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받기
3화 쓰레기통
비료의 법칙
박윤선 “고양이들아, 마당 산책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앙굴렘에 살고 있는 Y입니다. 이번 화에서는 ‘특별한 쓰레기’를 보여드릴게요.
마당 구석에 놓인 상자가 보이시죠? 바로 저기에 ‘특별한 쓰레기’를 모아두었어요. 음식물 쓰레기, 휴지 등이지요. 흔한 거 아니냐고요? 쓰레기를 6개월에서 1년가량 내버려두면 썩어서 ‘비료’가 된답니다.
비료 상자에는 과일, 야채, 곡물류, 낙엽, 지푸라기, 나무 부스러기 등 식물성 쓰레기, 달걀 껍데기, 커피나 차 찌꺼기, 재활용이 불가능한 휴지, 종이류 등을 넣습니다. 단 육류나 어류(벌레 꼬임), 레몬이나 오렌지 등 감귤류 껍질(비료가 산성화됨), 부피가 큰 나무토막(썩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림) 등은 넣어선 안 됩니다.
비료는 마당에 감자, 토마토, 호박 따위를 키울 때 써요. 사실 우리집은 언덕 중간에 굴을 파낸 것처럼 자리하고 있어요. 마당이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해가 잘 들지 않지요. 작물이 크게 자라지는 못하지만 이것저것 키우는 재미가 좋답니다.
비료 상자를 둔 데에는 사연이 있어요. 이곳에 산 지 5년이 됐는데 놀랍게도 쓰레기차가 한 번도 온 적이 없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쓰레기를 수거하러 와야 하는데 말이죠. 시청에 찾아가 따져 묻기도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어요. 하는 수 없이 이웃들은 쓰레기를 가져다가 쓰레기차가 다니는 옆 골목에 버린다고 하더군요. 우리집도 그렇게는 하고 있지만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배출하는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수밖에 !
자, 동네를 좀 걸을까요? 단골 카페에 가서 쓰레기를 얻어올 거예요. 무슨 쓰레기냐 하면……
“안녕, 다미앙! 커피 한 잔 부탁해.”
“그리고 ‘그것’도 부탁할게. 음? 카페에 이상한 손님이 있다고?”
“새삼스럽긴, 혼잣말 하는 게 뭐 대수라고. 이 동네에 이상한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길거리에 보이는 쓰레기봉지를 괜히 뜯어서 헤쳐놓는 사람, 벤치를 들어다 엉뚱한 데에 옮겨놓는 힘좋은 사람, 어떻게 그랬는지 가로등을 분질러놓는 사람까지. 이 동네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건 동네에 워낙 할일이 없어서라고들 그러더군요. 목적 없이 동네를 뱅뱅 돌던 이들이 차츰 머리까지 뱅뱅 돌아버린 거라고요.
그러니 어서 빨리 이 동네를 떠야 한다고 맨날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그런 말 하는 사람들 중에 정말로 이사를 간 사람은 못 봤습니다. 다른 곳에 가봤자 변하는 게 없을까봐 겁이 나서 안 가는 건지, 아님 덫에 빠진 것처럼 이젠 나갈 수가 없게 된 것인지……
“아, 고마워, 다미앙. 커피 잘 마셨어.”
다미앙이 준 쓰레기가 무엇인지 눈치채셨나요? 바로 커피 찌꺼기입니다. 커피 찌꺼기에는 질소, 단백질, 무기질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적당량을 퇴비로 쓰면 식물이 잘 자란다고 해요.
‘플라타너스 가지치기를 하는 시기구나. 우리집 나무들도 가지치기를 해야 하나?’
‘특별한 쓰레기’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이들이 또 있습니다. 이웃에 살던 4인 가족이지요. 그 가족은 약 1년간 우리집에 음식물쓰레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2년 전쯤 그 가족은 이사를 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를 탈출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군요.)
당시 그 집 아저씨는 새로 장만한 녹즙기로 녹즙 만드는 재미에 빠졌더랬습니다. 그런데 즙을 짠 후에 남는 야채 찌꺼기를 그냥 버리기가 너무 아까워서, 그걸로 야채 케이크를 만들어 먹었다고 해요. 하지만 가족들은 금세 야채 찌꺼기 케이크를 질려했죠.
어느 날 그 집 냉동고를 열어보니 야채 찌꺼기로 가득차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집에 가져오라고 했죠. 지렁이들이 먹을 테니 아까워하지 말라고요. 그뒤로 일주일에 한 번 우리집엔 음식물쓰레기가 배달됐습니다.
그런데 그 집 음식물쓰레기에는 레몬 껍데기가 꼭 섞여 있었어요. 비료 만들기 법칙을 분명 알려줬는데, 잊어버렸나? 한두 번은 못 본 척 했지만 결국 말을 했어요.
