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_역에서_영어는

      The Trick
       Roxanna Bennett

      Let me be a “poet of cripples” not
      a patient etherized upon a table,
      not a brain floating within a body.
      In a moment I must be a body
      in the place incision produces in a body,
      previously intact. Inert, poor body,
      inarticulate. Pain flees from the word “pain.”
      Between meaning and the unmeaningable
      is the trick of thinking I can fix what I can name.
      Inertia insists on comfortable
      contraries, less on chastened patients.
      Let me be any other word, any other body:
      stone, swan, sycamore. Perform patience
      full time: retirement a normate luxury
      I will not be afforded. My need to mean
      alien to the pain, yet I remain, unseen.



번_역에서_한국어는

      속임수
       록사나 베넷

      나는 “불구들의 시인”이 될게
      수술대 위 마취된 환자 말고,
      몸 안에서 떠다니는 뇌 말고.
      순식간에 나는 몸이 되어야 하잖아
      전에는 온전했던 몸속에 절개가 만들어낸
      그 자리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무력하고,
      초라한 몸. “고통”이란 단어에서 고통이 달아나.
      의미와 의미할 수 없음 사이에
      내가 이름 붙일 수 있다면 고칠 수 있으리란 생각의 속임수가 있어.
      무력함은 편리한 정반대들을 강요하고
      온순해진 환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아.
      나는 다른 어떤 단어, 다른 어떤 몸이라도 될게:
      스톤, 스완, 시카모어. 인내를 연기해
      전업으로; 은퇴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규범적 사치. 고통에 생경하고 싶은
      나의 필요, 여전히 나는 남아있어, 보이지 않은 채.



번_역에서_이 시는

   2001년 1월 22일, 명절을 맞이해 귀성한 장애인 부부는 오이도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했다. 한 명은 중상을 입고 다른 한 명은 사망했다. 휠체어 리프트가 안전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이를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동권 보장과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을 향한 몸짓의 시작이었고, 이는 20여 년이 지난 2023년 1월 현재까지 지속되는 중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시위를 예고한 후 4호선에 몸을 싣는다. 자신들의 이동권 권리를 위해 지하철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마련하고 확보하는 것이다. 정시에 출발하고, 예측 가능한 도착 시간으로 움직이던 세계는 규칙적이지 않고 불편하고 예측할 수 없는 공간으로 변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무런 의식 없이 편안하게 다니던 거리에서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턱에 걸려 이동이 원활하지 않다. 이 시위가 보여주는 공간의 전유를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할당되었던 이 공간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속임수 The Trick」에서 베넷은 지속적으로 시 안에 새로운 언어, 되고 싶은 존재의 자리를 만들어간다. 그렇지만 이 언어의 자유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그런 자유가 아니다. 베넷은 말한다. “인내를 연기해/ 전업으로; 은퇴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규범적 사치.


번_역에서_우리는

   지민 : 이 시를 번역하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다른 두 시인의 구절로 작품이 시작한다는 거였어요. 첫 행의 “나는 ‘불구들의 시인’이 될게”는 페리스(Jim Ferris)의 「불구들의 시인 Poet of Cripples」 첫 행을 똑같이 가져왔고, 두번째 행의 “수술대 위 마취된 환자”는 엘리엇(T. S. Eliot)의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 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속 “수술대 위에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a patient etherized upon a table)라는 구절이에요.

   아선 : 페리스는 어떤 시인인가요? 엘리엇은 정전으로 많이 다뤄져서 처음 베넷 시를 읽을 때 한눈에 들어왔는데 페리스는 몰랐어요.

   지민 : 저도 처음에 페리스의 구절은 전혀 몰랐어요.(웃음) 다만 ‘왜 이탤릭체과 따옴표로 “불구들의 시인”을 강조했을까?’라는 생각에 구글에 검색을 했더니 페리스가 결과로 나오더라고요. 페리스는 미국 남성 시인으로, 2004년 『병원 시 Hospital Poems』라는 시집을 처음 발표했는데, 이 시집의 첫번째로 실린 시가 「불구들의 시인」이었고 평단의 반응이 좋았대요. 실제로 본인도 장애가 있고, 장애학 연구(diasbility studies)에 관한 학술 활동도 활발히 하는 분이었어요.

