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는 T산에 대해 말할 때면 꿈꾸는 표정을 지었다. 하늘이 너무 깨끗해서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다니까. 숨 쉴 때 맛이 달라. 이곳에서는 별것 아닌 삶의 조건들이 T산에서는 중차대한 조건이 되었다. 아버지가 그곳에 별장을 샀다고 처음 말을 꺼낸 건 두 해 전 추석 때였다. 집에 처음 인사를 하러 온 제부가 어색하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을 때, 아버지는 일상적인 어투로 별장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는 우리 가족도 함께 가서 편안히 쉴 만한 곳이 필요해 마련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상 끄트머리에서 사과를 깎고 있던 엄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석연치 않은 문제에 관한 모든 질문을 튕겨냈다. 그래도 내가 몇 가지 물으려고 하는 순간, 이야기의 불똥이 내게로 튀었다. 아버지가 완벽한 가족을 완성하지 못하게 하는 원흉, 인생의 숙제로 나를 지목할 때 나는 지체 없이 방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주변에서 노총각 아무나 중매해보라는 한탄에 가까운 목소리를 차단하며 방문을 닫았다.

   아버지는 세 번의 자리 이동을 한 사람이었다. 자동차 부품 전문 중소기업에서 부장으로 20년, 고깃집 사장으로 5년, 그리고 지금은 경비 아저씨로 6년을 채우고 있었다. 그사이 우리 가족은 중산층에서 서민, 서민에서 그냥 시민으로 체감상 좌표 이동을 했다. 외부의 시선이 노인을 뼛속까지 늙게 만든다는 말처럼 외부를 통해 우리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상견례 자리 같은 곳. 오빠의 상견례는 서울 시내에서 고급 한정식으로 유명한 사돈의 가게에서 열렸다. 아버지는 고깃집 운영 경험을 화두 삼아 접점을 만들려고 애썼지만 사돈이 권한 익숙지 않은 양주에 잔뜩 취해버렸다. 결국 인사불성이 되어 대리가 운전하는 사돈의 차 뒷좌석에 토했고, 그뒤로 사돈과 술친구를 맺겠다는 오랜 로망은 고이 접혔다.

   그뒤에도 T산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텃밭에 심은 고추가 너무 잘 자라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버렸다느니, 근처 계곡의 물소리가 너무 커서 밤새 잠을 못 잤다느니, 부모님은 휴일이면 T산의 소식을 주워 날랐다. 그리고 거기서 따온 고추며 상추를 극구 사양하는 오빠와 동생네 나눠주며 설득한 끝에 그해 여름휴가는 온 가족이 함께 그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매번 친정 명의의 콘도 회원권으로 그쪽 식구들과 휴가를 떠나는 오빠네와 결혼 이후로 얼굴을 본 게 손에 꼽을 정도인 동생네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건 별장을 무슨 돈으로 구입했는지에 대해 묻지 않는 것처럼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그저 일 때문에 나는 참석할 수 없다고만 못박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평생 두번째 가족 여행인데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말짱 꽝이라느니, 몇 푼 벌지도 못하는 거 대신 주겠다느니 막말에 가까운 회유가 이어졌다. 결국 술에 취해 들어온 아버지가 방문을 부술 듯 두드리며 시집도 못 가서 부모 가슴에 못을 박는 년이 기어이 대못을 박는다고 욕을 퍼부은 밤을 지나쳐 나는 마감 일정을 늦췄다.

   휴가를 떠나기 전날 아버지가 시골에 내려가 할머니를 모셔왔다. 나는 그제야 그 속셈을 눈치챌 수 있었다. 5년 전 중풍을 맞은 할머니는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잘 걷지 못했다. 나는 할머니의 지팡이인 셈이었다. 아버지는 홀로 계신 할머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아들이었고, 할머니는 그런 큰아들보다 작은아들을 절절하게 챙기는 엄마였다. 이번에도 할머니는 일 때문에 바빠서 휴가나 챙기겠느냐며 작은아들을 걱정하다가 일일 드라마 시간이 되자 조용해졌다.

