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세미나를 기획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상황이 이런 것이었다. 동아리 홈커밍데이에 선배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 정말 맞닥뜨리고 싶지는 않았던, 너무 많이 걱정하면 사실로 나타날까봐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상황.
   세미나 준비는 3주 전 인근 대학 퀴어 동아리에 도움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춘천에서와 마찬가지로 메일과 트위터로 연락을 취했지만, 회신이 없거나 참석 의사는 비치지 않는 답장이 왔다. 거기서 눈치를 채야 했을까. 2주 전 대관을 확정하고, 웹 자보로 SNS 홍보를 시작하며 온라인 신청을 받기도 했지만, 참석 문의는 하나도 없었다.
   드디어 세미나 당일. 청주 터미널에서 한 시간 남짓 시내버스를 타고 독립서점 ‘꿈꾸는 책방’에 도착했다. 열다섯 명 정도의 인원이 앉을 수 있는 자리와 토론 도서인 『걱정 말고 다녀와』(김현, 알마, 2017)가 놓여 있었다. 절대 아무도 안 오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온다고 한 사람은 없었지만 혹시나 누군가 오지 않을까, 설마 아무도 없을까…… 세미나 시작 한 시간 전, 마지막으로 무지개책갈피의 공식 계정에 글을 남겼다.
   “불쑥 들러주세요”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썼지만 뒤에 ‘제발’이라고 붙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세미나는 청주 거주 참여자 없이 진행되었다. 참석 인원이 단둘이었으므로 특별히 진행을 맡은 이 없이 두 명의 활동가가 대담 형식으로 진행했다.

   세미나에서 이야기할 작품은 시인 김현의 산문집 『걱정 말고 다녀와』에 수록된 그의 단편소설 「견본세대」다. 가까운 미래의 어느 겨울 서울을 배경으로, 처음으로 함께할 집을 찾아다니는 연인의 이야기이다.
   국민임대주택의 견본세대1)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 주인공 ‘나’와 9년간 사귄 연인인 ‘너’는 이른 시각부터 여러 곳을 둘러보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나’는 약속 시간에 늦어버리고 ‘너’는 꽉 맞는 운동화를 신고 나온 탓에 발이 불편하다. ‘나’의 시선을 따라가는 소설에서, ‘나’는 영화판에서 10년을 보내느라 남은 건 빚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너’는 번듯한 직업이 있고 ‘처음부터 잘 살아온 사람’으로 묘사된다.
   처음으로 찾아간 집을 ‘너’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나’는 그런 ‘너’를 이해하면서도 거리감을 느낀다. 택시를 타느냐 마느냐를 두고, 또 첫번째 둘러본 집에서 마주친 술 취한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지고, 갈등을 빚던 두 사람은 결국 두번째 집을 찾아가는 길에 크게 싸우고 마는데…… 싸운 이후에도 두 사람은 함께일까? 알 듯 말 듯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두번째 읽는 퀴어

   장소 : 충청 청주 꿈꾸는 책방
   일자 : 2018년 2월 10일(토)
   참여자 : 다홍, 지혜(이상 무지개책갈피 활동가)


   인물들


   이런 나에 비하면 너는. 너라는 사람은. 처음부터 잘 살아온 사람이다. 처음부터. 너는 번듯한 직업이 있고, 한 번도 학자금 대출을 생각해본 적이 없고,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보지 않았으며, 배가 고파서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 같은 걸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외톨이가 되어보지 않았고, 자살 같은 건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 너는.

   다홍 : 초반에 ‘나’는 자기 고통만 보는 사람 같다. ‘너’의 단점 아닌 단점을 나열하는 게, 현실적인 연인 관계 같았다. 어떤 면이 사랑스럽다고 얘기했으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 텐데. 이런 관찰은 ‘나’가 ‘너’를 오랜 시간 관찰을 해서 보이는 것 같다.

   지혜 : ‘나’는 ‘너’가 가진 모습 중 자기랑 다른 면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한편 전형적이라는 말로 ‘나’는 많은 사람들의 특성을 표현하는데, ‘너’에게도 적용된다. ‘견본세대’라는 제목이랑 관련된 건 아닐까.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눠본 것 같기도 하다.

   다홍 : ‘나’랑 ‘너’라는 캐릭터가 보편적인 인물상 같아 두 사람이 한 세대의 견본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라면 동의한다. 평면적이진 않은데 충분히 현실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이다. 애인이 있다면 둘 중 어느 인물에 가까운지? 나는 ‘너’에 이입하며 읽었다.

   지혜 : ‘나’에 이입하며 읽었다.

