아니 진짜일까? 진짜로 다른 날보다 더 꼭 껴안았었나? 그날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렇게 느껴진 건 아닐까? 엄마는 왜 나를 만나러 오지 않는 걸까?
눈이 뜨거워지며 무언가가 맺혔다.
‘혹시 눈물?’
나는 설마하며 무언가를 닦았다. 아니다. 이건 하품을 해서 나온 것이다. 나는 밝음의 집에 온 이후로 눈물 따윈 흘려본 적이 없다.
갑자기 밖이 시끄러워졌다.
‘드디어 왔군.’
토요일 11시쯤이면 마주치는 요란함. 가슴속에서 그 녀석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오늘은 어떤 사람들일까? 자원봉사 동아리? 연예인 팬클럽 회원들?
“아직도 우리나라에 보육원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
“그러게. 이렇게 시내 한가운데 말이야.”
자원봉사자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들렸다. 젊은 여자들 목소리로 보아 이번주도 연예인 팬클럽인가보다. 청소 봉사를 하는지 청소기를 돌리며 얘기를 하느라 목소리가 컸다.
“근데 여기 있는 애들 거의 다 부모가 있는 애들이래. 형편상 여기 맡겨놓고 주말에 데리러온대. 그러다 영영 안 오기도 하고.”
“어머, 너무 안 됐다.”
그 녀석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녀석이 불뚝불뚝 나오기 시작한 건…… 다섯 살 때였나. 나는 아빠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멀미를 심하게 한 나는 괴로워하며 누워 있었다. ‘쾅’ 소리가 나고 차가 심하게 흔들렸고 그리고…… 기억이 안 난다. 그후로 아빠를 볼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내 목은 소리 내는 구멍을 닫아버렸다. 엄마랑 있을 때만 간신히 몇 마디 말이 나올 뿐이었다.
엄마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할머니집과 고모집을 거쳐 밝음의 집에서 살게 됐다. 처음 얼마 동안 엄마는 금요일 저녁마다 나를 데리러왔다. 엄마집은 예전에 우리 가족이 살던 곳이 아니라 가게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그러다가 엄마는 일요일에만 와서 나랑 같이 밥을 먹고 돌아갔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그런데 엄마가 이젠 아예 오지 않는다……
나는 밝음의 집에 와서는 그 녀석이 튀어나오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그래야 엄마가 자주 올 것 같아서…… 하지만 엄마가 오지 않는 요즘은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요새 마음이 붕 떠 있는 것 같고 열이 나기도 한다. 뭔가 스멀스멀 얼굴로 기어오르고 가슴에 상처가 난 듯 따끔따끔하다. 그 상처 사이로 자꾸만 녀석이 튀어나오고 만다. 나는 몸을 한껏 오그렸다. 이러면 그 녀석이 못 튀어나올까?
새콤한 토마토스파게티 냄새가 올라온다. 봉사자들이 스파게티 요리를 했나보다.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아 입에 침이 고인다. 강선생님이 점심밥을 먹으라고 불렀지만 나가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내버려두었다. 자원봉사자들과 아이들이 산책을 가려는지 마당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봉사자들과 마주치기 싫다. 지난주에 온 봉사팀은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다.
“홈페이지에 올릴 거니까 잘 찍어. 우리 가수 홍보에 도움이 많이 될 거야.”
팬클럽 회장이 카메라를 메고 있는 사람에게 소리쳤다. 그때 그 녀석이 튀어나가버렸다. 그 녀석은 카메라를 던지고 팬클럽 회장의 손가락을 물어버렸다. 카메라가 벽에 부딪혀 플라스틱 조각이 사방에 떨어졌고 사람들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선생님들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꽉 잡았다. 한참 후에 그 녀석은 후퇴하는 군인처럼 슬금슬금 가슴으로 들어갔다.
자원봉사자들과 아이들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나는 살금살금 방을 나왔다. 배가 고팠다.
아이들이 없는 밝음의 집은 고요 그 자체였다. 나는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왔다. 일층으로 막 내려왔을 때였다. 오영지가 현관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난 옆문으로 재빨리 나가 벽에 몸을 붙였다.
‘쟤가 왜 이렇게 빨리 왔지? 아빠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는 거 아닌가? 내일 오후에 와서 아빠가 옷을 사줬느니, 뭘 사줬느니 하며 자랑하기 바빠야 할 텐데……’
“어? 영지야. 왜 벌써 와?”
주방에서 스파게티 접시를 들고 나오던 강선생님이 오영지를 보고 놀라 물었다. 아마도 그건 나에게 줄 스파게티일 거다. 언젠가도 그랬다.
“아빠가 또 일하러 가야 된대요. 너무 바쁜데 제가 보고 싶어서 잠깐 시간 내서 온 거래요. 다음주엔 꼭 자고 올……”
강선생님을 보자 오영지가 수다스럽게 말했다. 날씨가 더워 활짝 열어놓은 옆문으로 영지 소리가 다 들려왔다.