   바쁜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고무장갑을 낀 엄마는 부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연신 뭔가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서 드라마를 보는 할머니 옆에 앉아 적당히 사먹으면 되는 걸 저 여편네가 쓸데없이 일을 벌인다고 타박했다. 드라마가 끝나갈 무렵 새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는 살가운 목소리로 준서나 잘 챙겨 오라고, 아기 짐만 해도 한 짐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는 이 시간에 연락해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며 갓김치를 빡빡 무쳤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동생에게는 내가 전화를 걸었다. 장서방이 바빠서 정말 간신히 가는 거라고 강조하는 동생에게 9시 집합이라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밤새워 일을 마친 뒤 짐도 싸지 못한 채 깜빡 잠이 들었다.


   2


   할머니의 트림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할머니는 거북한 표정으로 연이어 신트림을 뱉어내다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차는 아예 서 있었다. 출발할 때 호기롭게 내비게이션을 꺼버린 아버지 덕분에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창문을 내리고 밖을 내다보았다. 여전히 집 근방의 외곽 도로였다. 잠깐 새에 창문 틈으로 후끈한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단박에 창문 올리라는 아버지의 짜증 섞인 고함이 들려왔다.

   아버지는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짙고 둥근 렌즈 위로 세 줄의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다. 면바지 밑단은 허벅지까지 말아올린 상태였고, 목에 두른 수건이 젖어서 축 늘어졌다. 조수석에서 엄마가 에어컨 바람이 세다고 했고, 나도 춥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에어컨을 줄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다리가 아파서 살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다가 늙으면 빨리 죽는 게 복이라는 이야기로 화제를 옮겨갔다. 돌아보니 뒤차 운전석에 아버지와 흡사한 모습의 오빠가 앉아 있었다.

   차 안에서 짜증을 내지 않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첫 가족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그건 아무리 떠올려도 웃을 수 없는 여행이었는데도 엄마는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버지의 친구가 다니는 회사의 가족 동반 여행에 빌붙어 따라간 우리 가족은 경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 빈자리가 없어 내내 서서 가야 했다. 그 여행에서 기억나는 건 달리는 버스 안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중심을 잡던 일뿐이었다. 엄마는 그래도 좋은 추억 아니냐며 내게 귤을 건넸다. 귤은 뜨끈하고 밍밍했다. 엄마가 웃으며 말할 때마다 아버지는 에어컨의 세기를 올렸다.

   휴게소에 들렀다 나오면 더 막힌다는 아버지의 주장에 따라 꼬박 4시간 동안 소변을 참은 끝에 차는 시골 읍내에 들어섰다. 읍내에 하나뿐이라는 마트 주차장에만 차가 꽉 들어차 있었다. 고기를 산다고 마트에 들어간 엄마가 나오지 않자 아버지는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옆에서 할머니가 힘들어 죽겠다고 보조를 맞췄다. 나는 차에서 내려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두 개의 계산대 뒤로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오른쪽 줄 가운데쯤에서 엄마가 손을 흔들었다. 고기가 든 묵직한 비닐봉투를 트렁크 안 아이스박스에 넣고 차에 타자마자 아버지는 여행을 망치려고 환장한 여편네라고 비난했다. 엄마는 뭔가 말하려다가 계속되는 비난에 입을 다물었다. 할머니가 길게 앓는 소리를 냈다.

   비포장 산길을 30분가량 달려 산중턱에 있는 인가에 도착했다. 시멘트 벽돌을 쌓아올려 파란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이층집은 시골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농가였다. 주변에 집 한 채 보이지 않았고, 허리 높이까지 올라온 잡풀만 무성했다. 아버지는 가족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쉬지 않고 불러댔다. 아기는 엄마가 맡고, 이층에 누워 있는 할머니를 그대로 둔 채 나머지 가족들은 아버지를 따라 계곡으로 향했다. 얼마 전 방수 공사를 했다는 계곡 주위로 온통 콘크리트가 둘러쳐져 있었다. 이곳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사람이 지도만 보고 대충 콘크리트로 싸버리라고 지시한 모양새였다. 우리는 흰 콘크리트에 반사된 빛 때문에 눈을 찌푸린 채 어정쩡한 자세로 물놀이를 했다.