   주주 : 자신의 시를 시작하면서 첫 두 줄을 선배 시인들의 언어로 채우고 있는 게 흥미로워요. 나만의 말을 써내려가기 위한 공간을 다른 이들의 말로 채우면서 시작하잖아요.

   아선 : 맞아요. 뭔가 겹겹의 다시 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페리스의 시를 보면 마지막 행 “나는 불구들을 위해 노래한다”(I sing for cripples)라는 구절에서 “I sing”으로 시작하는 대목이 꼭 휘트먼(Walt Whitman) 같죠. 휘트먼은 “나는 나 자신을 노래한다, 나는 나 자신을 축복한다”(I sing myself, I celebrate myself)라면서 내가 그 자체로 완전하고 온전한 존재임을 노래했잖아요. 그런데 베넷은 다르죠. I sing ‘for’예요. 하지만 페리스의 I sing for cripples는 I sing myself와 다르지 않아요. 말하자면 휘트먼을 다시 썼달까.

   주주 : 저는 베넷이 엘리엇의 구절을 변주한 것 또한 좋은 수였다고 생각해요. 엘리엇이 “수술대 위에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라는 표현을 썼을 때는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황량한 도시 공간을 비유하기 위해 사용했잖아요. 베넷에게는 이 표현이 비유일 수가 없죠. 본인 몸에 대한 이야기니까.

   지민 : 그 말씀을 하시니까 떠오른 인터뷰가 있어요. 템즈 리뷰(The Temz Review)의 인터뷰1)에서 베넷이 몸과 정신의 이분법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어요. 베넷이 “바디마인드”(Bodymind)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서구 이분법에서는 몸과 정신이 분리되어 있고, 몸은 정신에 비해 언제나 열등한 존재, “건강하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고, 진실되지 않은”(unhealthy, unnatural, untrue) 것으로 여겨졌지만 “우리 모두는 분리되지 않은, 몸과 거기에 속한 정신을 갖고 있다”(We all have bodies with minds in them, inseparably)라고 언급한 게 생각나요.

   아선 : 그렇죠. 엘리엇이 사용한 비유로서의 “마취된 환자”가 약간 관조적으로 사회를 평가하는 방식이라면 베넷의 시에서 그 구절은 나의 몸에서 이것이 구현되고 작동하고 있을 때를 말하고 하는 방식이에요. 여성시에서 많이 나오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정말로 이걸 경험하고 있는 나의 목소리로 말하고자 하는 욕구 말이에요.

   주주 : 약간 휴즈(Langston Hughes)와 비슷한 결 같아요. 휴즈가 「나, 역시 I, Too」에서 (휘트먼처럼) 나도 미국을 노래한다고 하잖아요. 휘트먼이 노래하는 미국을 반박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선배 시인이 놓친 것을 짚는.

   아선 : 맞아요. 계보적으로 따르고 있는 시의 갈래들이 있어요. 장애 시학(Disability Poetics)을 계승하면서도, 여성의 몸에서 실제로 구현이 될 때의 순간을 정확하게 밝히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주는 목소리처럼. 관조적이거나 평가하는 방식이거나 아니면 그림을 그리는 그런 방식 말고 정말 개인의 경험을 말하는 목소리 말이에요. 인터뷰를 보면 자기 경험에 근거해서 썼다고 언급하고 있고, 장애를 가진 여성이 겪는 의료 산업 체계에 대한 서정이란 점에서 한 줄기를 만들어냈다고도 볼 수 있겠고요.


   지민 : 이제 ‘Trick’이라는 제목의 단어가 말하고자 하는 게 좀 명확하게 보이려는 것 같아요. 처음에 전 ‘재주’와 ‘요령’ 사이에서 고민했어요. Trick을 사전에서 검색하면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의미가 “속이기 위한 행위”예요. 그렇다면 ‘재주’라고 했을 땐 속인다는 이미지보다 능숙하게 뭔가를 잘하는 걸 보여주는 것 같고, ‘요령’이라고 했을 땐 우리말에 “적당히 해 넘기는 잔꾀,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묘한 이치”라는 뜻이 있어서 속이고자 하는 의도가 읽히는 동시에 기술의 의미도 들어간다고 생각했어요.

