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존재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그것을 처음 고민한 것은 퀴어문학을 비판적으로 읽으면서부터다. 나를 찾기 위해 읽은 장소에 나는 없었다. 퀴어 당사자의 거울이 되어주기에는 불투명하고 일그러진 경우가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우리에게는 좋은 작품이 많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고민한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말할 수 있는가.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 올바르게 말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읽는 퀴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고민은 더 깊어졌다. 수도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비수도권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나의 무지는 일상 곳곳에 드러난다. 누군가의 사투리를 귀엽다 말할 때. 비수도권을 ‘아래 지방’이라 칭할 때. 서울에서 개최되는 또다른 퀴어 행사에 기시감을 느끼지 못할 때. 바꾸어 말하자. 나의 권력이 드러난다. 무지는 권력과 친하다.
    김혜진의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는 딸과 동성 연인을 집에 들이는 중년 여성 ‘나’의 이야기다. ‘나’는 요양원에서 늙은 노인 ‘젠’을 돌보는 일을 한다. 젠과 딸네의 존재는 화자를 고민케 한다. 늙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째서 딸은 동성과 사귀는가. 나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화자의 관찰은 집요하고 솔직하다.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면, 이 작품에 공감한 독자들이 많은 모양이다.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바라보는 쪽이 아니라 바라보아지는 쪽이므로.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우리’의 시각에서 맞응시하고 싶었다. 이 소설이 다른 존재를 말하는 방식이 어떤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창원 편의 부제는 바로 ‘가장 솔직한 독서’다.




   네번째 읽는 퀴어

   장소 : 경남 창원 마산여성회 마실&상상
   일자 : 2018년 3월 10일(토)
   참여자 : 보배(진행), 현민(이상 무지개책갈피 활동가), 다솜(학생·충청), 동후(학생·경상), 은지(학생·충청)

   딸애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가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뭔가를 바로잡아야 할 시기를 바보처럼 그냥 흘려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 거라곤 연단이 올려다 보이는 이곳에 앉아 남들이 엿들을지도 모를 말들을 가만히 손으로만 매만지면서 침묵을 키운 것뿐이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 할 수 없는 말, 해서는 안 되는 말. 이제 나는 어떤 말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 (54쪽)


   보배 : 이 책을 읽기 전, 두 지인이 상반된 감상을 들려주었다. 한 사람은 자신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내밀하게 엿본 것 같아 감동적이었다고 말했고, 다른 한 사람은 레즈비언 커플과 노인에 대한 시혜적인 시각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우선 여러분의 감상을 듣고 싶다.

   현민 : 그동안 읽어온 작품들과는 달리 퀴어 주체가 아닌 사람이 서술자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퀴어 베이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 요즘, 비퀴어 작가가 퀴어문학을 창작하며 생기는 폐해를 다소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작가님이 커밍아웃하지 않으셔서 알 수 없지만 비퀴어 작가님이라고 가정한다면, 소설가로서 적절한 전략을 쓰셨다.

   동후 : 읽으면서 눈물이 나는 부분들이 있었다. 나와 어머니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마음이 아픈 부분은 주인공이 딸에 대한 퀴어포빅한 분노감을 그대로 드러냈을 때이다. ‘그애를 죽이고 싶다’ ‘때리고 싶을 만큼 밉다’는 말을 보고 슬펐다. 정말 내 어머니가 이런 생각을 하실까봐.

   보배 : 동후님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셨는지.

   동후 : 부모님에겐 안 했고 누나들에게만 했다. 부모님에게는 아직 두렵다.

   다솜 : 나 역시 어머니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의 반응을 상상하게 된다. 화자가 딸에게 보인 반응과 같은 반응이지 않을까 싶어서 작품을 읽으면서 힘들었다. 하지만 소설 말미에 계속 싸워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자신의 편견과 투쟁한다는 의미 같아서 나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보배 : 나는 편견과 투쟁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체념적인 어조로 읽혔다. 딸네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가 가능한지 모르겠다는 영원한 간극. 그냥 그 간극을 둔 채로 계속 살아가겠구나 싶었다.

