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히의 바다
   조히는 온 세상 공기를 다 빨아들일 것처럼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아침 햇살이 물결을 간질이며 따라 들어왔다.
   조히는 오리발을 저으며 바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마 숲 사이로 가로줄 무늬 용치놀래기들이 호르르 지나갔다. 그러든지 말든지 쥐치는 뚱한 표정으로 풀을 뜯고, 보리멸은 모래밭을 열심히 뒤적였다. 다시마 숲 옆으로 꽃게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조히가 꽃게들이랑 장난칠 생각으로 모래밭에 섰다. 꽃게들이 조히한테 따라잡힐 리 없다. 조히가 근처에 가기도 전에 모래 속으로 닥다그르르 숨었다. 조히가 눈으로 꽃게들을 좇는데, 저만치 이상한 것이 보였다.
   ‘저게 뭐지?’
   축구공만한 다시마 뭉치가 물결 따라 조금씩 굴러갔다. 아니다. 다시마 뭉치 아래로 비죽이 나온 다리 두 개가 걷고 있었다. 조히는 뭉치를 따라가 손끝으로 건드려보았다. 그러자 다시마 뭉치가 훌렁 벗겨지면서 문어가 맨살을 드러냈다. 다리 하나가 유난히 짧은 문어였다.
   조히는 눈이 동그래졌다. 문어도 놀랐는지 멈칫하더니 피부가 오돌토돌해지고 색깔이 변했다. 금세 주변에 있는 바위랑 똑같아졌다.
   ‘우와, 너 대단하다.’
   조히는 문어를 더 따라다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너무 오래 숨을 참았다. 물 위로 올라가야 했다.
   “휘이이이, 후아후아.”
   물 밖에 고개를 내밀자마자 숨비소리가 휘파람처럼 터져나왔다. 짠 공기가 다급하게 조히 몸속으로 들어왔다. 조히는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째려보았다. 사람한테 아가미를 만들어주지 않은 건 하느님의 최대 실수다. 아가미를 깜빡했으면 물속에 들어갈 때마다 코가 주우우우우욱 늘어나서 숨쉴 수 있게 해주든지! 하여튼 마음에 안 든다.
   조히는 숨을 한가득 들이쉬고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문어가 그곳에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제발……, 제발.’
   조히는 다시마 숲을 지나 문어가 있던 바위 근처로 갔다. 바위를 더듬어가며 살피고, 좁은 틈도 지나치지 않았다. 조개 무덤이 있는 바위 구멍도 들여다보았다. 구멍 안에는 왕조개만 있을 뿐 문어는 보이지 않았다.
   조히는 근처 모래밭을 발끝으로 후비적거렸다. 문어가 꽃게들처럼 모래밭에 숨었을지 모른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조히가 발 닿는 대로 쑤셔댔지만 모래만 풀썩댈 뿐 문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조히는 그만 물 밖으로 나왔다. 문어가 보이지 않으니까 맥빠지고 시시했다.
   “에이 참, 스쿠버 다이빙했으면 안 놓쳤을 텐데……”
   스쿠버 다이빙은 공기통을 메기 때문에 물속에서 꽤 오래 있을 수 있다. 조히는 언제든 스쿠버 다이빙할 준비가 돼 있다. 장비도 다 있다. 하지만 버디가 없다. 버디는 바다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서로 지켜주는 짝꿍이다. 버디 없이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 안 된다. 그건 다이버들의 약속이다.
   조히는 물안경과 스노클을 벗으며 바닷가로 걸어나갔다. 발목에 물결이 찰방거릴 때 즈음 오리발도 벗었다.
   “조히야, 또 자맥질이냐? 다른 애들은 학원 다니느라 바쁜데, 쯧쯧.”
   물질하러 가던 아주머니들이 조히를 보자마자 한소리씩 했다.
   “육 학년이니까 공부해야지. 내년에 중학생이잖니.”
   아무래도 육 학년은 검은 마법에 걸린 학년이 분명하다. 작년까지 아무 말 안 하던 아주머니들까지 잔소리다. 조히가 건성으로 “네, 네” 하며 지나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저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미리 아냐? 오늘도 달리네.”
