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랫집 이웃에게 딸기를 선물했습니다. 같은 건물에 이사를 왔다며 직접 만든 케이크를 선물해주던 이웃에게요. 고마움을 전하기 위하여 무엇을 주면 좋을까 고민 끝에, 딸기를 주기로 했답니다. 상처가 나지 않은 딸기들을 골라내어 꽁다리를 따고 깨끗이 씻고 예쁜 그릇에 담아 가져다주었습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던 이웃에게 딸기는 퍽 흔한 과일이지만, 그릇에 정갈하게 담겨 있는 딸기는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편지를 쓰는 마음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고민을 하고 그 말을 다듬고 정리하여 예쁜 편지지에 써내려가는 마음, 편지에는 이런 마음이 담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는 아주 평범하고 단순한 말일지라도, 편지지 위에 한 자 한 자 눌러쓴 글자는 괜스레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프로젝트 팀 ‘월간비둘기’는 꽁다리를 딴 딸기와 같은, 편지의 울림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우린 쉽게 타인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이메일을 쓰고요. 참 편리하고 효율적입니다. 심지어 요즘 메시지를 보내면, 사라지는 숫자로 상대가 나의 메시지를 읽었는지 확인할 수도 있지요. 이 빠르고 정확한 소통의 세상 속에서 편지는 홀로 느리고 복잡하게 이야기를 전합니다. 월간비둘기는 편지의 이런 고집스러운 모습이 좋습니다.

    “세상아, 빨리 흘러가라! 나는 빠르면 사흘, 늦으면 열흘, 이렇게 천천히 이야기를 전할 테니!”


    ‘일반우편 프로젝트’는 월간비둘기의 2018년도 상반기 손 편지 정기구독 프로젝트입니다. 본 프로젝트는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간 진행됩니다. 매달 새로운 필자가 스무 명의 구독자에게 직접 손 글씨로 작성한 편지를 보내요. 마치 눈동자처럼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손 글씨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린 필자가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통해 필자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거예요. 편지지 위 문장의 흔들림에서, 펜이 지나간 속도에서 필자의 감정을 느낍니다. 어느 부분에서 필자는 잠시 망설였는지, 어떤 단어에서 잠시 쉬어갔는지 말입니다.

    3개월 동안 각자 한 달씩 맡아 일반우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세 명의 필자는 모두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입니다. 노랫말로, 에세이로, 시로, 소설로 자신을 표현하는 이들이 편지를 적습니다. 편지는 “느리고 복잡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세상에 느리고 복잡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추운 겨울, 꽁꽁 얼어버려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를 녹이는 일처럼 느리고 복잡한 일을 떠올려봅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어 내 발걸음도 옮기다보면 느리고 복잡한 것은 쉬이 지나쳐버리기에, 우린 글을 통해서라도 “느리고 복잡한” 것을 만나보려 해요. 그리고 그 글은 느리고 복잡하게 당신에게 도착할 겁니다.

    일반우편 프로젝트의 편지에는 답장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한 번쯤 써보았을 문학이 있다면, 편지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도 가족도 아닌,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은 당신이 일반우편 프로젝트의 편지를 읽은 후, 펜을 들어보길 바랍니다. 그렇게 필자와 독자의 작은 소통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이 역시도 느리고 복잡하겠지만요.


    편지를 받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몇 글자 쓰여 있지 않은 작은 종이를 꼭 쥐고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렸습니다. 아직도 그 편지는 제 일상 속 가장 자주 눈길이 닿는 곳에 놓여 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면, 몸이 아플 때면 편지를 들여다봅니다. 이젠 편지 앞에 서서 큰 숨을 마시고 쉬어내며 편안함을 얻습니다. 월간비둘기는 일반우편 프로젝트를 통해 편지를 날려 보내며, 우리가 손 편지를 사랑하게 만든 그 옛날의 편지를 다시 꺼내봅니다. 그리고 이제야 편지에게 늦은 인사를 합니다. 우리에게 그 저릿한 마음을 전해주어서 고맙다고요.

    사람이 쓴 편지를 마지막으로 받아본 것이 언제인가요? 어느새 우편함에는 편지 대신 광고지와 고지서가 매일 세대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끔은 우편함이 쓰레기통으로 가는 환승역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많은 종이들은 결국 우편함에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도 하니까요. 월간비둘기는 당신의 우편함에 사람이 쓴 편지가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301호 세대주가 아닌 당신에게요.

    일반우편 프로젝트, 시작합니다.


월간비둘기

월간비둘기는 손 편지 정기구독 프로젝트입니다. 정찬처럼 자리를 잡고 먹어야 하는 긴 글 덩어리 말고, 빵 쪼가리처럼 뜯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편지 한 장을 써서 띄웁니다. 그리고 우편함 속 전기세 고지서, 백화점 전단지, 예비군 소집 통지서, 슈퍼마켓 광고지 사이에서 우연히 사람이 쓴 편지를 발견했을 때의 작은 희열을 아낍니다.

2018/03/27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