   보배 : 화자는 딸 그린의 애인인 레인을 마냥 배척하고 거부하다가 결말에서는 김치나 수육을 덜어주는 정도의 따스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화자의 심정은 여전히 복잡하다. 결국은 ‘어머니로서 퀴어인 자식을 수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어쩌자고 이 여자는 이렇게 오래 살아 있는 걸까.
   이런 순간 삶이라는 게 얼마나 혹독한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음 산이 나타나고. 어떤 기대감에 산을 넘고 마침내는 체념하면서 산을 넘고. 그럼에도 삶은 결코 너그러워지는 법이 없다. 관용이나 아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 그러니까 결국은 지게 될 싸움. 져야만 끝이 나는 싸움. (91쪽)


   보배 : ‘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젠은 고름과 욕창으로 대표되는, 늙음의 공포를 단면적으로 상징하는 인물이다. 늙어감을 불쾌한 이미지로만 연결하는 방식이 나는 불편했다.

   동후 : 치매도 그렇고.

   은지 : 동의한다. 젠이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연민의 대상으로만 전락하는 것 같다.

   동후 : 젠과 그린이 비슷한 운명처럼 느껴진다. 젠은 젊었을 때 자신과 관련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다가 지금 아무것도 없는 삶을 산다. 그린도 부당해고 피해자인 대학 강사들을 위해 몸을 던져가며 투쟁한다. 관찰자인 화자 입장에선 둘이 연결되면서 그린에게 더 화가 나는 상황이다.

   보배 : 발간 무렵에 이 작품은 ‘여성 서사’라는 문구로 홍보가 되었었다. 노인 여성 젠, 어머니 화자 ‘나’, 성소수자 딸 그린의 3세대 여성의 연대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관찰자의 위계가 너무 분명하여 나는 이 소설이 여성 서사로 읽히지 않는다. 관찰하는 나와 관찰 당하는 여자들 사이가 너무 멀다.

   은지 : 화자는 계속 ‘평범한 가정’을 강조한다. 도대체 무엇이 평범한 가족인가. 결혼, 아이, 평범. 그 단어가 정말 많이 나온다.

   보배 : ‘가족’이라는 것은 퀴어에게 아주 고통스러우면서도 떼놓을 수 없는 주제인데, 더욱이 이 소설은 무게중심이 어머니 쪽에 쏠려 있다. 중년 여성이 커밍아웃한 딸을 집에 들임으로써 느끼는 회한의 감정이 수필처럼 나열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퀴어 당사자에겐 추천하기 힘들 것 같다.

   은지 :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 참담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퀴어포빅한 발언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다. 우리 부모님도 이런 생각을 하실 것 같다.

   다솜 : 그 말들에 두드려 맞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보배 : 개인적인 이야기도 해보자. 나는 커밍아웃을 안 한 상태인데 아웃팅의 위험이 있었다. 엄마가 내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시고 ‘너 성소수자 그런 거냐’며 물어보시더라. 그리고 매우 퀴어포빅한 발언을 날것 그대로 쏟아놓으셨다. 더럽다, 용납할 수 없다, 비정상이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체념적 슬픔이었다. 엄마는 화난 것이 아니었다. 무서운 거였다. 순전한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 그게 느껴지니 나도 그냥 안타까웠다. 원래 커밍아웃할 의지가 강하게 있었는데 그날 이후 접었다. 내겐 아직 엄마의 두려움을 현실로 만들 각오가 없다. 같은 생각을 가진 퀴어 친구들을 많이 봤다. 굳이 상처를 드리고 걱정거리를 만드느니 혼자 침묵하겠다는 식이다.

   현민 : 나는 어머니와 퀴어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 보는 내내 조용하시더라.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먼저 말했다. “나는 누구를 정말 좋아하는 감정을 모르겠어. 남자든 여자든.” 예상외로 엄마는 “그래” 한마디만 하시더라.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독립을 하게 된다면 그때 커밍아웃을 하려고 생각 중이다.