   저만치 해변 끝에서 미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모양새가 자못 마라톤 선수 같다.
   “조히야, 미리 좀 닮아봐라. 저런 근성으로 공부해야지.”
   안미리는 조히와 같은 반이다. 6학년 1반 회장이고, 공부를 아주 잘한다. 올림피아드, 영어 경시대회, 과학 탐구 대회, 온갖 대회를 휩쓸었다. 동네 어른들은 하나같이 미리를 칭찬하느라 바쁘고, 선생님들도 죄다 안미리 편이다.
   물론 조히는 안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안미리와 얘기를 해본 적도 없다. 수업 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제자리에서 공부만 하고, 방과 후에도 주말에도 공부만 하는 안미리와 얘기할 시간은 당연히 없다. 맨날 심각하게 인상 쓰고 다니는 안미리한테 굳이 말을 건넬 이유도 없다.

   2. 미리의 바다
   미리는 숨을 두 번 들이쉬고 한 번 내뱉고를 반복했다.
   “흡흡 하, 흡흡 하.”
   바닷가를 달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머리 위로 햇살이 날카롭게 쏟아지고, 발밑은 디딜 때마다 푹푹 꺼졌다. 한 시간 남짓 달리고 나면 다리가 묵직하고 가끔 쥐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미리는 달리기를 하루도 빼먹을 수 없었다.
   “후아 후아 후아.”
   미리는 모래사장 끝까지 달려 절벽 앞에서 숨을 골랐다. 짭조름한 바람이 입속으로 들락날락했다. 미리는 발목을 번갈아 돌리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선이 꾹 다문 입술처럼 단호하게 느껴졌다. 저마다 한참 달려온 파도가 눈앞에서 부서졌다. 미리는 파도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여름방학 내내 아침마다 여기에서 파도를 세었다. 모든 파도를 다 세는 것은 아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셀 수 있는 만큼 셌다.
   “열여덟,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백까지 셀 것이다. 비가 왔던 이틀을 빼고, 구름이 잔뜩 꼈던 사흘을 빼고, 항상 백을 다 세기 전에 나타났었다. 오늘도 그럴 것이다.
   “서른둘, 서른셋, 서른넷……”
   미리는 숫자를 세면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언제부터인가 시계를 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꽉 짜인 시간표대로 정확히 움직이려면 당연한 거다. 오늘은 시간표에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도 미리는 자꾸 시계를 보았다.
   “오십일.”
   틀렸어, ‘쉰하나’라고 해야지! 아빠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미리는 순간적으로 ‘쉰하나’로 고쳤다가, 다시 ‘오십일’로 바꾸었다. 손으로 귀를 탁탁 털고 숫자를 계속 셌다.
   “오십이, 오십삼……”
   미리는 조금씩 기분이 나빠졌다. 대부분 오십까지만 세면 되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안 보인다. 미리는 파도를 조금 천천히 셌다.
   “육십…… 팔……, 육십…… 구……, 칠십……”
   갈매기 서너 마리가 드세게 끼룩 소리치고 지나갔다. 미리는 손으로 눈을 꾹꾹 눌렀다. 눈을 감고 파도 몇 개쯤 지나쳐도 좋을 것 같다.
   “팔십…… 칠……, 팔십팔, 팔십팔, 팔십팔, 팔십팔.”
   팔십팔을 열 번쯤 셌다. 그러고 싶었다. 그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팔십구, 구십.”
   그때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위에 작은 무지개가 떴다.
   “찾았다.”
   미리는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여태 기다렸던 무지개다. 끝이 보이지 않아서 막막한 바다에 반짝 숨을 터주는 무지개다. 미리는 그것이 필요했다.
   미리는 멀거니 무지개를 바라보았다. 무지개가 바다 위를 달렸다. 발레하는 어린아이처럼 물결 위를 뛰놀았다. 가까이 가면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잘 될 거야. 무지개를 보았으니까……, 괜찮을 거야.’
