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 저기 다가오는 누구 안녕 그리고 안녕


   걷는다. 우리 가는 길은 어떤 길인지.

화살표는 명징하다. 가는 길의 방향을 명확히, 단호하게 지적한다. 하지만 섬세하진 않다. 좀더 섬세하다면…… (GH님 제보)


……이런 모습이었을까.
 

바다 계단에 얽힌 전설을 읽으니 바다 계단이 특별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이곳을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이 간질거리는” 이유가, 이곳이 “집게벌레 어미들이 새끼를 위해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던 곳이기 때문”이라니. 발바닥이 땅을 밟고 감동하는 것일까? (항상님 제보)

누구든 저곳이 1층임을 알 수 있을 텐데 굳이 강조가 된 건 왜일까? 1층임을 명시하는 표현을 보니 색다른 느낌이 든다. 문득, 독일의 층수 개념이 떠오른다. 독일의 경우 ‘Erdgeschoss’라는 개념(단어)이 있어서 Erdgeschoss 위층부터 1층이다. 즉, 우리나라의 2층이 그곳의 1층이다. 사진의 표지는 층수 개념이 모든 곳에서 같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환기시킨다. (K님 제보)

   걷는다. 그러고 보니 밥 먹을 때가 된 것 같은데. 들어갈까 말까?

일단 들어오라고 말하는 입간판. 먼저 ‘안녕’이라고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내가 육지 사람이면 당신은 바다나 우주 사람인걸까? 은근한 말로 커피와 버거 생각이 나게 만든다. (K님 제보)

우선 아는 단어를 찾아본다. 딸기, 방어, 왕가리비 그라탕, 도쿄, 봉골레, 비프, 후추…… 정도는 알겠고 나머지는 무엇이지? 이국적인 발음에 알 수 없는 단어가 흥미를 끈다.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맛있는 단어 같다. (리오님 제보)

놀랐을 때 내는 말 ‘에구머니’를 변주해 ‘에그머니’를 상호로 썼다. 여기서 에그는 영어로 egg, 달걀이다. 달걀로 만든 음식을 파는 곳인 듯하다. 그런 방식으로 살피면 뒤의 ‘HULK’라는 글자는 한글로 ‘헉’ 하고 놀라는 소리일 것이다. 설마 ‘헐크’(거대한 사람)는 아니겠지. 아니면 혹시, ‘헐ㅋ’인가. (HA님 제보)

‘미치다’라는 단어는 ‘정신이 나가다’라는 뜻에서 요즘엔 ‘정신이 나갈 만큼 충격적이다’라는 말로 쓰이곤 한다. 옛날에는 과격한 표현이었을 법한 ‘미치다’라는 단어가 오늘날 그저 ‘놀랍다’라는 말의 과장된 표현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런 표현이 음식점 이름으로 쓰인 것은 본 적이 없다. 간판부터 충격적이라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가게 주인은 어떤 생각으로 가게 이름을 지었을까. ‘미친 즉석 떡볶이’는 어떤 맛의 떡볶이일까. (리오님 제보)

   걷는다. 저기 앞에 펄럭이는 것.

밤에 달이 떠오른다. 밤에 네가 떠오른다. ‘떠오른다’는 말에 담긴 정서가 인상깊다. (K님 제보)

“범인이 무엇을 훔쳐갔을지, 범인을 잡으면 어떤 칭찬을 주실지 궁금해지는 수배 전단이 눈에 띄었어요. 게다가 테이프가 위에만 붙어 있어 계속 나풀거려요” 제보자가 제보와 함께 보내온 말이다. 전단지와 전단지를 발견한 시선 모두 특별하게 느껴진다. (SW님 제보)

매주 토요일 공연을 하는 누군가가 쓴 홍보 전단지이다. 공연 이름이 비타민인지 공연을 보면 비타민을 준다는 것인지 비타민 같이 힘이 되는 공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단지만 봐도 웃음이 나고 힘이 난다. 안녕, 꿈나라 어린이 공원에서 만나요. (컬스티님 제보)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것은 시인가 시가 아닌가?

   비시 인터뷰 : 당신이 생각하는 시가 아닌 것


   드디어 마지막에 다다랐다. 본 프로젝트는 6화까지 기획된 프로젝트이다. 지금까지 이 프로젝트를 지켜보았던 당신은 비시(非詩)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는가? 꼭 어떠한 결론이 아니어도 좋다. 비시에 대해, 그리고 시에 대해 조금 생각해본 시간이면 충분하다. 기회가 된다면 비시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다.
   지면에서의 마지막 인터뷰로 시를 쓰는 윤지양의 이야기를 싣는다.

궁금하다.

Q. 비시, 즉 시가 아닌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누군가 시라고 말하면 시이고 비시라고 말하면 비시이다. 너무 상대적인가? 하지만 그것 말고 명확한 답을 내릴 수가 없다. 비시각각의 의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왜 시인지, 시가 아닌지 자신만의 기준을 찾는 것. 개개인마다 그런 기준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 ‘시적’이라는 말이 무책임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연재 초반, 인터뷰를 제외한 원고 본문에 이 단어를 사용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끝끝내 넣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물에 코코아를 탔는데 ‘물이네.’ ‘코코아네.’ 하는 게 아니라 ‘코코아적이네.’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이라면 왜 물인지에 대한 근거를 댈 수 있고 코코아라면 왜 코코아인지에 대해 근거를 댈 수 있다. 그러나 코코아적이라고 하면, 그 이후부터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시적’이라는 용어는 편리한 용어라고 생각한다.