   다솜 : 나는 대가족이다. 언니는 “그럴 줄 알았다”며 선선히 받아들였고, 동생은 아직 장난으로 여기는 것 같지만 나쁜 말은 안 했다. 아버지한테는 기대가 없어서 떠보지도 않았고 어머니에게는 많이 말했다. “엄마, 내가 외계인을 만나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으니 “다 만나도 되는데 나쁜 사람만 만나지 마라.” 하시더라. 큰 감동을 받았다. 아직 본격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약간의 희망을 갖고 있다.

   보배 : 결혼 적령기가 될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엄마를 정말 많이 사랑하지만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도 있다. 이렇게 가까우면서 이해할 수 없는 사이라니.

   다솜 : 영원한 평행선 같은 사이.

   보배 : 퀴어라는 집단 자체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얼마 안 되어서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 이전 세대 이야기도 궁금하다. 가족들 간의 문제는 세대 간 문제 아닌가. 삼사십대 이상의 퀴어 이야기를 듣고 싶다.

   상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번쩍거리며 지나간다. 거기에 딸애가 있다. 딸애는 웅크린 채 겁에 질려 있다.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채로 위험천만하게 있다.
   적의와 혐오, 멸시와 폭력, 분노와 무자비, 바로 그 한가운데에 있다. (139쪽)


   다솜 : 나는 고등학교까지 경상도 소도시에서 자랐고 대학은 충청도에서 다닌다. 가족들보다 오히려 십몇 년을 알고 지낸 친구들에게 더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아홉 살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 주변에 교회 애들이 많다. 내 주사가 사실 커밍아웃인데 (일동 웃음) 내 앞에서도 퀴어포빅한 발언을 스스럼없이 한다. 나는 그저 기가 막힐 뿐.

   동후 : 퀴어문화에 얼마나 호의적인가에 대해서는 지역차라는 게 없지는 않은 것 같다.

   보배 : 사실 지역차라는 건 부모님 세대면 몰라도 우리 세대에서는 크게 못 느끼는 것 같다. 지역보다 종교나 문화의 영향이 크다. 다만 접근성의 문제는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동호 : 나는 이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인데, 접근할 수 있는 문화가 거의 없다. 작년에 서울에 있는 퀴어문화축제에 처음 갔다. 혼자 가서 재미는 없었지만(웃음). 점점 비수도권 지역에도 퀴어문화축제 등 다양한 퀴어 행사들이 생기고 있다. 앞으로는 동아리 이름으로 부산이나 대구 지역 퀴어 행사에 참여해볼 생각이다.

   보배 : 동호님의 동아리도 그렇고, 현재 비수도권 지역의 퀴어 커뮤니티는 대학 공간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 같다. 대학 이외의 활동은 거의 없는 듯하다. 사실 서울만 벗어나도 경기권에도 퀴어 커뮤니티는 거의 없어 보인다.

   동호 : 그래서 나 역시 지방에 거주하는 퀴어의 삶을 잘 상상할 수 없었다. 소위 ‘게이 동네’로 불리는 곳도 서울, 퀴어 행사도 서울에 있다. 그래서 한때 인서울 대학으로 편입할까 고민했었다. 퀴어문화에 있어서 지역차는 큰 것 같다.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있다. 책에 대해 비슷한 감상을 나눈 후 각자의 지역차를 공유하면서 느낀, 당연한 결론. 같고 다르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소설의 성공을 가늠할 수 없듯이 소설의 실패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독자들의 어떤 독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너무 빨리 잊힌다. 오해받거나 침략 당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한국의 끝과 끝이 기차 세 시간 거리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을 마주 응시하며, 우리는 입을 연다. 다음은 마지막 행선지. 제주로 간다.

무지개책갈피, 보배

"한국에도 퀴어문학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작된 한국퀴어문학종합플랫폼. 퀴어문학이라는 장르조차 생소한 한국에서 퀴어를 다루는 소설을 모으고 읽고 씁니다. 읽고 쓰는 당사자 작가와 독자를 응원합니다. 그리하여 대답하려 합니다. "네. 한국에도 퀴어문학은 있습니다.”

2018/04/24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