   미리는 모자를 고쳐쓰고 시계를 보았다. 8시 30분, 오늘은 아홉 시까지 집에 갈 필요가 없다. 열두 시까지 이삿짐을 낸다고 했다. 이삿짐을 다 꾸리고 나면, 서울로 출발할 것이다.
   아빠 말을 처음부터 믿지 말아야 했다. 언제는 공부를 잘하면 전학시키지 않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공부를 잘하니까 전학 가야 한단다.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한단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를 안 했을 거다. 미리는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는 ‘팔십팔’을 꿀꺽 삼켰다.
   “흡흡 하, 흡흡 하.”
   미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렸다. 어디서든 시간을 때웠으면 좋겠는데, 딱히 갈 데가 없다. 해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네 번쯤 왕복하면 열두 시가 될 것 같다. 미리는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저만치 해녀 아주머니들이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아주머니들 틈에 김조히가 있었다. 조히가 히죽거리는 걸 보니, 아주머니들과 웃긴 얘기를 주고받나보다. 김조히는 항상 그랬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맨날 헤헤거린다. 육 학년인데 매일 바다에서 노는 건 김조히밖에 없을 거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김조히를 보면 미리는 왠지 신경질 났다. 미리는 고개를 돌려 앞만 보고 달렸다.

   3. 그리고
   달리는 미리를 조히가 눈으로 좇았다. 잘못하면 맞닥뜨릴 것 같다. 조히는 멈춰 서서 다리에 붙은 모래를 터는 시늉을 했다. 안미리가 지나간 다음에 가는 게 속 편할 것 같았다. 조히는 느적느적 다리를 털고 손을 털었다. 그리고 미리가 지나갔을 거라는 계산으로 고개를 들었다. 미리가 아직도 안 지나갔다.
   ‘오늘은 왜 천천히 뛰는 거야?’
   그때 미리가 달리는 앞쪽 모래밭에 뭔가 꾸물거리는 게 보였다. 조히는 그것을 뚫어져라 보았다. 문어다.
   조히는 손을 내저으며 달렸다.
   “스톱! 안미리! 스톱!”
   미리는 잠시 조히를 보았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김조히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조히가 한달음에 달려 미리의 팔을 낚아챘다.
   “안미리, 멈추라고!”
   순간 미리가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다 넘어졌다. 조히는 미리를 돌아보지도 않고 문어한테 달려갔다. 등 뒤에서 미리가 빽 소리쳤다.
   “뭐야? 김조히! 너 땜에 넘어졌잖아.”
   조히도 지지 않았다.
   “너 문어 밟을 뻔했잖아! 문어가 죽을 뻔했다고.”
   그제야 미리는 두 걸음 앞에 있는 문어를 보았다. 미리는 모래알을 털며 일어났다.
   “뭘 그깟 문어 갖고 그래?”
   “그깟 문어라니! 문어는……”
   문어는 똑똑해서 병뚜껑을 돌려서 열 줄 알아,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단 말이지, 한 시간에 백오십 번 넘게 변신할 수도 있어, 사람도 알아봐, 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조히보다 미리가 먼저 말했다.
   “문어는 맛있지.”
   조히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귀가 뜨거워졌다. 미리가 한마디 더 했다.
   “근데 저 문어는 쪼그매서 먹을 것도 없겠네.”
   “야! 너!”
   조히는 미리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린 문어를 바다에 돌려보내는 일이 급했다. 조히는 홱 돌아서며 중얼중얼 저주를 퍼부었다.
   “갈매기 똥이나 맞아라. 성게 가시 백 개 박혀라. 백만 개, 천만 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언제부터 뙤약볕 아래 있었는지, 어린 문어는 죽어가고 있었다. 아까까진 꼼지락댔는데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다. 조히는 두 손으로 문어를 모래째 퍼올렸다. 그리고 얼른 바다로 들어가 두 손을 물에 담갔다. 개미떼처럼 달라붙은 모래알이 물결 따라 흩어지고 문어가 맨살을 드러냈다.
