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비평 교환’은 특별히 대화 형식으로 지면을 꾸렸습니다. 각각 문학과 미술 영역에서 활동하는 두 필자가 ‘서울’을 주제로 동시대 한국 문학과 미술의 경향을 살펴봅니다. 서울이라는 지역이 각 장르에 미치는 영향, 서울이 타 지역과 맺는 관계 등 다양한 화두로 이야기가 뻗어 나갑니다.



오도 가도 할 수 없다는 감각

이희우 : ‘비평 교환’ 코너에 김신재 선생님과 함께 청탁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연락드렸는데, 선생님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어요. 청탁받은 주제는 ‘서울’이지만 자연스럽게 ‘지역’에 대한 이야기로 건너가기도 했습니다. 서울에 대한, 지역에 대한 비슷하거나 다른 경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말로 ‘비평적 대화’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술과 문학에서 지역이 다뤄지거나 작용하는 방식에도 여러 차이가 있을 텐데요. 이 대화를 통해 그 차이를 조금 밝혀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격적으로 얘기하기 전에 각자의 경험, 기억을 가볍게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김신재 : 대화를 준비하면서 심경이 좀 복잡했는데요. (웃음) 저는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시골 마을로 이사를 해서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가까이에 미술관은커녕 영화관도 없는 데여서 영화를 보려면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대구 시내로 나가야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귀농하신 건 아니었기 때문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겉도는 기분으로 자라서 그런지 그곳이 고향이라거나 그립다는 생각을 별로 가져본 적이 없어요. 당시 집에서 대안교육 잡지를 구독하고 있었는데, 다른 탈학교 아이들처럼 함께 영화를 만들고 미술관에 다니려면 서울로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계속 대구에서 자랐다면 나름대로 마음 붙일 커뮤니티를 찾았을지도 모르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고립되지 않고 뭔가를 배우거나 누군가를 만나려면 서울에 가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대구에만 해도 공립 미술관이 하나도 없던 때였어요.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세계명화 디지털 복제전이 제가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시였고요. 주변에 마땅한 도서관이 없었기 때문에 가까운 데가 그나마 대학교 도서관이었고, 멀기는 해도 동성아트홀이라는 예술영화 전용 단관극장을 무척 반갑게 생각하고는 했어요.

이희우 : 맞아요. 저도 서울로 대학을 가는 게 당연하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저도 청소년기에 화가가 되고 싶어서 미술대학에 진학했는데 서울이라는 도시, 사람들의 말투, 그리고 대학에서 배우는 ‘미술’ 자체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던 기억이 나요. 사실 큰 차이가 아니었을 수 있는데, 그때는 서울 출신 아이들이 미술 입시에 대한 경험이나 전시 관람 경험 등에서 저랑 좀 격차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서울에서 새로 사귄 사람들의 말투가 너무 다정해서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낯섦은 단지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해서 느낀 것만은 아닌 듯해요.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의 일 때문에, 혹은 제가 학교에 적응을 못 해서 전학을 몇 번 다녔는데, 같은 부산 안에서도 동네마다, 학교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고 새 환경에 적응하는 게 힘들 수 있으니까요. 지금도 (부산에서 교사로 있는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부산의 어느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너무 적어져서 폐교 위기에 있는 한편, 해운대의 어느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꽉 차고 나서도 전학 오려고 대기 중인 학생들이 많다고 하거든요. 아이들이 느끼는 학교의 분위기도 너무 다르겠지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서울 아닌 ‘지역’의 경험도 일반화해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대학을 위해, 일자리를 위해 서울로 와야만 한다는 압력을 느낀 것은 우리 세대에 아주 일반적인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겉도는 기분’에 대해서도 공감이 가요. 서울에서 한참 지내다가 지쳐서, 잠시 쉬려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내려가도 편하지가 않고 이상하게 낯설어요. 부모님하고는 종종 말이 안 통하고요. 작년에 「재와 그들의 밤」(하가람, 《악스트》 2023년 3/4월호)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그 소설에서는 이공계 대학원의 부조리와 성차별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주인공이 자신의 고향(울산)에 내려가요. 그런데 마침 내려가는 날 자신이 어머니와 살았던 아파트에 불이 나요. 고향에 갔지만 집에 갈 수 없게 된 거죠. 주인공은 어머니에게도 거리감을 느끼고, 결국 어디에서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 채 방황하게 돼요. 서울에서도 힘든 생활을 하지만 고향에 내려가도 편안하기보다는 오히려 낯설다는 것,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이런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김신재 : 그 ‘고향 없음’, 내지는 ‘집 없음’의 감각을 서울로 빨려든 20, 30대가 공유하고 있을 것 같아요. 버티기는 쉽지 않지만, ‘시골쥐와 도시쥐’ 우화처럼 곧장 돌아갈 수는 없는 복잡다단한 이유가 각자에게 있을 거고요.
  서울 출신 아이들과 미술 입시에 대한 경험이나 전시 관람 경험이 달랐던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저 역시 거의 못 느끼고 지내던 또래 집단으로부터의 사회적 압력을 서울에 오면서 일순 한꺼번에 느끼게 되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서울과 지방에서의 경험의 격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숙사에서 하숙집으로, 그리고 원룸으로 옮겨가며 저처럼 지방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리는 동안 애써 무시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서울살이가 벅차고 환멸이 들 때도 있었지만, 저는 끝내 다른 선택을 하지는 못했는데요. 버티다보면 ‘서울은 20대를 빨아들이고 30대를 뱉어낸다’는 말처럼 이탈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 오는 것도 같아요.