   집에 돌아와보니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옆에 어정쩡하게 붙어서 있던 새언니는 이층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자 곧장 식당을 빠져나갔다. 엄마가 쟨 뭐든 진득하게 돕는 법이 없다며 끌끌거렸다. 오빠의 부축을 받으며 식당으로 내려온 할머니는 텔레비전이 고장이라며 인상을 썼다. 흰 메리야스 차림으로 뒤뜰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던 아버지가 소주병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소주병을 흔들어댔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차례로 병 안을 들여다보게 했다. 안에는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말벌이 빠져 버둥거리고 있었다. 비위가 약한 동생이 인상을 쓰자 아버지가 키득대며 웃었다.

   이게 벌주라고, 얼마나 몸에 좋은지 아느냐고 아버지가 동생의 입에 대고 병을 기울이는 시늉을 하자 동생은 질겁하며 뒤로 물러났고, 제부가 인상을 찌푸렸다. 눈치 빠른 엄마가 이 사람은 장난도, 라며 웃었다. 아버지는 이층 다락방 처마 아래 말벌집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 머리통만 한 게 있다고, 벌이 수백 마리는 된다는 말에 할머니가 끼어들었다. 그게 관절염에 얼마나 좋은 줄 아느냐고, 아범이 이따 저녁때 불 다 꺼놓고 주둥이를 칼로 똑 따버리라고 일렀다. 나머지 가족들이 위험하다고 만류했다. 아버지는 싱글거리며 냉장고에서 새 소주병을 꺼내 들고 나갔다. 할머니는 연신 그게 내 약인데, 라고 중얼거렸다.


   3


   저녁에는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고기를 구운 오빠와 제부는 얼굴이 벌겋게 익은 채 묵묵히 밥을 삼켰다. 아버지는 취한 채 벌게진 얼굴로 옛날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우리 가족이 이곳으로 함께 여행을 올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과 시련이 있었느냐는 넋두리였다. 어둠이 내리자 가로등 하나 없는 산중은 암흑으로 변했다. 자꾸 칭얼거리는 아기를 안고 서성거리는 새언니와 밥을 먹자마자 피곤하다며 이층으로 올라간 동생을 제외하고 설거지를 할 사람은 나뿐이었다. 내가 수세미에 세제를 듬뿍 묻혀 벅벅 문지르는 동안 칭얼거림이 울음소리로 바뀌더니 점점 거세졌다. 아기가 경기를 일으키듯 악을 쓰고 울어댔다. 아기를 안고 어르는 새언니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밥을 먹던 오빠가 젓가락을 놓고 일어나더니 아기를 안아들었다. 엄마는 오빠의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더니 아기를 대신 받아들었다.

   준서가 하루에 세 번은 변을 보는데, 오늘은 한 번도 못 봤어요. 새언니가 엄마에게 보고하듯 말했다. 엄마가 아기 배를 살살 어루만져주었다.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할머니가 쉬어야겠다면서 제부의 부축을 받으며 이층으로 올라갔고, 아버지는 맥주 캔을 들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부엌으로 오더니 닦아놓은 밥그릇에 세제를 짜고 물을 받았다. 그리고 거즈로 된 손수건 끝에 비눗물을 묻혔다. 엄마는 아기를 거꾸로 눕힌 뒤 손수건 끝을 아기의 똥구멍 속으로 밀어넣었다. 아기가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새언니가 진저리를 치며 엄마의 손에서 손수건을 빼앗았다.