   “숨 쉬어……”
   조히 말을 들었는지 문어가 빠끔거리며 공기 방울을 뿜었다. 조히는 살그머니 손을 뺐다. 문어가 바다에 몸을 맡기며 흔들거렸다. 몸 색깔을 바꾸면서 조금씩 생기를 찾아갔다.
   후우, 조히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조금 있으니 문어가 다리를 휘적이며 조히 쪽으로 왔다. 조히는 문어가 파도에 밀려들어오는 줄 알고, 손으로 작은 물결을 만들어 밀어주었다. 그런데 문어가 다리를 휘적이며 계속 조히에게 다가왔다. 분명 조히에게 오고 있었다.
   조히는 눈을 끔벅이며 가만히 문어를 보았다. 어린 문어가 가까이 오더니 다리를 길게 뻗었다. 수십 개 빨판이 조히 다리를 간질였다. 고양이 발바닥보다 더 부드러운 빨판이 조히를 쓰다듬었다.
   “지금 문어가 너한테 인사하는 거야?”
   언제 왔는지 옆에서 미리가 문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히는 들은 체 만 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까는 문어가 맛있다더니.’
   미리는 문어한테 눈을 떼지 않으며 쪼그려 앉았다.
   “맞네. 인사하는 거! 신기해.”
   미리는 문어한테 손가락을 내밀었다. 문어가 미리의 손가락을 딱 잡았다. 미리는 처음엔 흠칫 놀라더니, 문어의 빨판이 꾸물거리자 작게 키득거렸다.
   조히가 불퉁스레 말했다.
   “넌 뭐냐? 달리기 안 해? 학원 안 가?”
   조히는 미리가 벌떡 일어나서 집으로 달려갈 줄 알았다. 그런데 미리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가.”
   너무 간단한 대답에 조히는 머쓱해졌다. 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문어가 미리의 손에서 빨판을 떼더니 천천히 멀어져갔다. 바다로 돌아갈 생각이 든 모양이다. 바다 속으로 헤엄쳐갈 힘이 생겼나보다. 조히는 문어를 눈으로 좇으며 부랴부랴 오리발을 끼웠다.
   미리가 조히를 보며 물었다.
   “문어 따라가려고?”
   “응? 으응……”
   조히는 대충 대답하며 오리발을 마저 신었다. 문어가 점점 멀어졌다. 바다 속으로 아예 사라지기 전에 따라잡아야 한다.
   “나도 갈래.”
   “뭐?”
   조히가 뜨악한 표정으로 미리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오늘 안미리가 이상하다.

   4. 문어의 바다
   하마터면 문어를 놓칠 뻔했다. 조히는 오른쪽에 오리발을 신고, 미리는 왼쪽에 오리발을 신었다. 물안경과 스노클은 미리가 썼다. 매일 바다에서 살다시피 해서 그런지, 조히는 물안경 없이도 물속에서 잘 다녔다.
   문어는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헤엄쳐갔다. 가끔 기다려주듯 멈추었다가 조히와 미리가 가까이 가면 다시 앞서갔다. 문어와 조히와 미리는 다시마 숲을 지나고 모래밭을 가로질러 커다란 바위까지 갔다. 바위에 뿌리내린 모자반이 물결 따라 흔들리고 말미잘이 꽃처럼 피었다. 미리가 말미잘을 만져보려고 손을 뻗자, 조히가 도리질하며 두 팔로 엑스를 만들어 보였다. 만지면 안 된다는 뜻이다. 미리는 할 수 없이 눈으로만 백 번 쓰다듬었다.
   얼마 안 있어 미리가 검지로 하늘을 찔러댔다. 물 위로 올라가자는 수신호다. 조히는 미리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히유우우 후우.”
   미리가 숨을 한꺼번에 쉬면서 휘파람 소리를 냈다. 출렁이는 바다 소리가 장단 치듯 귓전을 때렸다. 조히는 숨을 한껏 들이쉬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문어가 사라졌을까봐 마음이 조급했다.
