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A 인터뷰(2화를 참조할 것. 바로가기)와 창작집단 담의 고민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인물을 소개합니다. 정윤성이라는 인물의 프로필과 그의 가방 속 물건을 살펴보시고 그의 독백도 들어봐주세요. 무대에 오르기 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의 머릿속에 생생한 그림이 그려지기를 바랍니다.


   1. 인물 프로필


인물 프로필 표: 이름, 나이, 가족관계, 취미, 성별, 성적지향, MBTI, 특기로 구성
이름 정윤성 성별 남성
나이 17 성적지향 무해한 남성을 좋아한다
가족관계 1남 1녀 중 첫째 MBTI INFP
취미 못하는 오버워치 특기 리코더


   2. 윤성의 가방 속



   ① 겨자색 꼬질꼬질한 천 필통
   홍대 상상마당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혼자 보러 갔다가 샀다. ‘넌 여성스러우니까 청소도 잘하고 깔끔할 것 같아.’라는 반 아이들의 기대와 다르게 필통을 빨아 쓸 정도의 깔끔함은 전혀 없다. 막상 자기가 더러운 사람이라고 밝히기는 부끄럽다. 덜 친한 친구와 자기 자리에서 얘기를 나눌 땐 팔뚝으로 필통을 슬쩍 가린다.

   ② 게임 〈오버워치〉 속 메이라는 캐릭터를 표지에 그린 노트
   지금은 다른 학교가 된 수민이가 만들어줬다. 순둥한 외모지만 은근한 똘끼를 가지고 있는 메이가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오버워치〉를 아는 다른 남자애들은 메이를 알아보고 윤성에게 ‘그런 취향이냐?’고 엉뚱한 질문을 한다. 이들과 같이 PC방에 가본 적은 없다.

   ③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삼십대 초반인 남자 국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자신의 복학생 시절 연애 썰을 풀며 이 책을 추천해줬다. 책을 반쯤 읽었는데, 이 책과 자신의 연애 경험을 연결시켜 말했던 선생님이 새삼 신기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외과 의사 토마스에게 감정이입을 했던 것일까? 국어쌤이 정말 자신이 상상하는 것만큼 무해한 남자일까 고민해보며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④ 남성용 로션 샘플
   남성 뷰티 유튜버 큐영이나 후니언을 좋아한다. 처음엔 그들의 개그 코드가 자신과 맞아 구독하기 시작했다. 딱히 화장 자체엔 관심이 없었는데, 좋다는 얘기를 반복적으로 듣다보니 자신도 화장품을 몇 개 사게 됐다. 로드샵에선 남자가 틴트나 아이섀도를 사면 꼭 남성용 로션 샘플을 준다. 아직 틴트를 바르고 밖에 나가본 적은 없다.

   ⑤ 검정색 카디건
   몸에 걸치는 건 무난하게 검정으로 골랐다.

   ⑥ 라벤더색 다이어리
   딱히 라벤더를 좋아하진 않지만, 다이어리마저 여성용, 남성용이 구분되어 있는 게 이상해서 확 라벤더를 택했다. 물론,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 다이어리 안은 텅텅 비어 있다.


   3. 윤성의 독백


윤성의 독백. 총 6분 26초.
   
조용한 5층 음악실 옆 화장실. 드르륵, 문을 열고 윤성이 들어온다. 다시 조심스럽게 문을 닫는 윤성. 자꾸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거울을 보는 윤성.


윤성
별로…… 별로 안 특이한데? 별로 안 특이한데? 별로……

   
윤성의 전화에 진동이 온다. 전화를 받는 윤성.