   주주 : Trick을 구글 이미지에서 검색하면 마술 이미지가 제일 많아요. 특히 몸과 관련된 마술이요. 카드 같은 것들을 활용해서 손가락 등을 사라지게 하는 류의 마술이 많이 나오는데요. 베넷도 이 시에서 그런 종류의 trick을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을 속이거나, 나를 속이는 것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 안에서만큼은 어떤 마술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유롭지 않은 몸을 화자 마음대로 바꿔보는 마술이요.

   아선 : 속임수라는 번역은 어때요. 속임수라고 말할 때의 수는 기술적인 걸 의미하잖아요. 몸을 사라지게 하는 것도 해당될 수 있고, 동시에 베넷이 시 안에서 가능한 몸의 변형을 꾀할 때 사용하는 기법을 의미할 수도 있고.

   주주 : 영어로 Trick이라고 하면, “몸의 일부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뜻도 있어요. 이를테면 “말을 잘 안 듣는 무릎”(a trick knee)처럼요. 번역에 다 담을 수 없겠지만, 베넷은 이 시에서 분명 자기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제목을 통해서도 이 시가 몸에 관한 이야기임을 살짝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민 : 맞아요. 결국 시인은 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완전히 자유로운 산문시 형태로 시를 쓰는 게 아니라 Body와 S로 라임을 맞춘다거나 맨 마지막 두 행의 마지막을 N으로 처리하는 규칙들을 보면. 아예 나의 몸을 탈피해서 자유로워지는 방향을 택하는 게 아니라 한계가 있는 몸,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나의 몸에서의 분투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속임수’라는 번역에 특히 몸과 관련한 의미가 직관적으로 보일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이 제목 안에서 시를 읽으면서 그런 점들이 느껴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선 : 저는 그래서 베넷의 시가 낭독을 위한 시 같다고도 생각했어요. 우리가 3화에 다뤘던 압둘라히의 시와 비슷하게요. 2화에서 다룬 켈리의 시는 편지 형식을 따르기도 했고, 시 안에 빈칸도 있어서 낭독하기 좋은 시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베넷의 시는 소리내서 읽었을 때 더 반짝이는 단어들, 연음들이 있어요.

   주주 : 라임이 되려면 각 행의 마지막 단어가 완전히 같으면 안 되고, 약간씩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요.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유명한 18번 소네트(“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1행의 여름날(summer’s day)과 3행의 오월(May)처럼요. 베넷은 의도적으로 Body라는 단어를 행 끝마다 계속 반복하죠. 소네트 형식을 따르되 각운(rhyme)은 무시하면서 ‘몸’을 온 힘을 다해 밀어붙이고 싶은 게 있다는 거죠.

   지민 : 실제로 베넷은 한 대담에서 자신은 시의 “청각적 요소”(the auditory component)와 싸운다고 밝힌 바 있어요. 소네트 형식을 다루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제약을 좋아해요. 왜냐하면 그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찰하기 위해 분해해보는 걸 좋아하고, 창조적인 제약들은 마치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거든요”(I like constraints because I like taking them apart to see how they work, and because creative constraints are much like living with disability)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2) 주주 님이 말씀하신대로 확실히 계속 견고한 전통적인 시 형식 안에서 언어를 비틀어가면서 만들어가는 추동력이 느껴져요.

   아선 : 정형성에 대한 싸움이 늘 존재하니까요. 현재 세계에서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형성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지만 베넷의 화자는 정형성을 가장 잘 의식할 수 있는 존재의 목소리를 들려주죠. PTSD를 앓고 있고 여성이며 많은 싸움이 있는 몸. 어떤 유한함 안에서 가능한 목소리.

   주주 : 그렇기에 “‘고통’이란 단어에서 고통이 달아나”요. 이 말이 내 고통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 이 세계에서 상통하는 말로서의 고통과 내가 진짜로 체험하고 있는 감각으로서의 고통 사이에 틈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아선 : 소수자 문학에서 쓰이는 문법이기도 한데요. 기존의 규범적인 언어로는 다 설명될 수 없는 자신의 경험이나 자기 정체성, 이런 것들로부터 자기 목소리로 ‘재서사’하려는 노력인거죠.