   얼마 가지 않아 문어가 보였다. 조히는 가슴이 콩닥거렸다.
   ‘우리를 기다린 거야?’
   문어는 공중제비 돌듯 동그라미를 그리고 앞서 헤엄쳐갔다. 조히는 다리를 더 힘차게 저었다. 미리도 부지런히 따랐다.
   문어가 바위까지 곧장 가더니 오른쪽으로 돌아 사라졌다. 조히는 얼른 문어를 따라갔다. 크고 작은 조개껍데기가 쌓인 바위 구멍이 보였다. 아침에 문어를 찾아다닐 때 보았던 구멍이다. 조히는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입구는 좁은데 구멍 안은 꽤 널찍했다. 거기 문어가 있었다.
   조히가 눈으로 문어를 좇는데, 미리가 조히 어깨를 흔들었다. 미리는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가리키고 바위 구멍을 가리켰다. 구멍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뜻이다. 조히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조금 내주었다.
   조히와 미리는 머리를 나란히 붙이고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구멍 안에 사람 머리만한 조개가 있었다. 조개는 문어가 즐겨 먹는 먹이다. 하지만 저렇게 큰 조개라면 되레 어린 문어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조히는 구멍 안으로 손을 뻗었다. 문어를 막고 싶었다. 하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문어가 다가가자 큰 조개가 입을 벌렸다. 조히는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칠 뻔했다.
   ‘위험해!’
   소리칠 필요가 없었다. 왕조개는 껍데기였고, 그 안에 문어들이 오글오글했다. 문어들이 하나둘 조개껍데기 밖으로 나와 어린 문어를 둘렀다. 어린 문어를 맞아주는 것 같았다. 그중에 다리 하나가 유난히 짧은 문어가 눈에 띄었다. 조히의 눈이 동그래졌다. 다시마 뭉치로 위장했던 문어가 분명했다.
   ‘너, 여기 숨었었구나!’
   조히는 문어를 알은체하며 더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만 숨쉬러 가야 했다. 조히가 미리의 어깨를 흔들고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미리가 손가락으로 오케이를 만들어 보였다.
   조히가 먼저 헤엄쳐 올랐다. 미리는 자꾸 아래를 내려다보느라 뒤처졌다. 조히가 되돌아 내려와 미리의 손을 잡았다. 숨을 너무 참으면 큰일난다. 자기 숨을 넘어서기 전에 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조히가 미리와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제야 미리가 조히를 따랐다. 조히의 오른쪽 오리발이 바쁘게 움직였다. 미리도 왼쪽 오리발을 힘차게 저어댔다. 오른발과 왼발이 발을 맞추었다.
   조히가 미리를 보았다. 아무래도 방금 버디가 생긴 것 같다. 조히는 미리에게 속으로 말했다.
   ‘우리, 내일 스쿠버 다이빙하자!’
   미리가 조히를 마주 보았다. 서울에 가면 또 시간표대로 움직일 것이다. 숨막히는 시간을 꾹꾹 참으며 살아낼 것이다. 그래도 가끔 이 순간을 생각하면 숨이 트일 것 같다. 무지개보다 훨씬 깊은 숨이다.
   미리는 조히에게 속으로 말했다.
   ‘고마워.’
   미리는 이곳에 다시는 못 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빠는 여름 방학도 없이 공부를 시킬 것이고, 미리는 딱히 반항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방금 이유가 생겼다. 꼭 다시 올 것이다. 아빠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내년 여름에 또 보자.’
   바위 구멍에서 문어들이 차례로 빠져나와 헤엄쳐 올라갔다. 하나, 둘, 셋, 넷……, 열 마리쯤 되는 문어들이 바다를 날아올랐다.

신현

우리는 저마다 자기 세계에서 산다. 다른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 이해되지 않는 세계를 미워하기도 한다. 저마다의 세계, 저마다의 바다가 서로에게 스며들 수 있다면, 동화가 그 소통의 지점이 될 수 있다면, 퍽 행복할 것이다.

2022/02/22
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