   오빠가 벌떡 일어나 휴대전화와 차 키를 챙겼다. 엄마는 근처에 약국이 있으면 관장약을 사다가 조금 넣어주면 된다고 했지만, 오빠는 인근 응급실을 알아보느라 바빴다. 새언니는 옆에서 아기 짐을 꾸렸다. 전화를 끊은 오빠가 옆 도시의 대학병원 이름을 댔다. 새언니와 오빠가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갔고, 오빠의 밤길 운전이 걱정된 엄마가 따라 나섰다. 네 사람이 탄 차가 덜컹거리며 산길을 내려갔다.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 식당을 정리한 뒤 이층으로 올라갔다. 동생과 제부가 맥 빠진 얼굴로 소파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그 아래 바닥에 누워 있었다. 텔레비전이 꺼진 집은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이따금 벌레 우는 소리가 띄엄띄엄 들려왔다. 나는 계단 아래에 쌓여 있던 신문을 들고 와 뒤적이다가 내려놓았다. 노트북이라도 들고 올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한나절도 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한 달은 지낸 기분이었다. 그사이 동생은 제부에게 기대 졸기 시작했고, 제부 역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맥주병과 잔 하나를 손에 든 아버지가 안으로 들어왔다. 열린 문틈으로 까만 나방 한 마리가 아버지를 따라 들어왔다. 나는 얼른 일어나 아버지가 열어놓은 문을 닫았다. 분위기가 이게 뭐냐. 아버지는 타박하듯 말하며 잔 가득 맥주를 따라 제부에게 건넸다. 제부가 마지못해 두어 모금 마시고 내려놓자 아버지가 그 잔을 마저 비웠다. 아버지는 꼼짝하지 않는 할머니를 톡톡 건드렸고, 할머니는 끙 소리를 내면서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 아버지는 제부에게 술을 권하다가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혼자서 술병을 비웠다.

   나는 파리채를 들고 아버지를 따라 들어온 나방을 쫓았다. 나방의 몸통은 번데기만큼이나 통통했지만, 움직임은 민첩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짝 소리와 함께 나방이 바닥에 깔렸다. 까만 분가루와 짙은 갈색 진물이 옆으로 비어져나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거실 형광등 아래로 날벌레들이 까맣게 모여들어 있었다. 나는 활짝 열어놓은 거실 창문을 닫았다. 아버지가 벌레 물린다고 안 죽는다며 다시 창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내 손에서 파리채를 빼앗아 들고 벌레 몇 마리를 연달아 잡았다. 아버지는 여치같이 생긴 벌레 한 마리를 파리채 위에 올려 장난스럽게 동생에게 들이밀었다. 동생이 짜증을 내자 아버지가 껄껄대며 웃었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아버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실을 오갔다. 동생이 씻겠다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제부는 고개를 숙이고서 공연히 텔레비전 리모컨만 만지작거렸다. 아버지는 이곳에서의 노후에 대해 떠벌리듯 늘어놓았다. 텃밭을 일구고 자식들의 방문을 맞이하는 삶. 나는 아버지의 입에서 풍기는 술 냄새 때문에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입에서 지독한 냄새가 났다. 할머니는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화장실에서 물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혼자 떠들던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파리채를 들고 쿵쿵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아버지는 아무래도 벌집을 따버려야겠다고 중얼거리더니 위층으로 사라졌다. 다락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다. 말벌 수백 마리가 들어찬 벌집을 떠올리자 오슬오슬 소름이 돋았다. 나는 위층에 대고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제부도 하려면 날 밝을 때 같이 하시자고 말을 보탰다.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예전에 귀농을 다룬 에세이에서 말벌집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육각형 모양의 사층짜리 벌집이었다. 삼, 사층에는 애벌레 상태의 하얀 유충이 빼곡히 들어찼고, 이층에서는 성충 단계의 벌들이 기어나왔다. 벌집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메마른 느낌의 골판지 같았다. 말벌이 얼마나 위험한지 몇 번이나 거듭 강조하던 책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나는 위층을 향해 빽 소리를 질렀다.