   지민 : 그렇기에 계속해서 소네트 형식을 붙잡고 작업을 하고 있는 거고요. 소네트를 기존의 규범적인 언어라고 한다면, 이 안에서 기존 형식을 부수고 자기 언어로 다시 규칙을 만드는 베넷의 작업이 바로 아선 님이 말한 ‘재서사’의 작업이네요. 그렇기에 자신이 지닌 “생각의 속임수”를 펼치는 공간이 바로 이 시가 되는 거고요.

   아선 : 그래서 저는 8행 “의미와 의미할 수 없음 사이에”를 짚어보고 싶어요. 처음에 meaning을 ‘의미하기’라고 했지만, 여기서 명사인 의미(meaning)를 동사화해서 unmeaningable로 풀어내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보거든요. 이 세계에 고정된 의미를 풀어내면서 그 고정된 것을 다시 보게 만드는 몇 겹의 작업이 있는 것처럼 보여요.


   지민 : 맞아요. 사실 unmeaningable은 베넷이 만든 단어예요. 풀어보자면 “의미할 수 있음이 불가능함” 또는 “무의미가 가능함”이라는 건데, 이 단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여기서도 베넷이 정형화된 언어랑 싸우고 있는 게 흥미로워요. 아예 틀 밖으로 나가 언어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문법 규칙에 맞게 질서를 지키면서 새로운 걸 만들고 있잖아요.

   아선 : 의미하기 불가능함, 의미하기 불가능성. 원래 없던 단어라면 번역도 새로운 단어, 이상 한 단어로 해도 될 것 같기도.(웃음)

   주주 : 저는 이 시가 소네트 형식을 차용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서, 한 행이 다른 행보다 너무 길어지는 게 마음에 걸려요. ‘의미하기 불가능성’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요.

   지민 : 기존에 없던 단어, 하지만 기존 언어가 이해되던 방식으로 읽힐 수 있는 단어. 규칙 안에서 새로워지는 감각을 구현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아요. 실제로 베넷이 출판한 다른 시집의 제목들을 보면 2014년 『불확정성 원리 The Uncertainty Principle』, 2019년 『의미할 수 없는 Unmeaningable』, 2021년 『전달할 수 없는 것 The Untranslatable』 이렇게 모두 부정의 접두사를 앞에 두었는데요. 공통적으로 보이는 감각은 명확하게 전달할 수 없고, 확실하지 않다는 것들에 있어요. 동시에 의미할 수 없고, 전달할 수 없고, 확실하지 않지만 이것들을 내가 시로써 펼쳐 보이겠다는 힘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주주 : 그런 맥락에서 fix라는 단어를 번역할 때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시에는 “환자”가 나오기도 하고 그러니까 맥락상 “고치다”는 느낌이 있지만 ‘정하다’와 “고치다”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지민 : 저는 그 앞에 서술된 “의미”라는 단어 때문에 ‘정하다’를 선택했었어요. 어떤 의미일지 내가 정할 수 있으리란 생각의 속임수를 펼치는 게 이 시라는 공간이다. 이곳 안에서는 내가 정할 수 있다라는 목소리만 떠올렸는데 생각해보니 불편한 몸, 환자와 같은 맥락을 생각하면 “고치다”가 더 맞겠어요.

   아선 : 두 단어 모두 의도하는 바는 같아요. 남들이 규정하는 바를 내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힘을 보여주는 거니까요. 시에 등장하는 환자와 불편한 몸을 생각하면 그 연장선에서 “고치다”라는 말이 더 나을 것 같아요. 하지만 동시에 “고치다”라는 말을 쓰기 싫은 이유도 알겠어요. 마치 고쳐서 돌아가야 하는 몸이 있는 것처럼 들리고, 고쳐져서 ‘맞는’ 상태가 있는 것처럼 들리니까.

   주주 : 다른 사람들이 환자에게 쉽게 하는 말이기도 하죠. 의사나 다른 사람들이 ‘내가 너 고쳐줄게’ ‘그거 고칠 수 있어’ ‘고쳐봐’라고 하는 일상적인 말들이니까요. 타인이 당사자의 몸에 대해 던지는 말들을 오히려 베넷이 전유하고 있는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겠어요. 일종의 저항적인 행위로.

   아선 : “불구”라는 단어를 전면적으로 쓰는 것 자체도 저항적인 행위인 거죠.

