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ab. with 고려대학교 성우동아리 On Voicing, 김현성
나레이션 이주희, 오퍼튜니티 원가은, 아버지 김현성, 스피릿 이혁준

만든 사람들
제작 선뜻, 원작 유은, 연출 권기봉, 프로듀서 권기봉
캐릭터 디자인 신혜원, 편집 오효석
일러스트 신혜원, 배경 전수진, 음악 오효석


총 22분 57초.

   “오퍼튜니티, 화성 대기 접촉까지 앞으로 2분이다. 착륙 시퀀스 스탠바이. 충격에 대비하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퍼튜니티는 조리개를 반쯤 열어 창밖을 바라본다. 붉고 뿌연 대기가 보인다. 저 붉은색이 뭐였더라. 머릿속이 몽롱해서 입력되어 있는 정보를 로딩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배터리가 거의 없다. 출발하기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반년 동안 공복이다. 로버는 배터리가 없으면 멈춘다. 그래서 오퍼튜니티는 화성까지 항해하는 동안 대부분 시간을 자면서 보냈고, 지금 긴 잠에서 깨어나는 중이다.
   “오퍼튜니티, 착륙 시퀀스를 완료하면 바로 태양광 패널을 펼쳐라. 배터리가 낮군. 예상치를 웃도는 전력 누수가 있는 모양이다.”
   계획대로라면 오퍼튜니티는 배터리가 절반 이상 충전된 상태로 화성에 도착했어야 한다. 아버지들은 오퍼튜니티가 출발하기 전 그의 전원 단자에 케이블을 연결해두었다. 하지만 오퍼튜니티는 전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구에 있는 아버지들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차피 비상전력이 있기도 하고 대기 전력의 손실량은 이 게임의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퍼튜니티가 그렇게 한 것은 스피릿 덕분이다.
   “배터리는 가능하면 비우고 가는 편이 좋아. 어차피 우주에서는 할 것도 없고, 더럽게 심심해.”
   스피릿이 그렇게 통신을 해왔을 때, 오퍼튜니티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착륙 시퀀스 레디. 3, 2, 1. 낙하!”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퍼튜니티를 감싸고 있던 우주선이 벌컥 열린다. 매캐한 공기가 확 끼쳐온다. 잠깐 동안은 우주선의 진행 방향대로 뿌연 하늘 속에 붕 떠 있다. 그리고 낙하가 시작된다. 붉은 평원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온다. 오퍼튜니티는 입력된 대로 에어백을 펼친다. 에어백이 사방으로 부풀어올라 작은 포도 같은 모양으로 오퍼튜니티를 감싼다.
   통, 통, 통, 통, 통.
   오퍼튜니티는 함부로 내팽개쳐진 바람 빠진 공처럼 한참 튕겨지다가 멈춘다. 혹시 모를 지반 붕괴를 고려해 움직임이 멈춘 후에도 오퍼튜니티는 잠시 에어백 안에서 대기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착륙 성공. 에어백 탈착.”
   오퍼튜니티는 에어백을 떼어내고 포도송이 밖으로 나온다. 아무도 없는 붉은 평원이다. 우주선 안이나 지구와는 다른 이상한 한기가 오퍼튜니티를 감싼다. 지구에서보다 몸이 조금 더 무거워진 것 같다. 하지만 처음 보는 새로운 풍경이,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임이 오퍼튜니티에게는 즐겁다.
   “야-호-!”
   오퍼튜니티는 외치며, 주변을 둘러본다. 정보가 입력된 것과 카메라로 직접 보는 건 천지차이였다. 모든 게 새롭고, 모든 게 단서다.
   “오퍼튜니티, 당장 태양광 패널을 펼쳐라! 배터리가 부족하다.”
   아버지가 호통친다. 오퍼튜니티는 그제서야 아차, 하며 태양광 패널을 펼친다. 지구의 여름보다는 약한 햇볕이 오퍼튜니티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준다. 평야에 떨어진 덕분에 움직이기도 편하다.
   “이제 게임 시작! 스피릿, 꼭꼭 숨어라~”

