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표정 완전 느끼. 자기가 잘 추는 줄 아나본데 잘난 척 좀 작작 하삼.

   주저 없이 키보드의 엔터키를 눌렀다. 순식간에 동영상 아래로 나의 댓글이 달렸다. 지금까지 달린 댓글 수는 벌써 오백스물한 개.

   초딩이신데 춤 정말 잘 추시네요.
   기획사에서 조만간 캐스팅 전화 올 듯.

   그렇게 꾸준히 악플을 달아 왔건만 아직까지도 동영상엔 칭찬이 더 많았다. 나는 컴퓨터 전원도 끄지 않은 채 모니터의 빨간 버튼을 눌렀다. 신나게 몸을 흔들던 나희의 모습이 새까만 화면 너머로 사라졌다. 칫, 아무것도 아닌 게. 나는 저것보다 더 잘 할 수 있었다.
   나희가 유튜브 스타가 된 건 그날 그 장기자랑 이후부터였다.
   “와, 나희는 진짜 춤추는 것도 예쁘다.”
   무대가 이미 끝난 뒤에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나희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찬이는 나희의 동영상을 장난삼아 유튜브에 올렸고, 동영상은 순식간에 조회 수가 만 건이 넘어갔다. 하지만 그 날 아이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나희 뒤에서 내가 다음 무대를 시작하고 있었단 사실을 말이다.
   나는 내 방 전신 거울 앞에서 혼자 춤을 춰보았다. 동영상 속 나희의 모습보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몇 배는 더 멋져보였다.
   “운동 삼아 배우는 거 치곤 너무 아까운 실력이라니까.”
   댄스 학원 선생님의 말이 생각났다. 엄마는 내가 8살 때부터 외삼촌이 운영하는 댄스학원에 나를 보냈다. 거울 속에 서 있는 나의 어깨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 그래, 나도 한번 유튜브에 올려보는 건 어떨까.
   책상 위에 핸드폰을 세워놓고 녹화를 준비했다. 유튜브에 내 영상을 올릴 생각을 하니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혹시 이번에도 사람들이 내 춤을 봐주지 않는 건 아닐까. 만약 내 얼굴이 공개된 동영상 조회 수가 계속 바닥에 머물러 있다면 그땐 너무 비참할 것 같았다.
   나는 챙이 깊은 모자를 눌러쓰고, 커다란 선글라스도 가져와 꼈다. 이렇게 얼굴까지 감추어버리니 이제는 정말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그룹 노래를 크게 틀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춤을 추었다. 딸깍. 버튼 하나로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갔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나희야, 어제 내 동생이 네 동영상 보고는 사인 하나만 받아 달래.”
   교실은 아침부터 아이들로 가득했다. 다른 반 애들도 모자라 오늘은 다른 학년 애들까지 몰려왔다. 쳇, 진짜 춤이 뭔지도 모르는 멍청이들 같으니라고. 사실 유튜브에서 조회 수가 만 건이 넘어가는 일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그런데도 나희는 자기가 진짜 연예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들이 내민 종이에 이름을 갈겨서 썼다.
   “야, 춤신춤왕. 이러다 너 진짜 연예인 되면 나한테도 한 턱 쏴라. 내가 올려준 조회 수만 해도 엄청나니까 말이야.”
   유찬이가 지나가며 나희에게 큰소리를 쳤다. 나도 모르게 슬쩍 나희에게 눈을 흘겼다. 저 정도 가지고 ‘춤신춤왕’은 무슨. 오늘 달 악플을 벌써부터 머릿속에 자판으로 새겼다.

   연예인병 제대로 걸린 년. 저 정도 춤은 동네 개도 다 춘다.

   나희를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던 탓일까. 순간적으로 나희와 눈이 마주쳐 고개를 돌렸다. 나희는 내가 악플을 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하긴, 굳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어차피 얼굴 없이 달리는 수많은 댓글 중에 하나일 뿐이니까. 더군다나 우리 반에서 나희는 귀족이라면 난 그저 존재감 없는 평민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차피 우리가 서로 부딪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까칠 씨, 좋은 아침.”
   유찬이가 내 옆자리에 책가방을 내려놓았다. ‘까칠 씨’는 학기 초부터 나를 따라다니는 지긋지긋한 별명이다. 장난치고 까분 지들 탓인데 왜 나한테만 까칠하다는 지 알 수가 없다. 나한테도 나희한테 하는 반만큼만 친절을 베풀었다면 나 역시 나긋나긋한 요조숙녀가 되었을 것이다.
   “까칠 씨라고 부르지 말랬지!”
   나는 주먹으로 유찬이의 어깨를 밀었다.
   “항복! 항복!”
   유찬이가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몰래 꺼내 책상 밑에서 또 유튜브를 틀었다. 선생님한테 몇 번이나 핸드폰을 빼앗겼는데도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다니. 유찬이는 정말 지독한 유튜버였다.
   “오, 이거 진짜 장난 아닌데.”
   유찬이는 소리도 잘 안 들리는 핸드폰을 보며 혼자서 계속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게 곁눈질로 화면을 훔쳐보았다. 그런데,
   “어!”
   나는 너무 놀라 유찬이의 핸드폰을 빼앗았다.
   “왜. 같이 보자고?”
   유찬이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유튜브 화면을 뚫어지게 보았다. 동영상 속에서 바로 내가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학교가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엄마가 핸드폰 인터넷을 막아놨기 때문에 내가 유튜브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집에 있는 컴퓨터뿐이었다.
   “뭐야, 말도 안 돼.”
   집으로 들어가 유튜브를 연 순간 저절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내 동영상 조회 수가 벌써 이만 건을 훌쩍 넘었다. 나는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웬만한 연예인 춤 뺨치는 듯. 다른 춤도 공개 하삼.
   일반인 중에 이렇게 춤 잘 추는 사람 처음 봄. 영상 더 올려주세요^^