오영지 말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나는 고개를 내밀어 로비를 봤다. 오영지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어깨가 들썩거린다.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끅끅댄다.
“아빠가 이제 다른 나라에 일하러 간대요. 내년부터는 같이 모여 살 거라고 조금만 참으라고 맨날 그랬는데……”
오영지가 이제 엉엉 운다. 로비에 울음소리가 왕왕 울린다. 나는 벽에 더 바짝 붙었다. 오영지는 선생님들 말고 아무도 없는 줄로 알 거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큰 소리로 울 리가 없다.
“엄마도 돈 벌러 가서 못 오는데……”
오영지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선생님이 영지를 끌어안고 달래고 있다.
나는 벽에 바짝 붙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얀 구름이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다. 또 멀미가 났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오영지도…… 나는 눈을 감았다. 무언가가 주륵 흘러내렸다.
“멍구도 떠나고.”
꺼이꺼이 우는 울음 중간에 멍구 이름이 나왔다. 이와중에 멍구라니. 쟤도 참……
“멍구는, 눈도 안 보이는 녀석이 그렇게, 엉엉, 새끼들을 잘, 엉엉……”
“멍! 멍!”
거짓말처럼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로 철망 뒤에 멍구가 있었다. 어제저녁 오영지를 못 만나서 또 만나러온 걸까? 멍구를 보자 자동으로 그 녀석이 튀어나와 돌멩이를 주워든다.
‘얼른 던져!’
그 녀석이 소리쳤다. 오른팔이 위로 올라가려 했다.
‘안 돼.’
나는 왼팔로 오른팔을 꽉 잡았다. 그러고는 멈춤 자세로 있었다. 파리가 날아와도 꼼짝도 하지 않고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 멍구가 나를 보고 도망가버리면 안 되니까.
“멍구야!”
오영지가 울먹이며 달려나왔다. 멍구가 꼬리를 흔들며 철망을 뛰어넘을 듯이 높이 올랐다. 영지는 철망 사이로 손을 내밀어 멍구를 쓰다듬었다. 헤어졌던 가족이 만난 듯 오래오래 그러고 있었다. 나는 꼼짝하지 않고 서서 둘을 봤다. 한낮의 햇볕은 뜨거웠고 등과 목으로 땀이 줄줄 흘렀다. 목이 마르고 아침부터 굶어서인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나는 돌로 만든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멍구가 영지에게서 떨어져 산으로 달려갔다. 영지는 멍구가 가는 것을 오래도록 보았다. 땀이 눈두덩으로 흘러 영지가 서 있는 건지 건물 쪽으로 오는 건지 흐릿했다. 영지가 가까이 왔을 때 도망가려고 했지만 뻣뻣해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나를 발견한 영지가 흠칫 놀랐다. 영지가 내 얼굴에 흐르는 땀과 풀려가는 눈동자를 멍하니 봤다. 그러다 멀어져가는 멍구를 한번 보고 또 나를 봤다.
영지가 아침에 내가 낸 손등의 상처를 만졌다. 상처엔 진분홍 공주 캐릭터 밴드가 붙어 있었다. 이런 걸 좋아했나? 5학년이면서.
“아까…… 아침에 한 말, 미안…… 했어.”
영지가 캐릭터 밴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눈을 내리깐 영지의 까만 속눈썹에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
“멍구…… 잘 살고 있는 것 같지? 처음엔 참 걱정됐는데…… 우리 멍구 이제 씩씩하고 용감해진 것 같아……”
영지가 분홍 밴드를 자꾸만 문질렀다. 공주 캐릭터가 찡그렸다 웃었다 했다. 목구멍이 간질간질. 무슨 말인가 목구멍을 밀고 나오려고 애를 썼다.
김혜온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 재난과 사고를 보아왔어요. 재난과 사고는 우리 삶에 예고 없이 닥쳐서 가정과 개인을 파탄시키고 말지요. 어른도 괴롭고 아프겠지만 가장 힘든 존재는 힘없고 약한 아이들일 거예요. 어른 같은 언어를 가지지 못한 아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을 하지요. 아이들이 보이는 증상과 행동은 아프다고, 사랑받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하는 sos에요. 어른들은 이 아이들의 신호를 알아듣고 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쓰면서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혹여 보육원 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안정된 마음을 건드리는 건 아닐까 하는 점이었어요. 또 아이의 의지와 반하여 자꾸만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의 내면에 품은 분노, ‘그 녀석’이란 이름으로 표현된 분열된 자아를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어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아이들이 처한 상황과 타고난 성격은 다 제각각이지요. 정후와 영지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로 이해 받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이기에 가지는 적응력과 내면의 회복탄력성을 믿어요. 그런 아이들이 자라 ‘괜찮은’ 어른이 될 거라 믿어요.
2018/01/30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