지역, 그리고 번역의 문제

이희우 : 미술과 문학에서 ‘지역’이 어떻게 다르게 여겨지고 있고 다르게 작용할까 궁금해요. 매체가 언어인 문학에 비해 소재나 매체의 측면에서는 미술이 훨씬 ‘탈지역적’이고 즉각적으로 유통될 것 같은 면이 있으면서도, 또 감상자 입장에서 전시는 공간에 제약이 있는 경우가 여전히 많고요. 서울 종로에서 하는 전시를 보려면 종로까지 가야만 하고 베니스에서 하는 비엔날레를 보려면 베니스에 가야만 하는 것처럼요. 국내에서 서울 중심인 건 미술이나 문학이나 다 같겠지만……

김신재 : 미술계에선 미술 작가나 기획자의 소개 글에 흔히 ‘~을 기반으로 활동하는’이라는 수식이 붙는 관행이 있는데, 그 정보가 작품이나 작가의 예술 실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과 맥락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 같아요. 특히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적인 전시에서는요. 서울이나 베이루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작업이 다른 만큼이나 치앙마이와 암스테르담, 카이로와 뉴욕, 제주와 베를린 등 복수의 도시를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의 작업과 정체성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그 도시들은 대체로 예술학교와 갤러리 등 자원과 인프라, 커뮤니티가 밀집해 있는 대도시예요. 작가 약력을 훑다 보면 ‘미술계’라는 네트워크 자체가 한 나라의 수도나 주요 도시 같은 거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돼요. 방콕 미술 신(scene), 도쿄 미술 신을 가리킬 때처럼 ‘서울 미술 신’이라고 지칭할 때, ‘서울 미술’이라는 표현이 마냥 중립적이거나 대표성을 가진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는 것 같아요. 미술관이나 미술 잡지 등이 다루는 ‘동시대 한국 미술’이라는 범주가 서울 중심적이고 다른 지역의 미술을 아우르지 못할 때 ‘서울 미술’이라고 고쳐 이르는 경우도 있고, 서로의 작업을 보고 있는 게 결국 소수뿐이고 서울에서의 장소특정적이고 로컬한 미술 어법이 좁은 신 밖에서 잘 통용되지 않는다는 자조와 갑갑함이 담길 때도 있어요.
  2년 전에 경기도로 이사하면서 ‘~을 기반으로 활동하는’이라는 문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는데, 막상 제가 활동할 수 있는 지반이 다 서울에 묶여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삼청과 한남으로 대표되는 특정 구역에 밀집해 있죠. ‘서울 미술’ 바깥에 내가 알지 못하는 생태계가 있겠거니 하는 기대 역시 좀 막연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나마 수도권의 도시에서는 서울에 걸쳐진 채 활동을 꾸려나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수도권 바깥에서는 상황이 또 많이 다를 수밖에 없을 거예요.
  말씀하신 탈지역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미술이란 결국 해외의 다른 대도시의 맥락과 원활하게 호환 가능한 ‘일부의’ 미술일 것 같아요. 전 세계 도시들을 여행하는 국제적인 기획자와 기관의 네트워크를 통해 추천과 입소문을 통해 작동하는, ‘국제 미술계’에 통용될 자격을 얻은 미술이랄까요.
  문학은 미술만큼 장소특정적이거나 물리적 공간의 구애를 받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문학이야말로 번역이라는 매개를 통해 탈지역적일 가능성을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던 것 같아요. 서구문학이 수용되면서 로컬리티에 대한 재구성이 일어난 것처럼, 최근 한국문학이 점점 더 많이 번역·소개되고 해외 독자를 상정하기 시작하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보시나요?

