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잊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여기서는 영영(永永) 무명(無名)인 그녀
  영영.1)


정윤
우리가 4화부터 미선씨의 동생 현숙2) 과 저의 친구 문희3) 이름에 각주를 달아 출생일과 사망일을 적었죠. ‘두 개의 목소리’를 읽는 독자를 위해 현숙과 문희가 어떤 사람인지 간략한 설명도 필요했어요.

미선
두 사람에 대한 일종의 ‘연대기’를 저희가 짧게 써본 것인데요. 처음엔 ‘뭘 적어야 하지? 꼭 써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사람의 연대기를 써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어떤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현숙과 문희 언니는 무명인이죠. 무명인을 이야기할 때 보통 그의 연대기를 일일이 밝히진 않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현숙을 소개해야 할지 더 고민했죠.

정윤
저 역시 ‘내가 문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었나?’ ‘문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설명하지?’ 온종일 고민했어요. 분명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문희에 대한 정보를 찾아봐야 했어요.

미선
그 사람의 행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실을 확인하여 적어야 했기에, 짧은 글이지만 쉽지 않았죠.

정윤
내가 알고 있는,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정말로 사실인지, 혹여 내가 잘못 알고 설명하면 나의 친구와 그 가족에게 누가 될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희를 앗아간 테러 사건 기사를 힘들게 다시 찾아봤어요. 뉴스 기사와 제가 정확히 알고 있는 사실만을 연결하여 연대기를 세 줄 적었어요. 그리고 든 생각은, ‘단 세 줄로 어떻게 이 사람을 설명할 수 있을까?’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요.

미선
정윤씨와 만나 힘겹게 두 줄을 작성하고 집에 돌아갔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쓰고 나니 현숙이 더 분명하게 보이는 거 같았어요. 현숙과 어떤 거리가 생기고요. 현숙의 죽음을 애도하는 작업을 함께 하자고 정윤씨에게 처음 제안했을 때 함께 나눴던 대화가 기억나요. 정윤씨가 “저는 현숙을 만난 적도 없고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현숙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말하자 제가 그랬죠. “저도 현숙을 잘 몰라요” 제 동생으로서 저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할 수는 있지만, 현숙이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했는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짐작만 해보는 거죠. 이런 걸 좋아했지, 나와 이런 이야기들을 했었지……

정윤
문희의 연대기를 적고 난 후 기분이 이상했어요. 내가 이 사람의 생을 단정짓는 것 같아서요.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스스로에게 질문했죠.

미선
그렇죠…… “미선의 동생 안현숙은 문구 디자이너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현숙의 연대기가 과거형일 수밖에 없는 사실을 확인하고 마음이 아주 아팠어요. 무엇을 꿈꾸었던 “스스로 생을 마쳤다”라는 것이 제가 적을 수 있는 분명한 객관적인 사실이었어요. 그 사실을 시작으로 저는 다시 현숙을 알게 되었고요. 제 안에 새로운 기억이 생겼어요. 현숙이 왜 그랬는지 더는 이유를 찾지 않고요. 알 수 없는 기분과 무력감 가득했을 그녀의 현실이 현숙을 덮쳤다고 제 안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현숙의 삶도 선택도 존중하고요.

정윤
문희와 현숙의 연대기가 현재 진행형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마쳤다”가 아닌 “현재는 ……로 활동하고 있다”로요. 문희가 지금 살아있다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봤어요. 생을 마치기 전 제가 알고 있던 문희의 모습처럼, 현재에도 부지런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어딘가에서 나에게 또 안부를 물어오겠지 하는 상상을요. “언니 뭐해? 보고 싶어!” 이렇게요.


대화


미선과 정윤은 죽음을 주제로 3년 동안 정기적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를 기록하여 책 형태로 만들고 작년 겨울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설치하였다. 전시장에 관람객 참여 공간인 ‘부고 쓰기’를 마련하여 점점 밖으로 나아가는 대화를 경험했다. ‘두 개의 목소리’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미선과 정윤은 다시 두 사람의 대화로 돌아왔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각자의 주머니에 주워 담았던 돌 중 다시 꺼내어 보고 싶은 돌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졌다. 각자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보기 위해 목소리가 아닌 글의 형태로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2019. 4. 16. 정윤

   어느덧 ‘두 개의 목소리’ 최종화 원고 마감이네요. 작년 무더웠던 여름, 미선씨와 함께 《비유》 지원서 작성하면서 가슴이 벅차기도 하고 많이 설레기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우리가 그동안 무슨 일을 한 걸까요?