   다홍 : 서로 배경이 다른 두 인물이 ‘다르기 때문에’ 겪게 되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로 이 작품을 이해했다. ‘나’는 ‘너’를 초반부터 유복하다고 하고, ‘칭얼댄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정말 ‘너’가 그래 보이는지?

   지혜 : 조금 더 예민한 사람 같아 보였다. 작은 개가 큰 소리로 짖는 것처럼, 자기가 더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 하지만 사실 그렇게 유복한 사람 같지는 않다.

   다홍 : 누가 더 예민하고 누가 더 여유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게 사실 둘 다 예민하고 둘 다 여유는 없다.

   나 발 아파.
   (…)
   인터넷으로 샀는데 너무 꽉 맞네.
   운동화 같은 걸 왜 인터넷으로 사.
   싸니까 사지. 네가 비싼 걸 사주든가.
   너는 말하고 웃고 나는 할말이 없고 웃지 않는다.


   지혜 : 처음 장면의 운동화 에피소드는 어떤가?

   다홍 : 싸니까 샀다면서, 비싼 거 사줄 거냐고 농담한다. 그런데 그 농담에 ‘나’가 상처받았을까? 농담으로 받아들여졌을까?

   지혜 : 9년간 사귄 애인이니까 농담으로 지나치면서도 상처받는 그런 농담이었을 듯.

   다홍 : ‘너’가 정말 화성이나 모오니오에 갈 만큼 유복했다면 이야기는 애초에 ‘집 찾기’ 서사라기보다 그저 그런 에피소드가 됐을 것 같다. 어려움이 별로 없을 때 서사라는 게 생기지 않으니까. ‘나’와 ‘너’가 집 찾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것들은 여유를 잃게 하는 것들이고, 악의는 없지만 포비아2)를 만났는데 ‘너’는 웃으면서 대한다. 나도 언젠가 독립을 할텐데, 두 사람처럼 갈등을 맞게 될까봐, 슬프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다.

   지혜 : 그 포비아, 조순조를 ‘나’의 시점에서 사랑스럽게 그리고 있지 않나. 자신의 아버지, 외삼촌, 첫 남자와 동일선상에 놓으며 ‘친애할 수 있는 남자’의 삶이 조순조가 사는 아파트에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다홍 : 소위 인류애 같은 것일까?

   지혜 : 인류애라는 게 존재하나? ‘너’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기대가 없으니까 견본세대를 보러온 둘에게 사무적으로 대하는 소장도 친근하게 그리고, 젊은 베트남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는 등의 말을 하는 조순조에게도 웃으며 대할 수 있다고 봤다.

   다홍 : 조순조의 경우는 그 사람만의 서사가 있을 것 같아 궁금했다. 고독사 운운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다수의 말을 내재화한 혼자 사는 게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지혜 : 소수자라고 해서 소수자의 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말.


   가장 작은 소원이 이뤄지는 모오니오 호수


   근데, 혹시 그 큰방 벽에 글씨 봤어?
   뭐?
   아니, 큰방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벽에 자그맣게 글씨가 적혀 있더라고. 옛날에 살던 사람이 써놓은 거 같더라.
   글씨? 무슨 글씨?
   철새를 타고 먼.
   철새를 타고 먼?
   어. 철새를 타고 먼이라고 적혀 있었어.


   지혜 : 두 사람이 보러 간 견본세대에서 이전 거주자가 써놓은 낙서를 발견한다. ‘철새를 타고 아주 먼’이라는 말인데.

   다홍 : 철새는 살기 좋은 곳으로 가니까.

   지혜 : 돈도 안 들고 자기 날개로 가는 것. 얹혀 가고 싶다.

   다홍 : 철새가 부러워졌다.

   지혜 : 하지만 철새를 실제로 탈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철새를 타고 가장 작은 소원이 이뤄지는 핀란드의 호수를 보러 가자고 한 게 ‘너’다.

   다홍 : ‘너’는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닌데, 현실을 일부러 잊고 하는 낭만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같다.

   지혜 : 위로가 되는 거짓말 같은 것들. 그런 ‘너’를 위해서 ‘나’가 가끔 이런 이야기를 ‘너’에게 해줘야지, 하고 다짐하는 부분이 사랑스럽다. 물론 ‘나’ 스스로를 위해서 그런 이야기를 생각해내거나 믿지는 못하는 듯. 그런데 그 호수에서 이뤄지는 게 가장 작은 소원이라고 하는데, 가장 작은 소원이라는 게 뭘까? 소원에 우선순위나 크기를 매길 수 있는 걸까?

   다홍 : 어떤 사람들은?

   지혜 : 다홍님의 가장 작은 소원은?