이희우 : 확실히 문학(소위 문단 문학이든 장르 문학이든)에서는 작가들이 ‘서울 기반 소설가’ 같은 말을 거의 안 쓰는 것 같긴 하네요. 잡지의 경우에는 인천 기반 문예지나 광주 기반 문예지, 부산 기반 문예지 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지만요. 아마도 작가 개개인의 작업이라는 차원에서는, 문학보다 미술 작업에서 물적, 공간적 인프라와의 관계가 훨씬 표면적으로 두드러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반대로 문학작품은 마치 작가가 ‘자기만의 방’에서 혼자 쓰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여전히 있고, 감상자의 경험에서도 지역이나 공간이 큰 변수가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어떤 시집을 서울에서 읽으나 부산에서 읽으나 내용에 차이는 없으니까요), 작가/작품이 관계하는 출판사, 편집, 인쇄, 서점 배포 등의 제도적·기술적·물적 조건을 고려하면 절대 지역과 무관한 것은 아니겠지요. 작가나 독자의 감수성도 그럴 것이고요. 지금 한국문학에서 ‘서울 기반’은 (종종 명시되지 않은 채) 기본값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서울 기반 미술가’들의 활동이 그렇듯 서울 기반이라는 조건은 국내적으로 보면 중심인 듯하지만, 또 국제적으로 보면 로컬한 것이기도 하잖아요. 대체로 서울 기반인 한국문학도 최근 해외에 번역되고 소개되면서 이런 이중적 위치를 점점 드러내고 의식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선생님 말씀대로 번역에 지역성을 뛰어넘거나 가로지를 가능성이 있는 건 맞겠지만, 현실적으로 두 가지 정도의 문제가 있는 듯해요.
  첫째로는 잘 번역되어서 해외의 문학상을 받거나 해외 독자에게 호응을 얻는 작품은 어쨌든 매우 소수고, 그렇기에 그 번역된 한국문학이 전달하거나 대표하는 ‘한국’도 아주 특정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이 있겠고요.
  둘째로는, 가령 영미문학을 한국어로 옮길 때와 한국문학을 영어로 옮길 때 발생할 수 있는 모종의 비대칭성이에요. 문학작품을 잘 이해하려면, 번역만 정확하면 되는 게 아니라 그 문화적·역사적·지역적 맥락 등을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교육이나 콘텐츠 감상 등을 통해 영미권의 문화에 어느 정도는 익숙하지만(또 알려고 하지만), 반대로 영미권의 독자가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을 거예요. 그래서 번역이 잘 되어도 전달되지 않는 여러 맥락이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번역하는 과정에서 너무 ‘특수’하다고 여겨지는 맥락은 사라지거나 ‘보편적’(이때 보편은 정말 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1세계적’인 것일 텐데)인 것으로 변경될 수도 있겠죠. 번역가가 ‘영어권 독자들이 이런 맥락을 이해할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영미문학을 한국어로 옮길 때보다 한국문학을 영어로 옮길 때 그런 손실이나 변형이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거지요. 번역가가 하나하나 각주를 달아 설명해준다면 이론적으로는 가장 좋겠지만, 번역가의 노고가 커질 뿐만 아니라 독자도 책을 읽으면서 훨씬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죠.
  또 이런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점점 한국 작가들이 번역 가능성을 의식하면서 쓰게 되고 그에 따라 글 쓰는 태도가 어떤 쪽으로든 변할까요? 아마 그렇겠지만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영국 소설가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자신이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자기 작품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면서 외국 독자를 의식하게 되었다(집필할 때 외국 독자가 어깨 뒤에서 쳐다보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특수’한 지역적 맥락을 소설에 쓰기가 어려워진다고 했었죠.1) 이런 경우에는 번역가의 작업에서가 아니라 작가의 작업에서 이미 지역적, 언어적으로 특수한 맥락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한편 최근에는 장르 문학, 특히 젊은 여성 작가들의 장르 문학이 많이 번역되는 추세라고 해요.2) 번역되어서 외국 독자들의 취향에 잘 맞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국 문단에서의 작가 경력과 크게 상관없고, 또 현재 한국의 특수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리얼리즘 문학보다 AI의 발달이나 기후변화 등이 초래한 미래의 문제를 다루는 SF문학이 외국 독자들에게도 공감되고 흥미를 끌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김신재 : 미술 평문은 대체로 한영대역이 도록에 나란히 실릴 것을 전제하고 쓰여질 때가 많아요. 그래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글을 쓰고 기획을 하는 콘노 유키 님께서는 오히려 영어로 번역될 수 없는 언어유희를 일부러 글에 심어두기도 한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미술은 문학에 비하면 훨씬 비언어적인 특성이 강조되지만, 아까 제가 언급한 유통 가능한 ‘일부 미술’의 경우 가즈오 이시구로가 말한 것과 같이 “특수한 지역적 맥락”이나 방언의 억양이 깎여나가고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공용어’를 구사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점점 더 그게 당연시되는 분위기이기도 하고요.

