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에 이어서_



   3. 베짱이로 살아간다는 것



   백은선 : 저는 책방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보통 책방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오픈부터 마감하는 시간까지 그 장소를 관리해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인건비 때문에 사람을 고용하기에는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그 관리 역할을 하는 대신에 작업실로 사용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어요.

   장은정 : 그런데 손님을 맞이하는 과정이 작업에 방해되지 않을까요?

   백은선 : 예전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업을 하기도 했고 그 리듬이 몸에 잘 배어 있어서 저는 괜찮아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체인점 형태의 카페와 비교한다면 책방이 훨씬 한적할 것 같고요.

   장은정 : ‘책방 만일’에서 작가들이 일일 책방지기를 맡아 자리를 지키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백은선 : 아, 그럼 책방 만일에 연락해봐야겠어요. 제가 사는 시흥동 근처에서 작업실을 찾는 건 무리인 것 같아요. 합정이나 망원까지는 나와야 겨우 제안이라도 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곽시원 : 저는 극단 연습실의 사무실을 작업실로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집에서 세 정거장 정도의 거리라서 가깝고 좋아요. 주변에 ‘자기만의 방’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몇 다리를 건너서 소개를 받았어요. 제가 그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가 대관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서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았어요.

   장은정 : 어라? 우리 모두 방을 구할 것 같은데요?

   임현 : 아, 저만 아직 인가요.(웃음)

   백은선 : 전 책방에 이야기해보고 그마저도 안 되면, 숙박을 제공받으면서 가정교사로 취직하는 방법 외에는 자기만의 방을 구할 수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곽시원 : 이런 건 어때요? 각자에게 주어진 10만원을 모아서 총 40만원으로 방을 하나 구하는 건? 우리 네 명이 거기서 문학 강좌를 열어서 강의료를 벌고, 수업이 없는 날엔 공동 작업실로 쓰는 거죠.

   최현진 : 그런데 40만원은 월세비로도 빠듯하잖아요. 수업을 하려면 제법 강의실처럼 꾸며야 할 텐데 그 비용뿐 아니라, 각자 작업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여러 과정과 관리비까지 생각하면 그것도 역시 불가능인 것 같아요.

   곽시원 : 준비 과정과 관리에 드는 비용까지 포함해야 한다면 만만치 않죠. 만약 내가 원하는 작업실을 돈 생각하지 않고 꾸민다고 했을 때, 돈이 얼마나 들까요? 내가 꿈꾸는 작업실에 놓고 싶은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아서 비교해보면 어때요?

   백은선 : 재밌겠는데요? 우리 이거 한번 코너로 짜서 해볼까요?(웃음)

   임현 : 각자의 10만원을 모아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는 건 좋은 시도 같아요.

   장은정 : 40만원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우선 하나의 공간을 잡아두고 문학 강좌 수업료로 다음 월세를 충당하면서 공동 작업실을 사용하자는 아이디어가 하나 나왔는데요. 또 뭐가 있을까요?

   곽시원 : 우리 그냥 40만원으로 도박을 할까요? 비트코인이나 경마장을 가보는 건 어때요? 사실 이게 훨씬 현실적일 것 같은데.(웃음)

   백은선 : 직장인들이 로또를 사는 마음과 다르지 않네요. 현실적으로 모두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드니까 도박으로 빠지는 거죠.(웃음)

   임현 : 큰 위험이 있어요. 혹시라도 이 40만원으로 도박을 해서 큰돈을 벌면 우리 모두 글을 그만 쓰지 않을까요?

   곽시원 : 그게 왜 위험이죠? 진짜 해피엔딩인데.(웃음)

   백은선 : 제가 만약 로또가 되면 출판사를 차려서 작가들을 월급제로 고용할 거예요. 우리 출판사 잡지에서만 연재하고, 책을 내는 조건으로 한 달에 200만원씩 주면서.

   장은정 : 평론가도 계약해주면 좋겠네요.(웃음)

   임현 : 문학 강좌를 연다는 아이디어도 좋긴 해요. 하지만 어떤 강의를 하죠? 작은 동네 책방에서 강연을 연다고 한들 기존의 강연들과 뭐가 다를까요?

   장은정 : 그런데 기존의 창작 강의들은 전문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 때문에 수강생들이 작가 지망생인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작가지망생들이 사회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신들의 사비를 들여 수강을 하는 돈으로 우리가 작업실을 구한다고 한들 그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개미와 베짱이’ 비유를 가져온다면, 베짱이들을 위한 베짱이 강의가 아니라 개미에게 의미 있는 강의여야 할 것 같아요.

   임현 : ‘자기만의 방’ 팀만의 낭독회를 한번 해볼까요? 이 낭독회를 ‘아프리카TV’로 열어서 별풍선을 받죠.