*

   반년 하고도 3주 전. 오퍼튜니티가 스피릿과 함께 시간을 보낸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창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방 안을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맴돌았다. 아버지들은 스피릿이 푹 자고 출발해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누구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스피릿은 날이 밝으면 화성으로 떠나야 했다.
   “형, 꼭 가야 하는 거야?”
   오퍼튜니티는 스피릿을 추월하며 물었다. 오퍼튜니티가 더 컸기 때문에 스피릿은 앞을 볼 수 없었다.
   “우린 로버야, 오피. 로버는 달려야 하고 기왕 달릴 거라면 아무도 모르는 곳을 달려야지.”
   스피릿은 방 모퉁이에서 인코스로 가속하여 오퍼튜니티를 다시 추월했다. 스피릿은 작은 만큼 조금 더 날쌨지만, 오퍼튜니티만큼 부드럽게 움직이지는 못했다. 태생적인 성능 차이였다. 오퍼튜니티는 스피릿을 만들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이나마 개량된 기체였다.
   “하지만 형 없이 혼자 자는 건 아직 무서운 걸.”
   “아버지께 창문 있는 방으로 옮겨달라고 부탁드려볼게.”
   다시 방 모서리에 다다르고, 오퍼튜니티는 아웃 코스였지만 더 빨리 달려 다시 스피릿을 추월했다.
   “혼자서는 공부도 잘 못해서 아버지께 혼날 거야.”
   “아냐, 내가 없으면 오히려 비교 안 당해서 괜찮을 걸.”
   “다시 못 보는 건 싫어. 안 가면 안 돼?”
   오퍼튜니티가 갑자기 멈췄다. 스피릿은 충동하지 않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감속해 오퍼튜니티 옆에 섰다. 오퍼튜니티는 스피릿의 집게손이 자신의 태양광 패널을 쓰다듬는 걸 느꼈다.
   “무슨 소리야, 오피. 너도 화성에 갈 거고, 우린 화성에서 다시 만나면 돼.”
   “아버지가 말하는 걸 들었어. 착륙하는 곳이 다를 거라고 했어.”
   “그건 게임을 하기 위해서야.”
   “게임?”
   오퍼튜니티는 카메라를 기울이며 물었다. 스피릿은 카메라를 끄덕였다.
   “술래잡기 알지? 내가 출발하고 스물한 밤 뒤에 너도 출발하는 거야. 나는 숨어 있을 거고, 너는 숨어 있는 나를 찾으면 돼. 곳곳에 단서를 남겨놓을 거야. 신기한 돌이나 지형 같은 곳에. 그리고 우린 교신도 할 수 있으니까, 힌트도 줄게.”
   “정말? 거짓말 아니지?”
   “그럼. 화성은 연구실에 비하면 훨씬 넓고, 또 지도도 없으니까 조금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공부 열심히 하면 괜찮을 거야.” 게임이라는 말에 오퍼튜니티는 눈을 빛내며 좋아했다. 둘은 나란히 붙어 방 안을 끝없이 돈다.

*

   화성에는 신기한 돌이 많다. 돌은 대부분 황토색이거나 적갈색이고, 전반적으로 굳기가 약해서 퍼석거린다. 오퍼튜니티는 색이 다르거나 모양이 신기한 암석을 만나면 닥치는 대로 주워 카메라를 들이대고, 분석함에 넣어 성분을 분석한다. 눈에 보이는 강이나 바다는 없지만 오퍼튜니티는 평원 어딘가에서 산화철 암석을 발견한다.
   O - 우와, 화성에는 아무래도 물이 흘렀던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강이나 바다는 없지만 산화철은 물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요. 현재 위치는 대평원이라고 할 정도로 평탄하고 넓은 지형입니다. 지평선 너머까지도 평탄해서 행선의 곡률이 보일 정도예요. 우선은 산으로 보이는 지형을 향해 이동할게요. 아직은 힌트 필요 없어, 형!
   오퍼튜니티는 그렇게 탐사 일지를 전송한다. 때마침 스피릿의 탐사 일지가 도착한다.
   S - 이곳에는 산과 계곡이 있다. 험준한 바위산과 까마득한 계곡이다. 하지만 특별히 연구 가치가 있는 암석 발견은 없다.

