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시키-ㅌ
4화 술김에 하는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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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사몽한 일요일 오후, 다섯 사람이 연희문학창작촌에 모였다.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었기에 우리는 책상을 구석으로 밀어붙이고 옹기종기 앉았다. 간단한 프로젝트 소개 후 잠깐 침묵이 돌았다. 팀원B가 책상 아래로 허리를 숙이더니 큰 편의점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과자 봉지를 뜯고 서로서로 컵에 음료를 채우면서 어색한 표정이 조금씩 풀렸다. 바삭거리는 과자 소리와 함께 우리들의 이야기도 시작됐다.
“저는 ‘술김에 그랬어’라는 말을 진짜 싫어해요 ‘홧김에 그랬어’는 화가 나면 또 그러겠다는 말이고.” _나나
“취해서 ‘아, 나 이거 사실 너한테 말 못했는데, 술김에 하는 얘기야’라고 한다든가, 아니면 다퉜거나 잘못을 한 친구가 술김에 전화해서 나한테 사과를 한다든가 하는 경우가 있죠. 근데 이런 것이 다 술 없이도 할 수 있는 것들이잖아요. 술 없어서 못할 거면 애초에 전할 마음이 없는 말이었던 거죠. 저는 진심을 전할 때 술이 꼭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_앨리슨
“내가 이방인의 처지가 되면 남들이 내가 한 행동들에 더 집중을 하게 된대요. 이 행동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 내가 대표하고 있는 어떤 유색인종의 대표 격이 되기 때문에요. 그 사람들은 그거 가지고 판단을 하게 되고 그리고 그걸 가지고 남들한테 또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더 조심스러워지는 거죠.” _에비
“제가 중동의 여러 나라들을 좀 돌아다녀봤어요. 현지인들이 다들 저한테 물어봐요. 너 무슬림이냐고요. 제가 아니라고 하면 ‘그래도 신은 널 사랑하셔’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 말이 묘하게 위안이 됐고 감동받았어요. 이슬람이라는 낯선 종교에 대한 편견이 깨졌어요.” _짱구
“전 요즘 제일 많이 생각하는 단어가 ‘자아의탁’(좋아하는 대상을 나와 동일시하거나 자신보다 더 큰 존재로 여기는 걸 뜻하는 조어)인데요. 남의 말 한마디를 붙잡고 계속 생각하는 거예요. 특히 애인한테 너무 집착하거나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얽매이는 경우가 있잖아요. 일중독 같은 것도 일에 자아의탁을 해서 그런 거겠죠.” _깍지
“요즘 제 또래 친구들이 그런 말들을 많이 하거든요. 인간관계가 많이 정리가 됐다고요. 그러면서 힘들어하기도 하고, 자신의 성향이랑 맞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도 하고요. 항상 옆에 있어줬던 친구가 정말 특별한 친구였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해요.” _앨리슨
“제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저 사람은 참 모범적이다, 저 사람이 믿는 신이라면 나도 믿어볼만하다’라고 여긴다면, 그 정도의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저는 행복할 거 같아요.” _나나
A의 시선 지도. 우리가 마신 술은 일회용 종이컵 바닥을 적시고, 머리맡에는 향기 나는 것이 늘어나고 있었다.
B의 시선 지도. 토픽과 관련된 단어를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 다국어로 술병 안에 채워 넣었다.
C의 시선 지도. 책상에서 술을 마셨다. A4 용지에 마카로 글씨를 쓰고 물로 번지게 했다.
우리는 서로의 달콤 쌉싸래한 이야기를 맛보며 그 순간만큼은 친근한 친구가 되었다. 컴퓨터는 대화의 토픽으로 ‘인종차별’ ‘술’ ‘종교’ ‘친구’를 뽑았다. 결과는 키-ㅌ 팀원들이 예측한 것과 유사했다. 토픽 중 ‘인종차별’과 ‘종교’는 자기 삶의 이력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나온 주제였다. ‘인간관계’와 ‘가치관의 변화’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가 오갔는데, 컴퓨터는 이것을 ‘친구’라는 토픽으로 정리했다. ‘인간관계’가 ‘친구’보다 상위 항목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반대로 ‘친구’라는 토픽의 하위로 들어간 것이 흥미로웠다. ‘인생’ ‘자아’ 같은 단어들은 ‘인간관계’로 묶일 줄 알았는데, 종교와 묶여나온 것이 의외였다.
다음은 선정된 토픽과 단어들을 시각화한 인포그래픽이다.
팀원들은 ‘인종차별’ ‘술’ ‘종교’ ‘친구’라는 토픽을 가지고 스크립트에서 등장한 단어를 골랐다. 다음은 팀원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만든 시선 지도이다. 병에서 쏟아진 술들이 지면을 적셨다. 글자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번져갔다.
동아리 사람과 길을 걷다가 누군가와 마주쳐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작년 봄 즈음에 잠깐 다니던 교회에서 알게 된 여자애였다.
“누구야?”
“전에 알던 애.”
“친구?”
그날 밤, 나는 너의 무릎을 끌어안듯 베고 누워 불평처럼 말을 늘어놓았다. 그런 사이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저 취향의 일부분을 공유했던 사이, 어쩌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지도 모를 사이, 그렇게 치면 정확히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누가 남지. 습관처럼 앞머리를 쓸어주며 네가 조용히 말했다. 네 말대로라면 세상에 정확한 게 어디 있겠니.
