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시작해서 봄에 끝났다. 전국 다섯 개 도시에서 퀴어 독자들을 만나는 읽는 퀴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버스, 기차, 지하철, 비행기와 택시를 탔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일박을 했다. 억양이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 보는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었다. 이것은 여행이었을까? 우리도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는 여행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달랐다. 여행은 나의 장소에서 나 아닌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다. 세미나 참여자들과 모여 도란도란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그런 구분이 조금 민망해졌다.
   늘 조심스러웠다. 퀴어문학의 장에서 수도권/비수도권 논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서울에서 활동하는 우리가 그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고, 실제로 찾을 수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다섯 번의 여행을 마친 지금, 우리에게는 여러 얼굴이 남아 있다. 이렇게나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기쁨.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생각하는 방식도 다른데, 나는 우리의 무언가가 같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퀴어에 배타적인 한국 사회에서, 그와 나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애인과 손잡고 걷기가 조심스럽죠.”
   강원 춘천에서 만난 현정은 지역의 보수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손잡고 다닌다고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좁은 커뮤니티라 언제 누구의 의심을 살지 모른다는 것이다. 비단 그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전국 곳곳의 중고등학교에서 ‘동성애자 색출’ 설문지를 돌리고, ‘옷차림이 이상한’ 친구와 가까이 지내면 나쁜 소문이 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경기 소도시 출신인 나에게 퀴어 커뮤니티는 스크린 너머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같은 동네는커녕 같은 도시의 사람과 만나는 일도 꺼려졌다. 대도시의 익명성에 가려지기 전까지는 몸을 사려야 했다.

   “마음 편히 찾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두번째 행선지인 청주에서부터, 우리는 참석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다. 행사 직전까지 신청자 수가 한두 명에 그치거나 그나마도 전혀 오지 않는 상황이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청주 세미나의 주제는 ‘퀴어의 집 찾기 서사’. 게이 커플이 집을 찾으러 다니는 김현의 단편소설 「견본세대」를 읽고 모이는 자리였다. 김현의 작품과 나란히 두고 읽어도 좋을, 강화길의 등단작 「방」을 잠깐 들여다본다. 소설은 여성 커플(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위험한 도시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함께 꾸려갈 언젠가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오염 물질에 뒤덮인 도시에서 일하며 돈을 모으기로 한다. 끝내 그 미래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퀴어에게 안전한 도시란 어디일까. 퀴어에게 편안한 장소란 어떤 형태일까. 우리는 일시적으로나마 지역 곳곳에 그런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절반의 실패를 인정한다. 실제 지역 거주민들은, 퀴어 행사임을 공개한 장소에 제 발로 찾아가는 것에서 아웃팅의 위험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꿈꾼 안전함 역시 여행자의 오만이었는지 모른다.

   “남의 불행에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비정하게 들리려나. 전주에서 함께 읽은 박민정의 단편소설 「아내들의 학교」는 결혼에서 시작하여 유토피아에서 끝났다. 그래서 우리도 결혼에 관한 수다를 떨다가 유토피아로 마무리했다. 이슬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무관심한 사회’였다. 나는 그의 뜻을 곧바로 이해했다. 이슬이 원하는 무관심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이러쿵저러쿵 첨언하는 대신 ‘아, 그렇구나’라고만 덧붙이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큰일도, 별일도 아닌 사회. 생각해보면, 퀴어 포비아 진영은 퀴어들의 지극히 자질구레한 일상에까지 관심이 많다. 옷을 입어도 벗어도, 머리를 길러도 잘라도, 말을 해도 안 해도 문제다.
   이슬과 같은 관점에서, 나는 불가해의 윤리를 믿는다. 서로가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것. 타인이 영원한 타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 다소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나는, 어쩌면 이슬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다음의 해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남의 불행에 관심 갖지 않으면서도, 무관심에 누군가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 말이다.

   “사랑, 사랑, 사랑 이야기들.”
   마지막 행선지 제주에서, 우리는 퀴어문학의 현재와 다음을 이야기했다. 활동가 연이 말했다. ‘현재의 퀴어문학은 사랑, 사랑, 사랑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밖의 것, 혹은 그다음을 상상할 수는 없을까?’
   무지개책갈피 활동을 하며 가장 놀라는 순간은, 퀴어 더하기 문학이라는 작디작은 영역에서(!) 할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다. 읽는 퀴어 프로젝트를 마감하며 진행한 앙케이트가 그런 생각을 또 한번 들게 했다. 우리는 퀴어 독자를 대상으로 퀴어문학과 지역성에 대해 질문을 띄웠다. 이에 75명의 독자가 자발적으로 응답했고, 결과는 놀라웠다. 93.3%의 응답자가 ‘퀴어문학을 찾아서 본다’고 했으며,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퀴어문학을 선호한다’라는 항목에는 70.7%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한국에 퀴어문학이 ‘많다’고 답한 사람은 1.3%에 불과했고, ‘매우 적다’와 ‘적다’라고 답한 사람이 82.7%에 달했다. 퀴어 독자들의 열망과 헌신은 충분히 응답받고 있지 못하다.
   이 퀴어 독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읽는 퀴어 프로젝트 역시 같은 질문에서 시작됐다. 같은 앙케이트의 결과를 통해, 퀴어/문학 논의의 중심지가 온라인(74.7%)과 대학 중심의 모임(8%)에 치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출판, 퀴어문화가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여기는지 묻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 ‘그렇다’로 답한 비율은 78.7%였다. 결국 수도권 바깥의 퀴어 독자를 찾아가려 했던 우리의 이동은 얼마나 성공한 것일까? ‘다수결의 세계’(박민규)에서 다수결 바깥을 찾고 싶었던 우리는…… 결국 ‘더 많은 퀴어문학이 더 넓게 필요하다’라는 다수결적 결론으로 끝나고 마는 걸까?

   김현 시인이 말했다. “공동체는 대개 완전한 원(O) 모양으로 형상화되곤 하지만, 내게 공동체는 불완전한 원(C) 모양이다. 불완전해서 열려 있는 공동체. 교집합이 생기는 공동체 간의 결합이 아니라 각자의 것을 온전히 가지고도 연결될 수 있는 고리 공동체.”1) 읽는 퀴어 프로젝트를 통해서, 나는 나의 얼굴을 가진 채로 다른 여러 얼굴을 만났다. 짤막하게 이루어졌던 고리 같은 만남은 많은 질문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이 질문을 벼르면서 계속 움직일 것이다. 그 얼굴들이 모두 안온하기를.

퀴어문학 앙케이트 결과를 담은 팸플릿을 다음 장소에 무료 배포합니다.
꿈꾸는책방(청주), 서울퀴어문화축제 무지개책갈피 부스, 에이커북스토어(전주), 연희문학창작촌 문학미디어랩(서울), 책 바(서울), 책방놀지(전주), 책방마실(춘천), 퇴근길책한잔(서울), 햇빛서점(서울), 헬로인디북스(서울) 이상 가나다 순.


무지개책갈피, 보배

"한국에도 퀴어문학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작된 한국퀴어문학종합플랫폼. 퀴어문학이라는 장르조차 생소한 한국에서 퀴어를 다루는 소설을 모으고 읽고 씁니다. 읽고 쓰는 당사자 작가와 독자를 응원합니다. 그리하여 대답하려 합니다. "네. 한국에도 퀴어문학은 있습니다.”

2018/05/29
6호

1
김현, 『걱정 말고 다녀와』, 알마, 2017, 1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