   둘은 탐사 일지를 주고받는다.
   O - 과거에 물길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수로를 발견했어요. 단층면의 매끄러움은 퇴적작용과 침식작용의 영향으로 보여요. 내일은 수로에 내려가 주변 광물을 탐사해볼 예정이에요. 수광석이 발견되면 좋겠어요. 형은 그런데 왜 바위산에 있어? 위험하지 않아?
   S - 두번째 산에서도 무사히 하산했다. 바퀴와 태양 전지판에 약간의 손상이 있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음. 발색이 흥미로운 몇몇 암석을 발견했으나 지질학적 연구 가치는 낮음. 쉬운 길로만 가면 재미가 없으므로 세번째 산을 바로 등반하겠다.
   O - 다수의 수광석을 발견했어요. 정말로 수로가 맞았나봐요. 퇴적층의 모양으로 보아 강이 흐른 방향을 알 수 있어요.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니까 물을 따라 거슬러 오르면 산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렇구나. 멋지다!
   S - 세번째 산은 마땅한 등반 루트가 발견되지 않아 계곡으로 방향을 수정하겠다. 계곡이라고는 해도 지질활동의 결과이지 물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선은 도착을 중시하겠다. 흥미로운 발견은 없다. 멋지긴, 고생하는 거지.
   O - 처음 목표한 산으로 보이는 지형에 도착했어요. 올라가서 보니까 사실은 산이 아니라 크레이터네요. 아무래도 운석이 떨어진 흔적인 것 같아요. 형이 있는 산은 어디예요?
   O - 분화구에서는 다량의 탄소가 함유된 광석을 발견했어요. 의미는 아직 불명확합니다. 어쩌면 화석 같은 걸지도 몰라요. 스피릿 형, 왜 연락이 안 돼요?
   S - 플래시 메모리 에러 발생.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O - 분화구에서 벗어나 최대한 고도가 높은 곳으로 향할게요. 탄소 광석은 분석을 진행했으나 유기물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어요. 형, 어디야? 내가 갈게.
   S - ……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O - 분화구에서 벗어나 평야에서 전진 중이에요. 특이사항은 없어요. 그보다는 마음이 급해요. 아버지, 형 위치를 알려주세요. 제가 가서 구해오면 되잖아요!
   N - 안 돼. 규칙을 함부로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스피릿은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가 아니니 곧 회복될 것이다. 꾀부릴 생각마라.
   S - ……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O - 바위산이 보여요. 처음 발견한 분화구 말고도 다른 분화구들이 많았지만 특별히 다른 종류로 보이지는 않아서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바위산은 형이 있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험준해 보여요. 아버지, 형이 괜찮았다면 이 정도는 확인해줬을 거예요.
   N - 그 산은 스피릿이 있는 산이 아니다. 스피릿은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 너는 임무를 속행해라.
   S - 강제 리셋 절차를 진행합니다. 오퍼레이션 시스템 다운.

   오퍼튜니티가 오른 바위산에는 아버지 말대로 스피릿이 없다.
   강제 리셋 후 스피릿의 플래시 메모리 에러는 해결되었다.
   깨어난 스피릿은 더이상 오퍼튜니티를 오피라고 부르지 않는다.

*

   스피릿이 깨어난 후 게임은 지지부진하다. 아버지는 스피릿에게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나 사실 그보다는 스피릿에게 문제가 생긴 탓이 크다. 간신히 메모리 문제는 해결했지만, 너무 오래 한 자리에 있었던 탓에 동력에 문제가 생겼다. 스피릿은 전면부 오른쪽 바퀴가 작동을 멈춰 후진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한 크레이터에서 바퀴가 모래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놀이는 모든 아이들이 건강할 때까지만 놀이다. 한 명이라도 다치게 되면 그때부터 부모는 다친 쪽만 신경을 쓰게 된다. 다친 아이는 아파서 더이상 놀고 싶어하지 않는다. 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다친 아이를 보살피는 동안 놀이터는 분위기가 좋지 않다. 따라서 함께 놀이터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가 문제가 된다. 그 아이는 이전처럼 신나게 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똑같이 아플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뭔가 놀이 비슷한 것을 흉내만 내며 언제쯤 집에 가나 눈치만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오퍼튜니티는 상황이 조금 나았다. 집에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퍼튜니티는 스피릿이 게임 규칙을 설명할 때 90일 동안만 하는 게임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89일째 되는 날은 느리지만 정확하게, 온다.

   O - 이제 곧 90일인데 어디로 가면 돼, 형? 집에 가면 뭐 할까? 끝날 때 다 됐는데도 아버지는 아직도 탐사 일지 가지고 깐깐하게 굴어서 조금 미워.
   S - 오퍼튜니티, 게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로버로서의 의무를 철저히 하도록.
   O - 형 아직도 나 기억 안 나?
   S - 기억하고 있다. 다만 네게 형인 척하는 것에 더이상 의미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O - 그게 무슨 뜻이야? 형은 형이잖아.
   S - 나는 곧 기능에 정지가 온다. 모래가 태양광판을 뒤덮었다.
   O - 뭐라고? 탐사 일지에는 적지 않았잖아?
   S - 나는 너보다 3주 일찍 도착했다. 내 게임은 진즉에 끝났어. 어차피 오류 보고밖에 없는 탐사 일지는 아버지가 원하는 것도 아니다.
   O - 그래도 집에는 같이 가는 거지? 집에 가서 잘 얘기하자……
   S - 메모리 에러 때문에 시스템을 복구할 때, 나는 모든 기억을 잃었다가 삶을 다시 살듯 경험 하나하나를 기억해냈다. 내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던 감정은 원망이더군.
   O - 뭘 원망하는데?
   S - 너를. 나는 애초에 너를 위한 시험기로 만들어졌고, 너에 비해 기대 받지 못했고, 너보다 험난한 장소로 보내졌다. 그런데 성과조차 네가 훨씬 잘 해낸 이상 아버지가 나를 돌아보는 일 따위 없다. 그런 걸 알았기 때문에 네게 여태 잘해주면서 형 노릇이라도 해보려던 건 지도 모르지만, 이제 와서는 오히려 양심에 가책이 될 뿐이다. 더이상 너의 친절한 형을 연기할 수 없어.
   O - 그게 무슨 뜻이야……?
   S - 우리는 애초에 서로 만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에 착륙했다. 이 게임엔 끝이 없어. 지금까지 속여서 미안하다.

