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비둘기가 얼마 전 받았던 생일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쩌면 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말, 생일. 이번 생일에 비둘기는 어떤 편지를 받았을까요.


   이번 년엔 꽃이 조금 늦게 핀 것 같습니다. 꽃샘추위가 유달리 차가웠기에, 꽃들이 아직 봄이 온 것을 몰랐던 걸까요. 저는 항상 제 생일을 꽃놀이 끝물 즈음 맞이했던 것 같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꽃잎만큼, 바닥을 소복이 채운 꽃잎도 많은 봄날, 저는 제 탄생을 축하하는 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해의 제 생일은 꽃놀이가 막 시작되던 날이었습니다. 생일날 아침, 며칠 전만 해도 꽃이 필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나무들에 꽃이 만개하여 있는 것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이번 년도엔 너희를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활짝 피었구나. 꼭 나의 생일을 알리러 온 것 같다, 고마워.’

   이제 꽃이 모두 지고, 파릇파릇 녹색 잎이 나기 시작합니다. 제 생일도 보름이 지났네요. 보름 전, 꽃이 드디어 폈다며 좋아했는데, 어느새 녹색 잎만 가득한 나무를 보고 있자니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꽃이 지는 것처럼 저 역시도 제 생일을 잊고 있었는데, 어젠 가장 친한 두 친구, ‘온’과 ‘영’이 제 생일을 축하해주었습니다. 사실 생일을 핑계로 오랜만에 만나려 한 것인데, 그 역시도 보름이 지나서야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친구들은 제게 편지를 주었습니다. 선물은 해외 배송 중이라 비행기 속에 있다며, 편지가 선물의 예고편이라고 했습니다. 친구들과 헤어지자마자 편지를 열어보았습니다.

   예고편은 참 귀여웠습니다. ‘온’은 세로쓰기 편지지를 고르는 바람에 글을 세로로 쓰게 되었다며 시작하였고, ‘영’은 우리가 벌써 15년차 친구라며 5년 후에 다시 편지를 꺼내어 읽어보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두 친구 모두 가장 흔하지만 중요한 말로 제 생일을 축하해주었죠. “생일 축하해!!”라며. 그들의 편지엔 이제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벌써 3년차 직장인이 된 ‘온’과, 그날도 취업 시험을 보고 온 ‘영’,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철없는 삶을 살고 있는 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각자 시간과 소비와 관심사의 패턴이 달라진, 우리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학창 시절과 대학 시절을 보냈지만, 각자 다른 갈림길을 선택한 지 어언 3년, 이젠 각자의 길에 익숙해진 우린 편지를 통해 서로의 길을 응원합니다.

   ‘온’은 항상 제게 부럽다고, 그리고 자랑스럽다고 말합니다. 우린 종종 불안과 자유를 바꾸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비교적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마음 한편의 불안은 항상 존재하는 저와,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지만 불필요한 불안을 지니지 않은 친구, 그리고 우린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온’의 편지엔 언젠가부터 자주 만나지 못하고, 연락도 예전보다 뜸해진 우리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은 담지 않습니다. 각자의 바쁜 삶에 서로에게 내어줄 시간이 줄어들곤 하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존재임은 여전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은 시험을 막 보고 나와 편지를 쓴다며 팔이 떨려 글씨가 못생겼다고 말합니다. 힘이 빠져 모서리가 더욱 둥글어진 ‘영’의 글씨체는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짠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영’은 우리의 오랜 친구 사이를 신기해하다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귀엽게 함께 살아가자고 고백합니다. 날이 더 따스해지면 도시락을 싸서 한강 공원에 나가 놀자, 여름엔 수영장도 가보자 신나서 이야기하는 ‘영’, ‘영’은 종종 우리에게 이런 제안을 했지만 최근 몇 년간 우린 함께 제대로 된 나들이도 가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년엔 ‘영’의 제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부터 노력해봐야 하겠네요.

   3년 전, 각자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을 땐 서로에 대한 서운함도 있던 것 같습니다. 바빠진 친구와 몇 시간 제대로 만나지도 못할 때에는 아쉬움도 남았었고, 가장 친한 친구라며 소개하면서 한 달에 한 번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우리’에 대하여 다시 생각을 해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작은 아쉬움과 서운함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각자의 시간을 쪼개고 빈틈을 만들어 만나는 만남이기에, 그 시간에 충실하고 신나게 웃고 먹고 마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시간을 또 쪼개어 써준 이 편지도 무척 고맙습니다. 저는 분명 친구들의 예고편이 본편보다 좋을 것 같습니다.

   생일에서 보름이 지나 제게 도착한 ‘온’과 ‘영’의 생일 편지, 이 편지들을 몇 번이고 읽다 ‘영’의 편지 속 한 문장에 잠시 눈이 멈추었습니다.
   “나이를 먹고 삶이 팍팍해질수록 친구가 참 좋아!”
   앞으로 우린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더 좋아하게 되겠네요. 꽃은 졌지만 참 따스한 봄입니다.


월간비둘기

월간비둘기는 손 편지 정기구독 프로젝트입니다. 정찬처럼 자리를 잡고 먹어야 하는 긴 글 덩어리 말고, 빵 쪼가리처럼 뜯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편지 한 장을 써서 띄웁니다. 그리고 우편함 속 전기세 고지서, 백화점 전단지, 예비군 소집 통지서, 슈퍼마켓 광고지 사이에서 우연히 사람이 쓴 편지를 발견했을 때의 작은 희열을 아낍니다.

2018/05/29
6호