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우편 프로젝트는 그동안 ‘느리고 복잡한’을 주제로 세 명의 필자에게서 글을 받아보았습니다. 이번엔 월간비둘기가 여러분께 ‘느리고 복잡한’에 대하여 글 한 편을 선물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월간비둘기가 보내는 선물이자, 일반우편 프로젝트의 굿 바이 인사입니다.


   “이 고양이, 우리 부대에서는 이번주까지만 맡아줄 수 있대. 다른 형제들은 다 입양을 갔는데, 얘만 못 가서…… 이번주 지나면 다시 자연에 보내야 하는데, 거기 들개들도 많고 위험하거든…… 아직 한 달도 안 된 아기라 살아남기 쉽지 않을 거야.”

   군부대에서 태어난 갓난아기 고양이 형제들을 잠시 보호하고 있던 한 친구의 말에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사실 고민은 처음 친구가 보내온 사진을 보는 순간 끝났던 것 같습니다. 아이를 살려야 하니 친구에게서 데리고 오긴 해야 하는데 제 자신의 상황에 대한 설득이 필요했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반대와, 경제적 요인,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이 없다는 점 등 현재의 저에겐 고양이를 데려오는 것은 무리한 선택이었고, 그럼에도 사진으로 눈을 마주쳐버린 저 아기 고양이를 살려야 한다는 것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금요일 밤, 마지막까지 입양을 가지 못한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러 친구의 부대로 향했습니다. 데리러 가는 길에서도 걱정은 계속 되었습니다. 한 생명의 삶을 함께 책임지는 일에는 용기뿐만 아니라 현실적 조건들도 필요하였고, 제가 이 아이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요건이 되는지에 대하여서 확신이 서진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 내가 데려가지 않으면 이 아이는 더이상 보호를 받을 수 없어진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확신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마리의 아기 고양이가 저의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느루’. ‘한꺼번에 몰아치지 않고 오래도록’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작은 생명이 오래도록 자신의 속도에 맞춰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느루와의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울고 있는 고양이가 담긴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가자 부모님은 크게 호통을 치셨고, 저는 그들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느루를 안고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막상 방에 느루와 둘이 들어와 있으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걱정은 계속 커져갔지만, 우선은 보호의 시간을 벌었으니, 천천히 평생을 함께해줄 가족을 찾아주면 된다며 마음을 다독여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느루에게 밥을 먹여보았습니다.

   엄마와의 이별이 처음인 느루는 목청껏 엄마를 찾기만 할 뿐, 밥도 먹지 않고 배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손에는 젖병을 들고, 한 손으로는 울부짖는 아이를 쓰다듬다가 밤이 훌쩍 지났습니다. 아침은 밝아오고, 느루는 밤새 울다 지쳐 잠시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찾다가 잠들어버린 느루를 보며,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젖병을 보며 이번엔 제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널 살려주고 싶었는데, 네가 괴로워하니 내가 너무 힘들다. 밥을 먹어주렴.’

   다행히도 시간이 지날수록, 느루는 한층 더 안정되어 갔습니다. 가끔 엄마가 생각나는지 크게 울어대긴 했지만, 밥도 잘 먹기 시작하고 잠도 차분히 잘 잤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느루와 침대에 함께 누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느루를 입양하고 싶다는 문자였습니다. 제가 느루 입양을 위해 제시한 조건들에 모두 충족하는 분이었고, 그날 밤이 느루와 저의 마지막 밤이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도 느루의 새로운 엄마가 보내주는 느루 사진을 구경하고, SNS 프로필 이미지라도 느루로 바뀌면 바로 저장해놓는, ‘느루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느루가 제가 돌보는 것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 같아, 항상 잘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느루가 보고 싶어집니다. 함께 침대에 누워 장난치며 놀았을 때, 밥을 너무 많이 먹어 배가 터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을 때, 느루의 콧잔등에 있는 멋진 반점, 다리 뒤에 콩콩 박힌 무늬들, 모두 기억하고 그리워합니다.

   일반우편 프로젝트도 느루처럼 저희의 손을 떠나게 됩니다. 일반우편 프로젝트는 월간비둘기에게 이제 떠나보내지만 기억하고 싶고 추억하고 싶은 프로젝트입니다. 저희의 마음속엔, 일반우편 프로젝트도, 느루도 한 번에 몰아치지 않고 오래도록 머물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희의 편지를 받아온 모든 독자 분들께도 그러하길 바라면서……

   일반우편 프로젝트와 느루, 모두 안녕!


월간비둘기

월간비둘기는 손 편지 정기구독 프로젝트입니다. 정찬처럼 자리를 잡고 먹어야 하는 긴 글 덩어리 말고, 빵 쪼가리처럼 뜯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편지 한 장을 써서 띄웁니다. 그리고 우편함 속 전기세 고지서, 백화점 전단지, 예비군 소집 통지서, 슈퍼마켓 광고지 사이에서 우연히 사람이 쓴 편지를 발견했을 때의 작은 희열을 아낍니다.

2018/06/26
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