   다홍 : 내일은 날이 맑았으면 좋겠다. 지혜님은?

   지혜 : 삶이 알아서 끝나는 때까지 버텨내는 거? 근데 이건 가장 큰 소원이기도 하다.

   다홍 : 소원에 대한 소망이 작다는 건지, 소원이 이뤄지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일이 작다는 건지 모호하다. 그래서 재미있기도.

   지혜 : ‘나’의 가장 작은 소원과 ‘너’의 가장 작은 소원은 뭐였을까?

   다홍 :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 ‘같은 마음’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둘이 함께할 작은 방을 구하는 게 두 사람의 가장 작은 소원 아니었을까. 그런데 둘이 헤어지는 것처럼 보여서 슬펐다.

   지혜 : 결말은 어떻게 읽어도 되는 것 같다. ‘나’가 보낸 문자에 ‘너’가 답장을 보냈으니까. 헤어진다고 하더라도 이 일 때문이 아니라 나중에 헤어질 듯.

   다홍 : 헤어지지 않더라도 집 때문에 갈등이 빚어지는 게 슬프다.


   퀴어로서 집 찾기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 이번에는.
   그렇지, 우리 둘이 같이 사는 거지……
   사실, 나는 오늘 좀 들떠 있었어. 너와 처음으로 함께 집을 보러 다니는 거니까……


   다홍 : 아직 독립을 하지 않았다. 집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경험을 해본 적은 없다.

   지혜 : 집은 중요하다. 생활 반경이 집을 거점으로 정해지니까. 나는 수도권 출신이 아닌데 청소년 시절엔 서울로 도망치고 싶다,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대학 진학을 계기로 실제로 그렇게 했다. 다홍님은 타 지역 대학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았는지.

   다홍 : 그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퀴어라는 게 나고 자란 지역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데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있었을까?

   지혜 : 없지는 않겠지만, 가족과의 갈등만 있었더라면 경제적으로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독립하지는 않았을 것. 지금 사는 곳은 위험하고 저렴하다.

   다홍 : 청소년기에는 얼른 독립을 하고 싶었는데, 막상 대학 진학 후에는 계속 가족과 같이 살아도 될 것 같다. 가족이 퀴어 친화적이지 않은데도.

   지혜 : 가족에게서 독립해서 집을 합친다는 건 결혼이 연상되기도 한다. ‘나’와 ‘너’가 집을 찾으며 맺는 갈등이 헤테로 커플이 결혼 준비하면서 맺는 갈등과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홍 : 우리 문화권에서는 결혼할 때 가족이 합쳐지니까, 그 과정의 갈등도 크다.

   지혜 : 그런데 소설에서 가족 얘기가 전혀 없다.

   다홍 : 가족과 실제로 단절된 상태이거나, 가족과 함께 살더라도 커밍아웃하지 않았다면 단절된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가족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나이 든 동성 커플의 경우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더라도 동거 사실만으로 주변 반응이 자연스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혜 : 그렇더라도 함께 사는 사람이 필요하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다홍 : 독립을 한다면 애인과 함께 동거하고 싶다. 이 소설보다 희망적인 미래가 기다렸으면 좋겠고, 그럴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현재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이 지났다. 왜 우리는 결국 독립과 동거에 대한 소망으로 끝을 맺었을까? 자문자답하자면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필요한 것이겠다. 한 걸음 떨어져 선 연인에게 보내는 문자처럼, 두 활동가의 대담을 두려움과 설렘으로 띄워 보낸다.
   퀴어 행사를 기획하면서 안전함과 개방성을 항상 함께 고려하지만, 마음 편히 찾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소설 속 두 사람의 집 찾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 여러분과 우리 또한 보금자리와 같은 공간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낯설다 할지라도, 지역으로 찾아가는 ‘읽는 퀴어’가 다가오기 어려운 곳으로 느껴지지 않기를.


   *무지개책갈피 홈페이지(www.rainbowbookmark.com)에서 전체 대담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무지개책갈피, 지혜

"한국에도 퀴어문학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작된 한국퀴어문학종합플랫폼. 퀴어문학이라는 장르조차 생소한 한국에서 퀴어를 다루는 소설을 모으고 읽고 씁니다. 읽고 쓰는 당사자 작가와 독자를 응원합니다. 그리하여 대답하려 합니다.
"네. 한국에도 퀴어문학은 있습니다.”

2018/03/27
4호

1
분양, 임대 전 미리 볼 수 있는 공간
2
‘나’와 ‘너’가 처음으로 들른 주택에서 만난 사내 조순조는 두 사람을 동성 연인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당연히 친구라고 생각하며, “얼른 짝들을 찾아야지”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