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이 특별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반면에 대체로 두번째 순간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한다. 수많은 첫 순간 다음엔 수많은 두번째 순간이 있었을 텐데, 그 기억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이번 화에서 나는 ‘처음’에 대해 쓰고 싶었다. 처음 가는 전라도, 처음 타는 KTX, 처음 진행하게 된 독서 세미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목포에서의 세미나(2월 24일)가 인원이 모이지 않아 취소되면서, 나는 처음이 아닌 ‘다음’을 말하게 됐다.
   목포 다음은 전주. 두번째 전라도행이다. 두번째로 타는 KTX는 이번에도 생각만큼 편하지 않았다. 근육통 때문이었다. 책을 꺼내 읽었다. 결혼 이야기이라니, 다시 읽어도 여전히 낯설었다. 간간히 기차 밖 풍경을 쳐다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은 점점 커졌다. 풍경은 이상할 정도로 온화했다. 속도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두번째를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대체로 두번째는 첫번째보다 인상이 흐릿한 법이니까.
   전주는 18도라고 했다. 기차 안의 온도는 놀라울 정도로 쾌적하게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전주역에 도착하고 나서야 18도라는 온도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목도리를 벗었다. 전주역에는 사람이 많았다. 전통적인 처마 모양과 풍등으로 장식된 역에서 빠져나와, 한옥마을로 향하는 승강장 앞 길게 늘어선 줄을 지나서 택시를 탔다. 사투리를 조금 사용하는 기사님과―전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사투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한참 후에야 그것을 깨달았고, 비수도권을 사투리로 표상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었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농구 이야기를 했다. 책방 놀지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아무런 실감이 없는 채였다. 처음이라는 기대감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미 변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책방 놀지의 입구에 선 순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덜컥, 차올라왔다. 무엇을 잘하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다. 세미나라니, 결혼이라니.
   박민정의 단편집 『아내들의 학교』(문학동네, 2017)의 표제작 「아내들의 학교」는 동성혼이 합법화된 근미래의 레즈비언커플의 모습을 보여준다. 학생 때부터 서로밖에 없었던 선과 설혜는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선은 모델로서 탑모델 선발대회에 나가고, 설혜는 아이를 돌보며 선이 나오는 TV를 챙겨본다. 선이 집을 비운 동안 설혜는 단미 협동조합에서 대학생 때 같은 여학생회를 하던 선배를 만나고 불쾌한 과거를 회상한다, 한편 선은 설혜에게 자신을 도와달라며, 아이와 함께 TV에 나와 ‘드라마’를 완성해달라며 전화한다.




   세번째 읽는 퀴어

   장소 : 전라 전주 책방 놀지
   일자 : 2018년 3월 3일(토)
   참여자 : 연(진행), 보배(이상 무지개책갈피 활동가), 담(최근 졸업·전주 10일차), 이슬(대학원생·전주), 제로 (학생·전주)

   지금은 그로부터 멀리 온 미래다. 대학 시절로부터도 멀어졌고, 그 옛날 ‘우리가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부터도 멀어졌다. (…) 그러나 ‘우리가 처음 만났던 순간’조차 그다지 먼 옛날 일은 아니다. (215~217쪽)

   연 : 「아내들의 학교」는 내게 한마디로 ‘결혼의 풍경들’이었다. 결혼 이야기는 퀴어의 인생과 가까운 듯도 하고 먼 듯도 하다. 다들 어땠는지 궁금하다.

   제로 : 마지막 장면에 유토피아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게 과연 유토피아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혼인관계가 과연 유토피아일까 하는 생각.

   보배 : 그것을 질문하는 책인 것 같다. 기존 작품들에서는 퀴어 가족을 아름답게만 그린다. 그렇게 해야 호소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렇게 아름다운 가정을 꾸밀 수 있으니 우리에게 합당한 권리를 달라.” 그런 방식으로만 다뤄지다가, 이 작품은 그런 것과 반대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근미래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약간 구시대적이라고 보이는 결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성혼 법제화가 유토피아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다만 폭력적인 장면이 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다. (일동 웃음) 작품에서 폭력적인 묘사나 장면이 쓰일 때 어떤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담 : 작가가 작품에서 폭력을 다룰 때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독자가 작품을 읽을지 모르는 일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작품이 또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요즘은 독자들이 이런 부분에 좀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섬세하게 다가가는 듯하다.