이희우 : 맞아요. 그런데 세계의 도시들을 순환하고 유통되는 것은 말씀대로 ‘일부 미술’이지만, 대체로 번역이라는 까다롭고 고된 절차를 거쳐야 외국 독자를 만날 수 있는 문학과 미술은 매체의 조건에서 확실히 차이가 있기도 하잖아요. 이 차이가 동시대의 매체 환경에서는 새삼 두드러지는 듯해요. 좀 이상한 예일 수도 있지만, 제가 인스타그램에서 외국 작가들의 페인팅에 ‘좋아요’를 몇 번 눌렀는데 그 이후로 어디 사는지도 모를 외국 작가들의 그림이 피드에 자꾸 뜨는 거예요. 알고리즘 추천 때문에요. 그림의 이미지는 즉각적으로, 감각적으로, 언어의 매개 없이 나에게 뭔가를 전달하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러니까 페인팅의 사진을 보고 ‘오, 그림 좀 멋진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반면 네덜란드 시인의 시집 한 페이지를 찍은 사진이라면 저는 그 시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거나 느낄 수 없겠죠. ‘폰트 디자인이 특이하네’ 정도는 생각할 수 있겠지만요.
  꼭 인스타그램 등 SNS 환경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유통의 속도나 범위에서 기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미술의 ‘비언어적’인 측면은 미술 작품을 감각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술을 유통하기에 좋은 것으로, ‘공용어’처럼 (혹은 화폐처럼) 추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특징이기도 하잖아요. 회화 작품을 생각해보면, 그것의 색이나 질감이 특수한 시공간에서의 개별적인 마주침을 통해 관객을 매료시킬 수 있지만, 동시에 비싼 투기 상품이 되어 여러 도시의 경매장에서 팔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또 필름이 아닌 디지털 사진이나 영상이라면 운송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거의 없잖아요. 디지털 데이터로 복제되고 전송되는 것이니까요. 반대로 언어 자체는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이지만(그래서 E-book이 가능한 것일 텐데), 언어 예술인 문학은 언어이기 때문에(그리고 그 언어가 영어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게 빠르게 유통되거나 순환될 수 없죠. 번역되어 호응을 얻는 것이 ‘일부 문학’이라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김신재 : 그러네요. 문학은 독자의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유통·순환되기가 더 어렵기도 하겠고요.
  요즘 서울이라는 도시가 여러 면에서 워낙 유행에 민감하고 빠르게 변화해서 하나의 거대한 편집숍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유행이 바뀌는 속도 자체가 특색이 되어버린. 2년 전부터 ‘프리즈 서울’이라는 국제 아트페어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많은 해외 갤러리 분점이 들어서기도 했죠. 많은 해외 미술 인사들이 오가고 국제전도 빈번하게 열리지만, 실제 유통과 순환에 있어서는 착시가 일어나기 쉬운 시기인 것 같아요.
  미술대학에 다닐 때, 뉴욕이나 런던, 베를린, 암스테르담 같은 도시로 유학을 가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어요. 동시대 예술의 최첨단을 보여주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있고 다양한 예술 담론과 실천의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신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서울 미술 신의 시선은 확실히 국내의 타지역보다는 그런 도시들을 향해 있고, 그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대화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기는 해요. 서울은 그 도시들과의 시차를 좁히는 데 몰두해왔고, 그러는 동안 프랜차이즈처럼 납작하게 동질화되는 한편 다시 자신의 특수한 지역성을 고민하는 국면에 접어든 것 같아요. 유통과 순환의 빠른 속도 때문에 오히려 지역성, 지역 정체성의 문제가 중요해졌다고도 할 수 있겠죠. SNS 등을 통해 정보가 빠르게 순환하는 만큼 실제 사람과 물류 역시 쉴 새 없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으니까요.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세계중심국가를 이루기 위한 발전 전략은 모든 부문의 세계화”라고 강조하며, ‘세계화’를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추진했어요.3) 그런 와중에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렸다고 해요.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3년 대전엑스포가 열린 이후였어요. 당시 북미나 유럽에서 유학한 국내 1세대 큐레이터에게는 그 영향권 속에서 동시대 예술을 ‘시차 없이’ 들여와 소개하는 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아요. 1960년대 문학에서의 순수·참여 논쟁처럼 미술에서는 구상·추상 논쟁이 있었고, 이후 1980년대부터 미술계를 양분했던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진영의 대립 구도가 1990년대에는 다른 국면을 맞아 ‘신세대 미술’이 떠올랐고요.
  그간 ‘K-컬처’의 영향력을 위시해 서울의 위상이 달라지고 아시아 마켓의 경제적 중요성이 부상했어요. 정보와 물류의 빠른 순환으로 인해 전 세계의 도시들 사이의 중심과 주변부에 대한 구분뿐 아니라 앞서거나 뒤처진다는 위계의 감각도 희미해져서 이제는 오히려 차이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해졌죠. ‘제3세계’로서의 열등감도 희박해졌고 새로운 연합을 꾸리는 데도 관심을 갖죠. 한편으로는 여전히 ‘세계화’라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요. 비엔날레만 봐도 국가나 지방 정부 차원에서는 여전히 국제경쟁력을 강조하고 중심을 지향하는데, 막상 전시나 프로그램이 다루는 담론과 실천 차원에서는 유럽을 중심으로 구축된 세계 질서를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탈중심적이고 대안적인 가치를 ‘지역-로컬’에서 찾는 분열적인 모순이 나타나요. 전시를 통해 생태 위기와 결부된 지역 운동을 얄팍한 차원에서 소비하고 마는 아쉬운 경우도 많고요.