   키보드에 올린 손이 바르르 떨렸다. 사람들이 나의 춤을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도 꼈다. 한 번 더 멋지게 춤을 추고 싶었다.
   날마다 내 동영상 조회 수는 꾸준히 늘어갔다.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믿기지 않았다. 사람들의 요구대로 난 이제 유튜브 전용채널까지 갖게 되었고, 나의 영상을 기다리는 팬들까지 생겼다. 이 정도면 난 진짜로 유튜브 스타가 된 거다.
   하지만 난 요즘에도 매일 하던 일과를 거르지 않았다. 나희의 동영상에 악플을 다는 일. 이제 이건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나희의 동영상을 검색했다. 이번엔 또 어떤 욕을 써야 하나. 이젠 더 나희를 비난할 거리를 찾는 것도 어려웠다.
   

   얘 학교에서도 완전 노는 애라고 소문 남.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신다는 얘기도 있음.

   사실 이 댓글은 모두 내가 꾸며낸 얘기다. 하지만 어차피 거짓말이든 진짜든 사람들은 알 바 없었다.

   괜히 어디서 근거 없는 소문은 가져오지 맙시다.

   누군가 내 댓글에 답글을 달았다.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나희가 나한테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냥 조금 약 올라서 시작했던 악플질이 이젠 나의 심심풀이 샌드백이 되어 버렸달까. 나는 방금 쓴 댓글을 삭제하려다 그냥 마우스에서 손을 거두었다. 어쨌거나 나희는 이런 댓글 따윈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어딜 가나 사람들에게 늘 둘러싸여 있느라 이런 건 보이지도 않을 테니까.
   나희의 조회 수는 이제 겨우 만 오천 건. 내가 올린 첫 번째 동영상은 오늘로 9만 건이 넘었다. 유튜브에서 내 별명은 댄스요정이었다. 춤신춤왕이란 닉네임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든다. 하지만 나는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바로 댄스요정이란 걸 친구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니까 말이다.
   “어이, 춤신춤왕. 어제 달린 댓글 중에 어떤 기획사 실장이란 사람도 있더라. 어떡할 거야? 너 진짜 들어갈 거야?”
   학교에 가니 유찬이가 아침부터 유튜브를 켜며 말했다. 나희는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할 뿐이었다.
   “우와. 너 진짜 연예인 되는 거야?”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또 나희에게 몰려들었다. 오늘도 역시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건 내가 아닌 나희였다.
   “근데, 너 혹시 유튜브에서 댄스요정 본 적 있어?”
   유찬이가 큰 소리로 나희에게 물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목구멍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턱까지 올라 찼다. 댄스요정은 바로 나야. 쟤보다 내가 훨씬 잘 나간다고!
   “왜 이렇게 교실이 소란스러워? 또 춤신춤왕 때문이야?”
   때마침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섰다. 순식간에 아이들은 자리로 돌아갔다. 선생님 역시 춤신춤왕 밖에 알아보지 못했다.
   “내일부턴 우리 학교 축제 준비를 해야 해요. 우리 반도 공연을 하나 준비해야 하는데, 아이디어 있는 사람?”
   선생님이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유찬이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손을 번쩍 들었다.
   “우리 반에 춤신춤왕 있잖아요. 당연히 얘가 나가야 되는 거 아니겠어요?”
   아이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나는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춤을 제일 잘 추는 건 나희가 아닌 바로 나였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종례가 끝나기도 전에 교실을 박차고 나왔다.
   “야, 까칠 씨! 어디가? 급하게 또 승질 부릴 일이라도 생긴 거야?”
   등 뒤에서 유찬이의 소리가 들렸다. 바보 같은 자식. 그렇게 맨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도 댄스요정 하나 못 알아보다니. 어디 한 번 두고 보라지. 내일은 날 감히 놀려대지 못할 테니.
   나는 집으로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젠 가면을 벗어 던질 차례다. 하지만 막상 내 얼굴을 공개하려고 하자 이런저런 걱정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내 얼굴이 기대만큼 예쁘지 않으면 어떡하나, 나를 보고 사람들이 실망하진 않을까. 복잡한 머리에 손을 얹고 내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보았다.