   연 : 공감한다. 폭력적인 묘사나 표현이 ‘날것의 언어’ ‘생생한 언어’로만 기능하면 곤란하다. 되짚어본다면 이 작품에서 어떤 장면이 독자로 하여금 ‘불편한 폭력성’으로 읽히고 그친다면 원하던 기능을 충분히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야, 너는 애인 있잖아. 등록금 내주다가 때 되면 집 사줄 부모도 있고. 그런데 네가 약자냐? 우리가 약자야. 애인도 없고 물려받을 건 빚밖에 없는 부모 밑에서 뼈 빠지게 고생하는 우리가. (236~237쪽)

   연 :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서 ‘돈 많은 여자’라는 것이 무엇을 위해 들어간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보배 : 퀴어라는 소수자 안에서도 계급이 나누어지고 그것인 설혜와 선 사이의 계급 차이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여학생회 내의 선배와의 갈등에서 “진짜 소수자는 나야”라는 멘트가 나온다. 소수자성의 복잡한 결을 보여준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한 사람 안에서도 소수자인 내가 있고 다른 누군가와 비교해서 어떤 권력을 가진 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제로 : 그게 또다른 혐오로 읽히기도 한다. 왜 이렇게까지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날것의 언어’로 혐오 발언이 나와서 불편했다.

   보배 : 생각해보면 혐오와 차별을 다루는 이 작품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필터링 없이 발화 되는 게 부자에 대한 혐오다. 성소수자 혐오는 오히려 ‘세련된’ 방식으로 바뀐 사회고, 오히려 부자 혐오는 너무 노골적인 방식으로 언급되기 때문에, 혐오에 대한 발언에 예민한 독자는 그렇게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굳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목사인 선의 아버지는 오래전에 선을 버렸고, 설혜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난 후에도 물질적 지원을 끊지 않았다. 돈도 있고 간섭하는 부모도 없는데 결혼, 그런 걸 왜 해야 하는가. 그건 어떻게든 정상 시민이 되고자 발악하는 헤테로들이나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일부 언니들처럼 선도 그 비슷한 주장을 했다. 선이 핏대를 올려 주장했으므로 설혜도 수긍했다. (228쪽)

   연 : 결혼과 같이 법적인 결합이 가능한 사회가 된다고 하면 파트너와 법적인 관계가 되고 싶은지?

   담 : 딱히.

   제로 : 나도 딱히.

   이슬 : 분명 제도가 보호해주는 면이 있다. 누군가 생긴다면 하고 싶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법제화가 되면 이미 결혼이 아니더라도 괜찮은 법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보배 :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결혼이라면 제도적인 면만 따져서 하고 싶다. 퀴어로서 나는 화려한 결혼의 모양이나 주위의 인정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 제도적 혜택만 따질 것 같다.

   연 : 동성혼 법제화가 이루어지더라도 결혼에는 친척이나 가족이 관계되기 때문에 어려운 면이 있을 것 같다. 이야기 속에서도 선은 가족과 단절된 상태로 보이고, 설혜 역시 심정적으로는 단절되어 있는 느낌이다. 사실 선과 설혜가 왜 결혼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둘 사이의 관계가 그다지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보배 : 학생 때부터 이어지는 연애 서사가 나름 절절하고 끈끈하게 묘사되고, 그것이 결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다. 충분히 설득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연 : 게다가 선이 명예 남성 같다. 설혜가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아내’ ‘여성’의 위치에 놓는다.

   보배 : 그 부분이 불편했다. 퀴어 커플을 이성애 커플과 동치 하는 데에만 신경을 쓴 느낌. 퀴어 커플들이 실제로 느끼는 퀴어적인 관계의 맥락을 상상하지 못한 것 같다.

   제로 : 동의한다. ‘남편-아내’라는 이분법 구조가 그대로 제시된다.

   담 : 퀴어가 아닌 사람이 퀴어 연애를 상상해서 쓴 것 같았다. (일동 동의) 앞서 이 글의 좋은 점은 퀴어 서사를 너무 로맨틱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둘의 관계를 끈끈하게 표현한 거 자체가 너무 로맨틱하게 표현한 게 아닌가.

   보배 : 그리고 나는 치명적인 캐릭터를 견디지 못한다. (일동 격렬한 동의)

   담 : 이름 때문에 ‘선이 예쁘다(몸매가 예쁘다)’처럼 중의적으로 읽히는 것도.

   연 : ‘공주와 종년’이라는 표현처럼 전형적으로 매력적인 사람과 평범하고 돈 많은 사람의 조합도 불편했다. 개인적으로는 왜 이 작품이 표제작인지 잘 모르겠다.

   제로 : 일종의 퀴어 베이팅(queer baiting)1) 같다.

   연 : 작품 안의 내용은 선이 탑모델 선발에 자신의 가족을 소비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주면서 끝나고 있는데, 오히려 이 작품은 퀴어를 소비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문단에서 허용하는 퀴어소설 느낌.

   보배 : 이게 문예지에 실렸을 때 좋은 평이 많았다. 영리한 소설이라는 평이 많았고, 나는 그런 평을 듣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연 : 참여한 분들은 퀴어소설을 찾아 읽는 편인지 궁금하다.

   제로 : 퀴어 관련 작품을 많이 안 보는데, 거르는 게 많아서 그렇다. 특히 퀴어 아닌 사람이 퀴어를 썼다는 생각이 들면 안 읽는다. 퀴어 베이팅이 싫다. 그래서 소재만으로 보지 않고 줄거리를 먼저 본다.