윤성
뭐야, 8시라며. 늦으면 톡이라도 해주든가. 아니, 그럼…… 아니야, 시비 거는 거. 그냥 너무 불안해서.
(사이)
지금은 자감 없고? 아, 미술실. 나는 아무도 안 오는 5층 화장실. 안 와. 5층에 음악실밖에 없는데 이 시간에 누가 와. 저, 말 끊어서 미안한데, 네가 보기엔 어떤 거 같아? 아까 그거. 카톡. 불안할 필요 없다고? 네가 상황을 직접 못 봐서 그래. 아니, 그건 맞는데. 아씨, 너랑 같은 학교 됐으면 이럴 일도 없는데. 직접 들으면 그 뉘앙스가, 걔가 막 떠보듯이 얘기했단 말이야. 누구, 걔 이름? 우호재. 아는 애야? 있어. 노는 애는 아닌데 노는 애들 옆에 붙어서 말 엄청 많은 애.
(웃음)
맞아, 행동 대장처럼. 암튼 걔가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물어보는데, 컴퓨터 시간에, 애들 다 있는 앞에서. 뭘 뭐라 그래, 그냥 “어?” 이랬지. 목소리 떨렸지. 근데 그건 뭐 갑자기 시비 거니까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치고. 문제는 그 다음인데…… 카톡에 다 말했잖아. 너 제대로 안 읽었지? 치, 그래, 고마워 죽겠다. 걔가 나보고 존나 특이하대.
(사이)
이게, 말만 들으면 아무 말도 아닌데, 꼭 그 뉘앙스가…… 그래,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그래 무슨 사설탐정 된 거마냥! 진짜 묘하게 신나 있더라니까? 불쾌보다도 걱정됐지. 내가 너무 티냈나 싶고. 어떻게? 내가 “별로 안 특이한데?” 이랬단 말이야. 꼭 뭐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서. 증거야 없지만…… 그래도 걱정돼. 아니, 지금 문제는 들켰는지 아닌지라니까. 왜 자꾸 기분 타령이야. 기분이야 당연히…… 짜증도 나지. 또? 분해. 재수없어. 아니, 걘 뭔가 그렇게 신이 나? 무슨 숨어있는 게이 사냥하기 놀이야? 아, 너무 크게 말했다. 그래도 학교니까. 아직 3년이나 남았는데 어떻게 하지? 걔랑은 컴퓨터실 옆자리라 피할 수도 없단 말이야. 그래, 너라고 답이 있겠냐.
(사이)
고맙다. 그럴 때마다 떠올리는 거? 이상하다고? 걔네 말투가? 맞아, 괜히 세게 말하느라 욕까지 막 섞잖아. 완전 어색하게. 맞아, 맞아. 정훈쓰. 시원쓰. 너무 싫어. 맞지, 너네 반도 그러지? 그거 남자 유투버들 따라하는 거야. “뭐뭐 미만잡” “햄들” “솔직히 인정?” 막 이런 거.
(웃음)
말이 좀 심하네. 역겨운 건 아니고, 그냥, 좀 특이하다, 정도? 이거 왜 이래. 나 혐오자 아니야. 나 걔들 존중해. 걔네처럼 하고 싶냐고? 으, 싫어. 그럴 바엔 그냥 게이 말투 할래.
(웃음)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대변기 칸 문을 열고 정훈이 나온다.


윤성
       정훈아.
(전화에 대고)
잠깐만.

   
윤성 전화를 끊는다.


윤성
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화장실 썼구나. 그래, 아래층은 애들 너무 많지? 여기가 쾌적해. 나는 친구 고민 상담 좀 들어주느라. 야, 사람 무안하게 왜 대꾸가 없어. 그냥 가지 마! 손 씻고. 둘이 얘기라도 좀 할래? 너, 너도 아래층에서 똥 싸기 쪽팔려서 올라온 거잖아. 서로 비밀로 해주자. 그러니까 너 똥 싼 거랑, 나. 내가 오늘 막 호재 욕한 거. 그거 별거도 아니잖아, 솔직히 없는 데서 친구랑 통화로 욕하는 게 뭐. 맞지?
(사이)
왜 대답이 없어? 왜, 왜 그렇게 쳐다봐? 그 오해하는 거 있으면 지금 내가 다 해명할게. 그럼 되잖아.

   
드르륵, 문을 열고나서는 정훈.


윤성
그러고 보니, 너도 내 말투 가지고 뭐라 한 적 있었지? 목소리 더 낮게 낼 수는 없냐고. 그럴 수야 있지. 근데 일부러 목소리를 깔면 기분이 안 좋아진단 말이야. 재밌자고 떠는 수단데. 이거 봐. 기분이 안 좋으니까 저절로 목소리가 낮아지잖아.


   4. 1cm 리뷰단


담A
독백까지 쓰면서 내가 원하는 건 단순히 배우 분이 좀더 나와 비슷한 음성을 내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말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내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받고 싶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말했다면 더 이해가 빨랐을 텐데, 날 서고 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나와 작업하신 배우 분께 죄송하고 감사하다.

담B
윤성의 독백이 완성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내가 그동안 퀴어 인물을 재현하는 것에 겁을 먹고 그것을 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자신의 말투로 다시 무대 위에 등장하는 윤성을 이번에는 있는 힘껏 반갑게 맞이하고 싶다.

담C
혈액형으로, 별자리로, MBTI로, 온 힘을 다해 나를 찾고 싶은 사람들의 세상. 대본 속의 윤성 역시 자신을 찾기 위해 발버둥쳤겠지. 목소리를 얻은 윤성은 이제 ‘나’를 찾았을까. 무대 위의 윤성을 빨리 보고 싶다.




창작집단 담

구하나, 박주영, 서동민. 세 명의 극작가가 담에 모였습니다. 담담하게 다음을 도모합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담.

2020/08/25
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