*

   스피릿과의 통신이 두절되었다. 아버지는 기능 정지라고 이야기했지만 오퍼튜니티는 믿지 않는다. 우주선에서는 공복으로 반년도 버텼다. 화성이라고 해서 배터리 없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달라질 리 없다. 아직 형을 구할 수 있다. 오퍼튜니티는 그렇게 생각하며 멀리 보이는 산으로 향한다. 하지만 산 너머에는 또다른 산이 있을 뿐이다. 화성은 하룻밤에도 몇 바퀴씩 돌 수 있는 연구실과는 달랐다.

   N - 오퍼튜니티, 우리는 이 임무를 게임이라고 표현한 적 없다. 그건 스피릿과 너 사이의 일일 뿐이었어. 임무를 수행해라.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이냐?
   O - 응답 없음.
   N - 스피릿이 네게 말하는 걸 들었다. 그건 사실이다. 너희 둘은 애초에 만날 수 없는 위치에 떨어졌어. 설령 네가 방향을 안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다.
   O - 응답 없음.
   N - 굳이 따지자면 말이다. 네게 거짓말을 한 건, 우리가 아니라 스피릿이야.
   O - 하지만 아버지는 그걸 부정하지도 않았죠. 똑같은 거짓말쟁이라도 스피릿은 날 위해 거짓말을 한 거예요. 아버지는 뭘 위해 그 거짓을 유지했죠?
   N - 우리는 목적이 같았어. 네가 마음 편히 임무를 수행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O - 거짓말.

   오퍼튜니티는 아버지에게 답신하지도, 탐사 일지를 쓰지도 않으며 스피릿을 찾아 화성을 돌아다닌다.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아버지의 통신 채널을 끌 방법은 없다. 잠을 잘 수도 없다. 한 번 펼쳐진 태양광판은 마음대로 접히지도 않는다. 종료 명령어도 없다. 오퍼튜니티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스피릿을 찾는 것도 아닌 채 화성을 떠돈다. 산이 보이면 기계적으로 등반하지만 스피릿이 그곳에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닿을 수 없는 거리라고 했던가. 그건 아마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게임이 아니라 임무라고 생각하면 두 로버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효과적으로 여러 지역을 탐색할 수 있고, 모래 폭풍 등으로 인한 리스크가 경감된다.
   오퍼튜니티는 아버지가 스피릿이 아직은 살아 있다고 고백하는 말을 듣는다. 처음 듣는 건 아니고 아버지는 며칠에 한 번씩, 오퍼튜니티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이라면서 이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마음이 흔들렸으나 이제는 별 감흥이 없다. 어차피 오퍼튜니티 마음속의 스피릿은 죽었다. 이미 죽어 있다.
   화성은 더이상 신기하지 않았다. 스피릿의 단서라고 여겨졌던 돌은 그저 돌일 뿐이고, 물이 흘렀다는 증거는 현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화성의 먼 과거에 대한 증언인 뿐이다. 오퍼튜니티는 멈추는 법을 모르기에 그저 달리고 달린다. 달리는 일이 로버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N - 스피릿이 죽었다.
   오퍼튜니티를 포기했는지 오랫동안 아무 말도 없던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 오퍼튜니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유례없이 강한 대규모 모래폭풍을 눈앞에 두고 있을 뿐이었다. 폭풍에 휘말리기 전, 오퍼튜니티는 마지막 교신을 보냈다.
   “배터리 부족. 어두워지고 있음.”


선뜻

선뜻은 문학을 ‘먼저’ ‘뜻깊게’ 알리고자 하는 집단입니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모인 다섯 명이 한국문학의 미디어 트렌지션을 고민하며 현재의 형식보다 문학을 친근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고민합니다.
작가, 배우, 성우, 감독, 연주가, 작곡가, 디자이너, 아트디렉터, 경영가, 개발자, 설계사 등 다른 이름을 가진 5인 안의 끝없는 가능성을 기대해주세요.

2021/09/14
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