이희우 : 제 대학 시절을 생각해봐도 여느 미대 졸업생들이 우수하다고 알려진 서울의 몇몇 미대 대학원으로 진학하려는 경우가 많았고, 또 런던이나 베를린, 뉴욕이나 암스테르담 등으로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친한 고향 친구 한 명은 부산에서 미대를 3학년까지 다니다가, 서울의 미대로 다시 입학하기도 했어요.
  유럽에서 유학하다가 1990년대 말, IMF 이후 한국에 들어온 작가들이 서울에서의 전시나 대학에서의 교육에 참여하게 된 것도 말씀하신 ‘다른 국면’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비엔날레처럼 거대한 ‘국제 행사’에서는, 개별 작품들의 흥미로움과는 별개로, 거의 늘 그런 분열적 모순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탈중심적, 탈식민주의적, 대안적 가치에 대한 담론 자체가 ‘수입’되어왔고 한국의 비엔날레는 (로컬을 자처하면서도) 또 그런 담론을 가공하여 ‘수출’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김신재 : 맞아요, 국제 미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로서 그 정도의 세련성은 갖춰야 한다는 듯이요. 하지만 반쯤 어리둥절하고 얼떨떨한 채로 자기 지식이나 담론이 아닌 것을 주워섬기면서 이상한 장면이 펼쳐지기도 해요. 어쨌든 팬데믹 이후, 그리고 최근 서울이 뜨면서 또 다른 이유로 작가들이 다시 들어오는 시기 같아요. 부산에서 미대를 다니던 친구분은 왜 서울로 오기로 결정하셨나요?