   댄스요정 볼수록 매력 쩐다. 얼굴도 제발 보여 주삼.
   누군지 정말 궁금해요. 더 이상 얼굴 가리면 탈퇴 예정.

   사람들 역시 얼굴 공개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 댓글을 보니 이제 정말 용기가 났다. 사람들은 이렇게나 나를 원하고, 좋아해주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단정히 빗고, 제일 아끼는 티셔츠도 꺼내 입었다. 이번엔 모자도, 선글라스도 끼지 않았다. 딸깍. 마우스 왼쪽 버튼을 누르자 순식간에 유튜브에 동영상이 올라갔다. 두근두근 가슴이 떨려왔다. 이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덜컥하며 내 방문이 열렸다.
   “너, 또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은 거야? 요즘 들어 맨날 인터넷만 하고, 진짜 한 번 혼나봐야 정신을 차리지!”
   엄마가 들어와 컴퓨터 코드를 뽑았다.
   “엄마 지금 뭐 하는 거야?”
   엄마의 손에서 코드를 빼앗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엄마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엄마는 늦은 밤이 될 때까지도 지독하게 나를 따라다녔다. 컴퓨터를 켜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이 근질거렸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엄마가 지켜보는 침대 앞에서 쏟아지는 졸음과 힘겹게 싸웠다.
   “얼른 일어나. 학교 늦었어.”
   엄마가 이불을 걷어 젖혔다. 눈을 뜨니 벌써 아침이었다. 게다가 어제 늦게까지 버티던 탓에 그만 늦잠까지 자버리고 말았다. 나는 잠바에 팔 하나만 겨우 쑤셔 넣은 채, 정신없이 학교를 향해 달렸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시계를 확인하던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순식간에 나를 향해 몰려들었다.
   “야, 네가 진짜 댄스요정이야?”
   “정말이야? 너 얼굴 합성한 거 아니지?”
   나는 숨을 헐떡이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몰려든 아이들 때문에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 정신이 없었다.
   “진짜 너 좀 대단하더라.”
   어느새 나희까지 다가와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오늘은 또 왜 이리 소란들이야? 이번엔 새로 떠오른 스타 때문이야?”
   선생님이 들어오시며 나를 가리켰다. 갑자기 시원한 탄산수를 마신 것처럼 온몸이 짜릿해졌다. 드디어 사람들이 나를 알아본 것이다. 그래, 바로 나야. 내가 바로 댄스 요정이라고. 나는 입가에 피어오르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자리에 가 앉았다.
   “너 같은 까칠이가 댄스요정이었다니. 진짜 실망, 대실망이다.”
   옆에 앉은 유찬이가 나를 보고 말했다. 교실에 앉은 다른 아이들도 모두들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는 게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하게 긴장됐다.<
   하루 종일 시간이 얼마나 늦게 흘러가는지 학교에서 시계를 백번도 넘게 쳐다본 것 같다. 전속력으로 달려와 현관문을 열어보니 다행히 엄마는 어디 나가고 없었다. 나는 얼른 컴퓨터의 코드를 꼽았다.

   이렇게 앳된 초딩 얼굴이었다니. 생각보다 더 어림. 볼수록 대단.

   다행히도 사람들의 반응이 아주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으악!”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귀신을 마주한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를 칭찬하는 수많은 댓글 사이에 상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말들이 지뢰처럼 끼어 있었다.

   딱 보니 초딩 주제에 X치고 나대는 꼬라지 하고는
   XX 오버스런 표정 봐라ㅋㅋㅋㅋㅋㅋ 엽기사이트에 올려야 함.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더 이상 칭찬의 댓글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마우스 스크롤을 아래로 돌렸다. 어떤 글들은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것들도 있었다. 악플을 하나 둘 씩 찾아낼 때마다 날카로운 칼날이 나를 푹푹 찌르는 것 같았다. 가슴이 너무 아파 눈물이 흐르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키보드 버튼을 하나씩 눌렀다. 동영상에 달린 악플 밑으로 내가 쓴 댓글이 하나 더 달렸다.

   왜요? 제 눈엔 귀엽기만 한데. 그래도 아직 어려 보이는데 너무 심하게 욕하진 맙시다.

   나의 댓글 밑으로 순식간에 또 다른 댓글들이 달라붙었다.