   (일동 웃음)

   곽시원 : 저 예전에 BJ(아프리카TV에서 방송하는 사람들을 일컬음)를 전문적으로 교육시키는 일을 해봤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아요. 별풍선 유도를 위해 투자하는 돈이 더 드는 경우가 많아요.

   백은선 : 설령 별풍선이 터져서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우리의 영원한 흑역사로 남을 거예요. 저는 못할 것 같아요.(웃음) ‘찾아가는 낭독회’는 어때요? 사전 신청을 하고 선입금한 사람에 한해서 진행하면 장소를 빌릴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임현 : 누가 신청할까요? 아무도 안할 것 같은데? 근데 우리 점점…… 사업 기획 회의 같은데요.(웃음)

   최현진 : 레오 리오니 작가가 쓴 『프레드릭』이라는 그림책이 생각나요. 베짱이가 빛과 색깔, 이야기를 모아서 개미가 우울해할 때 들려줘요. 베짱이가 개미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보여주죠. 우리 사회에서도 이 이야기가 공감이 될까요?

   곽시원 : 베짱이는 어디에서 일하고, 어디에서 잠을 자야 할까요?

   최현진 : 풀잎?(웃음)

   곽시원 : 풀잎 월세가 너무 비싸요.(웃음)

   최현진 : 그런데 모두가 ‘부지런한 개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폄하하는 의미로도 개미가 쓰이지 않나요? 주식에서 개미라는 단어를 쓸 때처럼.

   백은선 : 직장인 친구들이 “너는 그래도 네 꿈을 이뤘잖아” 하는 말을 자주해요. 사실 직장을 열심히 다니는 것도 꿈을 이뤄가는 방식 중 하나일 텐데, 예술을 하는 것만이 ‘꿈’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삶의 방식을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타협하는 것’과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꿈을 이루는 것’으로 이분법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개미와 베짱이 모두가 소외되는 것 같아요.

   임현 : 기본적인 경제적 권리를 주장하는 베짱이들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베짱이가 비용과 즐거움 모두를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즐거움으로 충분한데, 왜 비용까지 가지려고 해?’라는 생각으로 묻는 건지.

   백은선 : 근데 우리, 즐겁지도 않잖아. 다들 즐거워요?

   (일동 폭소)

   장은정 : 결국 우리 프로젝트는 ‘더 부지런한 개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압도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베짱이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일 수밖에 없네요.


   4. 무엇을 더 해야 할까?



   장은정 : 10만원으로 작업실 구하는 것이 어렵다보니 다른 방안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예술인이 겪고 있는 기본적 권리의 문제를 담론의 차원이 아니라 경험의 차원에서 다룰 때, 여러 디테일들이 더욱 생생히 드러나리라 생각했어요. 가령 예술인의 경제적 권리라고 말하면 추상적인 개념 같지만, 부동산의 문을 밀고 들어가는 것 자체의, 큰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대해서라면 이 문제가 더 생생하게 전달되리라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이것으로는 어쩐지 불충분하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요. 방을 열심히 구하고 있고, 그 과정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지만, 우리 뭘 놓치고 있는 걸까요?

   임현 : 《문학3》에서 현재 ‘예술-()-기본소득’ 키워드로 진행되고 있는 글들 읽어보셨어요? 저희 프로젝트와 공유하고 있는 질문들이 많더라고요.

   장은정 : 저는 서영인님의 「쓸모없이, 쓸데없이, 존재할 권리」1)의 관점에 공감이 갔어요. 유예님의 「청년 예술가의 시선으로 기본소득 바라보기」 2)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모금 받아 마련한 재원으로 시작한 기본소득 소규모 프로젝트를 따라 읽을 땐 조금 벅차기도 했어요. 이선옥님의 「구체적으로 답을 준비할 것」3)이라는 글에서는 이야기를 더 나눠보고픈 지점을 발견하기도 했구요.

   곽시원 : 이선옥님의 글은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옳다’라고 말하는 입장인데요, 당장 배가 고픈 사람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 같아서 제게는 이상적인 대안으로 보였던 것 같아요.

   임현 : 만일 누군가가 모두가 소비할 수 없고, 아무도 관람하지 않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인 예술작품이 있다고 가정해본다면, 이 작품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당대에서는 모두에게 외면당하더라도 시간이 흘러서 후대에 의미 있는 작품이 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이런 예술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남는데, 이 글의 입장은 예술가는 무조건 그 시대에 적합한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거죠. 이 관점에서는 문화가 아니라 문화산업만을 전제하고 있어요.