이희우 : 앞서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이유들 때문이에요. 부산도 대도시지만 대학이나 갤러리 등 인프라가 열악하거나 적다고 느낀 거죠. 그러니 거기서 미대를 졸업했을 때 작가로 지속할 수 있는 전망이 안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친구의 불만을 들어보면 자신이 부산의 대학에서 배우는 미술이 ‘동시대 미술’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베를린, 뉴욕이나 서울에서 전시되고 있는 미술과 호환되고 그런 장으로 유통되는 미술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제 친구는 자기가 다니던 대학에서의 교육이, 혹은 교수나 선배들이 동시대에 작가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선배나 동기가 작가가 아닌 다른 진로를 찾아간다는 점에 외로움을 느낀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서울에 있는 미대에 다시 입학했습니다.

김신재 :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와 맞물려 있는 것 같아요. 학생 때는 누구보다 가까운 동료가 간절한 때잖아요. 롤모델은 찾을 수 없다 하더라도 서로 지지하고 참조할 수 있는 현장의 동맹자들을 찾을 필요가 있기도 하고요. 졸업하고 한참 활동을 하다가 지역에서 다시 예술 실천을 전개해나가는 것과는 또 다르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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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재, 이희우

큐레이터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시각예술이 영화 및 공연과 교차하는 영역에서 대화와 맥락을 만드는 일에 동행한다. 최근에는 감각과 기술, 인프라에 대한 질문을 듣는 일과 엮고 있다. ‘재난과 치유’ 위성 프로젝트 ‘반향하는 동사들’(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1), 차재민 개인전 ‘사랑폭탄’(삼육빌딩, 서울, 2018), 김익현 개인전 ‘Looming Shade’(산수문화, 서울, 2017), ‘BLU-RAY.MKV.JPEG’(ONEROOM, 서울, 2017) 등의 전시와 네마프 시네-미디어 큐레이팅 포럼 ‘장소의 감각, 물질의 그물’(KT&G상상마당, 서울, 2023), 상영 시리즈 ‘터치스크린’(ONEROOM, 서울, 2018)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 또는 공동 기획했다. (김신재)

문학평론가. 동시대에 가능한 ‘감성적·미학적 배움’에 관심이 있다. 현재 ‘매력과 배움’을 주제로 연구중이다. 옮긴 글로는 「왜 비판은 힘을 잃었는가? 사실의 문제에서 관심의 문제로」가 있다. (이희우)

재작년에 처음 배로 해협을 건너 다른 나라로 가는 경험을 했다. 새삼 몸을 매개로 한 공간 경험이 세계에 대한 인식과 상상을 조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륙에서 자라고 생활해서 바다에 관련된 어휘가 생생하게 와닿지 않는 편인데, ‘해도’나 ‘항해’처럼 종종 추상적인 비유로 사용하던 단어가 누군가에겐 구체적인 감각을 환기하는 단어라는 것을 상기해본다. 이를테면 ‘이팝나무’나 ‘산딸나무’가 그저 나무 이름이 아니라 어릴 때 살던 도시의 야트막한 산과 순환도로의 바람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대화를 하는 동안, 캐슬린 제이미의 『시선들』, 리베카 솔닛의 『야만의 꿈들』, 사사키 다카시의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 『메타유니버스: 2000년대 한국미술의 세대, 지역, 공간, 매체』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이야기는 자꾸만 딴 데로…… (김신재)

예전에 읽다 말았던 존 버거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은 존 버거가 죽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우리가 만나는 곳’은 존 버거가 죽은 이들을 만난 장소들이기도 하지만 독자와 화자와 저자가 만나는 책이기도 하다. 혹은, ‘죽음’이기도 할 것이다. 나도 죽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꿈에 할아버지가 나왔던 것이다. 우리는 손을 잡고 산책하면서 번갈아 아귀에 힘을 주는 놀이를 했다. 내가 힘을 너무 세게 줘서 할아버지가 많이 아파했다. 아파하면서 우리는 부산시 북구 만덕1동을 한 바퀴 돌았다. 낯선 곳이었다. (이희우)

2024/03/20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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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 인터뷰[PADO]”」 션 매슈스와의 인터뷰, 윤경희 옮김, 머니투데이, 2023.9.10. 바로가기
2
「“한국 문학상 경력보다 해외서 통할 수 있는 서사-주제가 더 중요”」 바바라 지트워의 말,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2023.9.18. 바로가기
3
「세계화와 국제화 차이」, 매일경제, 1994.11.22. 바로가기 흥미롭게도 이 기사에서는 ‘세계화’와 ‘국제화’라는 용어를 혼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