Q. 명명하기에 따라 시와 시가 아닌 것을 구분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를 더 설명해줄 수 있는가?


   비시 인터뷰를 통해 많은 생각을 했다. 놀랍게도, 비시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분이 상당 부분 일치했다. 3화에서 조시현은 비시에 대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손 댈 수 없는 지점에 대해 말했다. 4화의 김기형은 ‘자연’이라는 예를 들어 비시에 대해 말했다. 여기에서 나는 날 것 그대로가 비시라는 의견을 확인했다. 5화의 이문경의 경우 비시란 밑줄과 관련하여 압축할 수 없는 것, 어떠한 조작이 작용하지 않은 것이라 말했다. 이들 모두 인간의 ‘개입’과 관련한 의견들이었다. 명명한다는 것은 일종의 개입이다. 따라서 누군가 그것을 시라고 명명한다면 시라고 볼 수밖에. 그 다음은 사회적 동의의 문제이다. 그런데 그 동의 또한 개인의 의견의 총합에 불과하다. 그러니 개인이 생각하는 어떤 명명이 중요한 것이다.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비시란 아직 개입하지 않은 상태이다. 어떠한 가공도, 조작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이 프로젝트 자체는 실패다.


Q. 왜 실패라고 생각하는가?


   비시라는 것을 포착하는 순간 그것은 비시가 아니다. ‘포착’에 대해서는 이문경이 ‘사진을 찍는 행위’를 통해 언급한 바 있다. 어떤 이의 생각과 시선에 의해 포착된 것은 우선 비시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비시를 다뤘다. 비시를 다루는 순간 비시가 사라진 셈이다.


Q. 예상한 실패인가?


   어떤 점에서는 그랬다. 인터뷰 자체는 비시각각 연재 초반에 마친 것들이 대부분이다. 중반부로 가서는 나도 비시에 대해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리고 비시각각을 연재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실패하더라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시집만 읽는 게 너무 지겨웠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짜 시라는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누구나 시라고 일컫는 것을 보면서 시 자체에 대한 생각을 이어갈 수 있을까? 작법이나 표현 측면에서만 배울 점이 있을 뿐 시 자체에 대한 내 의문을 해소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보내주는 비시 제보들이 흥미로웠다. 한 사람이 특정한 텍스트를 보고 이것에 대해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찍어 보내는 그 과정에 대해 생각하면, 어떤 필연적인 무엇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그것을 사진을 찍기까지 어떤 충동을 느꼈다면, 그 충동에 작용하는 힘이 무엇일까 싶었다.


Q. 제보에 대해 더 말해주었으면 한다.


   비시각각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들어가면 비시각각에 나온, 혹은 나오지 못한 제보들을 전부 확인할 수 있다. 비시에 대한 제보들이 모아진 것을 보면, 일종의 비시집이라 명명할 수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이것은 비시집이 아니기도 하다. 앞서 말한 ‘포착’이라는 개념에 의해 그렇다. 다 함께 만든 비시집이면서 시집이다.


Q.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진행하면서 느꼈던 점에 대해 말해 달라.


   한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혼자 고립되어 생각을 이어가기만 했다면, 개인의 고정관념을 확인하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프로젝트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생각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 비시에 대해 정의내리면서, 본인이 시를 쓰는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으로 밑줄 칠 수 없는 시를 쓰고 싶다.


Q. 밑줄 칠 수 없는 시란 무엇인가?


   이문경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착안한 아이디어이다. 말 그대로 어떠한 부분에 밑줄 칠 수 없는 시이다. 밑줄을 치는 행위를 통해 시 안에서 또 시를 찾는 것이 나에게는 괴상하게 느껴졌다. 시는 그 자체로 시여야 한다. 그리하여 밑줄 친 몇 개의 문장만이 유효하다면 그 몇 개의 문장만이 시다. 나는 시에 쓰인 문장 모두가 제 기능을 하는 시를 쓰고 싶다. 이것은 문장에 어떠한 위계를 두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밖에 밑줄 칠 수 없는 시란 요약할 수 없는 시라고 할 수도 있다. 시를 읽었을 때 시가 하나의 이야기로 요약되는 것을 지양한다. 그것을 시라고 일컫지 않으려고 한다.


Q. 어쩌면 비시를 쓰겠다는 말로 들린다.


   궁극적으로 시와 비시의 본질이 같다고 본다. 그 차이는 단지 명명에 불과하다. 시인이자, 일상에선 대개 비시인인 사람으로서 그 두 가지를 넘나들고 싶다. 비시이자 시가 되는 것. 그건 불가능한 것일까?


Q. 모쪼록 건투를 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개인의 포부 이야기로 샌 것 같지만, 인터뷰라는 형식 앞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다시 비시각각 이야기로 돌아와서, 제보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다양한 시각이 담긴 제보가 없었다면 비시각각은 지루하고 뻔한 내용이 되었을 것이다. 비시각각에 화려한 색을 입혀주신 여러분께 매우 감사하다. 이밖에 프로젝트 원고를 쓰는 데 도움을 주신 편집자님, 편집위원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 프로젝트는 결국 다 함께 생각해 이뤄낸 것이다.


양지윤

비시(非詩)에 대해 탐구하고 비시를 씁니다. 윤지양이라는 이름으로 시를 쓰기도 합니다. 그동안 비시각각을 지켜봐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연재는 종료되지만 아카이브로서 비시각각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www.instagram.com/bisi_write)
직접 목격한 비시 텍스트를 꾸준히 제보 받습니다. 관련된 생각과 일화도 기록합니다. 비시각각은 여러분과 함께 수집하는 비/시의 모음집으로 남고 싶습니다.
메일 jiyangyoon@gmail.com, 인스타그램 @bisi_write

2018/05/29
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