   혹시 댄스요정 엄마 아님? 엄마 얼굴은 또 XX 얼마나 진상일지 궁금함.
   요정은 무슨 요정 XX. 알고 보니 댄스야수.

   나는 악플들을 삭제하려고 마우스로 이곳저곳을 클릭해 보았다. 하지만 댓글을 삭제할 방법은 아무 데도 없었다. 모든 발언을 존중한다는 유튜브만의 방침 때문이었다. 나는 온몸에 칼을 맞은 채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세상 모두가 나를 욕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밤이 늦도록 악플들에 댓글을 달며 씨름을 해 보았지만 오히려 상처만 더 깊어질 뿐이었다.
   긴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날이 밝았고, 난 학교에 가야 했다. 조용히 교실에 들어가려는데 복도에서 아이들이 나를 흘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어딘가에서 “쟤가 댄스요정이야?”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스쳐 지나갔다. 나를 쳐다보는 눈동자들이 오늘은 왠지 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나를 또 욕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저 애들 중 누군가가 나에게 악플을 달지 않았을까.
   그때, 저쪽에서 네다섯 명의 여자애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 발을 헛디뎌 옆으로 기우뚱 중심이 무너졌다.
   “괜찮아?”
   다행히 누군가가 넘어지는 나의 등을 받쳐주었다. 뒤를 돌아보니 나희가 서 있었다. 여자애들은 내가 넘어질 뻔했단 사실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그저 나에게 종이를 내밀며 사인을 요청했다.
   “보시다시피.”
   나는 종이에 내 이름을 휘갈기며 나희에게 대답했다.
   “아니, 그거 말고. 니 동영상. 악플…… 달렸더라.”
   나희의 말에 나는 갑자기 가슴이 뜨끔했다. 갑자기 추락하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을 나희에게 모두 들켜버린 것이다.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내가 뱉은 목소리가 생각보다 날카로워 나조차도 놀랐다. 더 이상 나희와 마주 서고 싶지 않아 나는 뒤를 돌았다.
   “나한테도 매일 그런 악플이 달려. 그런 거 쓰는 사람들은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야.”
   돌아서는 나에게 나희가 말했다. 나희는 진심으로 나를 위로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희의 말은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동안 내가 달았던 수많은 악플들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나희는 모두 읽고 있었던 것이다.
   “악플을 견디는 것도 능력이야. 유명해질수록 멘탈이 강해야 한다고 엄마가 나한테 그러더라.”
   내가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나희가 돌아서며 말했다. 교실로 걸어가는 나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희는 어쩌면 나보다 더 성숙한 것 같았다. 이렇게 아픈 글을 견뎌냈다는 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또 새로 달린 댓글들을 확인했다. 나의 유튜브 채널은 여전히 떠들썩한 것 같았다.

   이렇게 어린애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대단. 이 정도면 댄스 신동 아닌가.
   얼굴만 번지르르한 연예인들은 이런 애들 보면서 반성해야 함.

   칭찬과 격려의 댓글들 사이에서 오늘도 역시 새로운 악플이 칼날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어린 게 공부는 안 하고 발랑 까져가지곤. 분명 학교에서 XX 날라리로 찍혔을 듯.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마우스 스크롤을 돌렸다. 나희의 말대로 나 역시 꿋꿋하게 참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의 악플을 참아낼 때마다 가슴에선 시뻘건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악플들은 쉬지 않고 나의 가슴을 찔렀다.

   쿡.
   쿡.
   쿡.
   쿡.

   “아니야!”
   나는 모니터 화면을 향해 크게 소리를 쳤다. 이제야 나는 정말 알 것 같았다. 나희는 틀렸다. 그 누구도 이런 비난을 견뎌야 할 의무는 없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컴퓨터 앞에 바로 앉았다. 내 동영상 조회 수는 어느새 벌써 10만 건. 언제든지 나를 향해 돌아설 수 있는 칼날 같은 눈동자들이었다.
   나는 제일 먼저 나희에게 올린 악플들을 모조리 지웠다. 나의 동영상 밑에는 악플 방어선도 달아놓았다. 그 댓글 밑으론 악플을 달아선 안 된다는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였다. 예상치 못한 전쟁이 시작되어 버렸다. 아니, 이미 난 그 칼을 진즉에 먼저 휘둘러보았다. 나는 나희에게 겨누었던 부끄러운 칼자루를 나를 위해 다시 한번 똑바로 잡아 쥐었다. 가만히 참고 견디는 것보단 맞서 싸워나가는 것이 보다 나다운 방식이니까 말이다.

김보미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날마다 상상과 현실 속 어린이들을 함께 만나고 있습니다. 춘천교대 대학원 아동문학과를 졸업하며 동화 창작에 대한 꿈을 키웠고, 현재 ‘동화 쓰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열심히 동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2018/05/29
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