   어느새 몸을 일으켜 앉은 할머니가 밤에는 벌이 활동을 안 한다며, 톡 따면 된다고 타이르듯 말했다. 여전히 부스럭대는 소리만 들릴 뿐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차마 위층에 올라갈 엄두는 내지 못한 채 아래에서 소리만 질러댔다. 얼마 뒤 아버지가 계단참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기어이 땄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내게 싸가지 없이 말한다며 얼굴을 붉히더니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이따금 아버지는 파리채로 벌레를 때려잡았다. 거실 곳곳에 납작하게 깔린 벌레와 갈색 진물이 번졌다. 아버지가 벌레를 쫓아 거실 옆방으로 들어갔다. 문틈으로 파리채를 내리치는 소리가 짝짝 들려왔다. 나는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나서 눈을 감았다. 그때 외마디 고함이 들려왔다.

   아버지가 방에서 구르듯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손으로 머리를 마구 털어댔다. 거실 등 아래에 털썩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머리칼을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그 순간 거실 등 위에서 새카만 말벌 한 마리가 붕 소리를 내며 아버지의 머리 위로 떨어지듯 달려들었다. 악. 아버지가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화장실에서 동생의 비명이 들렸다. 곧장 문이 열리고 벗은 몸을 대충 옷으로 가린 동생이 뛰쳐나왔다.

   벌이 달려들었다고 말하는 동생의 아랫입술이 덜덜 떨렸다. 머리카락을 헤쳐보니 아버지의 정수리 부근에 붉은 반점 두 개가 딱딱하게 부풀어 있었다. 아버지는 연신 손으로 머리를 털어댔다. 고개를 들어보니 머리 위로 네댓 마리의 말벌들이 낮게 날고 있었다. 가만있던 할머니가 된장을 퍼오라고 말했다. 제부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키자 동생이 제부의 손을 붙들었다.

   이까짓 거 된장 바르면 싹 낫는다고, 옛날에는 밭일하다가 수시로 물렸다고, 할머니는 된장을 가져오라고 성화였다. 아버지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도 뒤통수를 손으로 털어냈다. 아버지의 말투가 평소와 달리 어눌했다. 나는 119에 전화했다. 말벌에 쏘인 환자가 있다고, 빨리 와달라고 재촉했다. 환자, 라는 말이 나오자 아버지가 버럭 화를 냈다. 구급대원이 주소를 물었다. 나는 T산, 하며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 역시 OO리, 에서 말끝을 흐렸다. 나는 낮에 보았던 식당 벽면의 주소를 떠올리고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캄캄한 계단을 더듬거리며 내려갔다. 거의 다 내려와서는 발을 헛디뎌 엉덩방아를 찧었다. 꼬리뼈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 머뭇거릴 새가 없었다. 얼른 식당 외벽에 핸드폰 액정을 비추었다. 파란 표지판 위에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벌이 있었다. 말벌 떼가 외벽을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황급히 주소를 불러주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층을 향해 내려오라고 외쳤다.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내내 닫혀 있어서 벌레가 눈에 띄지 않았다. 얼른 이층으로 올라가 할머니를 부축해 내려왔다. 티셔츠와 반바지만 걸친 동생은 제부에게 매달리다시피 해서 계단을 내려왔고, 아버지는 뒤통수에 손을 얹은 채 따라왔다.