테이블 위에 켜놓은 촛불 그림자가 벽에 비쳤다. 일렁이는 그림자를 가만히 바라보면 외줄 위에 올라가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바닥을 짚고 일어나 촛불 옆에 놓인 럼주를 잔에 따라 마시며 너의 옅은 갈색 눈을 들여다보면 늘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런 순간들이 모이고 모이면 결국 그게 사랑이 되는 게 아닐까.
한 해의 평균 기온이 섭씨 5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차가운 도시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몇 년째 버틸 수 있었던 건 네 덕분이었다. 다섯 나라의 언어를 할 수 있고 세 나라의 피가 섞여 있는 너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수업에서 아무도 나를 같은 조에 끼워주지 않았을 때 어깨를 두드려준 단 한 사람이었다. “어쩌겠어, 생긴 게 다른데.” 애써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내게 네가 말했었지. “다른 게 틀린 게 되는 거야?” 살면서 수백 번을 들어본 진부한 말이 그렇게 명쾌하게 들린 건 처음이었다.
남은 럼주를 몽땅 들이켰다. 세상에 정확한 게 어디 있냐고 물었지, 네가 나의 애인이라는 사실, 그건 정확하지 않을까. 한국말로 중얼거리며 다시 네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여느 때처럼 점심은 간단하게 보르시로 때운다. 사흘 전? 어쩌면 일주일 전? 언제 만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알게 뭐람. 전자레인지에 대충 돌려 스메타나를 곁들이면 그만이다. 한꺼번에 많은 비트를 정신없이 손질하다보면 어느새 손에 말간 자줏물이 옮겨든다. 이것은 사실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귀찮은 과정이다. 한 끼라도 거른 날에는 머리에 온통 멸균한 유리병에 모아둔 보르시 생각뿐이다.
네가 처음으로 우리집에 온 날도 그러했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L교수의 수업. 미하일 불가코프의 소설을 읽은 날이었나. 이름조차 흔해빠진 어떤 등장인물이 뜨겁고 걸쭉한 보르시로부터 뼈를 건져내려는 순간, 눈치 없이 불청객이 들이닥치고 말았지. 두 끼를 연속으로 거른 채 술만 진탕 퍼부은 탓에 나 역시도 ‘뜨겁고 걸쭉한 보르시’가 간절했던 하루였다. 누가 찾아오든 말든 절대 집 안에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막 식사를 시작하려는 순간, 과연. 네가 불쑥 들이닥친다.
과연 그때의 너는 내게 불청객이었을까. 네 까만 눈이 거실에 잡다하니 널브러진 술병들을 따라 움직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속이 따끔거린다. 나를 만난 후로 너는 럼주(정확히는 까샤사)를 들이키기 시작했고, 습관처럼 다녔던 교회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수없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를 해주며 비트의 자줏빛이 내 손에 옮아든 만큼, 너 역시 나로부터 물이 들어버린 걸까. 그날, 우리는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약간은 눅눅한, 그러나 아직은 먹을 만했던 수프를 싹 해치웠더랬다.
보-르-시. 까-샤-사. 나를 빚어낸 나라들의 식탁에서 아마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음식들. 특유의 억양으로 연신 어설프게 발음하며 꺄르르 웃는 너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내심,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 또한 좋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K는 나를 꼭 선화라 불렀다. 이곳에서 나를 선화라 부르는 사람은 K밖에 없었다. K와 나는 전공도 생김새도 스타일도 관심사도 모두 다르다. K는 무신론자지만 나는 신을 믿는다. K는 술을 좋아하지만 나는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한다. 우리의 접점은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 말고는 하나도 없다. 그것이 K와 내가 어색한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K와 마주치는 순간들을 좋아한다. 그것은 K가 나를 선화라 불러주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했던 첫날을 기억한다. 교수는 나에게 너를 뭐라고 부르면 되겠냐고 물었고 나는 준비해둔 이름을 꺼냈다. 저는 나탈랴에요. 그후로 나는 나탈랴가 되었다. 출석부에 적힌 내 이름은 분명 선화일 텐데도, 교수들은 나를 나탈랴라 불렀다. 학교 친구들도, 교회 성도들도(심지어 한인교회인데도!) 나를 나탈랴라 불렀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그 언어에 맞는 자아가 생겨난다고 했던가. 나는 여기서 선화가 아닌 나탈랴였다.
괜시리 나탈랴라는 이름이 미워질 때가 있다. 나탈랴는 이곳에서 유학생, 아시아 소녀, 신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남아 있는 선화는 여전히 선화이다. 나는 내가 선화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선화는 나의 다짐이 되었다.
드넓은 러시아 땅에서 나를 선화라 불러주는 사람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잊지 않게 해준다. K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K는 고마운 사람이다. 이번에 다운타운에서 K를 마주치면 더 긴 인사를 건네보아야지,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내가 어떻게 변하든지 끝까지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진짜 고마운 거 같아요.” _앨리슨
오늘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친구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고 싶다.
키-ㅌ
‘키-ㅌ’는 문학에 관심이 많은 세 사람이 기술을 도구로 문학을 재해석하기 위해 모인 팀이다. 무언가를 조립해서 만들 수 있도록 부품을 모아놓은 세트인 ‘kit’에서 착안하여, ‘키-ㅌ’는 이야기와 이야기,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한다.
2018/05/29
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