   주주 : 요즘 연구 영역에서도 장애학 연구(disability studies)라는 말 말고 불구 연구(creep studies)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맥루어(Robert McRuer)의 『불구 이론 Crip Theroy』(2006), 캐퍼(Alison Kafer)의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Feminist, Queer, Crip』(2013) 같은 책이 2000년대 이후 출판되었고요.

   아선 : 맞아요. 확실히 흐름이 변하고 있어요. 인디언(Indian)은 멸칭이고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호명이라며 당사자들을 숨기듯 호명하던 맥락이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인디언이라 부르면서 깨뜨려지는 그런 흐름이요.

   지민 : “불구”라는 단어에서도 그런 당자사성이 강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쉽게 말을 못 얹게 되더라고요. 말이 안 나온다기보다는…… 말을 할 수가 없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우리가 다루었던 다른 시들보다 이번 시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데 나의 몸으로 체험하는 것들이 가장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아선 : 그렇지만 그런 지점들 때문에 오히려 시를 읽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당사자성을 가진 시인이 풀어낸 말을 읽고 들으면서 우리가 이 세계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요.

   주주 : 동시에 그런 지점이 조심스러워서 번역이나 접근에 어려움이 생긴다면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애는 먼 게 아니잖아요. 노화를 떠올려보면 결국 우리 모두는 몸의 변화를 겪고 있는 존재들이고요. 지금 지민님 관절만 해도……(웃음)

   지민 : 아 그렇죠. 제 관절도 지금 많은 변화를 겪고 있어서……(울음) 맞아요. 결국 우리의 몫은 작품이 하고자 하는 말을 풀어서 이해해보는 그 시도에 있으니까요. 시에 나타난 “편리한 정반대들”이란 시어처럼 ‘맞다/틀리다’와 같이 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기준에 결국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거니까요. 우리에게 빗대어 생각하면 아프지 않은 나의 몸보다는 사실 ‘아직’ 아프지 않은 나의 몸과 같이 말이죠. “온순해진”(이미 무력해진) 환자들에게는 그 강요의 압박이 당연한 게 되어 작용하지 않지만, 베넷은 계속 싸우는 중이고요.

   주주 : 저는 이 시가 무척 재미있었던 게요. 항상 문학에서 소수자의 ‘언어 없음’에 대해 이야기하잖아요. 이 시도 그런 점을 짚고 있지만 이 시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우리의 생각을 언어가 아니라 진짜 우리의 몸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라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언어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이동권의 문제로요.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는 우리가 사는 매일매일의 문제일 뿐 아니라 시 안에서도 유효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은.

   아선 : 그래서 우리 “stone, swan, sycamore”를 “돌, 백조, 단풍나무”라고 번역하지 않고 “스톤, 스완, 시카모어”라 한 거였잖아요. 시옷에서 출발하지만 각기 다른 몸체로 변형되는 존재들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지민 : 확실히 한국어로 ‘돌, 백조, 단풍나무’하면 알파벳 s라는 공간 안에서 연상되는 사물, 동물, 식물의 형태라는 방식이 사라져요. 이 공간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그럼 그대로 살리죠.(웃음)

   주주 : 베넷이 이 시 안에서 펼치는 욕망을 존중하고 싶어요. 이 욕망은 자기 몸에서 출발한 사유를 담고 있기에 단순한 말놀이보다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그렇기에 실질적인 장애인 이동권 논의와도 상통하는 목소리가 될 수 있고요.

   지민 : 네. 그러면 “스톤, 스완, 시카모어”를 음차 번역하죠. 발음 안에 담긴 화자의 욕망을 존중하고, 그 욕망을 더 많은 독자들과 공유해보아요.


번_역에서_흐르는 말은

총 2분 41초.

   고통, 기다림과는 무관한 돌.
   사실 그들이 자리에 꿈쩍 않고 있는 것은
   인내를 전업으로 연기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가만한 시간이 인내의 시간으로 뒤바뀔 때,
   시는 우리가 고통을 자각하는 자리를 내어준다.