   전화 속의 구급대원이 응급처치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 목소리가 일러주는 대로 움직였다. 엄마가 한 것처럼 밥그릇에 세제와 물을 넣어 비눗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손수건에 비눗물을 묻혀 아버지의 빨간 반점 주변을 닦아냈다.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그 모서리로 반점을 아래에서 위로 살살 밀어냈다. 혹시 꽂혀 있을지 모르는 독침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옆에서 된장을 바르라고, 된장만 바르면 낫는다고 성화였다. 전화 속의 목소리가 환부를 가릴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된장 같은 건 바르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아버지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 뒤통수를 쓱쓱 문지르며 멋쩍게 웃었다. 아버지의 머리는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처럼 뒤쪽으로 눈에 띄게 부풀어 올랐다. 냉동실에서 아이스팩을 꺼내 아버지의 머리에 갖다 댔다. 제부가 전화기를 건네받고 집 위치를 설명하며 밖으로 나갔다. 동생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웬 성화냐고 뭉개지는 발음으로 탓했다. 할머니는 된장만 바르면 금방 낫는다고, 어른 말을 무시한다고 혀를 찼다. 그러자 아버지가 네가 산통을 다 깼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아버지의 머리에 아이스팩을 바짝 붙였다. 웅웅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백열등 아래로 벌 두 마리가 윙윙거리며 날고 있었다. 동생이 비명을 질렀다. 마당 쪽으로 난 창에 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나는 황급히 식당 불을 껐다. 동생과 함께 할머니를 부축해서 마당으로 나갔다. 아버지가 아이스팩을 문지르며 뒤따라 나왔다. 뒤뜰로 가서 차문을 열고 동생과 할머니에게 차에 타 계시라고 말했다. 동생은 뒷좌석에 올라탔지만, 할머니는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벌은 가만있으면 안 물어. 불 끄고 가만있으면 돼. 난 집에 들어갈란다. 할머니와 옥신각신하는 사이 아래쪽에서 구급차의 경보음이 들려왔다. 차는 마당 입구에 섰고, 구급대원이 다가왔다. 아버지가 괜찮으니 그냥 가시라고 그를 돌려세웠다. 그 말에 나는 미쳤냐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가 옆에서 뭐라고 구시렁대자 아버지가 고함을 질렀다. 네 년이 호들갑을 피워가지고…… 별것도 아닌데 난리법석을 떨어서…… 구급대원이 대화에 끼지 못하고 차 앞쪽으로 자리를 피했다.

   아버지의 입에서 익숙한 욕설들이 터져 나왔다. 이 쌍년 때문에 휴가 다 망치고…… 별것도 아닌데 지랄을 해서…… 그 와중에 할머니는 힘들어서 누워야겠다며 뒤뚱거리며 집 쪽으로 걸음을 뗐다. 제부가 할머니를 붙잡았다. 구급대원이 채근하자 아버지는 집구석에 기어들어가 있으라고, 불 끄고 자빠져 자라고 내지른 뒤 떠밀리듯 차에 올라탔다. 구급대원이 잽싸게 문을 닫았다. 구급차가 산길을 내려가는 동안 나는 할머니를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억지로 차 뒷좌석에 태우고 그 옆에 올라탔다. 할머니는 동생과 나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늙은이를 여기까지 끌고 와서 고생시킨다는 한탄이 잦아들자 차 안이 조용해졌다.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오도카니 차 안에 있어야 했다. 시동이 꺼진 차 안은 컴컴했고, 불을 켜놓고 나온 집은 모델하우스처럼 환하게 빛났다. 다시 할머니가 집에 들어가겠다고 나서서 뒷좌석이 출렁거렸다.


   4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는 집에서 모두 빠져나오라고 외쳤다. 아버지 상태가 심상치 않아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는 말로 전화가 끊겼다. 상황을 설명하자 할머니가 한동안 잠잠했다. 1시간쯤 지나서 오빠의 차가 산길을 올라왔다. 우리는 오빠의 차에 올라탔다.

   차가 멈춰선 곳은 낙원모텔이라는 간판이 덜렁거리는 건물 앞이었다. 오빠는 빈 방이 하나뿐이라며 302호로 우리를 데려갔다. 방문을 열자 구린내가 먼저 맞이했다. 아기와 새언니가 한가운데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구린내의 주범은 방구석에 돌돌 말아놓은 기저귀였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온돌방이었다. 다섯 사람이 들어가니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오빠가 아기와 언니가 누운 이불을 옆으로 끌어 옮겼다.

