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연금 실습, 황(S). 총 6분 40초.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만들고 빚어낸 인체 한 구가 마침내 여기 놓여 있다. 손짓 몇 번으로 예감하여 보건대, 체중은 70킬로그램쯤. 이 성인 인체 옆에 레몬 빛깔의 다원자 분자 물질 한 그릇을 가져다 놓아라. 황(S)은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없이 알맞은 원소이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한 다섯 가지 원소 가운데 으뜸으로 무거우며, 또 주기율표 안에서도 가장 나중에 외워지기 때문이다.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예비 피조물은 이제 마지막 융합만을 기다리고 있다. 필요한 황의 양은 약 140그램 정도로 짐작된다. 지금 당장 계량스푼 하나를 재빨리 떠올려보라. 예컨대 제과점에서 포장용지에 담아주는 핑크색 아이스크림 스푼도 좋다. 내부가 움푹하게 비어 있는 이 플라스틱 수저의 용적은 1그램. 140번만 기울여 움직이면, 우리 앞에 누워 있는 인체가 작동하기 시작하리라. 이전까지 지하 광산이나 군수 공장 같은 산업 현장들에서나 긴요한 인화성 물질로 이름을 떨쳤던 황은 이처럼 생명에 있어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재료이니라. 주로 머리카락과 손톱, 피부와 같은 인체의 말단 부위들에서 손쉽게 관찰되는 이 원소는 단백질들을 묶어주는 뜨거운 끈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앞서 다루었던 네 가지 원소가 마침내 황에 이르러 하나의 사물로 완성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 글은 닫는 글, 엮는 글, 묶는 글이 될지어다.
   이제 수저를 움직여라. 너희가 명명하면 그대로 닫히고, 엮이고, 묶일지어다.