   백은선 : 저는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이선옥님의 글을 읽었을 때, ‘사회에서 너의 쓸모가 뭐야?’ 하고 묻는 질문처럼 느껴졌어요. “너보다 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있는데 단지 네가 예술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왜 너를 지원해 줘야 해?” 하는 질문이었고, “아, 그렇네요……” 하고 조금 자책하는 마음으로 답하게 되더라고요.

   장은정 : 하지만 최고은 작가의 경우, 극빈층과 예술인이 별개가 아님을 보여주지 않나요? 그런데도 언제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처럼 이해되는 것 같아요.

   곽시원 : 〈배고픈 예술가가 없는 나라, 프랑스〉 4) 기사에 달린 댓글들 보셨어요? “자영업자, 체육인, 인문학자 등등 돈 안 되어서 힘든 직종 많은데 왜 예술가만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거지?”라는 댓글이 3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더라고요. 왜 이렇게까지 거부감을 가지는 걸까요?

   임현 : 예술가 복지수혜를 무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에 불공정하다고 보는 것일까요?

   곽시원 : 시민들이 예술을 통해 자신들이 무언가 받은 것이 전혀 없다고 보는 게 거부감의 원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임현 :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컬링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사실 그들이 컬링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우리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어떤 생산물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죠. 엘리트 중심의 국가 스포츠가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향유하는 생활 스포츠의 영역으로 환원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가치를 인정해줘요. 하지만 예술의 경우, 시민들의 생활로 향유되지 않는다면 무노동자로 취급하는 것 같아요.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았을 때에만 일시적으로 인정되고요. 스포츠나 예술 모두 사실은 전문성과 취미 영역 모두 공존해야 하는데 각 영역에 대한 사람들의 기존 태도가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장은정 : 우리가 연재 1화에서부터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느낌이 드는데요. 예술가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주는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가능해질까요? 우리는 어떤 점에 포인트를 두고서 ‘자기만의 방’ 프로젝트를 가지고 가야 할까요?

   곽시원 : 어째서 예술가만 특별대우를 받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방법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장은정 : 예술가의 복지 정책을 불공정한 특별대우라고 보는 입장을 가진 분들께 일일이 쪽지를 보내서 아까 아이디어로 나온 ‘찾아가는 낭독회’를 제안하는 건가요?(웃음)

   백은선 : 한 번의 경험으로 예술에 대한 생각이 변화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차라리 예술의 가치를 이미 존중해주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장은정 : 얼마 전에 본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 <공동정범>을 봤는데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작품인데, 연대자들이자 생존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중에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경험들에 대한 공감보다는 적대하는 질문들이 있더라고요. 질문을 왜 이렇게 구성했느냐는 의문에 김일란 감독이 작품 내에 이들의 경험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입해서 대화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는 대답하는 걸 들었어요. 우리가 사회 속에서 ‘자기만의 방’을 구하려는 노력은 결국 예술에 대해 저희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고정된 생각들이 조금은 여지를 가지는 임의의 것으로 변화할 수 있게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임현 : 지금 《문학3》에서 진행하고 있는 ‘예술-()-기본소득’ 키워드 필자들을 우리가 초대해서 함께 대화해보는 건 어때요?

   곽시원 : 와, 저도 금방 그 생각했어요.

   임현 : 그런데 우리가 ‘자기만의 방’이라는 하나의 프로젝트 하에 모인 상황에서, 우리와 의견이 다른 분들을 외부에서 초대한다고 한들 이미 모두에게 발언권이 동등하게 주어진 공론장을 만들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장은정 : 그럼 이건 어때요? ‘자기만의 방’ 그룹에 외부인으로서 다른 의견을 가진 분을 초대하기보다는, 애초에 ‘예술-()-기본소득’ 키워드를 기획한 《문학3》과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면 중심과 주변의 구도가 생기지 않고 만날 수 있지 않을 것 같아요. 그 자리에 《비유》와 《문학3》의 독자분들도 함께 와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고요. 여럿이서 모여서 이야기 하다보면 저희가 같은 지점에서 맴도는 부분을 돌파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일동 : 찬성합니다!

   장은정 : 그럼 《문학3》에 제안서를 넣어보겠습니다!

   

※ 《문학3》에서 《비유》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주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비유×문학3〉의 콜라보를 기대해주세요! :)



작가들

곽시원(극작가), 백은선(시인), 임현(소설가), 최현진(동화작가)

2018/04/24
5호

1
서영인, 「쓸모없이, 쓸데없이, 존재할 권리」, 《문학3》, 2018년 1월 30일자.
2
유예, 「청년 예술가의 시선으로 기본소득 바라보기」, 《문학3》, 2018년 3월 15일자.
3
이선옥, 「구체적으로 답을 준비할 것」, 《문학3》, 2018년 2월 28일자.
4
<‘배고픈 예술가’가 없는 나라, 프랑스>, 경향신문, 2017년 1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