“알아요, 알아.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레몬 껍데기는 비료가 못 된다는 건가? 그럼 지금까지 긴 세월 동안 생겨난 수많은 레몬 껍데기는 다 어디에 어떻게 버려졌담? 산성화가 문제라면 다른 신맛 나는 과일들은 아무 상관이 없는 건가요? 정말 레몬만의 문제라고 확신하나요? 벌레가 꼬이니 육류나 생선을 비료 상자에 넣지 말아달라는 건 이해를 하겠지만 말이죠. Y, 인터넷에 나오는 말들 믿지 말아요. 근거 없는 말들이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집 근처에 정신 나간 아저씨가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겁니다! 아니, 저 양반 오늘 또 왔네?
“아저씨, 스톱! 왜 남의 집 마당에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집에 가서 발 닦고 자라니깐!”
앗, 저 사람 우리집 비료 상자에 떨어지겠어! 육류는 넣으면 안 되는데!
육류는 정말로 안 되는데! 아앗!
증거 사진: 비료 상자 내부. 아무런 흔적도 없다.
_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앙굴렘, 정원 식물이 된 나.
“저기, 감귤류 껍데기는 비료를 산성화시킬 수 있으므로……”
그 아저씨 말이 일리가 있다 싶어 저도 그다음부터는 레몬, 귤, 오렌지 껍데기를 비료 상자에 버렸습니다. 그렇게 비료의 법칙이 깨졌죠. 그런데 우연인지도 모르지만 그후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ㅏㅁ너랴ㅐ저대;ㅑㅕㄹ;!!!!”
……잉? 사라졌어?!
“쓰레기는 여기다 버리세요.”
안내를 듣고 묘하게 납득이 갔다. 그렇지, 쓰레기는 땅에다 버려야지. 혹은 땅에 떨어졌으니 쓰레기가 되는 거지. 땅에 떨어진 것은 지지야. 먹으면 안 돼. 왜냐하면 바닥은 더럽고 더럽고 더러운 거니까.
집주인은 쓰레기통에 버려도 되는 것과 버리면 안 되는 것을 간단히 알려주었다. 식물은 되고 동물은 안 된다. 순한 건 되고 독한 건 안 된다. 작은 것은 되고 큰 것은 안 된다. 존나 까다롭네요,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집은 작고 불편했다. 인터넷이 설치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항에서 데이터 도시락이든 에그든 빌려왔을 텐데, 이럴 줄 몰랐다. 아니 상상을 못했지. 집주인은 미안한 기색 하나 없었다.
“15분만 걸어가면 카페가 있어요, 거기는 무선인터넷이 돼요.”
“그런데 일요일이라, 지금은 안 열어요.”
일요일이든 뭐든, 인터넷이 안 되면 어떡하라구.
올해 초,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나는 인터넷을 했다. 초등학교 입학식 후 일주일 동안 할머니와 둘이서 손잡고 1학년 1반으로 등하교를 했던 기억을 페이스북에 썼다. K팀장은 내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슬퍼요’였을 수도 있다. 그후 페이스북 메시지도 보냈다.
‘M대행사 어때요? 저번 캠페인 내부만족도는 몇 점인지 공유 좀. 혹시 1팀에 J주임이라고 알아요? 어때?’
빈소에서도 인터넷은 아주 잘 되었다. 나는 페이스북의 내 글에 달린 댓글들에 하나하나 ‘좋아요’를 눌렀다. 그리고 K팀장의 메시지에도 답을 했다. 간결하게, 진심은 빼고, 프로처럼.
“인터넷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주변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게요, 어디서 쓸 수 있는지.”
복잡한 표정을 한 집주인은 집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쓰레기통 앞 벤치에 앉아서 휴대폰 화면을 껐다 켰다 만지작거렸다. 저런 마인드로 무슨 손님을 초대한다고. 여행을 왔다고 했으니 정말로 쉴 줄 알았던 건가. 일요일 하루쯤은 고양이와 놀고 책을 읽을 줄 알았나. 저 사람은 그렇게 일요일을 보내나보지. 나의 일요일이 그렇지 못한 것이 저이의 잘못은 아닌데 왜 짜증이 날까.
쓰레기통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쓰레기통 속의 흙을 손가락으로 만져보았다. 그냥 흙이네. 그새 자라난 잡초를 뽑아서,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작고 순한 식물이니까.
그럼 나는 크고 독한 동물인거야?
집주인은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고, 나는 묵묵히 흙을 만지작거렸다. 나쁘지 않았다.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작아지며, 독기가 빠지며, 식물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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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결성된 프로젝트 팀으로 우리의 일상을 호기심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팀 이름은 영어의 ‘comment’(코멘트)와 불어의 ‘comment’(꼬멍)의 중의적 의미를 지녔다. 멤버인 박성진과 박윤선은 대학교 때 디자인을 전공하며 만났고 졸업 후에는 디자인과 무관한 길을 가고 있다. 박성진은 서울과 성남을 오가며 소설쓰기를 비롯한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박윤선은 앙굴렘에서 일러스트와 만화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18/03/27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