(죄)
1번의 수저질1)
(땀)
2번의 수저질
(잠)
3번의 수저질
(암)
4번의 수저질
(겁)
5번의 수저질
(업)
6번의 수저질
(운)
7번의 수저질
(색)
8번의 수저질
(정)
9번의 수저질
(꿈)
10번의 수저질
(힘)
11번의 수저질
(넋)
12번의 수저질
(값)
13번의 수저질
(앎)
14번의 수저질
(점)
15번의 수저질
(창)
16번의 수저질
(향)
17번의 수저질
(춤)
18번의 수저질
(때)
19번의 수저질
(몫)
20번의 수저질
(욕)
21번의 수저질
(말)
22번의 수저질
(침)
23번의 수저질
(좀)
24번의 수저질
(꼴)
25번의 수저질
(열)
26번의 수저질
(선)
27번의 수저질
(감)
28번의 수저질
(돌)
29번의 수저질
(악)
30번의 수저질
(축)
31번의 수저질
(끼)
32번의 수저질
(면)
33번의 수저질
(맥)
34번의 수저질
(결)
35번의 수저질
(질)
36번의 수저질
(털)
37번의 수저질
(수)
38번의 수저질
(홀)
39번의 수저질
(항)
40번의 수저질
(형)
41번의 수저질
(체)
42번의 수저질
(탈)
43번의 수저질
(영)
44번의 수저질
(성)
45번의 수저질
(금)
46번의 수저질
(벽)
47번의 수저질
(땅)
48번의 수저질
(못)
49번의 수저질
(짐)
50번의 수저질
(화)
51번의 수저질
(닻)
52번의 수저질
(끝)
53번의 수저질
(시)
54번의 수저질
(뼈)
55번의 수저질
(양)
56번의 수저질
(켬)
57번의 수저질
(홈)
58번의 수저질
(층)
59번의 수저질
(독)
60번의 수저질
(통)
61번의 수저질
(음)
62번의 수저질
(공)
63번의 수저질
(줄)
64번의 수저질
(길)
65번의 수저질
(뿔)
66번의 수저질
(병)
67번의 수저질
(실)
68번의 수저질
(샘)
69번의 수저질
(셈)
70번의 수저질
(끈)
71번의 수저질
(법)
72번의 수저질
(문)
73번의 수저질
(벌)
74번의 수저질
(짝)
75번의 수저질
(복)
76번의 수저질
(취)
77번의 수저질
(적)
78번의 수저질
(연)
79번의 수저질
(희)
80번의 수저질
(품)
81번의 수저질
(숲)
82번의 수저질
(물)
83번의 수저질
(틈)
84번의 수저질
(굴)
85번의 수저질
(옷)
86번의 수저질
(톤)
87번의 수저질
(초)
88번의 수저질
(씀)
89번의 수저질
(끔)
90번의 수저질
(솜)
91번의 수저질
(핵)
92번의 수저질
(혹)
93번의 수저질
(통)
94번의 수저질
(흠)
95번의 수저질
(수)
96번의 수저질
(합)
97번의 수저질
(뜻)
98번의 수저질
(염)
99번의 수저질
(약)
100번의 수저질
(탑)
101번의 수저질
(답)
102번의 수저질
(판)
103번의 수저질
(간)
104번의 수저질
(답)
105번의 수저질
(옴)
106번의 수저질
(덕)
107번의 수저질
(뜸)
108번의 수저질
(흉)
109번의 수저질
(둑)
110번의 수저질
(끌)
111번의 수저질
(꾀)
112번의 수저질
(밖)
113번의 수저질
(뜰)
114번의 수저질
(뼘)
115번의 수저질
(틀)
116번의 수저질
(검)
117번의 수저질
(녹)
118번의 수저질
(덫)
119번의 수저질
(매)
120번의 수저질
(빛)
121번의 수저질
(싹)
122번의 수저질
(잎)
123번의 수저질
(궤)
124번의 수저질
(반)
125번의 수저질
(산)
126번의 수저질
(철)
127번의 수저질
(올)
128번의 수저질
(절)
129번의 수저질
(빗)
130번의 수저질
(알)
131번의 수저질
(폼)
132번의 수저질
(흰)
133번의 수저질
(관)
134번의 수저질
(불)
135번의 수저질
(곶)
136번의 수저질
(글)
137번의 수저질
(장)
138번의 수저질
(두)
139번의 수저질
(숨)
140번의 수저질

   인간아, 이제 떠나라. 다만 떠나기 전에, 네 옷을 벗어 여기 두고 가라. 교회 앞에서 부친과 절연하고 자신의 모든 상속권을 포기했던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의 일곱번째 아들처럼. 오늘날 프란치스코회 성직자들 사이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으로 회자되는 성인은 값비싼 옷과 패물들을 발밑에 내려놓으며 선언했다. “이제부터 저는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만을 아버지라고 부르겠나이다.” 이 겸손한 남자는 만인 앞에서 벌거벗음으로써 비로소 온전히 청결해질 수 있었다. 인간이 악취를 풍기는 까닭은 태어나기를 더럽게 태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일생 동안 눈과 손으로 짓는 죄가 집과 옷과 살에 배기 때문이다. 죄인들이 죽은 뒤에 유황 지옥에 처박히는 것은 죄를 소독하는 데 있어 황만큼이나 효과적인 물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곳을 나갈 때는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가라. 네가 맨몸으로 이 글을 걸어나갈 때 네 몸은 레이디 고디바의 육신처럼 빛날 것이며, 글자들은 강렬한 섬광에 몸을 쬐인 나머지 불타 없어져버릴 것이다. 그러니 네가 지나게 될 길목들이 미리 창백한 빛으로 표백되어 있는 것도 온당한 일이다. 백색 방염 페인트 같은, 또는 하얀 누룩 같은, 갓 탈피를 마친 좀벌레 같은 종이 위를 맨발로 걸어가라. 그러므로 이 글은 닫는 글, 엮는 글, 묶는 글.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만들고 빚어낸 인체 한 구가 마침내 백지 위를 걸어간다. 내가 이 글을 닫을 때, 수천 년 간 세상을 향해 열려 있던 어느 오래된 종교 서적의 검은 가죽 책 껍데기도 조용히 닫히기를 바라며. 이 책의 형식과 문법을 그대로 빼앗아 써온 시간, 우리 손에서 새로운 생명이 맥동하고 있다. 다시 첫번째 인간이 일어날 차례다.