   2019. 4. 18. 미선

   정말, 우리가 그동안 무슨 일을 한 건가요?^_^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한 편의 긴 책을 읽은 것 같기도 하고요. 아쉽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래도 분명한 것은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에요. 그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고요.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나왔고요. 지나가다 눈에 보이는 돌을 발견하면 멈춰 서기도 했죠. 정말로 돌들이 주머니에, 손안에 담겨 있어서 이건 꿈이 아니고 진짜구나! 합니다. 돌이켜보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제가 묻기보다 정윤씨가 묻는 때가 많았어요. 누구도 물어주지 않았던 질문이요. 나도 모르게 주룩주룩 이야기 흘리게 되는…… 현숙의 이야기를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어요. 현숙 이야기 너머에서 동행했던 정윤씨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같이 들여다본 돌들도 있고 소리도 있지만 저는 정윤씨가 어떤 돌을 담았을까 궁금해집니다.
   추신. 주룩주룩 끝도 없이 흐르는 이야기를 가만히 내버려둬 주셔서 감사했어요. 어디서도 하지 않을 이야기를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ㅎ 무슨 마법을 쓰셨는지>.< 이야기에 이름 붙이지 않고요. 억지로 담게 하지도 않고요. 다시 삼키지도 않게요.

   2019. 4. 21. 정윤

   글쎄요. 저는 어떤 돌을 담았을까요…… 미선과 정윤, 우리 둘의 대화에는 미선씨의 동생 현숙, 저의 친구 문희의 이야기가 있었어요. 두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각자 지니고 있던 기억, 아프지만 아름답기도 한 기억들을 불러왔죠. 제가 더 많이 묻고 미선씨가 대답을 더 하든, 현숙에 대한 이야기가 문희의 이야기보다 비중이 많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 우리 둘의 대화이니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미선씨와 저의 이야기를 서로 나눈 거죠.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 그 기억에 대한 느낌과 생각, 질문을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건, 저에게는 행운이었어요. 미선씨라는 사람을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 말이에요. 미선씨가 있어서 문희의 죽음에 대한 저의 생각과 질문을 스스럼없이 내놓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만나본 적도 없는 현숙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타인의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저 자신이 죽음을 바라보고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둘의 대화이고 우리가 아는 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비유》를 통해 우리가 만나본 적 없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공유함으로써 우리의 글을 읽은 그 누군가는 자신의 죽음과 자신이 아는 이의 죽음, 모르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또 알게 된 사실 하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항상 어둡고 무겁고 슬프지만 않다는 것. 삶 자체가 그렇듯이요……

   2019. 4. 22. 미선

   저도 정윤씨의 말에 동감하고 있어요. 우리 둘의 대화죠. 정윤씨의 질문과 경청도 대화의 한 모습이고 혼자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요. 그럼에도 ‘내가 하소연을 한 것은 아닌가’ ‘내 고통을 너무 늘어놓은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4화, 5화를 지나가면서는 제가 꺼낸 말들을 거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죠. 부끄러운 마음이요. 비난받을까 두렵기도 했어요.
   저에게 이 대화가 쉽지만은 않았어요. 대면하게 된 마음들이 있었고 그게 힘들었죠. 그리고 ‘나는 현숙을, 정윤을, 문희를, 나를 보고 있던 게 맞는가’ 이런 질문이 들었어요.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애도하려고 했을까’ 생각해봤어요. 정윤씨와 나는 (그녀들이 잊히지 않게) 왜 기념비를 세우려고 애를 썼던가. 아마도 ‘잊히지 않게’가 아니라 ‘잊을 수 없는’이었던 거 같아요. 기념비를 세우지 않고는 망각할 수 없는 것이요.
   추신. 그녀에게 찾던 것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던 거 같아요. “미안해……”라는 말이요. “밥 잘 먹고 잘 자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있다 갈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가득 채워서 갈게. 걱정하지 말고 오케?”라는 말이요.

   2019. 4. 23. 정윤

   미선씨가 저에게 하소연한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는 말을 오히려 거두셔도 될 것 같아요. 자신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타인에게 꾸밈없이 건네고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을 거듭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미선씨가 그런 일을 했고 저는 그 대화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매 순간 감동했고 감사했어요.

   2019. 4. 27. 미선

   네. 정윤씨 말을 듣고 보니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애도를 한 것 같네요. 제가 느끼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은 자살 생존자(자살 유가족)로서 제가 갖는 고통도 있었던 거 같아요.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고 싶으면서도 한편에는 꺼낸 말을 주워 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걸 봤어요. 두 가지의 충돌이요. 하지만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은 테러 사고로 인한 죽음도 자살로 인한 죽음도 결코 개인의 문제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저희가 사적인 대화에서 멈추지 않고 공적인 자리로 이 주제를 드러내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죠. 그래서 용기를 낸 거고요, 정윤씨도 그래서 문희 언니에 대한 대화를 제안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많은 사람이 좀더 공적인 자리로 사적인 고통을 드러내고 함께 애도해 나갔으면 해요.

