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기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다. 가슴에 혹이 생겨 수술을 했다. 의사는 수유가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엄마들의 모유 전쟁을 겪으며 의사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애쓰지 말자.’
   스트레스 받으며 찔끔찔끔 나오는 모유를 먹이느니 쉽고 편하게 분유를 먹이기로 했다. 결이는 태생이 먹보. 분유든 모유든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이유식도 마찬가지.
   이유식을 먹이면서 또다른 일과가 펼쳐졌다. 매 끼니 다르게 주려면 이유식을 최소 두 종류는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해두어야 했다. 이마저도 매일 새로 만든다는 어떤 엄마의 얘기를 들으면 힘이 빠지긴 했으나, 이유식을 사 먹인 적은 없다는 자부심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시간의 결


   - 너의 밥상


   나성훈(아빠) : 결이가 하루 세 끼 중 가장 잘 먹는 때가 언제지?

   장은혜(엄마) : 음, 매끼? 아침은 배고프니까 잘 먹는 것 같고, 저녁은 새로운 요리를 하니까 좋아하지. 점심은 애매해. 간식을 주니 밥은 잘 안 먹는 것 같아.

   나성훈 : 결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계란?

   장은혜 : 계란, 김, 그리고 고기도 좋아해. 나물은 이에 낀다고 빼달라고 하더라고. 아직은 식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경험이 많지 않으니까.

   나성훈 : 싫어하는 음식은?

   장은혜 : 밥 안에 들어간 콩 같은 것. 큰 잡곡류는 잘 못 먹는 것 같아.

   나성훈 : 하긴 그건 나도 싫으니까.



   - 나의 밥상


   나성훈 : 여보가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장은혜 : 나는 옛날에는 냉면이었는데, 지금은 남이 해준 밥이 좋아. 남이 해준 가정식 백반이랄까. 내가 맛있게 했을 때보다 남이 약간 맛없게 한 게 더 맛있게 느껴질 정도야. 음식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고 피곤하지도 않고……

   나성훈 : 싫어하는 음식은?

   장은혜 : 딱히 싫어하는 건 없는데,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려고 해. 매운 것도 적당히 매우면 좋고, 단것도 과하면 싫고.

   나성훈 :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데 한편으론 싫기도 해. 특히 믹스커피 먹을 때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 아이가 있으니 내 건강 걱정이 되더라고. 김치찌개도 커피랑 비슷한 것 같아. 먹고는 싶은데 곧바로 건강 생각을 하게 돼.

   장은혜 : 나이 들면서 입맛을 바꿔야 하는 것 같아. 결이는 우리와 반대겠구나. 자극적인 음식을 더 많이 경험할 테고,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순한 걸 먹어야겠지.





   -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거더군


   나성훈 : 결이가 밥을 먹은 건 돌 지나서였지?

   장은혜 : 돌 즈음이었지. 처음에는 죽으로 먹다가 밥의 찰기를 달리해봤는데 어느 순간 국도 먹더라고. 유아식을 따로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는 원래 짜게 먹지 않으니까 아이 음식 농도를 맞추는 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

   나성훈 : 과자를 많이 먹는 것 같긴 한데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어떤지 모르겠어.

   장은혜 : 단맛이 가장 자극적인 것 같아. 단 걸로 욕구를 충족하는 느낌도 들고.

   나성훈 : 어린이집에서는 과자 달라고 떼쓰지는 않나?

   장은혜 : 선생님에게는 할 수가 없지. 나랑만 있으면 버릇처럼 자극적인 걸 달라고 하는 것 같아. 우리가 믹스커피 먹듯이 결이도 버릇이 된 거야.



   -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더군


   나성훈 : 결이가 자고 있거나 우리 각자 나가서 밥 먹을 때도 있잖아. 그럴 때는 어때?

   장은혜 : 엄청 편한데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야. 휴대폰을 보거나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밥 먹으면서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은 결이랑 같이 먹을 때와 같아.

   나성훈 : 나는 가끔씩 주말에 결이 재우고 혼자 점심 먹을 때 좋더라. 그때는 보통 <무한도전> 재방송 보면서 라면을 먹으니까 더 좋아. 근데 꼭 중요한 장면에서 깨더라.

   장은혜 : 나도 그때가 좋아서 엄청 빨리 먹어. 여의치 않으면 아예 안 먹어. 잠깐이지만 결이가 잠든 동안 다른 걸 하거나 여유롭게 밥 먹고 싶은데, 중도에 멈춰야 하면 짜증이 일어서 쉰 것 같지가 않아.

   나성훈 : 결이 태어난 후로는 주의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같이 밥 먹을 때도 결이에게 온통 신경 써야 하잖아. 한 숟갈 뜨면 옆에서 자기도 달라고 하고, 잠깐 다른 데를 보다가 보면 흘리고 있으니까. 아이 챙기면서 밥 먹는 게 습관이 돼서, 혼자 있을 때도 뭔가에 오롯이 주의를 기울이거나 집중이 되질 않더라.

아빠 밥=결이 밥, 함께 먹는 즐거움을 아는 아이.




   결의 시간



물 한 컵도 맛있게 먹는 너란 아이. “맛없는 건 엄마가 먹어.”


잘 먹는 사람이 요리도 잘한다!


“아빠, 밥 식어요….”


빵과 과일은 세 살 음식 인생에 가장 큰 기쁨.




   엄마의 시간


   결이는 이가 늦게 난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가 많이 난 후에는 먹성이 더 늘었다.
   아침밥, 과일(사과 반쪽 이상), 치즈, 쌀과자, 요구르트. 이 정도는 식사 겸 간식으로 먹어 치워야 다른 놀이에 집중했다. OMG!
   23개월 결에게 냉장고는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요즘 매달리기 놀이에 빠진 탓도 있지만, 냉장고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이 있기에 틈만 나면 그곳을 노린다.
   어린이집에서는 오전 간식으로 죽을 준다. 적응 기간이라 간식 먹는 것을 도와줬는데, 결이가 싫어하는 음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죽! 결이는 죽 한 그릇을 맛있게 비운 적이 없다. 남들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생기면 기뻐한다는데, 나는 도리어 결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알게 되어 놀라다니 신기하다.


   - 충분한 밥상


   결이 낳고나서는 창의적인 요리를 하는 건 힘든 것 같아. 새로운 생각하는 것 자체로 힘이 드니까.
   유기농 식품도 100퍼센트 대안은 아니야. 믿고 먹이는 거지. 마음에 부담도 덜 되고 고민을 확 줄여주잖아. 가격이 비싼 데에는 그만큼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준다는 이유도 있을 거야.
   먹을 것은 결과가 바로 나온단 말이야.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내려서 뭔가를 샀을 때 거기서 오는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아. 누구도 칭찬하지 않고, 격려하지 않지만 ‘이 정도면 잘했네’ 하는 심리적 만족감 말이야. 





사진글방

장은혜는 사진 찍고, 나성훈은 글 씁니다. 사진과 글을 도구로 세상의 작은 것들을 정성스럽게 담아냅니다.

2018/03/27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