생물 연금 실습, Z. 총 6분 40초.


   작업 노트 5. 이제 하나의 인간을 S 두 줌으로 걷게 하리라


   S : 새로운 십계명
   1. 시작이자 끝인 음을 잊지 말라. 그것이 곧 너이다.
   2. 어둡고 무거운 소리를 경계하라. 이는 너의 가장 모서리 진 곳에서 웅크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또한 네 중심을 잡고 있음을 명심하라.
   3. 생을 노래하고 싶다면 먼저 들어라. 들으려 하는 자만이 들을 수 있는 가장 비밀스러운 소리까지.
   4. 사물과 조화를 이루라. 하지만 조화를 벗어나는 것 또한 두려워 말라. 네가 생각하는 조화만이 조화가 아니다.
   5. 사랑하고, 공명하라. 허나 그로 인해 다른 모든 것을 잊지 말라.
   6. 침묵의 때를 명심하라. 또 침묵을 향해 갈 때에는 서서히 쇠미하라.
   7. 생에 마주하는 파형들과 합쳐서 하나를 이루되, 버려야 함을 알라. 버리지 못하는 자는 소음이라.
   8. 과거의 복기가 현재를 넘어서지 못하게 하라. 그것이 끊임없이 증폭되면 무너지리라.
   9. 너는 진동에서 말미암았음을 기억하라.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으니 그저 나아가라.
   10. 끊임없이 부딪히고 반사되어 영원하라.

   S : 보이스 엔진 팀은 하나의 주제로 문학과 음악을 연결해보기 위해 조직되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텍스트와 사운드가 경쟁하며 충돌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데 목적을 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회차에서는 텍스트가, 어느 회차에서는 사운드가 압도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연재가 종료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이 모든 경쟁과 충돌조차도 하나의 음악으로 종합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컨대 회차마다 하나의 트랙이 배치되었다고 한다면, 마지막에는 다섯 개의 트랙이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되는 형식입니다. 이렇게 인간 역시도 숱한 생물학적 실패의 과정 속에서 아름답게 정련되었다는 사실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이지요. 마치 원소들이 결합해 화합물이 되고 신체를 이루듯이, 총 다섯 개의 트랙이 나중에 인간으로서 조합될 하나의 트랙에서 서로 결합된 형태로 각자의 단면을 드러내도록 말입니다. 이제 ‘생물 연금 실습’의 마지막 작업물을 내놓으며, 지난 5회차의 연재들을 살피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희는 작업을 하는 동안 서로의 사운드와 텍스트를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고 제출 기한에 다다라서야 작업을 바꿔 감상하며 매번 놀라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한 가지 새로 깨닫게 되는 것은 최혜리의 사운드와 신종원의 텍스트가 경쟁하거나 충돌하기는커녕 매 순간 너무나도 조화롭게 결합되었다는 사실뿐입니다. 저희가 그토록 다가가고 싶어 했던 전제: 음악과 문학은 하나였다는 결론이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이 같은 사실이 지난 일 년 관심 갖고 프로젝트를 지켜봐주신 독자, 청자 분들께도 전달되어 함께 전율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 코멘트를 끝으로 팀은 잠시 해산하겠으나, 언젠가 또 좋은 작업으로 만나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보이스엔진

문학을 통해 자신의 선율을 써내려온 소설가 신종원과 음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온 음악가 최혜리. 최초의 음성을 모방한다.

2022/02/08
51호

1
자끄 드뉘망, 『400번의 매질』의 제목 형식을 차용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