   작업 노트 4

   우리가 이번에 다룬 작품은 ‘몸부림 시’라고 부르고 싶어요. 화자는 시적 공간을 빌려 “다른 어떤 단어, 다른 어떤 몸”이라도 되고 싶어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여서요. 어떤 시들에서는 화자가 변신의 귀재처럼 몸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놀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베넷의 화자는 자신이 욕망하는 바와 별개로 그 욕망을 이루기 어렵다는 사실을 시 안에서도 드러내고 있어요. 전업으로 인내를 연기해야 한다니…… 열여섯 행짜리 짧은 시이지만 화자의 몸부림을 따라 읽다보면 어느새 지쳐 있는 저를 발견해요. 이걸 읽으시는 분들이 함께 지쳤으면 하는 것은 아니고요.(웃음) 하나 부탁이 있다면 “스톤, 스완, 시카모어”를 입을 크게 벌리고 읽어주셨으면 하는 거예요. 모음을 따라 입이 ‘으오’ ‘으와’ ‘이아오어’ 이렇게 움직이거든요. 눈으로만 읽으면 놓치는, 화자의 몸부림을 소리내어 읽으며 같이 몸부림쳐봐요. _주주

   작년 여름부터 이동을 많이 해야 했거든요. 근데 제 이동 동선에 4호선이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를 몇 번 경험하게 됐죠. 말로만 듣다가 실제로 경험해보니 정말 불편한 경험이었어요. 제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고요. 하지만 어쨌거나 그건 불편에서 끝나는 일이었어요. 생존‘권’을 건, 이동‘권’을 건, 국가가 보장하는 ‘권리’가 침해하는 문제가 아니라 편리하지 않다에서 끝나는 일. 게다가 제겐 백업 플랜도 있었죠. 조금 더 일찍 나오거나 다른 교통수단을 선택하거나 조금 더 걸으면 해결되는 일이었으니까요. 저의 편리가, 우리의 편리가 스톤이, 스완이, 시카모어가 되고자 하는 동료 시민의 권리를 딛고 서진 않았으면 해요. 또한 정부는 ‘무정차’라는 “편리한 정반대”의 논리들로 자기들의 무지를 드러내지 않았으면 하고요. _아선

   이번 번역 과정은 시를 ‘공간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과정이었어요. 베넷이 설정한 시의 물리적 공간(형식)과 그 공간 안에서 자유와 변형을 꾀하는 ‘스톤, 스완, 시카모어’의 대비가 정말 뚜렷해서 인상적이었거든요. 처음에 우리가 시 읽기를 기획하며 이 작품을 미리 고르긴 했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와 이렇게 이어질 거라고 생각을 못했었는데요. 지금 2023년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주제를 다루면서 시를 더욱 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런 읽기가 가능한 건 함께 시를 읽어가는 주주, 아선, 정민님 덕분이라는 거!(웃음)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4호선 라인이거든요. 매일 외출 전에 검색창에 ‘시위’나 ‘4호선’을 검색하는 게 일상이 되었고, 이 시위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동등한 일상의 보장으로 끝나기를 바라고 있어요. _지민

   공교롭게도 저 또한 4호선 라인에 살고 있어요. 출근 혹은 퇴근하면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를 몇 번 경험하게 되었죠. 사실 처음 시위를 경험했던 날은 패닉이었어요. 출근길에 마음은 조급하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이미 시간은 많이 흘러 있었기 때문이에요. 다음 날부터는 미리 시위 일정을 확인하거나 조금 일찍 나와 다른 루트로 출근하기 시작했죠. 그때의 순간 제 마음에 양가감정이 든 이후 이에 대해 더 깊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고려해야 할 게 생기니 그때야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정류장에서 버스를 올라가는 동안을 인지하게 되더라고요. 아차 싶기도 했고, 마음도 무거웠어요. 여전히 마찬가지고요. 일련의 이런 경험들과 이번 시를 통해 더욱 ‘자리’가 마련되는 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시에서도 묵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스톤, 스완, 시카모어’의 존재처럼요. _정민

* 그간 함께 작업해주셨던 해동(백재원)님이 개인사정으로 하차하시어 흡사의 남은 연재물은 4인이 작업합니다.


흡사

영문학 전공자 박선아, 박민지, 반주리와 김민정으로 이루어진 시 번역 그룹입니다. 언어와 이미지로서의 번역을 통해 다음 역으로 나아갑니다.

2023/01/10
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