   새언니는 피곤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가 해독 주사를 맞고 있으며,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의사의 소견이 전해졌다. 얼마 전에도 등산하고 내려오던 사람들이 말벌에 쏘여서 2주가 넘도록 입원 중이며, 말벌은 한번 해코지한 사람은 끝까지 쫓아와서 문다는 말에 할머니는 내내 반응이 없었다. 어느 틈에 켜놓은 텔레비전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텔레비전 안에서 선수들이 소리 없이 공을 차고 있었다.

   나는 복도로 나왔다. 핑크빛 조명을 따라가자 때에 찌든 초록색 소파가 놓여 있었다. 뒤따라 나온 동생이 옆에 앉았다. 동생이 결심한 듯 내 쪽으로 팔뚝을 내밀었다. 팔뚝 안쪽 연한 살 위에 붉게 일어난 자국이 있었다. 혹시 벌에 쏘인 건 아닌지 염려하는 동생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동생의 팔뚝을 어루만졌고, 동생은 내 어깨에 기대어 졸았다. 방으로 돌아오자 새언니가 통화하고 있었다. 짐 가방을 두고 온 탓에 급하게 분유를 사러 나간 오빠가 헤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사이 잠에서 깬 아기가 까르륵거리며 놀았다. 할머니는 윗목 구석에서 웅크린 채 잠들었다. 아기를 재우기 위해 불을 끄고 누웠다. 창문으로 모텔 간판의 네온사인이 번쩍이며 새어 들어왔다. 아기의 뒤척임이 잠잠해졌다. 이따금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고, 할머니가 낮게 코를 골았다.

   새벽녘 창밖에서 시동 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통로 끝 계단으로 오빠와 엄마, 아버지가 차례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아버지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내가 괜찮으냐고 묻자 대답 없이 눈길을 피했다. 새언니가 괜찮으시냐고 묻자 아버지는 간신히 괜찮다고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엄마가 일단 자고 내일 얘기하자며 등을 떠밀었다.

   아버지 옆에 엄마, 나, 동생, 제부, 그리고 오빠네 순으로 누웠다. 이불이 부족해 아기와 할머니를 제외한 나머지는 맨바닥에 누웠다. 나는 가방을 당겨다가 베었다. 몸을 움직이면 옆 사람까지 들썩이게 될 만큼 좁아서 가만히 일자로 누워야 했다. 방 안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이따금 바깥에서 네온사인이 징 하는 합선음을 냈다.

   엄마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박자를 맞추듯 코를 골았다. 누군가 한숨을 내쉬었고, 동생은 기침을 했다. 잠이 들 만하면 귓가에서 벌의 날갯짓 소리가 이명처럼 떠올랐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어둠 속을 들여다봤다. 소변이 마려웠다. 동생을 깨울까봐 선뜻 일어나지 못하고 몇 분을 참았다. 마침내 참기가 어려워져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가족들이 다리나 팔이 포개진 채 엇갈려 누워 있었다. 나는 머리맡의 화장실 문을 열었다. 불도 켜지 않고 변기에 앉았다. 살짝 힘을 주니 오줌이 새어나왔다. 어둡고 고요했지만, 모두가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오줌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오줌 줄기는 그치지 않고, 길고 가늘게 이어졌다.


*벌집의 온도는 섭씨 35도 내외이며, “꿀벌들은 각기 온도에 대한 감수성이 달라서 온도를 낮추기 위해 날갯짓을 시작하는 온도가 달랐다. 따라서 온도가 낮을 때는 적은 수의 개체만 날갯짓을 하지만, 온도가 높으면 많은 개체가 여기에 동참해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한다는 서울신문 기사 <뜨거운 여름에도 시원한 벌집의 놀라운 비밀>을 참조했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211601004


일단공작단

유재영은 소설을 쓰고, 최고라는 책을 만듭니다. 서로 가장 많은 말을 주고받는 상대입니다. 대개는 다정한 말로 서로에게 온기를 전달하지만, 이따금 차갑거나 뜨거운 말을 던져 파문을 일으킵니다.

2020/01/28
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