   담 : 한국 것은 더 그렇다. 성소수자 콘텐츠 폭이 좁아서 ‘너희는 이런 사랑을 해서 이런 비극을 맞는 거야’ 하는 식으로만 소비된다. 그 틀을 못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슬 : 한국문학에는 한국문학 특유의 ‘자기파괴적이어야 진정한 예술’이라는 생각이 있다. 비퀴어 콘텐츠에도 파괴적인 결말이 많다. 퀴어 콘텐츠는 비극을 ‘낭만화’ 시키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연 : 소설이든 영화든 퀴어 소재를 가지고 “예술적 실험”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 비퀴어 콘텐츠로는 더이상 하지 못하는 예술적 실험을 퀴어 소재로 하는 것이다.

   제로 : 보통 ‘아닌’ 것으로 여기고 그렇게 소비를 하니까 그 시각이 작품에서 드러난다. 읽는 사람 눈에도 그게 보이고, 그런 작품이 너무 많다. 그리고 좀 행복한 결말이라고 나오는 게 결혼인 경우도 많고.

   연 : 아직 사람들이 퀴어의 결혼을 잘 상상하지 못하는 느낌도 있다. 퀴어 커플도 비퀴어 커플과 비슷하게 파괴적인 관계일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건 이 소설의 장점이지만, 한편 그렇게밖에 상상하지 못해서 그렇게 쓴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퀴어들도 퀴어의 결혼에 대해 잘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슬, 제로 : 같이 사는 건 상상이 안 된다.

   보배 : 연애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나는 내 연애 이전에도 이성애 연애의 성역할 모델을 내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해보면서 답습과 파괴를 반복하면서 퀴어적인 연애를 했다. 결혼도 지금 우리에게는 이성애 결혼 모델밖에 없어서 상상하기 어렵지만, 법제화 이후에는 다양한 모델이 생기고 다양한 실천 양식이 생기면서 적응하지 않을까.

   연 : 퀴어 판에도 결혼을 거부하는 활동가들도 있다. 결혼 자체가 문제적인 제도라고 보기도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현재 결혼이라는 제도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더 미지근하게 여겨지는 것 같기도 하다.

   ENG 카메라를 본 아이가 겁을 먹으며 설혜의 뒤로 숨는다. 선은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에게 손짓한다. 이리로 와. 아저씨가 예쁘게 찍어주실 거야. 아이가 쭈뼛거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설혜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한다. 잊지 마, 이것이 내가 원한 유토피아였다는 걸. (241쪽)

   연 : 마지막 질문이다. 이 글은 유토피아를 언급하며 끝난다. 앞선 논의를 생각해보면 동성혼 법제화가 유토피아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각자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유토피아의 형식이 있는지?

   이슬 : 사람들이 나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정체성을 말하면 그냥 ‘아, 그래’ ‘그렇구나’ 하고 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의 마지막에 가정사를 통해 선의 이야기가 완성이 된다고 말하는데, 그런 거 없이도 남의 불행에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그런 것.

   보배 : 대학 때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만난 철학과 친구가 ‘무생물 같이 이름표 없는 사회’를 꿈꿨다. 모든 구분이 무화되는 사회. 그렇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였고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싸움이 없는 세계’, 서로에게 무해한 존재로 평온하게 살아가는 세계다.

   담 : 비슷하다. 평온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지금 너무 불온전하니까. ‘이게 왜 논란이 되지?’ 같은 반응이 당연한 사회.

   제로 : 나는 혐오도 차별도 없는 세상을 꿈꾼다. 유토피아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좋은 허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혐오도 차별도 없는 온건한 사회 자체를 꿈꾼다.




   돌아오는 길의 전주역에는 풍등마다 불이 밝혀 있었다. 전통적인 것도 현대적인 것도 아닌 등이 막연히 거기에 있었고 막연히 예뻤다. 기차 안에서 나는 나를 처음 퀴어로 정체화한 날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퀴어였고, 살아가면서 매 순간 퀴어임을 재현한다. 그러므로 퀴어로 살아간다는 것은 첫번째 바깥에 존재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연애에도 결혼에도 아직 레퍼런스가 없는 삶, 그건 불안하고 긴장되는 것인 동시에 자유롭고 무한한 일이기도 했다.

무지개책갈피, 연

"한국에도 퀴어문학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작된 한국퀴어문학종합플랫폼. 퀴어문학이라는 장르조차 생소한 한국에서 퀴어를 다루는 소설을 모으고 읽고 씁니다. 읽고 쓰는 당사자 작가와 독자를 응원합니다. 그리하여 대답하려 합니다.
"네. 한국에도 퀴어문학은 있습니다.”

2018/03/27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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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소비자를 유인하고 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성소수자 관계나 등장인물이 암시되는 수단을 설명하는데 쓰이며, 이러한 설정은 등장인물의 행동을 수정하거나(이성애 관계로 바꿔버림), 장난(때때로 반복되는 농담이나 비유)으로 끝내버리거나, 등장인물의 행동을 수정하지 않고 (인터뷰, 패널 등에서) 가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부인된다.(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