   2019. 4. 28. 정윤

   ‘두 개의 목소리’ 프로젝트를 통해 저희가 그런 시도를 한 것 같아요. 누구라도 용기를 내고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요. 미선씨의 동생 현숙의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에서 미선씨와 미선씨의 가족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그 고통을 제가 제대로 헤아릴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미선씨의 동생에 대한 기억을 함께 나누고 미선씨가 동생의 죽음에서 느끼는 것을 대화로 알아가면서 미선씨의 자리를 상상해보는 것이 애도 작업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애씀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지난해 마련한 전시회에서 우리의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현숙과 문희의 자리에 자신을 대입시켜보고 이야기를 건넨 것처럼요.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애도의 출발점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2019. 4. 29. 미선

   저 또한 현숙과 문희 언니의 당시 심정이나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정윤씨의 공포와 슬픔, 죄책감도 그렇고요. 단지 내 고통에 빗대어 짐작해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부끄러움에서 조금씩 벗어납니다. 우리 둘의 대화 과정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고요. 결국 우리를 보게 해주었네요. 우리를 보는 일이 그녀들을 애도하는 일이었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그 과정 앞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남았어요. 그게 참 좋아요. 기쁘고요. 그걸 지속했다는 게 위로이고 힘이고요. 제가 만난 애도이고요.
   이 대화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몰랐을 거예요. 정윤씨와 대화하면서 보게 된 것이 많아요. 정윤씨가 비춰준 말들이 저의 시선을 투명하게 만들어주었어요. 아마 다신 없을 행운인지도 모르겠어요.
   추신. 저는 누군가의 고통과 심정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는 것에 좀더 솔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좀더 솔직하게 되었고요.


정윤은 미선에게 보낸 마지막 이메일에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정윤
이 사진 기억해요?

미선
기억나죠. 좋아서 가끔 열어보는 사진이에요. 잘 나왔어요.

정윤
작년 겨울, 우리가 기획한 전시회 철수하던 날에 찍은 사진이죠?

미선
네, 철수하는 날 종일 우리를 위해서 보내자고 했고 서로 사진도 많이 찍었어요. 우리를 찍어준 사람도 없었고요.(웃음)

정윤
저 사진은 상자 위에 핸드폰 놓고 찍었죠. 사물이 찍어줬네요.(웃음)

미선
특히 저 자리에서 찍고 싶다고 했어요.

정윤
저기가 ‘부고 쓰기’ 자리죠.

미선
네, 저 자리, 저희 둘 다 좋아했어요. 따뜻한 방으로 변해 있던…… 전시 마칠 때 즈음에요.

정윤
관람객들이 앉아서 ‘부고 쓰기’ 하던 자리를 우리가 마지막으로 앉아보았죠.

미선
네, 좋아 보였어요. 아름답기도 했고요. 저 자리에서 책 읽던 관람객의 모습, 무언가 적어내려가던 모습이요. 홀로.

정윤
관람객들을 기억하면서 그 자리에 미선씨와 앉아보고 싶었어요. 관람객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면서요.

미선
맞아요. 밖에서 봤을 때랑 앉았을 때랑 다르더라고요.

정윤
정말 아늑했어요.

미선
네, 다른 공간에 잠깐 있던 것처럼요.

정윤
내가 아는 사람의 방에 들어간 느낌이랄까요.

미선
사람들 글이 옆에 있어서 다시 천천히 읽어보게 되고요. 다시 읽어도 좋았어요.

정윤
그리고, 우리 대화를 엮은 책을 읽어보았죠.

미선
네, 그 대화 책으로 작업한 작품들이 가득한 곳에서 다시 그 책을 읽으니 기분이……

정윤
전시 기간 동안 관람객들의 손길이 닿은 대화 책을 다시 읽으니 기분이 새로웠어요.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의 대화를 엿듣는 느낌처럼요.

미선
네, 맞아요. 누구의 것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 지날수록 책이, 우리 대화가 더 소중해지네요.

정윤
저 대화 책은 현숙을 애도하는 작업 시작점부터 나눈 대화를 엮은 건데, 그전에 나눈 대화도 책으로 만들어야죠?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요.

미선
아…… 시간과 건강을! 사수해서 만들어야죠.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무슨 작업을 꺼내게 될지. 마지막 사진을 보며 다시 시작을 기대하네요.

정윤
네, 또 시작하겠죠? 우리의 대화를!

미선
그럼요.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죠.


두 개의 목소리

안미선은 그림을 그리고, 안정윤은 영상을 만듭니다. 미선과 정윤은 죽음에 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기록합니다. 마치 산책길을 거니는 사람들처럼, 예쁜 돌을 주우면 보여주고 낯선 소리를 들으면 멈춰 서서 같이 귀 기울였다가 다시 이야기합니다.

2019/05/28
18호

1
에드거 앨런 포우, 「까마귀」, 『꿈속의 꿈』, 아티초크, 2013, 35쪽.
2
미선의 동생 안현숙은 문구 디자이너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장난감 수집을 좋아했다. 특히 로봇을 좋아했고 로봇 전개도를 만들어 조립하기를 즐겼다. 1981년 10월 28일 태어나 2007년 10월 15일 스스로 생을 마쳤다.
3
정윤의 친구이자 옛 직장 동료인 강문희는 전자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결혼 후 남편의 전근으로 여러 나라에 체류하면서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케냐에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컴퓨터공학 박사 과정을 준비하던 중 무장테러리스트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1975년 5월 14일 태어나 2013년 9월 21일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