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여러분께,

   장소통역사가 준비한 공연은 막을 내렸습니다. 잠시 후 공연 참여자들의 무대 인사와 앙코르 공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신 분은 마지막까지 함께 즐겨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좌석에 두고 가신 짐은 없으신지 확인하신 후에 공연장에서 이탈하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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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조명이 켜진다. 장영우와 최추영, 그리고 최리외가 무대 위에 올라온다.
   어둠 속, 스텝은 질문한다.

   “요즘 몸은 어때?”
   세 사람은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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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코르 무대 : 몸은 건강해?

   C, “겹겹의 번역을 통해 아픔이 표현된다”1)


리외에게 아픔은 번역이다.(총 6분 11초)

B, “서로에게 가닿을 수 없는 낯선 이방의 언어일 수도 있다”2)

장영우에게 아프다는 건 낯선 이방인이 건네는 질문이다.(총 3분 15초)

A, “듣는 것이 아프다”3)

추영에게 아픔은 아프더라도 들어야 하는 것이다.(총 10분 2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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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빈 공연장에서


   관객 여러분께,

   우리는 공연이라는 약속과 공연장이라는 약속 장소 덕분에 만날 수 있었죠. 앞으로도 이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주치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이 필요하죠. 아픔을 마주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조건을 만들어보았습니다.
   누군가는 빨리 떠나버리고, 누군가는 뒤늦게 도착해버리죠. 혹시 그런 분들을 위해 마지막 안내 방송을 남깁니다. 남겨진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들어주세요.

   조류학자는 자신이 연구하는 새에게 ‘조류 식별표’를 달아서 새의 기록을 남긴다고 합니다. 누구나 그 번호를 읽을 줄 안다면, 그 새가 어디서 오고, 어디서 자랐는지, 누군가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는지 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조류학자는 매년 그 새를 처음 마주쳤던 장소에서 자신의 조류 식별표가 달린 새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새는 날아서, 이동합니다. 대륙과 대륙을, 바다를 가로질러서, 다른 계절로 이동합니다.
   조류학자가 있는 땅과 전혀 다른 기후, 언어를 지닌 땅에서 그 새를 마주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 장소에서는 새의 이름도 다르겠죠. 그럼에도 그 새는 같은 새입니다. 같은 새라는 점을, 새를 마주친 이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처음 아픔을 느꼈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날려 보냅니다. 우리의 ‘아픔 식별표’를 달아 놓겠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아니겠지만, 기록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디를 지나왔는지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겠지요. 그러면 잠시 무언가를 동시에는 아니더라도 함께 만났던 것이라고 착각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픔 식별표’를 읽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믿겠습니다. 함께 기도문을 읽는 순간처럼 목소리가 겹쳐지겠죠.

   우리는 (아픔을 같이) 말하고 듣고 있습니다.

   마지막 안내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안녕히 계세요.


   작업 노트 5



   “우리 모두 나의 아픔의 원문이자 번역자일 테니까요.” _5화 작업 노트 부분



장소통역사

소설가 최추영과 미디어아티스트 익수케로 활동을 시작한 실험 그룹입니다. 소설과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새로운 장르를 ‘모션-픽션’이라 부르며 낭독자 최리외, 안무가 장영우와 함께 불가해한 것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실험하고 그것을 모종의 번역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2023/02/28
63호

1
1화 중간 부분에서 한 번 등장하는 문장이다.
2
1화 마지막 부분에 한 번 등장하는 문장이다.
3
3화에서 여덟 번 등장하는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